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 헤르손 레지스탕스가 들려주는 러시아군 점령 당시의 저항 활동
[우크라 전쟁] 헤르손 레지스탕스가 들려주는 러시아군 점령 당시의 저항 활동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11.27 06:48
  • 수정 2022.11.2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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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 메인 광장에서 지난 13일 아이들이 우크라이나 국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 메인 광장에서 지난 13일 아이들이 우크라이나 국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러시아는 최근 우크라이나 남부에서 전략적 철수를 단행했다. CNN은 26일(현지 시각) 러시아군이 헤르손시를 점령하고 있을 당시 저항 활동을 벌였던 우크라이나 저항 세력들과의 인터뷰 기사를 내보냈다.

지난 3월 초의 이른 봄 저녁 헤르손시, 러시아가 이 도시를 점령한 뒤 얼마 되지 않은 날이었다. 두 명의 러시아군이 술이 잔뜩 취해 귀대하던 중이있었다. 그날 밤 기온은 여전히 영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전기가 끊어져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러시아군 하나는 술에 취해 비틀거렸고, 다른 하나는 소변을 보기 위해 가로를 벗어났다. 그때 날카로운 칼이 그의 우측 목 부위를 뚫고 들어왔다.

이 러시아군은 그 자리에 쓰러졌고, 얼마 뒤 다른 한 명도 술이 취한 상태에서 무슨 일을 당하는지도 모르고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나는 첫 번째 놈을 재빨리 처리하고, 다른 놈도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습니다.”

우크라이나 저항군 아치(20)는 CNN에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자신이 완전히 본능적으로 움직였다고 말했다.

“러시아 군복을 입은 괴물들이 손안에 들어왔는데, 안 될 게 뭐있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사건 현장 거리를 걸으면서 당시 상황을 들려주었다. 그는 러시아군을 묘사할 때 비속어를 사용했다.

“인적이 없었고, 불빛도 없어서 '이때다' 싶었습니다.”

아치는 훈련받은 격투기 선수로 재빠른 발차기와 뛰어난 반사작용을 지니고 있다. 그는 항상 칼을 지니고 다녔지만 그때까지 누구를 죽여본 적은 없었다. CNN은 아치의 신분 보호를 위해 그의 호출 신호(call sign)를 이용해 그를 지칭하기로 했다.

“아드레날린이 모든 역할을 했습니다. 나는 공포심이나 그밖의 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사람을 그렇게 살해하고 나서 처음 며칠간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나의 적들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쳐들어와서 나의 가정을 빼앗아 간 자들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게 된 것이지요.”

우크라이나 군 당국 및 아치와 선이 닿고 있는 우크라이나 정보 소식통들은 그의 진술이 사실에 부합함을 확인해주었다. 그는 침공 전 29만 명이 살던 헤르손시 레지스탕스 중 한 명이었다. 러시아는 헤르손의 저항 의지를 꺾어놓으려 했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헤르손 주민들은 지난 3월 2일 러시아가 이 도시를 점령한 직후부터 자신들의 태도를 분명히 했다. 그들은 푸른색과 노란색이 섞인 우크라이나 국기 복장을 입고 매일같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다.

침공 이후 러시아가 점령한 최초의 대도시이자 지방의 수도인 헤르손은 모스크바로서는 이번 전쟁을 상징하는 거점이었다. 따라서 저항은 더욱 용납될 수 없었다.

시위대는 최루탄과 총격을 받았고, 주모자들과 강성 주민들은 체포되어 고문당했다. 이렇게 평화로운 시위가 먹히지 않자 헤르손 사람들은 저항에 나섰다. 아치와 같은 일반 시민들이 행동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헤르손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치는 이렇게 말했다.

“뛰어난 빨찌산들이 많았습니다. 매일 밤 최소 10명의 러시아인이 살해당했습니다.”

처음에는 홀로 움직이던 저항 세력은 차츰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결사체로 뭉치게 되었다. 그들은 이후 헤르손시 밖에 있는 우크라이나군 및 정보기관과 합심해서 움직였다.

“러시아군을 찾아 함께 도시를 돌아다니던 친구가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러시아군의 이동 경로를 확인한 다음 일선에 있는 우크라이나군 요원에 모든 정보를 제공하면 그가 이 정보를 최종적으로 어디에 전달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러시아 군인들만이 공격 목표가 된 것은 아니었다. 러시아가 헤르손을 점령하던 8개월 동안 모스크바가 임명한 여러 정부 관리들도 제거 대상이 되었다. 심리전의 일환으로, 러시아에 협력한 부역자들의 얼굴이 점령 기간 내내 도시 곳곳의 포스터에 내걸려 있었다.

친 러시아 성향 관리들이 “테러 공격”이라고 표현한 이 같은 보복 행위에서 부역 관리들은 총에 맞아 숨지거나 차량 폭발로 목숨을 잃었다. 부역자에게는 피의 보복을 하겠다는 약속이 지켜진 것이다.

