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대’ 모두 관우 장비 조자룡이다 [정숭호 칼럼]
우리 ‘국대’ 모두 관우 장비 조자룡이다 [정숭호 칼럼]
  • 정숭호 칼럼
  • 승인 2022.12.05 07:31
  • 수정 2022.12.05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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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가 만든 김민재 사진. (BBC 트위터)
BBC가 만든 김민재 사진. (BBC 트위터)

한국 수비수 김민재를 포효하는 얼굴에 쇠 발톱을 곧추세운 괴물로 그려놓은 것은 영국의 공영방송 BBC다. 김민재 아래에 우루과이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스와 다윈 누녜스가 긴장한 모습으로 서 있다.

BBC는 카타르 월드컵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는 SNS에 이 사진을 올린 후 “몬스터 김민재 앞에서 우루과이 공격진은 경기를 즐기지 못했다. 김민재를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그의 수비력을 극찬했다. 

이 사진을 보면서 나는 “BBC 사람들이 소설 ‘삼국지’를 읽었다면 김민재의 별명이 ‘K 괴물’이라고 해도 (내가 보기에) 이런 유치한 괴물이 아니라 장판교 다리를 지키는 장비로 그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장비는 다리 건너 달아난 유비를 격멸하기 위해 조조 군사 5,000명이 추격해오자 겨우 20명 남짓한 수하만 거느린 채 다리 위에 우뚝 서서 “나는 장비다. 나에게 목숨을 걸고 덤빌 수 있는가?”라고 입을 벌려 포효한다. 소설에 따르면 장비에게 다가서던 조조의 장수 하나는 장비의 이 포효, 찌렁찌렁 산천초목을 울리는 고함에 놀란 말에서 굴러떨어져 피를 토하고 죽었다.

나는 김민재의 포효하는 모습을 챔피언스리그나 이탈리아 국내 리그인 세리에A에서 그가 경기할 때마다 본다. 그 포효에서 언제나 장비의 목소리를 듣는다. 내 상상 속에서 그는 장비와는 달리 “나, 대한민국 김민재다. 한번 해보자는 거냐? 덤빌 테면 덤벼라”라고 장비보다 훨씬 더 야수적으로, ‘사나이적’으로 소리친다. 김민재에게 달려드는 상대 팀 공격수는 어김없이 ‘벗겨져’ 나뒹굴거나 공을 탈취당해 닭 쫓던 개가 된 채 그의 포효를 바로 위에서 듣게 된다. 그림 속 수아레스, 누녜스처럼.

김민재는 안타까운 부상으로 포르투갈전에 나서지 못했다. 국가대표팀(국대)의 경기를 삼국지에 빗대보는 나만의 재미도 사라지나 했다. 아니었다. 출전하지 못한 장비 대신 조자룡 마초 등등 삼국지의 기라성이 줄을 이어 등장했다. 조자룡은 조규성이다. 소설에서 조자룡은 유비 관우 장비보다 늦게 등장하지만 의형제인 관우 장비 이상으로 유비를 돕고 공을 세웠다. 칼을 든 조자룡이 피투성이가 된 채 적진을 누비며 숱하게 많은 적군의 베어 눕히는 장면 역시 삼국지 속 전투 장면의 압권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조자룡은 나에게 ‘차가운 도시 미남’으로 다가오는데, 이 상상이 터무니없지 않다면 가나전 중간에 등장해 두 골이나 터뜨리며 그라운드를 뛰어다닌 미남 스트라이커 조규성은 장판교 앞 벌판을 누비던 조자룡이다.    

역전 골을 넣고 웃통을 벗어젖힌 채 하늘을 향해 돌올하게 서서 포효하던 황희찬은 마초다. ‘Macho’가 아니라 ‘馬超’. 마초는 조조를 피해 유비에게 몸을 의탁한 후 기량을 인정받아 관우 장비 조자룡 황충과 함께 유비의 오호장군(다섯 호랑이 장군)으로 뽑힌다. 자존심 강한 그는 몸 또한 날래서 등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피했다. 70미터를 치고 올라가는 손흥민을 따라 질풍처럼 내달려 너무나 아름다운 역전 골을 집어넣은 황희찬의 날램이 마초의 날램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캡틴 손은 관운장이다. 

가나전에서 골을 터뜨린 조규성. (연합)
가나전에서 골을 터뜨린 조규성. (연합)

포르투갈을 꺾은 후 눈물을 터뜨리는 그의 모습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의사가 살을 째고 뼈를 깎는데도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고 바둑을 둔 관우의 의연한 모습과는 사뭇 다르지만 “주장인 제가 부족한 모습을 보였는데도 선수들이 커버해줘서 정말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말할 수 있는 겸손은 진정한 리더만이 보여 줄 수 있는 또 다른 특질-자신감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마초 황희찬에게 찔러 준 마지막 송곳 패스는 기회는 온다는 믿음, 할 수 있다는 자신감, 해내야 한다는 의무감의 복합 결정체이다. 제대로 된 리더치고 이런 생각을 안 가진 사람이 있을까? 

이들만이 아니다. 포르투갈전에서 누구도 더 결연할 수 없는 표정으로 동점 골을 밀어 넣은 김영권, 파울을 당해도 화를 내기 전에 공의 향방 먼저 좇은 이강인, 붕대 투혼 황인범, 우리 진영에서 순식간에 적진으로 파고드는 김진수 등등 대한민국 ‘국대’ 선수 모두가 관운장이요 장비, 조자룡, 마초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이 16강에 오른 것이 기적일까? 기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해줄 말이 몇 개 있다. 

“기적은 현실을 들이받아 구멍을 뚫어 놓은 다음 안으로 파고 들어간다.”-카찬자키스(그리스 작가)

“기적은 조건을 제시할 권리가 있다.”-보르헤스(아르헨티나 작가)

“거름이 성인들보다 더 많은 기적을 행하지요.”-괴테(독일 시인)에게 한 농부가 한 말

세 문장 모두 “기적은 그냥 오지 않는다, 기적은 노력 뒤에 온다”라는 뜻이다.

카찬자키스가 생각한 기적 하나 더. “하느님도 위협을 받아야 기적을 베푸신다!”

자신감과 노력으로 ‘기적’을 만들어낸 ‘대한민국 국대’ 모두가 고맙고 고맙다.  

(포르투갈전이 끝난 후 어떤 이는 “축구는 우리를 통합시키고, 정치는 우리를 분열시킨다”라는 ‘명언’을 남겼더라만, 우리 모두 캡틴 손흥민처럼, 또 국대 선수들처럼 노력에 노력을 기울이고 자신감 충만해지면 후진 정치는 사라지고, 분열도 그 뒤를 따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메타버스인문경영연구원장, 전 한국일보 경제부국장, 전 신문윤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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