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바이든은 중동에서 왜 ‘트럼프’를 입에 올리지 못할까?
[포커스] 바이든은 중동에서 왜 ‘트럼프’를 입에 올리지 못할까?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07.16 06:09
  • 수정 2022.07.16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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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13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야드바셈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찾아 헌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13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야드바셈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찾아 헌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의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POLITICO)는 14일(현지 시각) 바이든의 이번 중동 순방을 분석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이 매체는 특히 이번 이스라엘 방문 과정에서 바이든은 애는 썼지만 트럼프가 심어놓은 영향력을 극복하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은 대통령직에 오른 뒤 지금까지 자신의 전임자를 무시하거나 그에 대해 언급하기를 가급적 회피하는 태도를 취했고, 꼭 불러야 할 경우에도 “전임자(the former guy)”라는 표현을 쓰곤 했다.

하지만 바이든은 이번 주 이스라엘과 요르단강 서안지구(West Bank),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면서는 전임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남겨놓은 유산을 피해갈 수가 없게 되었다.

바이든이 묵은 예루살렘의 킹 데이비드 호텔 로비 중앙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화려한 듯하면서도 촌스러운 사인(signature)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이런 물리적 흔적 말고도 트럼프의 유산은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이스라엘과 중동 지역 관리들은 바이든과 웃는 얼굴로 악수는 하지만, 트럼프가 첫 번째 해외 순방 목표로 이 지역을 삼은 데 비해 바이든이 자신들을 찾기까지는 1년하고도 반이나 걸렸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트럼프는 예루살렘을 미국이 인정하는 이스라엘의 수도로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루살렘에는 이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하는 미국 영사관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트럼프의 정책들은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이라는 꿈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고, 이스라엘이 그 어느 때보다 아랍 친구들과 가까이 지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만들어놓은 이 같은 환경 변화를 마지못해 받아들이면서 이스라엘 땅에 발을 디딘 48시간 동안 상황을 변화시킬 행동을 거의 취하지 않았다.

성지 예루살렘에서 바이든이 트럼프와 비교되는 모습은 필연적 결과일지도 모른다. 트럼프는 통곡의 벽(Western Wall)을 방문하기도 하고 예루살렘 주재 미국 대사관에 자신의 이름을 제일 먼저 올리기 위해 과거의 관행을 헌신짝처럼 던져버리기를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주재 미국 대사관 안뜰은 트럼프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에게 헌정되어있기도 하다.

바이든은 이번 중동 순방에서 거창한 제스처를 지향하지 않고 있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의 더 골치 아픈 회담을 향해 이스라엘을 떠나기 전 미국과 이스라엘 관계가 굳건한 바탕 위에 서 있음을 단순히 보여주는 선에서 끝나기를 바랐다.

실제로 ‘트럼프’라는 단어는 바이든의 입을 통해 발설되지 않았다.

“나는 바이든이 ‘트럼프’라는 이름이 나오는 상황을 가급적 피하고자 했다고 생각합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걸프 국가안전보장 위원회’에서 수석 관리를 지냈던 커스튼 폰텐로스는 이렇게 평가했다.

“바이든은 트럼프와 어떤 식으로든지 비교되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겁니다. …아랍 언론 앞에서 두 사람의 정책을 비교당하기 싫었다는 말이지요.”

‘중동연구소’의 수석 연구원 란다 슬림은 바이든이, 미국이 이스라엘과 오랫동안 유지해온 혈맹 관계를 생각해서라도 초당적 태도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굳이 트럼프를 입에 올릴 이유는 없었다고 덧붙이며 “바이든이 트럼프를 추켜세워서 얻을 게 뭐가 있을까요? 바이든으로서는 그렇게 해서 얻을 게 아무것도 없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바이든은 전임자를 입에 올려서 얻을 것이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측근들은 “전임자(the former guy)”가 어렵게 이뤄놓은 중동 지역의 업적을 억지로 감추지는 않았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의 업적인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아브라함 협정’은 이스라엘과 다른 아랍 국가들 간의 관계를 증진시키고 중동 지역에서의 경제·외교적 통합을 원활히 하기 위해 트럼프가 앞장서서 추진한 협정이다. 이 협정은 트럼프 백악관의 중재로 성사되었으며, 이스라엘과 바레인, 아랍에미리트, 모로코를 포함한 상당수 아랍 국가들 간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아랍 국가들은 오랫동안 팔레스타인이 독립 국가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이스라엘과는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해왔었다. 그러나 ‘아브라함 협정’으로 인해 아랍-이스라엘 관계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와 분리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바이든의 백악관은 적어도 중동 문제에서 만큼은 트럼프의 초석에서 출발하고자 한다.

“우리는 ‘아브라함 협정’과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그리고 무슬림 국가들 간의 정상화 협정을 강력히 지지합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한 관리는 폴리티코에 이렇게 밝혔다.

나아가 바이든의 측근들은 사석에서는 트럼프가 성사시킨 협약이 중동의 열기를 식히는 데 한몫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바이든의 이번 중동 순방 목적 중 하나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좀 더 친하게 지내도록 만드는 데 있다. 가능하다면 이 두 나라만을 상대로 ‘아브라함 협정’을 또 하나 성사시키고 싶은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 관리들은 바이든이 중동 지역에 있는 동안에는 가능한 트럼프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 애를 썼다.

