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사태] ‘백지 시위’를 진압하라...악몽으로 변하고 있는 시진핑의 ‘중국몽’
[차이나 사태] ‘백지 시위’를 진압하라...악몽으로 변하고 있는 시진핑의 ‘중국몽’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12.03 05:30
  • 수정 2022.12.0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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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인권선언일’이 다가오면서 1986년과 1989년의 천안문사태 재현을 두려워하는 중국 당국의 대응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오는 10일은 ‘세계 인권선언일(International Human Rights Day)’이다. 중국에서는 1986년 12월 ‘중국과학기술대학’의 부학장 자리에 있던 한 물리학자가 공개적으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일이 벌어졌었다. 그의 민주화 요구는 베이징과 상하이 등으로 빠르게 퍼져나가, 3년 뒤 벌어진 천안문사태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닛케이 아시아(Nikkei Asia)는 2일(현지시간) ‘세계 인권선언일’이 다가오는 가운데 심상치 않게 번지고 있는 중국의 시위 사태를 분석하는 칼럼을 실었다.

이 칼럼을 쓴 카수지 나카자와는 중국 특파원과 중국 지사장으로 7년을 보낸 중국통이며, 2014년에는 뛰어난 국제 보도를 한 기자에게 수여하는 ‘본-우에다 국제 기자상(Vaughn-Ueda International Journalist Award)’을 수상하기도 했다.

중국 지도자 시진핑 주석은 공산당 총서기로서의 안정적인 3연임 목표를 달성한 지 몇 주 뒤 매우 중대한 국면을 마주하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A4 백지 용지를 들고 거리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시위는 사람들이 주로 백지를 들고 항의 표시를 하기 때문에 ‘백지 혁명’ 또는 ‘백지 운동’이라 불리며 중국 전역의 도시들로 번지고 있다.

이번 시위의 주된 요구 사항은 혹독한 제로코로나 정책의 종식이지만, 베이징과 상하이에서는 시위대가 시진핑의 사임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모습까지 목격되고 있다. 그중에서는 일부 시위대는 시진핑을 가리켜 ‘독재자’라 부르기도 한다.

현 사태는 2012년 시진핑 집권 이후 최대의 리더십 위기라 할 수 있다.

학생들의 시위는 시진핑 주석의 모교인 칭화대에서까지 벌어져서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베이징시 서부에 위치한 칭화대학은 시진핑 권력의 보루로 인식되며, 정치권 내 시진핑 친위세력인 ‘신칭화파’의 근거지로도 알려져 있다. 이 대학의 전직 총장 천지닝은 지난 10월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강력한 권력을 지닌 정치국원으로 승진했다.

이후 천지닝은 차기 총리가 될 것으로 널리 예상되던 리 창의 뒤를 이어 상하이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제로코로나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는 며칠 만에 전국으로 번졌다.

당국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학생 시위대는 기발한 생각을 해냈다. 신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시진핑의 퇴진을 외칠 수 있도록 어둠 속에서 백지로 얼굴을 가리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일부 칭화대 학생들은 알렉산더 프리드만(Alexander Friedmann)의 우주론 방정식이 적힌 백지를 들기도 했다. 아마도 ‘프리드만(Friedmann)’의 성이 영어로 ‘freedom(자유)’처럼 들리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 사회의 중대한 변화를 반영하듯 칭화대 시위대 중 상당수는 젊은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처럼 여성들이 행동으로 권리를 주장하는 모습은 24명의 정치국원 중 여성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던 지난 10월의 시대착오적인 정치국 개편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중국 고위층 내부 상황을 잘 아는 한 소식통에 따르면 공산당 최고위층은 현재 번지고 있는 ‘백지 시위’ 진압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백지 시위는 앞으로 10일 안에 확실히 종식될 것입니다.”

이 소식통은 닛케이와 인터뷰에서,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의 날’이 다가오면서 당 지도부가 국가를 최고 수준의 경계태세로 전환했다고 덧붙이며 이렇게 말했다.

