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크는 찼으나 배 짓는 사람이 부족하다’
‘도크는 찼으나 배 짓는 사람이 부족하다’
  • 임준혁 기자
  • 승인 2022.06.20 07:37
  • 수정 2022.06.20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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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주 호황...대형 조선사 일감 다수 확보
조선업 구조조정 여파로 인력 55% 급감
선박 본격 건조되는 하반기 생산차질 우려
“조선소 기술교육원 활성화...근본적 개선 필요”
대우조선해양 1도크. 건조선박은 들어차 있지만 노동자들은 부족한 현실이다. [사진=임준혁 기자]
대우조선해양 1도크. 건조선박이 들어차 있지만 노동자들은 부족한 현실이다. [사진=임준혁 기자]

“도크(배 만드는 시설)는 찼는데 막상 선박을 건조할 숙련 노동자가 없는 상황입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수주 호황으로 신규 일감을 대거 확보한 국내 대형 조선 3사가 인력난에 시달려 생산 차질을 우려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절박하게 표현한 발언이다.

지난해 대거 수주한 선박들을 본격 건조하는 올 하반기엔 1만명에 가까운 추가 인력이 필요한데, 당장 현장에 투입할 기술자는 턱없이 부족해 업계는 '생산 차질'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우려하고 있다.

20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최대 수주 기록을 세운 국내 조선사들은 올해도 수주 시장에서 세계속의 한국조선의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20일 영국의 조선·해운시황분석기관인 클락슨 리포트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250만CGT(57척)로 집계됐다. 국가별 수주량은 한국 120만CGT(20척, 48%), 중국 84만CGT(22척, 34%), 일본 42만CGT(10척, 17%) 순으로 나타났다.

월별(5월) 수주량만 놓고 보면 한국은 지난 4월 115만CGT(38%)를 수주하며 중국(289만CGT, 55%)에 뒤졌으나 LNG운반선과 대형 컨테이너선 수주에 힘입어 중국을 제치고 1위를 탈환했다.

1~5월 전 세계 선박 누계 발주량은 전년동기(2468만CGT) 대비 34% 감소한 1625만CGT를 기록했다. 이 중 한국 734만CGT(148척, 45%), 중국 716만CGT(247척, 44%)를 수주, 누계(1~5월)에서도 한국이 중국을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한국이 같은 기간 중국을 앞선 것은 2018년 이후 4년만이다.

국가별 수주실적도 양호하지만 개별 조선사별 수주 실적도 괄목할 만 하다.

실제 한국조선해양은 올들어(1~6월) 연간 수주목표인 174억4000만달러의 77.6%를 달성한 약 130억6000만달러를 수주했다. 대우조선해양은 같은 기간 연간 목표치(89억달러)의 66%인 59억3000만달러 어치의 신규 일감을 확보했다. 삼성중공업도 올해 목표 88억달러의 33%(29억달러)를 수주했다.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사진=임준혁 기자]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사진=임준혁 기자]

이처럼 국내 조선업계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2008년 이후 최대 규모의 수주 실적을 기록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선 일할 사람이 없어 인력난을 겪고 있다. 2014년 이후 지속된 불황으로 한국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빅3' 조선업체가 인력을 꾸준히 줄여온 영향이다.

국내 조선사들은 지난 2016년 전후로 수주 절벽이란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직영 생산인력을 20~30%씩 줄이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현대중공업(현 한국조선해양)의 경우 2015년과 2016년 희망퇴직을 실시했으며 당시 퇴직을 신청한 인원은 모두 3500여 명에 달했다. 2018년에도 근속 10년 이상 사무직과 생산기술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삼성중공업도 2016년부터 상시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2019년 11월에도 상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대우조선해양은 2019년과 2020년에 이어 올해 1월에도 일부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현장 인력의 60~70%를 담당하는 협력회사(하청업체)들도 구조조정에 나섰다. 그 결과 사내협력사를 포함해 조선산업 인력은 2014년 말 기준 20만3441명에서 지난해 말 9만2687명으로 무려 54%나 감소했다.

급격한 구조조정은 지금과 같은 수주 호황기에 인력난 부족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통상 조선사는 선박 수주 후 설계를 거쳐 1년 뒤 건조에 들어가기 때문에 인력난 문제는 갈수록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3분기(7~9월)에 9500명의 추가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 관계자는 “장기 불황 여파로 숙련 인력 이탈과 신규 인력 유입이 감소해 인력 부족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향후 안정적 생산을 위한 인력 확보 방안이 필요하다”며 “인력 현황 상시 모니터링 및 민관협력 플랫폼을 구축하고 생산 인력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조선소와 생산 인력 공급기관 간 협력, 조선소 기술 교육원 활성화, 인력 양성 사업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엿다.

