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기둥, 선행은 장식’, 그리고 법치와 자유 [정숭호 칼럼]
‘정의는 기둥, 선행은 장식’, 그리고 법치와 자유 [정숭호 칼럼]
  • 정숭호 칼럼
  • 승인 2022.10.27 07:23
  • 수정 2022.10.27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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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 도덕감정론 6판 표지. META DB
애덤 스미스 도덕감정론 6판 표지. [META DB]

1. 내년 6월이면 탄생 300주년이 되는 애덤 스미스가 54세 되던 1777년부터 1790년까지 생의 마지막 13년을 스코틀랜드 관세청장으로 일한 사실을 비판적으로 본 사람도 없지 않다. 『도덕감정론』과 『국부론』, 두 권의 위대한 책으로 유럽 지식인 사회에서 명성을 확고히 했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매우 유족해졌음에도 관직에 봉사하게 된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말년에 적적해서’, ‘가업이기 때문에(유복자인 스미스의 아버지는 고향 마을 세관장이었다)’ 등등이 제시되나 본인이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아 후세 사람들은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비판자 중에는 그가 환로(宦路-벼슬길)에 나선 게 아쉽다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무엇보다 그가 법에 관한 책을 쓰기로 했다가 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걸 안타까워한다. 

“1787년 당시 스코틀랜드에는 관세청장을 할 만한 사람은 스미스 말고도 수백 명은 있었을 것이다. 그중에는 스미스보다 그 일을 더 잘했을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부론이나 도덕감정론 같은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스미스 단 한 명 뿐이었다. 그가 왜 생의 마지막 소중한 13년을 관세청장으로 ’허비‘했는지 모르겠다. 그 스스로 도덕감정론 마지막 판 서문에서 자신이 쓰기로 약속한 법학 이론에 관한 책을 쓰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지 않았는가?” 

스미스는 1759년에 초판이 나온 『도덕감정론』을 평생 여섯 번 고쳐 썼다. 6판은 그가 사망하기 두 해 전이자 초판이 나온 지 29년 만인 1788년에 나왔다. 1776년에 나온 『국부론』은 두 번 개정, 3판까지만 나왔으니 스미스는 『국부론』보다 『도덕감정론』을 더 아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스미스가 법학책을 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걸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인용한 6판 서문은 아래와 같다. 

“이 책의 제1판 마지막 문단에서 나는 또 다른 논저를 통해서, 정의(正義)에 관련된 것 뿐만 아니라 경찰(警察), 세입(歲入) 그리고 군비(軍)에 관련된 것, 그리고 법(法)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에서 법과 정부의 일반원리와 이 원리가 서로 다른 시대와 시기에 겪었던 큰 변화들을 설명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국부론에서 나는 이 약속 중 일부를 수행했는데, 적어도 그곳에서 경찰, 세입 그리고 군비의 문제는 다루어졌다. 나머지, 즉 내가 오랫동안 계획했던 법학(法學) 이론에 관한 약속을 지금까지 이 책을 수정하지 못하게 하였던 동일한 여러 가지 일거리들 때문에,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내가 늙어 이 작업을 만족스럽게 수행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나는 아직 이 계획을 전부 포기하지는 않았고,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다는 의무감을 계속 갖고 싶기 때문에, 30년 전에 썼던 것을 그대로 남겨 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나는 내가 공언한 모든 것은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하지 않았었다.” 

스미스는 왜 ’법학책‘을 쓰지 못하고 늙어가는 것을 아쉬워했는가? 젊을 때부터 앓아온 장폐색이 곧 자기 목숨을 앗으리라는 것을 예감하면서도 “아직 이 계획을 전부 포기하지는 않았다”라고 법학책에 애착을 보였는가?

“어떤 인간이든 더 나은 삶을 살려면 자유로워야 하고, 모든 사람이 자유로워지려면 정의가 지켜져야 하며, 정의가 지켜지려면 법이 지배하는 사회, 법치가 기본인 사회가 되어야 한다”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도 자유롭지 않고는 자신의 삶을 개선할 수 없다. 노예나 하인에게는 선택권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정의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그 사람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멋대로 빼앗는 순간은 그 사람의 자유가 사라지는 순간이다. 