“과거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중국 전역에서 당국의 고강도 제로코로나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가 계속되던 지난달 27일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시위 진입을 위해 진압봉을 들고 방패를 앞세워 다가오는 공안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며 막아서는 여성 영상이 SNS 등을 통해 확산하고 있다. 영국의 미러 등 외신은 이 영상을 본 중국인들이 1989년 6월 톈안먼 사태 때 맨몸으로 탱크 행렬에 맞서 중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이미지로 남은 ‘탱크맨’(오른쪽 사진)을 떠올려 ‘탱크 레이디’로 부른다고 소개했다. 공안은 방패로 밀쳐도 물러날 기미가 없자 이 여성의 스마트폰을 빼앗아 던져버렸고, 이어 방호복을 입은 요원 여럿이 달려들어 저항하는 여성을 거칠게 끌고 갔다. [SNS 캡처]
중국 전역에서 당국의 고강도 제로코로나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가 계속되던 지난달 27일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시위 진입을 위해 진압봉을 들고 방패를 앞세워 다가오는 공안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며 막아서는 여성 영상이 SNS 등을 통해 확산하고 있다. 영국의 미러 등 외신은 이 영상을 본 중국인들이 1989년 6월 톈안먼 사태 때 맨몸으로 탱크 행렬에 맞서 중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이미지로 남은 ‘탱크맨’(오른쪽 사진)을 떠올려 ‘탱크 레이디’로 부른다고 소개했다. 공안은 방패로 밀쳐도 물러날 기미가 없자 이 여성의 스마트폰을 빼앗아 던져버렸고, 이어 방호복을 입은 요원 여럿이 달려들어 저항하는 여성을 거칠게 끌고 갔다. [SNS 캡처]

이 소식통은 과거 1986년 ‘세계인권선언의 날’과 관련된 사건을 언급하며 “지도부 간 이견은 없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당의 행정력과 지역 차원의 위기관리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당국이 ‘백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은 무력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당국은 가장 선동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움직임을 식별, 추적 및 제어하기 위해 빅 데이터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당국은 옛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에서 국가보안법이 발효되기 전후인 2020년을 기해 민주화 운동가들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감시 기술을 더욱 발전시켰다.

현재 중국 전역을 휩쓸고 있는 제로코로나 정책을 반대하는 시위의 물결은 금년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직전인 지난 10월 13일 한 용감한 시위자가 베이징 소재 고가도로인 시통교에서 반체제 현수막을 펼치고 구호를 외친 후 번지고 있는 것이다. 이 시위자가 펼친 현수막은 “제로코로나 정책 대신 식량을, ‘링슈(지도자)’ 대신 선거를, 노예제가 아닌 자유 시민권”을 요구했는데, 이러한 주장 모두는 시진핑의 강압적 통치 방식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구호들이었다.

제로코로나 정책은 종종 비인도적인 방식으로 구현되면서 대중의 불만을 끓어오르게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당대회 이후에는 이 정책이 완화될 것이라고 기대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가 허물어지자 불만을 억누르고 있던 마개가 터져버린 것이다.

이번 시위 사태의 초기 도화선 중 하나는 폭스콘(Foxconn) 공장에서 터져 나왔었다. 허난성 정저우에 있는 세계 최대 아이폰 조립 공장인 폭스콘의 노동자들이 제로코로나 정책과 관련된 근로 조건 문제를 제기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어 11월 24일 신장위구르 자치구 수도인 우루무치시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해 10명이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후, 이 지역에 내려진 코로나 봉쇄 조치로 인해 소방관들이 늑장 대응을 하는 바람에 사고가 커졌다는 소문이 소셜미디어를 타고 퍼지면서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는 베이징, 상하이 및 기타 대도시로 빠르게 퍼졌다.

한편, ‘세계 인권선언일’은 중국 공산당에게는 항상 달갑지 않은 날이었다. 천안문사태가 일어나기 3년 전인 1986년, 안후이성 소재 ‘중국과학기술대학교’ 부학장이자 물리학자였던 팡리즈는 이날 중국의 민주화를 촉구했다.

