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CNN "한국 MZ세대 MBTI 열풍...과몰입 우려"
[프리즘] CNN "한국 MZ세대 MBTI 열풍...과몰입 우려"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07.24 21:02
  • 수정 2022.07.25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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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캡쳐]
[CNN 캡쳐]

CNN방송은 23일(현지 시각) MBTI 테스트 열풍이 몰아닥친 한국의 진풍경을 소개했다.

서울에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한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한국의 수도 서울을 걷다 보면 수많은 한글 간판들 사이에서도 알파벳 네 글자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바로 ‘MBTI’ 네 글자다.

MBTI 네 글자는 광고나 일상의 대화 여기저기에 어려있고, 컴퓨터 게임들에서도 모습을 드러내고, 심지어는 스포티파이(Spotify) 플레이리스트 안에도 등장한다. 그리고 도심의 카페를 들어가면 첫 데이트를 하며 MBTI를 놓고 토론하는 커플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또 점쟁이들도 고객의 미래를 예고하는 지표로 MBTI를 활용하기도 하고, 데이팅 앱들에 등장하는 프로필의 약 1/3은 MBTI를 담고 있다.

MBTI는 공식적으로는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로 불리는 일종의 성격 테스트이다. 이 테스트는 사람의 성격을 16가지 형태로 분류하는데, 각각은 그에 해당하는 심리적 기질과 4글자의 영어로 표현된다.

MBTI는 미국의 모녀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여성과 일자리를 연결하기 위해 최초로 개발했다. 그 이후 이 테스트는 가끔씩 유행을 타다가 1990년대 대학과 구인·구직 분야에서 직업 상담 도구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하지만 MBTI는 가장 최근 한국의 힙(hip)한 젊은 세대 사이에서 폭발적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상대방의 MBTI 유형을 탐색하는 것이 최근 열풍처럼 번지고 있으며, 특히 연애 상대방을 구할 때 열렬히 활용되고 있다.

대부분 20~30대에 해당하는 한국의 젊은 세대 중 MBTI 신봉자들은 연애 상대방을 구할 때 종래의 방식으로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단도직입적으로 MBTI를 활용해서 자신과 조화를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상대방을 배제하고자 한다.

속전속결 연애(Speed dating)

단국대학교 심리학과의 임명호 교수에 따르면, MBTI를 활용하는 접근 방식은 한국 MZ 세대의 실용주의를 잘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한국 사회와 같은 곳에서는 당신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유형을 미리 파악할 수 있다면 훨씬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습니다.”

임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서울에 사는 대학생 이다현(23)씨는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언제나 자신의 MBTI 유형을 미리 알려준다.

“나에 대해 설명하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먼저 ‘ENFP(열정적이고 우호적)’ 유형이라고 알려주면 상대방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짐작합니다.”

이다현씨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MBTI 유형과 그에 해당하는 성격 기질을 알고 있습니다.”

이다현씨의 경우 자신의 경험도 MBTI를 신뢰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녀는 자신의 남자친구의 유형은 자신과 잘 맞는 듯하며 “우리는 1000일 넘게 만나고 있는데, 이는 MBTI가 틀리지 않다는 징표”라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MBTI를 신뢰하는 것은 아니다. MBTI 테스트의 기원을 알고 있는 일부 전문가들은 젊은 세대가, 명확하지도 않은 네 글자 조합 안에서 영원한 파트너를 찾겠다는 비뚤어진 시각을 가지고, 더 좋은 후보들의 가능성을 간과하고 있지나 않은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카페 알바 모집에 특정 MBTI를 안 뽑겠다는 내용이 게시된 사실이 알려지며 네티즌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진) [사진=연합뉴스]
카페 알바 모집에 특정 MBTI를 안 뽑겠다는 내용이 게시된 사실이 알려지며 네티즌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진) [사진=연합뉴스]

나와 같은 누군가를 찾아 나서는 길

1940년대 전쟁에 나간 남성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들이 산업 현장에 동원되기 시작했을 때 미국의 캐서린 쿡 브릭스와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 모녀는 스위스 심리학자 칼 융의 학설을 근거로 자신들만의 검사 지표를 개발했다.

그들의 테스트는 각 사람이 외향성 또는 내향성 속성으로 나뉜다는 것을 가정한다. 또, 사람은 감각이나 직관, 생각이나 느낌, 판단이나 인식에서 서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MBTI 신봉자들에 따르면 이런 성향들 각각은 그에 해당하는 글자로 대표되며, 이런 글자들 네 개를 다양하게 조합하면 16가지의 성격적 기질을 알아맞힐 수가 있다고 한다.

비교적 단순한 MBTI 테스트 방법은 이 테스가 오랫동안 생존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1980년대 MBTI는 서방에서 의사 결정과 경영 개발 등 산업계에 활용되는 모습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이 테스트의 과학적 장점에 대한 회의가 찾아들며 산업 현장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MBTI의 방법론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들은 이 테스트의 정확성을 입증할 증거들이 부족하고 결과에 일관성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서로 다른 시간에 다른 테스트를 하면 다른 결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손쉽게 활용할 수는 있습니다. …… 그러나 그에는 과도한 일반화나 고착화의 오류를 배제할 수 없습니다.”

