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건강 책]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의사의 건강 책]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 김민정 칼럼
  • 승인 2022.06.27 09:31
  • 수정 2022.06.27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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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건강책방 일일호일 책방지기]
[제공=건강책방 일일호일 책방지기]

“당신의 죽음은 실패한다.”

이 책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는 제목과는 달리 친절하지 않은, 도발적 제언으로 시작한다. 현직 호스피스 의사가 이야기하는 따뜻하고 감동적인 ‘죽음 에세이’를 기대한 사람이라면 책의 시작부터 당혹감을 느낄 것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2020년 기준 83.5세에 이르렀다. 하지만 장수사회의 역설이라 해야 할까. 늘어난 수명만큼 질병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시간도 길어졌다. 오늘날 한국인은 평균적으로 17년, 무려 자기 인생의 5분의 1년을 질병 속에서 살아가며 삶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다. 병마에 시달리다 맞이하는 죽음의 모습 역시 다르지 않다. 2020년 전체 사망자의 75.6%는 요양병원을 포함한 의료기관에서 사망했다. 이 수치는 65세 이상을 기준으로 하면 78%로 높아진다.

문제는 병원에서의 죽음은 우리가 맞이하고 싶은 죽음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에 있다.

“병원 사망보다 더 나쁜 죽음은 없다. 잘 죽는다는 것은 집에서 죽는 것이다. 왜냐하면 병원은 주삿바늘이 쉴 새 없이 몸을 찌르고, 종일 시끄럽고, 밝은 불빛으로 잠들 수도 없고,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도 못한 책 낯선 사람들 속에서 외롭게 죽기 때문이다.”

책은 죽음에 대한 다수의 인식조사 결과를 종합해 한국인이 희망하는 죽음을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

“첫째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하는 것, 둘째 고통 없이 평안한 죽음, 셋째 가족과 주변에 부담을 주지 않는 것, 넷째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누리다 죽는 것”

우리의 죽음은 실패한다는 저자의 도발적 제언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순간이다.
 
집에서 가족과 함께 평안하게 영면하길 바라는 우리의 바람과 달리, 한국인의 4분의 3은 병원에서 죽는다. 또 그들 대부분이 사망 시간을 최대한 연장하는 ‘연명의료의 지옥’에 갇혀, 생애 동안 쓰는 의료비의 8~90%를 이 기간에 쏟아 붓다가 사망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시대의 ‘최빈도 죽음’의 얼굴이다.

책을 쓴 박중철 교수는 호스피스 의사이면서 인문사회의학 박사를 이수한 의료사회학자이다. 그간 의사로서 수많은 죽음의 현장을 마주했던 저자는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의사의 역할은 환자의 삶의 질과 존엄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야 함을 상기하며 “죽음은 내 삶의 일부이고, 잘 살아온 삶에 어울리는 좋은 죽음은 우리 스스로가 도전해야 할 삶의 마지막 과제”임을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었다 한다.

보여지는 죽음의 현상을 고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의학과 철학, 사회학 등의 접근을 망라하며 현대인의 인식과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오늘날의 죽음 문화를 통찰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을 권하는 또다른 이유이다. 

“우리는 각자 존재하고, 나는 홀로 소멸한다.”

저자는 폴란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을 인용하며, 죽음이 삶의 실패로 받아들여지고, 삶과는 격리된 지금의 죽음 문화의 배경으로 ‘죽음의 개인화’를 지적한다. 각자의 삶에 갇혀 있는 인간인 현대인의 고립과 고독은 죽어가는 과정에서도 이어지며, 공동체에서 격리되어 병원이라는 공간에 갇힌 채 소멸되고 망각되는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이는 ‘죽음의 범속화’로 이어지는 데, 공동체적인 죽음의 경험을 갖지 못한 현대인은 죽음의 공포를 개인적 차원에서는 철저한 망각, 사회적으로는 일상으로부터 배제하는 억압의 전략을 사용하며 죽음을 외면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죽음이 배제되고 소외되어가는 과정의 종창역이 죽음의 의료화라 지적한다.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종교와 철학, 예술을 통해 죽음의 공포를 극복해 왔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의학과 보건을 통해 죽음을 위험 관리 차원에서 다루고, 이는 죽음을 삶의 마지막이자 완결이 아닌 삶에서 부정되어야 할 대상, 끝까지 거부해야 할 재앙으로 인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비극의 중심에는 연명의료가 있다.

책은 가족의 요청에 의해 의료진이 중증 환자를 퇴원시켰다가 형사처벌을 받은 보라매병원 사건을 병원 임종과 연명의료가 새로운 관행으로 자리 잡게 된 계기로 설명한다. 저자는 생명을 연장하는 연명의료는 어떤 면에서는 경이로운 의학적 발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의학이 가진 가능성을 소진하며 환자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상태에 이를 때까지 개입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 과정에서 환자의 존엄한 죽음은 파괴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병원에서 기계호흡장치를 달고 인공영양을 받으며 최대한 버티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마치 현대 사회 죽음의 통과의례로 자리 잡은 듯하다. 이는 엄밀히 삶의 연장이 아닌 죽음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안락사와 연명의료는 개인의 윤리적, 철학적 판단이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에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죽음의 모습이 우리가 원하는 좋은 죽음의 모습과는 멀어져 있다는 것,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 철저히 배제했던 죽음을 다시 본래의 삶의 공간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죽음의 문화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가장 시금한 것은 한국 사회의 비참한 죽음 현실을 직시하고, 죽음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꾸준히 넓혀가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 하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 외면의 결과로 죽음의 모습 또한 달라졌다. 결국은 실패로 귀결되고 마는 우리 시대의 ‘죽음의 얼굴’을 마주하며 삶만큼 죽음도 존중되는 세상을 위한 화두를 던지는 책이다.

/ 건강책방 일일호일 책방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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