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윤 대통령 "지배구조 선진화" 당부하더니 KAI엔 왜 침묵하나
[취재파일] 윤 대통령 "지배구조 선진화" 당부하더니 KAI엔 왜 침묵하나
  • 최종원 기자
  • 승인 2023.02.15 15:57
  • 수정 2023.02.1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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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주인없는 기업 지배구조 선진화해야"
KT·포스코 CEO 연임 저격에 국민연금도 가세
대선캠프 출신이 사장 내정되는 KAI엔 침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주인 없는 기업의 지배구조가 선진화돼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정부기관이 대주주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대해선 함구하는 모양새다. KT와 포스코 등 기업 대표이사(CEO)의 연임까지 위협받는 상황임에도 카이는 별다른 외압이 포착되지 않는다. 카이의 경우 국민연금의 입김도 약한 지배구조라 정권 과도기마다 정치적 외풍이 세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15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달 청와대 영빈관에서 개최한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KT, 포스코, 금융지주 등 소유권이 분산된 주인없는 기업의 지배구조가 선진화될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투명하고 공정한 지배구조 정착을 위해 우리 사회가 보다 깊이있게 고민해볼 것을 격려했다.

윤 대통령은 또 "과거 정부 투자 기업 내지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되면서 소유가 분산된 기업들은 소위 '스튜어드십'이라는 것이 작동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가 기업의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제도로 국민연금이 2018년 도입했다. 국민연금은 적극적 주주활동을 결의하며 특정 CEO 선임 등으로 기업가치가 훼손되면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지난 2020년 주요 금융지주 정기 주주총회에서 은행장·사내이사(회장)·사외이사 선임 등 의사회 의결에 반대표를 던진 바 있다. 주식보유 목적도 기존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바꿨다. 단순투자는 주주총회에 참석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기본 주주권이지만 일반투자는 임원의 선임과 해임, 정관변경, 보수 산정, 배당 확대, 임원 위법행위에 대한 해임 청구권 행사 등 경영에 어느 정도 개입할 수 있다.

지난해 말에는 KT 대표이사 공모·경선 절차를 문제삼으며 구현모 KT 대표이사의 연임에도 반대 의사를 밝혔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에 대해서도 내년 3월까지 잔여 임기를 못 채우거나 국민연금이 연임에 반대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구 CEO와 최 회장은 지난달 윤 대통령이 참석한 경제계 신년회 행사에 나란히 불참하기도 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주관한 해당 행사의 단골 멤버가 불참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윤석열&nbsp;대통령이 24일 오전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열린 2022&nbsp;방산수출 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연합]<br>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4일 오전 경남 사천시 카이 본사에서 열린 2022 방산수출 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이는 정권교체기마다 대표이사가 중도하차한 흑역사를 연상케 한다는 우려가 많다. KT는 황창규 전 회장을 제외하면 연임 임기를 끝마친 사례가 없다. 이석채 전 회장은 2연임에 성공했지만 임기 도중 중도 사임했고, 남중수 전 회장은 내부 출신으로 연임에 성공했음에도 중도 사임하며 임기를 이어나가지 못했다. 포스코도 황경로·정명식 전 회장 등이 임기를 완료하지 못했고 유상부, 이구택, 정준양, 권오준 전 회장 등이 중도 사퇴했다.

카이도 정치적 외압이 있지만 KT와 포스코보다 정도가 훨씬 크다. 카이의 최대 주주는 한국수출입은행(26.41%)이며 국민연금(10.33%)이 2대 주주다. 스튜어드십을 강화하는 국민연금이 아닌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이 1대 주주로 있는 것이다. 이는 5년마다 정권이 바뀌는 '제왕적 대통령제' 국가에서 비전문가로 불리는 소위 '낙하산 인사'가 내정될 가능성이 클 수 밖에 없다. 

낙하산 인사의 경우 문재인 정부에서 민정수석을 지냈던 김조원 전 사장이 대표적이다. 항공우주와 방산 전문가가 아닌 행정고시 출신인 김 전 사장은 문 정부 초기인 2017년 사장으로 내정돼 '코드 인사' 논란이 크게 일었다. 전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강구영 현 사장은 공군 조종사 출신으로 합참 군사지원본부장(중장)을 지냈지만 전투기 개발과 수출에는 비전문가란 평이 나왔다.

강 사장은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군인 모임인 '국민과 함께하는 국방포럼'에서 공동 운영위원장을 맡았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 논란이 일었던 작년 3월에는 "용산 이전에 따른 안보 공백은 없다"는 내용의 예비역 장성 입장문을 작성하는 데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FA-50 48대 폴란드 수출을 이뤄낸 안현호 전 사장과 KF-21 개발 및 전투기 수출 책임자 등 카이 내부 인사들은 경쟁에서 밀려났다.

순수 국내 기술로 설계·제작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ll)가 지난해 10월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순수 국내 기술로 설계·제작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ll)가 2021년 10월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강 사장은 작년 9월 취임한 지 4일 만에 고위 임원 5명에게 해임을 통보하며 논란이 일었다. 이 과정에서 KF-21의 설계, 양산, 시험을 총괄한 류광수 부사장과 안 전 사장의 라인으로 분류되는 인물들이 해고됐다. 윤 대통령이 공약으로 정치적 의도에 따라 과학기술정책을 흔드는 불상사를 차단하고,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연구환경을 조성하겠다고 약속한 것과는 다른 대목이다.

정치적 외압 논란에도 국민연금은 침묵하고 있다. 서원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작년 12월 "KT 대표이사 최종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경선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했다"며 목소리를 높인 것과 대비된다. 국민연금도 윤 대통령 당선 이후 김용진 전 이사장이 잔여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임한 상황에서 스튜어드십 코드의 의미가 정녕 무엇인지 되짚게 된다.

정부와 국민연금은 KT와 포스코에만 압박을 할 것이 아니라 카이에도 불필요한 간섭을 지양하고 정권의 치적을 위한 기술성과 독촉을 멈춰야 한다. 카이를 국내 1등 기업, 세계에서 인정받는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강 사장의 포부와도 맞지 않는다. '돈이 되지 않는 연구'에도 지원을 단행해 선진국들이 패권을 쥐려고 하는 항공우주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2021년 10월 순수 국산 기술로 제작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II)'의 성공적인 발사를 계기로 민간 주도 '뉴 스페이스' 시대가 개막했다. 누리호 전체 사업비의 80%인 1조5000억원이 국내 300여곳의 참여 기업에 쓰였고 카이도 대표적으로 참여했다. 올해 상반기 3차 발사가 예정된 가운데 연구인력이 천대받지 않고 이공계 인력이 제대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기대해본다.

[위키리크스한국=최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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