심리학자인 임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비평가들도 브릭스-마이어스 모녀가 공식적으로 심리학 훈련을 전혀 받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들은 또 인간의 기질은 이 검사가 규정한 이분법적 귀결보다 훨씬 복잡한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규정된 ‘유형’이 사람의 행동과 선택에 영향을 미쳐 자기만족적 예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MBTI 테스트가 몇 가지 일반적인 성격 특성을 측정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결과 데이터 유형은 16가지의 독특한 성격이 있다고 믿을 만한 이유을 입증하지 못한다”

마샬 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데이비드 J. 피텡거는 1993년 논문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전반적으로 MBTI는 행동을 이해하는 데 실용적이거나 이론적인 근거를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

특별한 유형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젊은 세대는 현재로서는 MBTI의 알려진 오류에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들이 이런 식으로 어떤 흐름에 경도된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2000년대 초반 많은 한국 사람들은 혈액형이 성격과 관련이 있다는 믿음에 빠지며 낭만적 궁합 속설이 널리 유행했다. 예컨대, 혈액형이 O형인 사람은 외향적인 성격으로 간주되는 속설을 말한다.

이런 유행에 기업들은 재빠르게 편승해서 컴퓨터 게임에서부터 맥주, 여행에 이르기까지 MBTI를 주제로 하는 상품들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MBTI 소개팅(MBTI Blind Date)’이라는 컴퓨터 게임 시뮬레이터가 있다. 플레이어는 이 시뮬레이터를 통해 각각 16가지 성격 유형을 나타내는 캐릭터와 채팅하여 자신과 맞는지를 골라낼 수 있다. 이 외에도 이와 유사한 게임들이 적지 않다.

이 시뮬레이션 게임은 지난 6월에 출시되어 첫 주에만 120만 회의 다운로드를 기록했다고, 개발사인 ‘씽크플로우(Thinkflow)’는 밝히고 있다.

“이 게임은 진짜 데이트를 하는 것과 같은 시뮬레이션 효과를 제공해서 사용자는 실패를 줄일 수 있으며 관계를 더욱 효과적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씽크플로우’의 CEO 이수지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여행사인 ‘파라다이스그룹(Paradise Group)’도 있다. 이 회사는 MBTI 유형에 맞는 휴가 일정을 제공한다. 또, 제주맥주(Jeju Beer Company)는 16가지 MBTI 유형을 표시한 캔맥주를 출시했다.

여기에다 놀랍게도, 일부에서는 MBTI가 취업 현장에서도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구직 웹사이트를 둘러보면 특정 MBTI 유형의 후보자를 찾는 수십 개의 목록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마케팅 부서는 ‘열정적이고 혁신적’이라 여겨지는 ENFP 유형을 요구한다.

MBTI 테스트를 처음 개발한 마이어스와 브릭스 모녀 [사진=ATI]
MBTI 테스트를 처음 개발한 마이어스와 브릭스 모녀 [사진=ATI]

환멸을 느끼고 있는 젊은 세대

전문가들이 염려하는 것은 MBTI의 과학적 근거가 아니라 이에 경도된 젊은 세대들의 급작스러운 경향이다.

MBTI의 유행은 지난 2~3년간 벌어진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찾아왔다고 임교수는 말한다. 유행의 일부는 집단 심리(group psychology)와 관련이 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의 동류의식 속에서 안정감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걱정거리가 늘어나서 심리적으로 기댈 무엇이 필요한 겁니다.”

단국대학교 심리학과의 임명호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뭉치게 되면 확실히 불안을 덜 느끼게 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어도 한국의 젊은이들은 걱정거리로 넘쳐난다. 너무 문턱이 높은 취업 경쟁과 높은 실업률, 치솟는 집값, 유해한 직장 문화는 미래를 비관하는 불만에 찬 젊은 세대를 양산하는 주범으로 손꼽히고 있다.

2010년대 초반 한국의 MZ 세대는 ‘n-포’ 세대라는 말로 널리 불렸었다. 이는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결혼, 자녀, 내집 마련 및 친구 사귀기를 포기하는 등의 여러 단계(n차)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지를 나타내는 비관적 용어이다.

무한 경쟁에 뛰어들려는 젊은이들에게는 연애를 위해 시간을 할애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MBTI가 유행을 끌게 된 한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서울의 대학생 윤지혜씨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유형의 사람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할 여유가 없다.

“나는 ESFP 타입(우호적이고 유머가 넘치고 적응력이 뛰어남)과는 잘 어울리는 반면 T타입(분석적이고 논리적)과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ENFP 타입이라고 생각하는 윤씨는 이렇게 말했다.

참사랑은 MBTI 밖 어디에나 있다

전문가들은 사랑이나 친구 관계, 직장 등에서 MBTI 결과를 과신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말한다. 

임명호 교수는 MBTI는 맞지 않는 답을 낼 때가 많다고 경고하면서 누군가를 피하거나 배제하는 데 이 테스트 결과를 활용하는 것은 원 창작자의 의도와 합치하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마이어스와 브릭스 모녀는 자신들의 테스트가 사람들이 서로 더 잘 이해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데 활용되기를 바랐다고, 임교수는 말한다.

MBTI를 최초로 개발한 ‘마이어스-브릭스 기업(Myers-Briggs Company)’조차도 경고를 내놓고 있다.

심리학자이면서 ‘마이어스-브릭스 기업’의 아시아-태평양 담당 전무이사인 카메론 놋은 한국에서 MBTI 열풍이 불고 있는 현상에 대해 회사는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하면서도 “잘 맞는 파트너를 찾는 데 이 테스트를 활용하는 것은 추천할 만한 일이 아니다”라고 주의를 주었다.

“자신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사람과 데이트를 하는 것은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반대 성격의 사람에게서 오는 매력(opposites attract)에 대한 이야기도 많습니다. 따라서 MBTI 유형이 다르다고 유망한 파트너를 배제하는 것은 뛰어난 사람과의 환상적 관계를 잃어버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카메론 놋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런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다.

학생인 윤씨는 “(관계에서) 외모보다 성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와 어울리지 않는 유형의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을 것 같습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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