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나라는 '망국' 위기로 빠져드는데 선장이 손을 놓고 있는 영국
[월드 프리즘] 나라는 '망국' 위기로 빠져드는데 선장이 손을 놓고 있는 영국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08.23 05:58
  • 수정 2022.08.23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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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영국이 최악의 여름을 지나고 있다. 영국이 애지중지하는 보건 제도가 위기에 봉착하고, 인플레이션이 치솟고, 물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열차는 파업으로 운행을 중단했다.

CNN방송은 22일(현지 시각) 영국의 경제가 이처럼 위기를 향해 가고 있는데도 이를 지휘할 정부가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영국이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보건 담당 책임자들은 지난 20일 겨울을 지나면서 닥쳐올 에너지 가격 상승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인도주의적 위기(humanitarian crisis)’에 봉착할 것이라는 오싹한 경고를 내놓았다.

‘영국 보건 서비스 연맹(National Health Service Confederation)’의 매튜 타일러 총재는 성명을 통해 “많은 국민이 난방비 때문에 끼니를 거르거나 아니면 차갑고 축축한 집에서 겨울을 나야 하는 끔찍한 선택의 기로에 놓일 수 있다. 이러한 시련은 사상 최악의 혹독한 겨울을 경험하게 될 ‘국민 보건 서비스(NHS)’와 함께 찾아들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영국의 인플레이션율은 그렇지 않아도 수지를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가계에 엄청난 부담을 주면서 지난주 10%를 넘어섰다. 그리고 GDP가 금년 말을 통과하면서 위축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경기침체에 들어서고 있다.

경제가 이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운송, 항만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고 있으며 공공과 민간 부문에 걸쳐 분규가 추가로 발생할 것이라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심지어는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일부 변호사들조차 파업을 벌이면서 이미 정체되고 있는 재판 일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사정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현직에 있는 보리스 존슨 총리는 두 번째 여름 휴가를 보내고 있다. 존슨 총리가 왜 런던으로 복귀해 긴급한 대책을 수립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다우닝가(영국 총리와 정부를 지칭)는 차기 총리가 주요 지출 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존슨 총리의 자리는 현 외무장관인 엘리자베스 트러스나 전직 재무장관이었던 리시 수낙 둘 중 한 사람이 이어받을 공산이 크다. 특히 리시 수낙의 재무장관 사임은 존슨 총리 몰락의 신호탄으로 작용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현 존슨 총리는 9월 5일까지는 총리직을 유지하게 된다.

존슨 총리가 즉시 자리를 내놓고 후임자가 정부를 떠맡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를 묵살한 채 총리직을 물러나겠다고 선언하고도 자리를 지켜온 지가 벌써 거의 두 달이 흘러가고 있다.

차기 총리는 영국의 일반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고 집권당인 보수당원들에 의해 뽑힌다. 전체 인구가 약 6,700만 명에 달하는 영국 인구 중 보수당원 숫자는 20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영국에서는 유권자가 지역 국회의원을 선출한 후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정부 구성을 위해 총리를 임명해줄 것을 군주에게 요청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다수당의 대표가 총리가 된다.

보리스 존슨의 보수당은 2019년 치러진 조기총선에서 80석을 차지해 다수당을 확보했다. 현재는 보수당 의원수가 일부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보수당이 다수당으로 정부 운영의 책임을 맡고 있다.

그렇다면 상황의 시급성을 고려해 공무원들에게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지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존슨 총리 측은 왜 생활비 위기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재정적 지원책은 차기 총리의 몫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영국 정부 대변인은 CNN에 “향후 몇 개월의 재정 결정은 차기 총리의 몫이 될 것이다. 우리는 생활비 상승으로 고통받는 국민을 돕는 지원책에 앞서 몇 주 또는 몇 개월 이내에 집행 가능한 현재의 370억 파운드 지원책의 일부인 재정 지원책이 국민에게 직접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라고 말했다.

영국 보수당 결선투표에 오른 2인. 리즈 트러스(왼쪽) 영국 외무장관과 리시 수낙 전 재무장관. [사진=연합뉴스]
영국 보수당 결선투표에 오른 2인. 리즈 트러스(왼쪽) 영국 외무장관과 리시 수낙 전 재무장관.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정치적 성향을 뛰어넘어 비평가들은 현재 시행중인 조치로 충분하지 않으며 지금보다 확고한 조치가 당장 취해져야 한다고 믿고 있다.

차기 총리로 엘리자베스 트러스를 지지하는 보수당의 다니엘 카우친스키 의원은 현 상황의 심각성 때문에 당이 차기 총리를 빨리 선출하거나 존슨 현 총리가 당장 행동에 나서도록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총리 경선이 너무 늘어지고 있는데 영국에는 당장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중대한 결정을 앞에 두고 멍하니 먼 산만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빨리 조치를 취하도록 현 총리에게 권한을 부여하거나 경선을 서둘러야 합니다. 영국 국민이 우리가 이 위기를 해결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는 CNN에 이렇게 말했다.

노동당의 크리스 브라이언트는, 장차 구성될 정부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예고라도 하듯이, CNN에 “존슨은 생활비 상승 위기 대처에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보수당 후보들이 머뭇거리고 있는 것은 게으름이나 자기만족일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야당인 노동당은 지난주 국회를 즉각 소집해서 에너지 요금 동결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너지 요금은 규제 당국이 공급가의 상한선을 올리면서 10월이 되면 거의 두 배로 치솟을 예정이다.

노동당 하원 그림자 내각의 수장인 탄감 데보네어 의원은 보리스 존슨 현 총리와 두 명의 총리 후보자에게 보낸 서한에서 보수당은 “에너지 가격 상한선을 동결할 수 있도록 8월 22일 월요일 일찍 의회를 소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데보네어 의원은 다음 주에 영국의 에너지 가격 규제 당국이 “에너지 가격 상한선 인상을 발표할 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인플레이션율이 10.1%까지 상승한 상황에서 겨울이 닥치기 전에 소비를 더욱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면서 가계를 걱정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을 뿐 아니라 우리 경제에 또 다른 충격을 줄 것이다. 이처럼 기업과 가계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우리는 행동을 더 이상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에너지 가격 상한제는 에너지 회사가 고객에게 과도하게 요금을 부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에서 시행하는 가격 인상 방지책이다.

CNN은 이 같은 야당의 제안에 대한 논평을 듣기 위해 다우닝가와 여러 정부 관리들과 접촉했지만, 어떤 응답도 듣지 못했다. 

영국에 닥친 상황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존슨의 전 측근들과 골수 보수당원들조차도 집권당이 느긋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차기 총리 후보 중 누구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지옥이 될 다가올 겨울에 대처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냉소주의자들은 그 이유는 어떤 해결책이든 막대한 공공 지출을 필요로 할 것인데 이는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이 극도로 꺼리는 정책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그러한 대규모 공공 지출은 위기 극복 지원책으로 에너지 회사를 포함한 대기업에 세금 인상 자제와 즉각적인 감세를 약속한 것과 다른 행보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존슨 총리의 후임자가 훨씬 더 많은 비평가들에게 대답해야 하는 날은 그리 오래지 않아 찾아올 것이다. 먼저는 의회 내의 정치적 반대자들에게 답해야 하고, 다음에는 투표용지를 쥔 유권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심각한 경고가 매주 쏟아지는 상황에서 무기력은 다음 총선을 앞둔 보수당의 최종 실수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10년의 집권 과정을 거치고서도 몽유병자처럼 위기로 걸어 들어가 놓고서 용서를 구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에 해당할 것이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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