팡리즈의 요구는 베이징과 상하이 등 내륙 도시들로 빠르게 번지면서 학생 운동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당국은 2022년의 반(反) 제로코로나 정책 시위도 비슷한 패턴을 따르고 있음에 주목하고 있다.

당시 이 민주화 운동에 대한 느슨한 대응을 문제 삼아 한 달 뒤 후야오방 공산당 총서기가 해임되었었다.

이 사태의 배후에는 후야오방을 핵심 요직에 임명한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과 당 지도부의 세대교체를 노리던 후야오방을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당 원로들 사이의 복잡한 권력투쟁이 도사리고 있었다.

2017년 7월 13일 중국의 민주 인권 운동가 류샤오보가 수감 중 간암 판정을 받고, 병원에서 사망했다. [사진 = 연합뉴스]
2017년 7월 13일 중국의 민주 인권 운동가 류샤오보가 수감 중 간암 판정을 받고, 병원에서 사망했다. [사진 = 연합뉴스]

그러다가 터진 1989년 천안문 학생 시위 사태는 당내 경쟁을 더욱 심화시켰다.

덩샤오핑은 후야오방을 대신해 자오쯔양을 당 총서기에 앉혔지만, 자오쯔양은 천안문사태 이후 학생들에게 온정적 태도를 보였다는 이유로 숙청되었다.

‘세계 인권선언의 날’은 1948년 12월 10일 유엔총회에서 세계 인권 선언이 채택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2008년 ‘세계 인권선언의 날’에 중국에서는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었다. 류샤오보를 주축으로 한 중국 내 인권 운동가들이 ‘세계 인권선언의 날’ 선포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08 헌장 (Charter 08)’을 발표한 것이다. 

2년 후 류샤오보는 옥중에 갇힌 상태에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당시 노벨상 수상식 현장에 마련된 그의 빈 의자는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으며, 베이징 당국의 강경 노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고발의 현장이 되기도 했었다. 류샤오보는 정치범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 채 2017년에 사망했다.

엄혹한 제로코로나 정책에 따른 갑작스러운 봉쇄는 기본적인 인권에 해당하는 이동의 자유를 박탈하고 있다. 말도 많고 인기도 없는 이 정책은 중국 경제에도 타격을 가하고 있다. 전국을 휩쓴 학생 시위에 많은 일반 시민들이 동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지난 33년 동안 진정으로 시위다운 시위에 직면해본 적이 없다.

일본이 센카쿠 열도를 국유화한 뒤 벌어진 2012년 9월의 대규모 반일 시위는 당국이 계획과 실행에 크게 관여했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다. 당시 시위 참가자들은 시골 지역에서 정부가 대절한 버스를 타고 올라왔고, 일당도 지급 받았다. 또, 공무원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시위대 뒤에 배치되어 생수병을 나눠주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시위 사태에서는 정부 요원들이 반 제로코로나 시위대에 섞여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현재 표출되고 있는 불만은 전적으로 자생적이며 시진핑의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제로코로나 정책에 집중되고 있다. 시 주석 자신이 스스로 이 정책의 일선에서 지휘하기를 자청했다. 2020년 1월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이래 그는 자신이 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주도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는 또한 이 정책에 따른 모든 성과를 차지하고, 퇴로를 열어 놓지 않은 채 자신의 권위와 명성을 이 정책과 연관짓고 있다.

1986년에서 1989년 사이 벌어졌던 반체제적인 학생 운동이 다시 일어난다면 시진핑에게는 큰 위협이 되면서 그의 영구 집권 전망에 영향을 미치고, 어쩌면 당내 갈등의 부활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올 ‘세계 인권선언의 날’인 12월 10일은 시진핑이 기다리는 날이 아니다. 이 날 뒤에도 시진핑 주석은 ‘중국몽’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2019년 홍콩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을 때에는 주말을 이용해 무려 200만 명이 모이기도 했었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다면 ‘세계 인권선언의 날’을 앞둔 주말이 변곡점이 될 수 있다.

다가오는 주말에 중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세심한 지켜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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