아치는 우크라이나 국기의 노란색과 파란색 줄무늬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소련의 승리를 축하하는 ‘승전 기념일’ 퍼레이드에 참석했다가 지난 5월 9일 점령 당국에 체포되었었다.

이후 그는 러시아 연방 보안국(FSB)이 점령한 지역 구치소로 이송되었다. 이 구치소는 우크라이나 군인, 정보 장교 및 저항 세력을 고문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왼쪽)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14일 헤르손을 찾아 이 지역 탈환에 공을 세운 군대를 격려했다. [사진 =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왼쪽)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14일 헤르손을 찾아 이 지역 탈환에 공을 세운 군대를 격려했다. [사진 = 연합뉴스]

“그들이 나를 굶겨 죽이려 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먹을 것을 많이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떠올렸다.

“그 안에서는 좋은 일은 한 가지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치는 다행히도 9일 만에 석방되었다. 러시아군은 그를 석방하면서 점령군에 협력한다는 약속을 하라고 하면서 이 장면을 동영상으로 녹화했다. 이 구치소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그의 설명은 우크라이나군 관계자와 다른 수감자들에 의해 확인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아치처럼 운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다른 레지스탕스 전사들과 우크라이나 군대 및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다른 많은 사람들은 구치소를 안전하게 벗어날 수 없었다.

신분 보호를 위해 익명을 요구한 이호르(29)도 이 구치소에 구금되었었다.

“저는 11일 동안 갇혀 있었고, 그 기간 내내 지하실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들려주었다.

“사람들이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팔다리를 몽둥이로 때리고, 소몰이 막대기로 구타했으며, 심지어 전기 고문이나 물고문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이호르는 무기를 운반하다 적발되었고 “다행히도” 구타만 당했다고 한다.

“나는 사람들이 죽도록 매를 맞고 있을 때 이곳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들은 테이저건으로 내 다리를 찔렀는데, 입소를 환영한다면서 그런 짓을 한 겁니다. 그들 중 한 명은 내가 들어온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었고, 다른 두 명은 갈비뼈를 가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이호르는 자신이 헤르손 레지스탕스 조직의 일원이며 무기 운반만이 그가 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숨길 수 있었다. 그는 우크라이나군에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았었는데 이 내용이 알려졌다면 그는 훨씬 더 잔인한 처벌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사진이나 비디오를 찍어 그것을 우크라이나군에 보내면 그들은 이를 활용할지 말지를 결정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호르가 우크라이나군에 전달한 좌표 중에는 헤르손시의 어떤 창고가 있었다. 

“러시아군은 그곳에 장갑차, 병력 수송 차량 등 20~30대의 차량을 보관했고, 일부 러시아인들이 이곳에 거주하기도 했었습니다.”

철수하는 러시아군은 점령 장소의 이용 흔적을 재빨리 지우려 했지만 파괴된 건물에는 공격의 잔해가 남아 있었다. 지붕 대부분이 무너지고, 벽이 산산이 부서졌으며, 깨진 유리가 바닥을 온통 점령하고 있었다. 건물 뼈대는 무사했지만 철구조물은 폭발로 형태가 일그러져 있었다.

이호르는 텔레그램을 활용하여 이 창고 건물의 좌표를 그가 ‘연기(smoke)’라 부르는 우크라이나군 정보관에게 전달했다. 그는 몰래 촬영한 영상도 함께 보냈다.

“카메라를 켜고 건물을 촬영하면서 통화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 후에는 물론 영상을 삭제했습니다. 러시아군의 검문에 걸린다면 뭐라 답변할 말이 옹색했기 때문이지요.”

그는 9월 중순에 이 정보를 보냈고, 바로 다음 날 우크라이나군의 포격이 시작되었다.

미국과 나토(NATO)는, 크렘린 당국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주민들이 러시아군을 구세주로 쌍수 벌려 환영할 것으로 오판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모스크바 군대가 격퇴된 곳뿐만 아니라 점령지에서조차 현실은 그들의 바람에 부응하지 못했다.

이호르가 창고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우크라이나군에 협력한 저항은 헤르손 내부의 우크라이나 저항 세력이 끊임없이 러시아 활동을 방해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한 징표이다.

러시아 점령 8개월 뒤 헤르손시는 이제 우크라이나의 손에 돌아왔고, 모스크바 군대는 드니프로 강 서안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헤르손시를 되찾았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매일 전역에서 심각한 미사일 공격을 받고 있으며, 러시아군은 동부에서 계속 압박을 가하고 있다.

3개월 된 딸의 아버지인 이호르는 과거를 돌아보면서 그가 죽지 않은 것은 운이 좋아서였다고 말했다.

“힘들지는 않았지만 위험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내 행위가 들켰다면, 나는 아마 그들에게 끌려가 살아서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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