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태평양으로 확대되는 미-중 외교전... ‘퍼시픽 아일랜드 포럼’과 키리바시 탈퇴
[미-중 갈등] 태평양으로 확대되는 미-중 외교전... ‘퍼시픽 아일랜드 포럼’과 키리바시 탈퇴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07.15 04:58
  • 수정 2022.07.16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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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7일, 호주와 뉴질랜드 등 태평양의 18개 국가 정상들이 모이는 지역 회의가 열리는 기간에 중국이 10개 태평양 섬나라들만 따로 모아 외무장관 회의를 추진하고 있는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지난 6월 27일, 호주와 뉴질랜드 등 태평양의 18개 국가 정상들이 모이는 지역 회의가 열리는 기간에 중국이 10개 태평양 섬나라들만 따로 모아 외무장관 회의를 추진하고 있는 모습 [사진 = 연합뉴스]

미-중 갈등이 태평양으로 확대되고 있다.

태평양 섬 나라들의 협의체인 ‘퍼시픽 아일랜드 포럼(Pacific Island Forum)’이 열리는 중에 키리바시가 친중국 행보를 보이며 이 포럼을 보이콧했으며, 이와 함께 이 지역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인식한 미-중 외교전이 치열하게 치러지고 있다고 CNN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키리바시 섬 주민들은, 역내에서 열리는 직접 대면 회의에 3년 만에 처음으로 불참한 대통령과 함께, 중부 태평양의 작은 환초(環礁) 군락지에서 독립기념일 축하행사를 가졌다.

키리바시의 타네티 마마우 대통령은 피지 수바에서 열리는 ‘퍼시픽 아일랜드 포럼(Pacific Island Forum)’에 불참했을 뿐 아니라 리더십과 관련된 일련의 논란 끝에 18명으로 구성된 이 포럼에서 원칙적으로 탈퇴했다.

이와 관련 일부 관측통들은 이 연맹을 탈퇴한다는 마마우 대통령의 결정에 중국이 개입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외교부는 12일 정례 브리핑을 통해 이 같은 추측을 “완전히 근거 없는 것(completely groundless)”으로 일축했다.

하지만 미국은 전략적 중요성이 점점 높아가는 이 지역에서 지정학적 우위를 점하려는 중국의 노력에 맞서 태평양 섬 지도자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할 생각이라고 발표했다.

한 미국 행정부의 고위 관리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기자들에게 미국이 “태평양 섬들에서 활동을 눈에 띄게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인센티브에는 이 지역 어업에 대한 추가 자금 지원과 기타 원조가 포함되어있으며, 중국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솔로몬제도와 함께 키리바시 등의 태평양 지역에 새롭게 대사관을 신설하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이 같은 제안은 미국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가상회의를 통해 태평양 섬 지도자들에게 직접 전달했다. 이를 통해 그녀는 태평양이 미국의 전략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워싱턴 당국이 깨닫고 있음을 강조했다.

‘퍼시픽 아일랜드 포럼’에서 탈퇴하려는 키리바시의 결정이 미국의 이 같은 움직임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지난 몇 달간 중국이 태평양 지도자들과 일련의 협상을 연달아 성사시킴에 따라 미국도 이 지역에서의 강도 높은 활동 강화를 약속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리바시가 중국과의 경제·외교적 관계를 강화하면서 독자노선을 걷겠다고 결정을 내린 것은 이 지역에서의 외교적 도전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으며, 태평양 지역 지도자들이 이 지역과 자국 내에서 느끼는 압박의 정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대단위 지역과 하부 단위 지역 내에서 역학관계가 뚜렷이 존재합니다.”

뉴질랜드 매시 대학교 국방안보 연구센터 선임 강사인 안나 파울리스는 이렇게 분석했다.

“확실하지 않은 점은 마마우 대통령이 어떤 게임 전략을 가지고 있고, 이 포럼에서 탈퇴함으로써 키리바시가 무엇을 노리고 있으며, 이 결단이 키리바시 국민에게 어떤 이점을 가져다줄 것이냐입니다.”

중국은 키리바시의 포럼 탈퇴 결정에 개입한 사실을 부인할지 모르지만, 캔터베리 대학의 중국-태평양 정책 전문가인 앤 마리 브래디 교수는 베이징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키리바시가 참석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브래디 교수는 최근 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활동을 관찰한 결과를 근거로 이같이 단정했다.
 
