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히스토리] 중세 영국의 참혹한 유대인 박해를 알려주는 우물 매장지 발굴
[WIKI 히스토리] 중세 영국의 참혹한 유대인 박해를 알려주는 우물 매장지 발굴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09.04 06:31
  • 수정 2022.09.04 0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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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이 떠돌았던 유대인들은 역사의 굴곡마다 학살과 추방의 참극을 경험했다. 15세기 말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통일 왕국을 세운 스페인 가톨릭 세력이 유대인들을 국외 추방했고, 이들 중 다수가 네덜란드에 정착한 뒤 전쟁 자금을 대며 정치 권력에 밀접하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중세 톨레도에서 벌어진 유대인 집단 학살을 그린‘구세주의 발 아래 - 중세의 유대인 살해’(1887년作), 스페인 화가 비센테 쿠탄다 토라야(1850~1925), 스페인 사라고사 미술관 소장. [ATI]
나라 없이 떠돌았던 유대인들은 역사의 굴곡마다 학살과 추방의 참극을 경험했다. 15세기 말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통일 왕국을 세운 스페인 가톨릭 세력이 유대인들을 국외 추방했고, 이들 중 다수가 네덜란드에 정착한 뒤 전쟁 자금을 대며 정치 권력에 밀접하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중세 톨레도에서 벌어진 유대인 집단 학살을 그린‘구세주의 발 아래 - 중세의 유대인 살해’(1887년作), 스페인 화가 비센테 쿠탄다 토라야(1850~1925), 스페인 사라고사 미술관 소장. [ATI]

2004년 영국 노리치에서 쇼핑몰 공사를 하던 인부들이 땅을 파다가 800년 된 우물 바닥에서 17구의 유해를 발굴한 적이 있었다. CNN방송은 그동안 이 유해를 연구해온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유해들과 연관된 끔찍한 역사에 대해 보도했다.

고고학자들은 성인 6명과 아이 11명으로 이루어진 이 유해들의 신원과 이들이 어떻게 하다가 중세 시대의 우물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었는지를 두고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가지런히 정돈된 채 발견된 다른 중세 유골들과 다르게 이 유해들은 이상한 모양을 하고 서로 뒤섞여 있었다. 이들은 마치 사망한 뒤 우물에 거꾸로 던져진 모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 사람들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는지를 규명하기 위해 이들 유골들에서 세분화 된 유전 물질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는데, 이는 최근 급격한 발전을 보이고 있는 고대 DNA 염기서열 기법 덕택이었다. 성인 유해 6구의 개별적 게놈들(genomes)을 분석한 결과 3명의 자매가 포함된 4명은 인척 관계이고, 가장 젊은 유골은 5살에서 10살 정도의 나이로 짐작되었다. 그리고 유전 물질들을 더 자세히 연구한 결과 이들 6명 모두 ‘아슈케나지 유대인(Ashkenazi Jews)’임이 거의 확실시 되었다.

연구자들은 이들 모두가 노리치를 피로 물들였던 반유대인 폭력 사태 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믿고 있다. 사망자 모두는, 유럽 기독교 세력의 지원을 받고 일어난 연속된 종교전쟁인 1190년 2월의 제3차 십자군 전쟁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당시 유대인을 목표로 한 이 학살극에서 몇 명이 희생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우리가 이 유해들을 처음 분석한 지 12년이 흐른 후 유전과학 기술 덕택으로 이 사람들이 누구이며 왜 살해되었는지의 역사적 미제 사건을 규명할 수 있어서 기쁘고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런던 자연사 박물관’의 수석 연구원이자 이번 논문의 주 저자인 셀리나 브레이스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연구자들은 연구 결과를 통해 유대주의는 종교와 문화적 정체성을 여럿이 공유하며 이어져 왔는데,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되어온 족내혼의 결과 아슈케나지 유대인 공동체들은 일부 유전적 질병을 포함한 여러 징표들을 지닌 독특한 유전 가계(genetic ancestry)를 나타낸다고 말했다. 이러한 유전 질병들 중에는 어린 시절 치명적 결과를 자아내는 ‘테이삭스병(Tay-Sachs disease)’을 들 수 있다.

연구자들은 우물 안 유해들이 현재의 아슈케나지 유대인과 유전적 조상을 유사하게 공유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현대의 아슈케나지 유대인은 중세에 주로 북유럽과 동유럽에 뿌리를 내린 유대인들의 후손을 가리킨다.

“이전에는 유대인 무덤에 대한 훼손이 엄격히 금지되었기 때문에 아무도 고대 유대인 DNA에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유전자 분석이 가능해질 때까지는 그들이 유대인인지도 몰랐습니다.”

진화 유전학자이자 이번 연구의 공동 저자인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마크 토마스 교수는 이렇게 밝혔다.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하는 십자군 [ATI]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하는 십자군 [ATI]

“특정 유대인 공동체가 처음 형성되었던 시기와 일부 유전적 장애의 기원에 대한 역사적 간극을 애초에는 확인할 수 없었던 유해들로 밝혀냈다는 점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연구자들은 DNA 분석을 통해 우물에서 발견된 어린 소년 유해의 신체적 특징을 추론할 수 있었다. 그는 파란 눈과 빨간 머리카락을 지녔을 가능성이 있는데, 빨간 머리카락은 유럽 유대인의 전형적인 전통 특징이라고, 화요일 ‘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Journal Current Biology)’를 통해 발표된 연구 결과는 밝히고 있다.

한편, 중세 필사 기록물 ‘Imagines Historiarum II’에서 연대기 작가 랄프 데 디세토(Ralph de Diceto)는 유대인 학살 장면을 생생하고 묘사하고 있다.

“(십자군 전쟁을 치르기 위해) 예루살렘행을 서두르던 많은 사람들은 사라센을 침공하기 전 먼저 유대인들부터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결과 1190년 2월 6일 노리치에 있는 자신의 집에 있던 유대인들이, 일부 탈출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모두 학살되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겼다.

이 우물은 한때 노리치의 중세 유대인 지구에 있었는데, 연구에 따르면 이 도시의 유대인 공동체는 1066년 영국을 침공한 정복자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이 영국으로 불러들였던 노르망디 루앙 출신의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후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유해들이 1190년 폭동과 관련이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유해들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은 시신이 1161년에서 1216년 사이의 어느 시점에 우물에 묻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시기는 영국에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폭력 행위가 벌어지기도 했었고, 1174년 노리치시에서 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었음을 역사 자료들은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우리 연구는 고고학, 특히 고대 DNA와 같은 새로운 과학 기술이 역사적 사건을 새롭게 규명하는 데 얼마나 효과적인지 보여줍니다.”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Francis Crick Institute)’의 선임 연구원인 탐 부스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1190년 자행된 폭력에 대한 랄프 디세토의 기록은 많은 것을 떠오르게 하지만, 유대인 남녀, 특히 어린이의 유해가 들어 있는 깊은 우물은 당시 얼마나 참혹한 일들이 벌어졌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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