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줌인] 여성들에게 폭력적 공권력을 행사하다가 딱 걸린 ‘검은 옷’의 러시아 사복 요원
[우크라 줌인] 여성들에게 폭력적 공권력을 행사하다가 딱 걸린 ‘검은 옷’의 러시아 사복 요원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09.10 07:01
  • 수정 2022.09.10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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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던 여성을 체포해 폭력을 행사하다가 음식 주문 때문에 정체가 탄로 난 러시아 사복 요원
시위 여성들에게 고문 수준의 폭력을 행사했다가 딸 걸린 러시아 요원 이반 랴보프 [텔레그램 캡처]
시위 여성들에게 고문 수준의 폭력을 행사했다가 딸 걸린 러시아 요원 이반 랴보프 [텔레그램 캡처]

지난 3월 19~25세 연령대의 일단(一團)의 러시아 젊은 여성들이 모스크바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그 즉시 경찰에 체포돼 경찰 밴 뒤쪽으로 끌려갔다. 이 과정에서 해당 여성들은 한 경찰관으로부터 언어와 물리적인 폭력을 당했고, 한 여성은 얼굴에 비닐봉지가 씌워져 질식사할 공포까지 느꼈다고 한다.

BBC는 9일(현지 시각) 자신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사복요원을 추적하던 이 여성들이 마침내 용의자를 찾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 여성들 대부분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그날 분위기는 처음에는 그렇게 험악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심지어는 도심을 가로질러 브라테예보 경찰서로 이송되는 도중에 텔레그램 그룹채팅 창까지 개설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뒤 그녀들에게는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일이 벌어졌다.

그녀들은 이후 6시간 동안 언어폭력과 물리적 폭력에 시달렸고, 그 정도가 고문 수준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 중 한 여성은 비닐봉지가 머리에 씌워지면서 질식사할 공포에 휩싸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이 같은 폭력은 모두 사복을 입은 한 사람에 의해 저질러졌다. 그는 키가 크고 다부진 체격에 검은 폴로넥 셔츠를 입고 있었다. 이 여성들은 그룹채팅에서 이 사람을 ‘검은 옷의 남자(man in black)’라고 부르기로 했다.

여성들 중 마리나와 알렉산드라는 폭력이 행사되는 과정을 은밀히 휴대폰에 녹음할 수 있었다. 음성녹음 파일 하나에서는 이 남성이 “나에게는 완전한 면책특권이 부여되어 있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이 요원이 침묵을 강요하기 위해 여성들을 협박했다면 그의 의도는 성공하지 못할 듯하다.

여성들은 경찰에서 풀려난 뒤 그 요원을 추적하기 위해 텔레그램 그룹채팅에서 뭉쳤다.

“우리가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묻어두거나, 녹음을 공개만 하고 숨죽이고 엎드려있기만 한다면 그들은 또 그런 일을 저질러도 무사할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

올해 22세의 대학생인 마리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 요원의 모습은 뇌리에 기억되어 있었지만 그녀들은 경찰 웹사이트에서 그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그녀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소셜미디어뿐이었다. 그러나 2주 이상을 뒤지고 다녔지만 어떤 단서도 발견할 수 없어서 그녀들은 거의 포기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획기적인 돌파구가 마련되었다.

지난 3월 말 경 러시아에서 인기 있는 음식 배달 앱인 ‘얀덱스 푸드(Yandex Food)’에서 개인정보가 대규모로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여성들은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녀들은 지난 1년 사이 브라테예보 경찰서에서 음식을 주문한 적이 있는지 누출된 데이터를 샅샅이 뒤졌다. 그 결과 그녀들은 각각 다른 9명이 음식을 주문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혹시 이들 중에 그 ‘검은 옷의 남자’가 있지나 않을까?”

그녀들은 이렇게 의심했다.

누출된 ‘얀덱스 푸드’ 데이터에는 대부분 이름과 휴대폰 번호만 표기되어 있었다. 그녀들은 용의자를 찾기 위해 이 이름들과 사진이 실린 소셜미디어 프로필들을 대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들의 기억 속에 박혀있는 남자의 사진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그녀들은 마침내 명단 중에서 성씨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러시아에서는 흔한 성씨인 ‘이반(Ivan)’이었다. ‘이반’이 너무나 흔한 성씨여서 그녀들은 용의자를 특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반의 폰번호는 온라인에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러시아의 물품거래 웹사이트인 ‘아비토(Avito.ru)’에 6건의 물품 광고가 올라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광고들 대부분은 그녀들이 이미 알고 있던 이름에 대한 정보만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 광고 중 하나는 2018년에 게시된 ‘브라테예보 경찰서에서 차로 10분 거리에서 판매된 스코다 래피드(Skoda Rapid) 자동차의 판매 광고’에 이반 랴보프(Ivan Ryabov)라는 전체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들은 드디어 성을 활용해 사진을 검색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즉시 아나스타샤(19)는 용의자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드디어 찾았다는 생각에 믿을 수가 없어 눈물이 흘렀습니다.”