“이번 탈퇴 발표의 타이밍을 보면 태평양의 합치를 교란시키려는 의도가 개입되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안보 조약을 맺으려는 중국의 시도에 집단적으로 대응하려던 바로 그 시점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키리바시 칸톤 섬 [사진 = ATI]
키리바시 칸톤 섬 [사진 = ATI]

광대한 어업 자원을 가진 나라

키리바시는 인도보다 넓은 350만 평방킬로미터의 바다를 덮고 있는 중부 태평양의 광활한 지역에 흩어져 있는 33개의 환초 그룹으로 구성된 나라로 인구는 약 10만 명에 달한다. 현재는 친중국 성향의 ​타네티 마마우 대통령이 2020년에 재선되어 두 번째 임기를 지내고 있다.

3년 전인 2019년 8월 투발루에서 ‘퍼시픽 아일랜드 포럼’이 마지막으로 열렸을 때는 키리바시는 중국 공산당이 영토권을 고집하는 민주주의 섬 대만과 동맹을 맺었었다. 그러나 당시 포럼이 열린 뒤 몇 주 만에 키리바시는 솔로몬제도를 따라 베이징에 충성하기로 방침을 바꿔버렸다. 그리고 몇 달 후 마마우 대통령은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중국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에 대해 협력하기로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이 자리에서 시 주석은 중국이 2016년부터 2036년까지 계획된 마마우의 ‘20개년 비전(KV20)’에 일대일로를 통합하여 “더 부유하고 행복하며 평화로운 나라”를 만드는 데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호주 입장에서 국제 정치·전략 및 경제 문제를 연구하는 독립적인 씽크탱크 ‘로위연구소(Lowy Institute)의 피시픽 아일랜드 프로그램 연구원인 제시카 콜린스는 “키리바시는 경제개발에 목을 매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많은 개발 계약에 서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키리바시 인구의 30%가 빈곤층입니다. 경제 성장률은 약 0.3~0.6%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정말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마마우 대통령의 KV20 청사진에 따르면 키리바시 경제의 성공 여부는 이 나라 경제의 핵심 요소인 관광 및 어업을 어떤 식으로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키리바시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산호초라는 관광자원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큰 배타적 경제수역(EEZ) 중 하나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키리바시의 EEZ과 어업에 접근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파울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퍼시픽 아일랜드 포럼’에서 빠지기로 한 키리바시의 결정에 중국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고도의 정치적 관점에서 봤을 때 키리바시에서의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관련해 심각한 우려가 제기된다”고 파울리스는 분석했다.

외교적 책략으로 기후 위기 극복하기

엄청난 지원을 하고 태평양 섬 국가들의 활동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워싱턴의 약속은 이번 ‘퍼시픽 아일랜드 포럼’의 첫날 일정이 모두 끝날 무렵, 지도자들이 가장 큰 도전인 기후 위기에 대해 통일된 전선을 모색하려고 했을 때 나왔다.

“질질 끄는 대처가 필요한 시기는 지났습니다.”

밥 로프만 바누아투 총리는 포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퍼시픽 아일랜드 포럼’ 지도자들은 기후 변화를 우리 국민의 생계, 안보 및 복지에 대한 가장 큰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태평양 섬 나라들이 이 같은 위협에 대처하는 것을 돕기 위해 미국은 자신들과 호주, 일본, 뉴질랜드, 영국과 같은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이 태평양에서의 우선 관심사를 지원하고 태평양 지역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국가 간 협력체인 ‘블루 퍼시픽 파트너스(Partners in the Blue Pacific)’를 설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키리바시의 참여 유무와는 별도로, 해당 섬나라들이 목요일 발족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50개년 블루 퍼시픽 계획(50-year Blue Pacific plan)을 반영한 명칭이다.

미국이 심혈을 기울이는 또 다른 내용들에는 태평양에서 미국의 어업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10년 동안 연간 6천만 달러로 지금 지원을 3배로 늘리는 것과 태평양 제도에 대한 미국의 전략 발표, ‘퍼시픽 아일랜드 포럼’에 미국 특사를 처음으로 임명하는 것 등이 포함되어있다.

나아가 미국은 소프트 파워(soft power) 성격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피지, 통가, 사모아, 바누아투 등 4개국에 평화봉사단을 다시 파견하고, 이 지역에 대한 자금 지원을 확대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미국 행정부 고위 관리는 “우리가 테이블에 올려놓은 것은 우정, 존중, 투명성에 기반한 진정한 동반자 관계”라고 말했다. 

“우리가 제안하는 것은 장단기 도전을 함께 헤쳐나가기 위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의제입니다.”

