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 "강요된 침묵에 굴복 않겠다"... 감옥에서 날아온 러시아 민주 운동가의 편지
[우크라 전쟁] "강요된 침묵에 굴복 않겠다"... 감옥에서 날아온 러시아 민주 운동가의 편지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11.15 05:46
  • 수정 2022.11.15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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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반체제 운동가 블라디미르 카라무르자 [사진 = 연합뉴스]
러시아의 반체제 운동가 블라디미르 카라무르자 [사진 =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카라무르자(41)가 올 초 모스크바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을 때 그의 아내 에브게니아는 그가 러시아 당국에 체포될 걸 뻔히 알면서도 말릴 수가 없었다.

BBC는 자사의 동유럽 특파원이, 러시아로 자진 입국해 국가 반역죄로 형을 살고 있는 블라디미르로부터 여러 통의 편지를 받았다고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이를 전쟁으로 규정하는 사람들을 범죄자 취급하고 있다. 그 결과 수천 명이 체포되었다. 블라디미르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불공지대천의 원수처럼 여기며 푸틴의 군대가 저지른 잔악한 행위를 공개적으로 비판해왔다.

블라디미르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러시아를 떠나지 않았다.

현재 블라디미르는 반역죄로 기소돼 형무소에 있으며, 그의 아내 에브게니아는 지난 4월부터 남편과 면회를 할 수가 없는 처지이다.

하지만 블라디미르는 ‘제5 형무소(Detention Centre No. 5)’에서 기자에게 여러 통의 편지를 보내 “강요된 침묵에 굴종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과거 두 번이나 독살 위협을 겪은 바가 있다.

러시아에서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는 일은 우크라이나 전쟁 전에도 위험한 행위에 속했지만 침공 이후에는 반체제 운동에 대한 탄압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거의 대부분의 유명 반체제 인사들이 체포되거나 러시아를 떠났다. 이런 점들을 감안한다고 해도 블라디미르에 대한 러시아 당국의 처사는 유독 가혹하다 할 수 있다.

블라디미르에 대한 혐의는 모두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와 푸틴 대통령에 대한 반대를 소리 높혀 외쳤다는 데 모아지고 있으며, 그의 변호사는 그가 24년 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러시아에서 반체제 운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행위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목전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두고 침묵을 지킬 수만은 없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행위 자체가 푸틴을 돕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블라디미르는 감옥으로부터 날아온 편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그는 그냥 외국에 있을 수만은 없었다고 말했다. “안전한 곳에 있으면서 러시아 내 동료들에게 행동에 나서라고 촉구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정치 투쟁을 위한 올바른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남편이 미워 죽겠어요.”

에브게니아는 남편 변호사의 전화를 통해 남편의 체포 소식을 처음 접했다. 블라디미르의 변호사는 언제나처럼 모스크바에 있는 고객들과 접촉을 시도하던 중이었다. 지난 4월 11일 블라디미르의 전화가 모스크바의 한 경찰서에서 끊겼다.

블라디미르의 아내는 간신히 남편과 통화를 할 수가 있었다. 그녀는 현재 안전을 위해 아이들과 함께 미국에 머물고 있다.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걱정 마!”라는 짧은 말만 들을 수 있었고, 어이가 없어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블라디미르 부부는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 세대로, 구소련 체제가 붕괴된 이후 민주주의에 눈을 뜬 러시아에서 자랐다. 이후 블라디미르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면서 러시아의 젊은 개혁운동가 보리스 넴초프(1959~2015)의 보좌관 생활을 하며 러시아 정치에 발을 들였다.

블라디미르 부부는 2004년 발렌타인데이에 결혼식을 올린 이후 이번처럼 길게 떨어져 있기는 처음이다. 그는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것이 제일 견디기 힘들다고 말한다.

“한 순간도 가족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들의 처지를 떠올리면 잠을 이를 수가 없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의 고결한 성품을 존경하면서도 싫어합니다.”

에브게니아는 최근 런던에 들렀을 때 기자에게 이렇게 털어놓았었다.

“그는 거리로 나선 사람들과 운명을 함께 하면서 스스로 체포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녀는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를 외치다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었다.