자신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정부 요원을 끝까지 추적해 폭로한 마리나와 아나스타샤가 경찰 밴에서 촬영한 모습 [텔레그램 캡처]
자신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정부 요원을 끝까지 추적해 폭로한 마리나와 아나스타샤가 경찰 밴에서 촬영한 모습 [텔레그램 캡처]

그녀는 이 사진을 마리나와 알렉산드라를 비롯한 텔레그램 채팅그룹의 다른 여성들에게도 보낸 결과, 그 사진 속의 남자가 바로 그녀들이 찾던 ‘검은 옷의 남자’가 맞다고 확인해주었다.

그녀들은 자신들이 찾아낸 단서를 가지고 당국이 범죄 수사에 나서주기를 희망한다.

그녀들의 녹음 파일은 당시의 끔찍했던 학대 상황을 그대로 상기시켜준다.

이 녹음 파일에서 랴보프는 마리나에게 질문에 답할 것을 강요하며 “부츠를 벗어서 머리를 후려칠 수도 있다”고 소리를 지른다.

마리나는 랴보프가 14분 동안이나 얼굴에 총을 겨누고 소리를 지르고 바로 찼다고 말한다.

당시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나스타샤는 비명 소리와 폭력이 가해지는 소리를 들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녀 또한 질문에 대답하기를 거부했을 때 랴보프가 물병으로 그녀의 머리를 때리고 내용물을 그녀에게 쏟은 다음, 젖은 머리 위로 비닐봉지를 씌우고 코와 입 부분까지 내리고 30~40초 동안 숨을 쉬지 못하도록 했다고 말한다.

“한 번 생각해보세요. 내가 이런 상황을 얼마나 견딜 수 있었을까요?”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또, 알렉산드라(26)도 그녀에게 가해진 폭력 순간을 녹음할 수 있었고, 그 음성 파일에서 랴보프는 자신에게는 “완전한 면책특권”이 주어졌다고 떠벌이기도 한다.

“이런다고 푸틴이 우리를 처벌할 것 같나? 푸틴은 우리에게 너희 같은 것들은 죽여도 좋다고 했어. 푸틴은 우리 편이야.”

그런 다음 그는 그녀를 자기가 직접 죽일 수도 있다고 위협하며 “그러면 그들은 나에게 보너스도 지급할 거야.”라고 큰소리를 친다.

당시 체포된 여성들 중 최소 11명은 ‘검은 옷의 남자’의 손에 신체적 폭력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이 여성들이 올해 초 휴대폰에 녹음된 음성파일을 공개했을 때 한 러시아 정치인은 마땅한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러시아의 조사위원회는 이 사건에 대한 범죄 수사를 개시할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을 내렸다.

여성들은 또한 그날 누가 랴보프에 그런 행동을 하도록 명령을 내렸는지, 그리고 왜 그런 폭력이 계속되었는지를 알고 싶어한다.

한편, 아나스타샤는 당시 다른 남자(여성들은 그를 “베이지색 옷을 입은 남자”라고 불렀다)가 배후에 있었고, 그녀들은 그가 그날 저녁의 책임자라고 느꼈다. 그는 여성들이 테러를 당했던 103호실에 있지는 않았지만 여성들은 “모든 의사소통은 그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여성들 중 한 명이 브라테예보 경찰서 대기실에서 ‘베이지색 옷을 입은 남자’를 몰래 촬영하는 데 성공했지만 영상이 몹시 흔들려 상태가 좋지 않았다.

BBC는 3월 6일 브라테예보 경찰서장 대리인 페도리노프 중령이 서명한 체포 보고서를 입수한 후 그에 대해 언급된 2012년 지역 신문 기사와 그의 이미지와 일치하는 사진을 찾아냈다.

그러나 사진이 10년 전의 사진이기 때문에 BBC는 얼굴 인식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다시 확인한 결과 해당 동상상상의 “베이지색 옷을 입은 남자”와 일치하는 이미지가 알렉산더 페도리노프라는 이름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같은 계정이 브라테에보 경찰서의 온라인 채용 공고에 태그되어 있었던 것이다.

BBC는 경찰관 이반 랴보프가 연행 여성들을 학대했고, 이는 고문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랴보프와 페도리노프, 그리고 러시아 범죄 조사위원회 측에 넘겼지만 아무런 응답을 들을 수 없었다.

마리나, 아나스타샤, 알렉산드라는 폭력 가해자가 밝혀져서 정의와 책임이 분명히 구현되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법과 정의가 살아있음이 입증되기를 바랍니다.”

마리나는 이렇게 말했다. 

“어느 누구도 이런 불법적 폭력을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그가 공무원이라 해도 말입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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