중국의 해군 항공모함 랴오닝호(왼쪽)가 공해에서 전투 훈련을 벌이던 도중 물자 보급을 받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중국의 해군 항공모함 랴오닝호(왼쪽)가 공해에서 전투 훈련을 벌이던 도중 물자 보급을 받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전략적 중요성

중국과 미국에 있어 태평양 지역 전체가 안보와 기회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키리바시의 위치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잠재적인 군사 기항( port of call)이라는 독특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과 동맹국은 태평양에 들고나는 비행기의 중요한 급유 정류장으로 키리바시에서 현재 칸톤 아일랜드 공항(Kanton Island Airport)이라고 불리는 캔톤 공항의 단일 활주로를 활용했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면서 이 공항은 기지로서의 유용성이 줄어들며 방치되었다.

1979년 키리바시가 영국에서 독립했을 때 이 공항과 관련 동맹국들의 연결 고리는 끊겼지만, 미국은 타라와 조약(Treaty of Tarawa)을 이끌어내며 칸톤 및 기타 섬에서 제3자가 이전 미국 시설을 사용하는 것을 막는 데 성공했었다.

이와 관련 캔터베리 대학의 중국-태평양 정책 전문가인 앤 마리 브래디 교수는 “이 조약에 따르면 미국이 이전에 주권을 주장했던 14개 섬의 시설은 미국의 동의 없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에두르는 별도의 방법이 있다고 덧붙였다. 

“군사 기능이 즉시 발휘되지 않는 다중 용도 시설은 해당 조항을 우회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중국은 태평양에 군사 시설을 배치할 장소를 찾고 있다”고도 말했다. 

“인도-태평양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이 문제에 대해 진행해 온 방식은 항만 및 항공 시설의 다중 이용도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로이터에 따르면, 작년에 키리바시는 중국이, KV20 청사진의 핵심 내용인, 섬들 간의 연결을 원활히 하고 관광 사업을 개선하기 위해 활주로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도움을 줄 계획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

지난 5월 가디언은, 미국과 유엔 주재 키리바시 대사 테부로로 티토의 말을 인용해 미국이 키리바시 활주로 업그레이드를 위한 자금 조달에 수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한 후 중국이 원칙적으로 이를 먼저 지원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티토 대사는 “미국은 우리를 거절했다.”라고 말한 것을 되어있다.

CNN은 이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미 국무부에 연락을 취했지만 응답을 받지 못했다.

중국 외교부는 CNN에 중국이 키리바시 정부의 요청에 따라 “키리바시와 함께 칸톤 공항의 업그레이드 가능성을 논의할 예정이라고”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이 공동 목표, 신의, 호혜의 공동체 개념에 기초하여 태평양 도서 국가들과 “상호 협력”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대변인은 “중국은 어떠한 정치적 의도도 고려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목표는 키리바시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민주주의를 개선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 미 국무부 대변인은 CNN에 미국 정부는 “높은 기준(high standards)”을 고수하는 한 지역 발전에 대한 이 같은 기여는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지역에 대한 PRC(중화인민공화국)의 개입이 확대됨에 따라 우리는 불법적인 해양 영유권 주장, 남중국해 분쟁 지역에서의 지속적인 군사력 강화, 불법적이고 보고되지 않고 규제되지 않는(IUU) 어업, 양호한 거버넌스를 훼손하고 부패를 조장하는 투자, 인권 유린 같은 약탈 경제의 문제적 행위들이 눈에 띄게 증가함을 목도하고 있다.”

국무부 대변인은 중국을 공식 약어인 PRC로 지칭하며 이렇게 주장했다.

태평양 국가 지도자들은 미국이 이 지역에서 새롭게 활력을 기울이려는 모습과 있을 수 있는 베이징의 역제안을 지켜보면서 앞으로 이틀 동안 바쁜 의제를 가지게 될 것이다.

“지정학 문제가 이 포럼의 의제를 방해하고 관심을 흐트러뜨리는 요소가 될 것이라는 점은 당장에 너무 명백하게 보이는 모습입니다.”

호주 국립대학교의 태평양 담당 객원연구원인 패트리샤 오브라이언은 미국의 지원 계획이 나오기 전에 현 상황을 이렇게 분석했다.

태평양 섬 나라 지도자들의 또 다른 우선순위 중 하나는 키리바시를 “태평양 가족”으로 되돌리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다. 마마우 대통령이 중국의 후광을 입고 홀로 더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지, 또 다른 태평양 국가들이 그와 보조를 맞출지 여부는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라는 지적이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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