299년 전,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탄생했다 [정숭호 칼럼]
299년 전,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탄생했다 [정숭호 칼럼]
  • 정숭호 칼럼
  • 승인 2022.06.16 07:52
  • 수정 2022.06.16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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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년 전인 1723년 6월 5일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에 인접한 조그마한 항구 커콜디에서 한 사내아이가 유복자로 태어났다. 경제학을 탄생시킨 애덤 스미스다.

그는 “인간은 누구나 자기 행복을 위해 이기심을 발동하나, 모든 인간의 이기심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서로 조화를 이루고, 사회 전체에 번영을 가져온다”라는 말로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얼개를 우리에게 보여줬다. 오늘날 지구상 대부분 인간 행동은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펼쳐 놓은 이 얼개 위-크고 작게 뒤틀린 지점이 있긴 하지만-에서 전개되고 있음은 우리 모두 잘 안다. 이 얼개에서 비롯된 자유무역과 분업으로 현대의 보통 사람들이 예전의 왕이나 군주보다 훨씬 더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 또한 우리는 잘 안다.

스미스가 열두 살 때 커콜디에서 밀수꾼 한 명이 처형되고, 그 처형 전후에 커콜디 주민들 사이에 일종의 ‘봉기’ 비슷한 것이 일어났다. 커콜디 주민들은 북해와 발트해 연안 국가와의 교역에서 생기는 수입으로 삶을 꾸리고 있었다. 국내 산업을 지키기 위해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매기는 정부에 불만이 높았던 주민들은 이 밀수꾼을 동정해 시위를 벌였다. 감옥을 지키던 군대가 발포하자 시위대는 발포를 명령한 지휘관을 붙잡아 밀수꾼이 처형될 때 동시에 목을 매달았다. “먹고살려고 한 일에 그렇게 가혹한 처벌을 내리다니!!”라는 분노가 주민들을 관과 군에 대항해 일어나게 했다.

에든버러에 세워진 애덤 스미스 동상. (위키피디아)
에든버러에 세워진 애덤 스미스 동상. (위키피디아)

스미스의 삶을 꼼꼼히 추적, 1995년 『애덤 스미스의 생애』에 담아낸 스코틀랜드 태생 캐나다 경제학자 이언 로스(1931~2015)는 “아마도 어릴 때 지켜본 이런 사건들이 스미스가 평생 ‘간섭 없는 경제, 자유로운 교역’이라는 생각에 몰두케 한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의 개인적인 경험 외에, 스미스가 계몽주의 시대의 사람이라는 점도 그가 인간의 자유를 모든 가치 중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게 된 배경으로 꼽힌다. ‘인민-보통 사람’은 군주와  귀족의 안녕과 행복을 위한 ‘노예’일 뿐이라는 봉건주의 사고는 인간에게는 인간의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핵심인 계몽주의가 등장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자유는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데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스미스는 “자유인의 노동이 노예노동보다 값싸다”라거나 “노예는 신분이 자유로울수록 주인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 이러한 덕성은 대부분 자유로운 하인들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다. 노예가 오직 노예로서만 취급되는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스미스는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모든 인간의 행복을 보장한다고 말했지만, 자본가의 이기심과 탐욕에는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수의 하인을 유지하면 가난해지나 다수의 제조공을 고용하면 부자가 된다”라며 기업인의 활동을 사회의 풍요와 연결했지만, “고용주들은 노동임금을 현재의 수준 이상으로 인상시키지 않기 위해 언제나 어디서나 일종의 암묵적이지만 끊임없는 통일된 단결을 맺고 있다”라는 사실도 파악했다.  

스미스는 기업인들이 일반 대중을 속이는 것도 간파했다. “동업자들은 즐겁게 놀거나 기분전환을 위해 서로 만나는 경우가 매우 드물지만, 만나기만 하면 대화는 언제나 국민 대중에 대한 음모, 즉 가격 인상을 위한 어떤 술책으로 끝난다”라고 쓰기도 했다. 국부론에는 기업인과 거상들이 정부의 장려금을 어떻게 받아내고, 자신들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정부의 규제를 어떻게 이끌어내는가에 대한 증언도 생생하다. 자유를 누리려면 정의에 기반한 법치-법에 의한 지배가 필수라는 진리도 스미스는 꿰뚫어 보고 있었다.

1776년 출간된 『국부론』 초판 표지(위키피디아)
1776년 출간된 『국부론』 초판 표지. (위키피디아)

탄생 300주년이 되는 내년에 써야 할 스미스 이야기를 지금 왜 쓰는가. 새 대통령 취임 한 달이 지난 지금, 미흡한 내각 구성과 검찰 출신 인사 중용 등 대통령의 일부 결정을 걱정하면서도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한 그에게 보냈던 지지를 거두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취임식에서 서른다섯 번이나 ‘자유’를 언급하고, 그 가치를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 깊이 감동을 뭉클하게 받은 사람들이다. “자유는 보편적 가치입니다, 자유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올린 대통령은 이승만 전 대통령 이후 처음”이라며, 사도의 뒤를 따랐던 신도들처럼,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길을 그와 함께 걸어가겠다는 사람들도 보인다.

대통령은 취임 전 여러 인터뷰를 통해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이 1980년에 낸 책 『선택할 자유』를 읽으면서 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가치를 알게 됐다고 말했을 뿐 이 체제의 출발점인 스미스를 언급한 적은 없다. 하지만 프리드먼 경제학 역시 스미스에서 출발한 현대 경제학의 수많은 가닥 중 하나이다.

『선택할 자유』 표지. (위키피디아)

프리드먼은 연필을 들고 있는 자기 사진을 『선택할 자유』의 표지 사진으로 실었다.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였던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의 저자 토드 브크홀츠는 이 책에서 이 사진이 “스미스 경제학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부크홀츠에 따르면 “프리드먼은 연필 한 자루도 스리랑카산 흑연, 인도네시아산 채종유와 염화황으로 만든 고무지우개, 그리고 오리건 주에서 생산된 목재를 원료로 해 펜실베이니아 주 윌크스 베어에서 조립된 국제 시장-국제 분업의 산물임을 보여주려고 이 사진을 썼다.” 프리드먼은 자신이 스미스에게서 세례를 받았음을 이 사진으로 고백했다는 설명이다. 

‘한국자유주의연구회’는 스미스에서 출발한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대통령이 ‘자유’를 서른다섯 번 외치고 시장경제를 수호하겠다고 선서할 때 가슴 벅찼던 사람들이 회원이다. 이들은 내년 스미스 탄생 300주년을 맞아 기념행사를 뜻깊게 열어볼 생각이다. 대통령도 국민 다수와 함께 이제 곧 이 행사에 깊은 관심을 가질 것이다. 크고 작은 기업인들도 성원을 보낼 것이다. 자유와 시장경제는 모두에게 소중한 것이니까.

스미스는 『국부론』으로 당시 유럽의 지식인과 정치 지도자, 경제인들로부터 추앙을 이끌어낸 후 스코틀랜드 관세청장으로 부임했다. 이미 명성이나 재산이 더 필요하지 않았던 그는 굳이 맡지 않아도 될 관세청장이 된 후에는 관대한 관세정책을 펼쳤다. 스코틀랜드의 국부도 늘어났다. 

*6월 16일은 스미스의 탄생일이 아니라 세례를 받은 날이라는 주장도 있다.

/ 정숭호 메타버스인문경영연구원 이사장. 전 한국일보 경제 부국장, 신문윤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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