2. 스미스가 남긴 두 권의 책 중 더 널리 알려진 건 먹고사는 문제를 다룬 『국부론』이다. 이 책에는 ‘보이지 않는 손’, ‘빵집 주인의 이기심’ 같은 촌철 명구가 넘친다. 하지만 『도덕감정론』에도 한 번 더 읽도록 눈을 비비게 하고 폐부를 찌르며 뇌수를 흥분시키는 예시와 비유, 분석이 곳곳에서 빛난다. 

‘정의는 기둥, 선행은 장식’이라는 말은 그중에서도 제일 앞에 놓아도 될 눈부신 가르침이다. 스미스는 “‘선행(Beneficence),’ 즉 남의 불행을 안타까이 여기는 심정, 남을 돕는 행위는 권할 만한 것이기는 하지만 건물에 비유하면 건물을 아름답게 꾸미는 장식이므로 꼭 그렇게 하라고 권할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하지만 정의(Justice)는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이므로 누구나 그것을 꼭 지켜야 하고,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는 지키도록 강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가 사라지면 위대하고 거대한 인간사회라는 구조물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의는 무엇인가? 무엇이 정의인가? 스미스는 육체적 힘이든 정치적 권력이든 권력이 남의 것(생명도 포함된다)을 빼앗는 것을 보고 분노하는 감정이 정의감이라고 보았다. 이웃이 억울하게 생명이나 재산을 빼앗기는 것을 본 사람들이 나는 저런 꼴을 당하지 말아야겠다는 각오, 빼앗긴 사람들에 대한 공감, 앗아가는 자들에 대한 분개가 형성된 순간이 정의감이 생겨나기 시작한 때라고 봤다. 

스미스는 ‘도둑의 사회에도 정의가 있다’는 다소 시니컬한 분석으로도 정의가 중요함을 거듭 강조한다.

“만약 강도와 살인자들 사이에서도 어떤 사회가 존재하려면,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적어도 그들 간에 서로 강탈하거나 살해하는 것을 자제해야만 한다. 따라서 자혜(慈惠-선행)는 사회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정의보다 덜 중요하다. 비록 최선의 상태는 아닐지라도, 사회는 자혜 없이도 존속할 수 있다. 그러나 불의의 만연은 사회를 철저히 파괴시켜 버린다.”

정의를 강조한 스미스의 논점은 이제 법의 탄생 과정과 법을 지켜야 하는 당위, 법치가 정의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으로 넘어간다.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을 박탈당하는 것은 단지 기대하고 있을 따름인 것을 얻지 못하게 되는 것보다 더 큰 해악이다. 따라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빼앗아 가는 소유권의 침해, 즉 절도, 강도는 우리가 기대하던 것을 실망시키는 계약의 위반보다 무거운 범죄다.” “위반했을 때 가장 강한 보복과 처벌이 요구되는 법은, 우리 이웃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는 법이며 그다음은 그의 재산과 소유권을 보호하는 법이며 마지막으로 소위 개인적 권리, 바꾸어 말하 면 다른 사람과의 약속으로부터 그가 기대하는 것을 보호하는 법이 중요하다.” 스미스가 ‘법학책’을 썼다면 아마 이 지점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3. 지금 한국에서 진정한 법치를 할 사람, 법치를 이끌어갈 세력은 누구인가. 여야 모두 법치가 중요하다, 법치가 지배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한다. 또 서로 법치를 어기고 있다고 비난한다. 둘 중 어느 쪽이 진짜 ‘법치주의자’인지는 누가 정의라는 기둥이 무너지지 않도록 국민 개개인의 것을 지켜주려 노력하고 있는가, 빼앗고 훔친 자를 찾아내 징치하려 하는가를 보면 알 일이다. 나는 지금 정부가 비록 100점 만점에는 크게 미달하지만 그나마 정의의 원칙을 알고 있는 정부, 법치와 자유가 동의어는 아니라도 거의 대부분이 겹치는 동심원임은 아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 메타버스인문경영연구원장, 전 한국일보 경제 부국장, 신문윤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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