올 상반기 한국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빅3 조선사 중 상반기 공채를 진행한 곳은 한국조선해양 뿐이다. 한국조선해양의 그룹사인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 3월 21일부터 400명 규모의 신입 사원을 공개 채용했다. 연초 선발을 완료한 수시 채용 인원 400여 명을 포함해 올 상반기에만 약 800명의 대졸 신입사원을 채용했다. 2014년 조선업 불황이 시작된 이후 최대 규모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조선업이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국내 조선사 중 유일하게 신입 채용을 이어왔다”며 “업황이 회복돼가는 만큼 친환경, 스마트 선박 분야 연구개발 및 엔지니어링 인력 등을 선제적으로 확보해 경쟁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조선사는 신규 인력보다 경력직 채용에 방점을 찍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호황이라고는 하나 급작스럽게 매출이 확 늘어나는 상황은 아니다 보니 기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회사 사정이 안 좋다 보니 예전만큼 뽑지도 않는다”고 설명했다.

용접 기술 교육생이 실습하는 모습 [출처=중소조선연구원]
용접 기술 교육생이 실습하는 모습 [출처=중소조선연구원]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은 수주가 잘 되고 있지만 과거 수주에 비해 회복 중일 수 있다”며 “조선사 경영난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인력 채용에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정부와 업계는 인력난 해소를 위해 의기투합한다. 정부는 지난해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열린 ‘K-조선 비전 및 상생 협력 선포식’에서 올해 조선업 생산과 기술 인력 약 8000명을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조선업 밀집 지역인 울산, 부산, 목포 등을 고용유지 모델로 선정했다.

계획에 따르면 정부가 훈련비와 인건비를 지원하고 지자체가 4대 보험료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고용을 유지하게 된다. 또한 ▲퇴직자 재고용 기업에 장려금 월 30~50만원 최대 8개월 지급 ▲2022년까지 2660명 양성목표로 생산·기술인력 양성 교육사업 확대 ▲신규 채용자 인센티브제 신설 ▲외국인 근로자 전문 취업 비자(E-7)를 신설 등을 진행하는 것이 담겨져 있다.

다만 인력난이 구조적 문제라 해법 찾기가 쉽지 않다. 2015년 이후 조선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해고된 기술자(용접·도장) 상당수가 처우가 더 좋은 경기 평택, 이천 등 수도권 건설현장과 중국 해외 조선사로 이직한 것으로 업계는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업은 노동 강도가 높은데 처우는 낮아 당시 떠난 경력 기술자를 현장으로 복귀시키는 게 쉽지가 않다는 설명이다.

결국 처우가 낮은 협력사에 붙어 있는 구조인데, 수주 호황이 끝나면 다시 구조조정이 이뤄질지 모르는 불안 탓에 젊은이들은 조선업 기술직 취직을 꺼린다. 협력사 소속으로 신규 인원을 채용하더라도 낮은 임금과 처우에 이직률이 높다는 것이 현장 관계자의 목소리다.

실제 지난 2018년 대우조선해양의 외업 하청사인 G업체의 경우 현장에 곧바로 투입된 신입 기술자의 임금이 당시 최저 시급인 7300여 원이 적용돼 젊은 근로자들의 이탈률이 높음을 방증했다.

앞서 인력난 해소 방안의 하나로 제시된 ‘조선소 기술 교육원 활성화’도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업계 및 복수의 대우조선해양 기술교육원 수료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현재와 같은 커리큘럼, 교육훈련비 수준으로는 기술 인력 양성 및 취업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우조선해양 기술교육원 수료자는 “2018년 기술 교육을 받을 때 모집정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인원이 교육을 받았다”며 “당시가 조선 불황기였다고는 하지만 교육의 질은 낮았고 교육 수당도 인근 경쟁 조선사 기술훈련원보다 턱없이 낮아 교육생들의 불만이 높았다”고 밝혔다.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건조중인 초대형원유운반선(VLCC)의 갑판 공사 장면. [사진=임준혁 기자]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건조중인 초대형원유운반선(VLCC)의 갑판 공사 장면. [사진=임준혁 기자]

그는 “교육 수료 후 협력업체에 취업 알선을 받았지만 신규 기능인력에 기존 숙련 기술자들이 거는 기대는 매우 낮았고, 청소나 심부름 등 허드렛일 위주로 근로 시간을 떼우기가 일쑤였다”며 “용접 자격증까지 취득하고 나서 1만원 미만의 낮은 시급으로 일하기엔 젊은 시절이 너무 아까웠다. 수료를 마친 12명 중 1명만 현재까지 협력사에서 일하고 있다”며 부당한 처우와 낮은 임금 등이 개선되지 않는 한 신규 기술인력 유입 감소와 숙련 기능 인력의 이탈현상은 계속될 것임을 시사했다.

[위키리크스한국=임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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