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을 지낸 김대중(金大中.85)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1시 43분 서거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8년 2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제15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news/photo/202301/134004_120873_4117.jpg)
1997년 12월 17일 대통령 선거가 진행됐다. 김대중이 근소한 표차로 이회창 후보를 꺾고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보즈워스 대사는 18일 이른 아침 대통령 당선자와의 긴급회담을 요청했다. 길고도 고된선거운동으로 피로에 누적된 김 대통령 당선자는 지팡이에 의지해 대사를 맞았다.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곧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공식적인 축하 메시지가 올 것입니다. 단, 한국이 직면한 위기는 1월말 취임식까지도 진정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백악관이 재무부 상임관료를 즉시 서울로 파견해 대통령 당선자와 주요 경제 전문가들과 논의를 거쳐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한 계획을 숙의하게 될 것입니다.” (보즈워스)
김 대통령 당선자는 감사의 표시와 함께 “방문을 손꼽아 기다리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20년 이상 대통령을 준비하다 드디어 당선이 됐^는데, 나라가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어 당선된 것이 정말 영광인지 잘 모르겠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12월 20일, 미 재무부 국제업무팀의 데이빗 립튼 차관이 서울에 도착했다. 보즈워스 대사와 립튼 차관은 김대중 당선자의 당 본부가 있는 건물의 한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이전 정부 관료들 수십명과 오랜 정치적 지지자들이 모여들어 정작 김대중 당선자는 기다랄 회의 테이블 옆쪽으로 밀려나 앉아있었다.
모인 사람들 중 핵심 인물은 유정구 박사로, 김 대통령 당선자의 선거 운동에 합류하기 전 럿거스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던 경력이 있었다.
립튼 차관은 “미국이 한국을 도와주고 싶지만 해결책까지 제시해 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금융 안정화는 미국의 노력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람들이 이끌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혹시라도 안정화 프로그램에 대해 IMF나 미국이 한국 사람들에게 내준 숙제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면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전직 대통령들을 초청한 가운데 1998년 2월 열린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연합뉴스]](/news/photo/202301/134004_120876_4328.jpg)
김대중 당선자는 이 사태의 심각성과 다급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만약 서울과 워싱턴, 그리고 IMF, 그밖의 국제사회가 한국 금융을 살려내지 못한다면, 한국은 외채를 거의 상환하지 못하게 상황이었다. 한국은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이며 국제 금융시스템마저 큰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이후 며칠동안 새로운 한국 경제팀과 IMF가 미국과 긴밀하게 협조해 금융 안정화 프로그램 및 경제개혁 프로그램을 개정했다.
여기에는 미국 재무부의 환율안정기금에서 인출될 수십억 달러 및 IMF,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의 대규모 신용이 포함됐다. 또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지휘 하에 세계 은행의 채권자들이 다함께 단기 대출의 일정을 재조정하는데 합의했다.
미국 언론 일각에서는 미국이 한국을 꼭 지원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일었다.
도미노 이론에 따라 한국의 금융 위기가 다른 아시아국으로 퍼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학자들은 한국에 지원한 550억달러를 원조가 필요한 다른 나라를 위해 쓴다면 더 유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1998년 2월 25일. 김대중 대통령이 대한민국 15대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했다.
보즈워스 대사는 훗날 "텅 빈 곳간을 맡은 김대중은 강력한 기업 구조조정 정책과 리더십으로 외환 위기를 극복해냈다"며 "한국경제가 소수의 재벌 기업이나 정부 중심의 산업 정책에 대한 의존도가 훨씬 낮아지고 궁극적으로 회복력과 유연성을 갖추게 됐다"고 평가했다.
[특별취재팀= 최석진, 유 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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