폴리티코는 바이든의 준동 순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관리 6명을 상대로 바이든이 예루살렘의 미국 대사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정상화 협정 구축 등의 정책을 지속해주기를 바라는지 물었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사진=연합뉴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익명을 전제로도 말을 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7번 째 관리가 “그래 준다면 대환영이지요.”라고 의견을 피력하게 되었다. 바이든이 중동 관련 트럼프의 주요 정책들을 변화시키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소망을 나타낸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중동 지역에서 트럼프 행적의 일부를 되돌려놓기는 했다. 예를 들면, 바이든 행정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한 수억 달러의 기금을 복구했고, 영사 관계를 다시 개설하지는 않았지만 팔레스타인과의 외교 채널을 재가동하고 있다.

바이든 팀은 또, 트럼프의 접근 방식 때문에 상당히 훼손되기는 했어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해법으로 두 국가 방식을 지지한다고 말하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장래 자신들의 국가가 될 자리라고 주장하는 위치에 들어선 이스라엘 정착촌 확대에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애를 쓰면서도 해결은 못 보고 있는, 트럼프가 2018년 와해시킨 이란 핵협정의 부활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환은 트럼프와 그의 팀이 이스라엘을 편애하며 밀어붙였던 변화에 비하면 소소한 정도에 불과하다. 어떤 경우에는 바이든은 법적·외교적 장애에 부닥쳐 트럼프 정책에 변화를 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을 위한 미국 영사 업무 재개에 극렬히 반대할 것이다.

“우리는 동예루살렘에서의 영사 업무가 재개되기를 희망합니다.”

국가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번은 에어포스 원에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스라엘 정부와의 협상과 이스라엘 지도부와의 조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국가안전보장회의 대변인 존 커비는 현재의 미국 정책이 유지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설리번은 동예루살렘이 아니라 그냥 “예루살렘”이라고 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바이든이 요르단강 서안지구(West Bank)로 넘어가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수반을 만나는 일은 특별히 민감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압바스는 트럼프를 경멸했고, 이번 기회를 이용해 트럼프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기회로 활용할지도 모른다. 트럼프와 압바스는 2017년 베들레헴에서 만난 적이 있지만 현장에 참석했던 일부 기자들이 그 자리가 긴장과 불안의 연속이었다고 경험담을 털어놓기도 했었다.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바이든이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 인식 능력이 떨어진다고 실망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바이든은 팔레스타인의 병원들을 위해 1억 달러를 제공하는 것을 포함해 팔레스타인이 트럼프 행정부 때 빼앗겼던 다른 지원책들을 보상하겠다는 플랜을 내놓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을 방문해 4천억원 가량의 추가 원조 방안을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요르단강 서안 베들레헴에서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등과 만나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경제·기술적 지원 패키지를 공개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발표한 3억1천600만달러(약 4천191억원) 상당의 원조 패키지 중 1억달러(약 1천326억원)는 동예루살렘 병원네트워크(EJHN)에 투입된다. 그는 이날 동예루살렘의 한 병원을 방문해 이같이 밝혔다.

그 외 2억100만달러(약 2천666억원)는 트럼프 전 행정부가 자금 지원을 끊었던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에 들어간다.

아울러 바이든 대통령은 2023년 말까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4세대 이동통신(4G)망 구축을 위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기술 협력 방안도 발표했다.

 그러나 이런 지원책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요구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바로 그들이 요구하는 평화 협상의 부활에 훨씬 못 미친다는 말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번 바이든의 방문에 열광하느냐고요? 아닙니다.”

한 팔레스타인 관리는 폴리티코에 이렇게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 지역과 관련된 수사(修辭)를 가다듬고는 있지만 “정책적 견지에서 본다면 변화된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이스라엘에서 두 국가 체제라는 해법이 미래를 위해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하는 등 두 국가라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팔레스타인에 립서비스(lip service)는 선사하고 있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어떤 외교적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그의 행정부는 특히 양측 모두 진지한 대화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보이기 때문에 이를 실현 가능한 해법으로 보고 있지 않다.

지난 수십 년 간의 갈등은 미국이 테러 조직으로 간주하고는 있지만 가자 지구를 실질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무장단체 하마스에 때문에 더욱 꼬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 재임 첫 해외에서 벌어진 위기 중 하나는 지난해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무장단체 간에 벌어진 11일 동안의 전투였다.

전반적으로, 바이든의 이 지역 순방은 화려한 장관을 연출했던 트럼프의 2017년 순방 쇼보다 보다 전통적이고 조용히 치러지고 있다.

당시 트럼프는 예루살렘에 먼저 도착하지 않고, 자신의 이미지가 고속도로 여기저기에 내걸리고 자신이 묵었던 호화로운 리츠칼튼 호텔을 비롯한 여러 건물에 투영된 리야드에 먼저 들렀었다.(이후 그 해에 사우디의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는 부패 혐의를 씌워 다른 왕족과 엘리트들을 투옥하게 된다.) 

그리고 트럼프는 사우디 전통 칼춤을 동반한 호화로운 예법으로 환영을 받았었다. 그는 또 사우디 왕과 이집트 대통령 옆에 서서 빛나는 구형 물체 앞에서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네타냐후-트럼프는 상호 이익이 되는 관계였다. 트럼프의 친이스라엘 행보는 그가 미국 내 복음주의 기독교 기반을 결집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네타냐후는 백악관이 팔레스타인을 희생시키는 대신 상당수 이스라엘 사람들의 요구에 맞아 떨어지는 일방적 평화 제안에서뿐만 아니라 아슬아슬한 선거와 사법처리 문제에서도 워싱턴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바이든은 야이르 라피드 이스라엘 총리와 그러한 호혜적 관계를 형성할 가능성이 낮다. 특히 올 가을 이스라엘에서 4년 이내에 5번째 선거가 치러진 후 라피드가 더 이상 이스라엘을 이끌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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