“그는 사악한 집단에 굴복해서는 안 되는 것을 몸소 보여주기 원했으며, 그 때문에 나는 그를 정말 존경합니다. 그러면서도 그가 미워 죽겠습니다.”

블라디미르는 처음에는 경찰의 명령에 따르지 않은 죄로 체포되었지만, 일단 구금되고 나서부터는 중대한 죄목들이 연 걸리듯 뒤따라 붙었다.

그는 처음에는 러시아 군부와 간부들에 대한 ‘거짓 정보를 퍼뜨렸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러시아 인권단체 ‘OVD-Info’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이른바 ‘가짜뉴스 법’으로 100건 이상의 기소가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지방의원인 알렉세이 고리노프는 지난 7월 7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인권운동가 일리야 야신은 부차 지역의 민간인 학살을 언급했다가 곧 재판에 부쳐질 예정이다.

블라디미르는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한 발언 때문에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민간인 지역에 집속탄(cluster bombs)을 투하했고, 산부인과와 학교에 폭탄을 투하함으로써 전쟁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한 바가 있다.

그의 발언들은 모두 개별적으로 기소되었지만, 기자가 본 기소장에 따르면 러시아 수사관은 러시아 국방부가 “금지된 전쟁 수단의 사용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블라디미르가 가짜뉴스를 퍼뜨린 것이며, 우크라이나 민간인이 포격의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거짓 정보를 퍼뜨린 것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하지만 기소장은 실제 벌어진 사건들에는 눈을 감고 있다.

또 다른 혐의는 정치범을 위한 행사와 관련이 있다. 이 행사에서 블라디미르는 수사관들의 표현에 의하면 러시아가 “억압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그는 지난달 국가반역 혐의로 기소되었다.

블라디미르는 기자에게 보낸 가장 최근의 편지에서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크렘린궁은 푸틴의 반대자들을 국가 반역자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배신자는 개인의 권력을 위해 러시아의 안녕과 명성, 미래를 파괴하는 자들이지 이에 대해 큰소리로 저항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지난 3월 6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중심가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는 시위가 벌어져 경찰이 진압에 나선 가운데 한 참가자가 팔다리가 붙들린 채 연행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지난 3월 6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중심가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는 시위가 벌어져 경찰이 진압에 나선 가운데 한 참가자가 팔다리가 붙들린 채 연행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정치적 박해

블라디미르에 씌어진 반역 혐의는 그가 해외에서 러시아에 내 정치적 반대자들이 박해를 받고 있다고 주장한, 세 차례 연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러시아 당국은 그가 미국에 기반을 둔 ‘자유 러시아 재단(Free Russia Foundation)’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러시아에서는 국가안보에 위협으로 간주되는 외국 조직에 대한 모든 ‘조언’ 또는 ‘지원’은 현재 국가반역죄로 처벌될 수 있다.

러시아에 대한 어떤 비밀도 누설되어서는 안 된다.

“대중 연설에서 국가 반역죄를 저질렀다고요? 말도 안 됩니다. 이건 언론자유의 침탈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진짜 범죄가 아니라 의견을 개진했다고 재판에 회부된 것입니다.”

블라디미르의 변호사인 바딤 프로코로프는 모스크바에서 걸려 온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주장했다. 

그는 블라디미르가 당시 ‘자유 러시아 재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정치 재판입니다. 그들은 지극히 정상적인 러시아 야당 활동에 낙인을 찍으려 하는 겁니다.”

블라디미르 자신은 러시아에서 반역 혐의로 마지막으로 기소된 사람이 1974년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 알렉산더 솔제니친이었다고 주장한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게 되어 영광이라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그의 아내 에브게니아는 그렇게 침착하게 말할 수만은 없다.

그녀가 남편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블라디미르는 모스크바에서 독극물로 거의 두 번이나 죽을 뻔했는데, 중독의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2015년 그가 처음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그의 아내는 생존 확률이 5%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는 목숨을 건졌다.

그녀는 남편을 간호하며 그가 숟가락을 다시 쥘 수 있도록 도왔다. 이후 그는 30분마다 찾아오는 통증에도 불구하고 소파에서 노트북 작업을 계속했다.

“걸을 수 있게 되자마자 그는 짐을 싸서 러시아로 떠났습니다. 푸틴과의 싸움이 죽음의 공포보다 더 중요했던 겁니다.”

에브게니아는 이후 7년 동안 전화기를 옆에 끼고 생활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남편이나 다른 사람에게서 남편에게 불행한 일이 닥쳤다는 전화를 받을까봐 노심초사합니다.”

그녀는 남편의 모스크바행을 말리는 일을 오래전에 포기했다. 그녀의 유일한 항의는 그가 짐 꾸리는 일을 돕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개시된 후 마지막으로 러시아에 들어가기 전, 프랑스 방문길에 남편과 동행했었다.

“나는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파리 여행을 떠올렸다.

“마음속 깊숙이에서는 앞으로 닥칠 일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9월 21일(현지 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군 동원령을 내린 가운데 이를 반대하는 러시아 모스크바 시민을 경찰이 체포하는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지난 9월 21일(현지 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군 동원령을 내린 가운데 이를 반대하는 러시아 모스크바 시민을 경찰이 체포하는 모습. [사진 = 연합뉴스]

넴초프 거리(Nemtsov's Place)

블라디미르가 체포된 이후 에브게니아는 남편의 구호 활동을 개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러시아의 정치 탄압, 그리고 남편의 사건에 대해 호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런던의 ‘보리스 넴초프 거리(Boris Nemtsov Place)’ 제막식에 참가할 예정이다. 블라디미르는 멘토이자 친구였던 보리스 넴초프를 기리기 위한 활동을 오랫동안 펼쳐왔었고, 그 결실이 ‘보리스 넴초프 거리’로 탄생하게 되었다. 러시아의 저명한 야당 정치인이었던 보리스 넴초프는 2015년 크렘린궁 인근에서 청부 살인으로 피격 사망했는데,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고 있다.

이번에 ‘보리스 넴초프 거리’로 이름을 새롭게 바꾼 런던의 원형 교차로는 하이게이트(Highgate)에 있는 러시아 무역 대표부와 가깝다.

“거리에 들어서는 모든 자동차가 ‘보리스 넴초프’라는 명판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에브게니아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녀의 남편은 언젠가 다른 러시아가 그 이름을 자랑스러워하기를 바랐다.

보리스 넴초프는 수년 동안 블라디미르의 협력하에 서방 정부들이 러시아의 인권 침해에 대해 러시아 고위 관리들을 제재하도록 로비 활동을 벌였었다. 그들의 이 같은 활동과 성공은 해외 생활과 외화로 호화롭게 살았던 러시아 엘리트들을 화나게 했다.

한번은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가 기자에게 그 ‘마그니츠키(Magnitsky Act)’ 제재 때문에 자신과 넴초프 둘 다 표적이 되었다고 들려준 바도 있다.

남편을 대신하는 활동은 에브게니아에게 시련을 주고 있지만 그녀를 단단하게 하기도 한다.

“나는 남편이 아이들에게 다시 돌아올 수 있고, 이 끔찍한 전쟁을 멈추고 이 살인 정권이 정의의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블라디미르도 침묵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그가 장문으로 써 내린, 감옥으로부터의 편지들은 러시아는 결코 독재정권의 먹잇감이 아니며 러시아 국민이 모두 세뇌되어 푸틴을 열광하지 않는다는 그의 확신을 증거한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우크라이나 침공과 크렘린궁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사람들과 그의 지지자들로부터 받은 수많은 편지를 거론한다. 그는 서방이 “러시아의 다른 미래를 원하는” 러시아 사회의 다른 목소리를 고립시키지 말 것을 촉구한다.

그는 또한 블라디미르 푸틴이 집권하는 동안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푸틴에게 타협은 나약함의 표시이며 더 많은 공격을 하도록 하는 빌미가 된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그가 명예롭게 전쟁을 끝낼 명분을 준다면 우리는 1, 2년 안에 또 다른 전쟁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블라디미르는 운동과 기도, 독서, 편지쓰기를 병행하며 투옥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역사가로서 그는 구소련 시대의 반체제 인사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데, 재판을 기다리면서 그들에 대해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있다.

“당시 그들이 애호하는 건배사는 ‘희망 없는 대의를 위하여!’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써 내려갔다.

“하지만 우리가 결과로 알다시피, 그것은 결국 그렇게 절망적이지 않은 운동이었습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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