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14일 치러지는 튀르키예 대선의 진정한 승자는 푸틴?
[월드 프리즘] 14일 치러지는 튀르키예 대선의 진정한 승자는 푸틴?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3.05.13 06:39
  • 수정 2023.05.13 0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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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왼쪽)과 러시아 푸틴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현재 튀르키예를 이끌고 있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2003년 총리 취임 후 20년 넘게 장기집권하고 있다.

오는 14일 치러지는 튀르키예 대통령 선거를 통해 재선에 도전하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6개 야당이 내세운 단일 후보인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CHP) 대표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면서 집권 기간 중 최대의 고비를 맞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튀르키예가 수년째 극심한 경제난을 겪는 가운데 지지층 결집을 위한 각종 선심성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반면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에르도안 정권의 실정을 비판하며 대대적인 개혁을 다짐하고 있다. 14일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28일 결선투표에서 최종 당선자가 가려지게 된다.

CNN방송은 11일(현지 시각) 튀르키예 대선과 관련된 칼럼을 내보냈다. 칼럼을 쓴 엘미라 바이라슬리(Elmira Bayrasli)는 ‘바드 세계화 및 국제문제 프로그램(Bard Globalization and International Affairs Program)’의 국장이자 외교 정책을 주제로 하는 주간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Foreign Policy Interrupted’의 CEO다. 다음은 이 칼럼의 전문이다.

오는 14일 치러지는 튀르키예의 대통령 선거는 최장기 집권자인 현(現)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의 20년 연승가도에 종지부를 안겨줄지도 모른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2003년 처음으로 총리에 오른 뒤 2014년부터는 대통령으로 장기집권의 길을 걷고 있는 에르도안은 쉽지 않은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패배 가능성 또한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브뤼셀과 워싱턴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지 않고 있다. 한 때 믿음직스러웠던 동맹국이자 파트너였던 튀르키예가 이제 훼방꾼 노릇은 그만하고 다시 서방에 합류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1990년대에 튀르키예 최대 도시 이스탄불의 시장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독실한 무슬림 에르도안은 그의 통치 초기에는 서방 지향적 정책과 EU(유럽연합) 가입 야망을 공공연히 드러냈었다.

하지만 올해 69세의 에르도안은 지난 10년 동안에는 미국과 유럽에 대해 더 호전적이고 불미스러운 어조를 구사해왔을 뿐만 아니라 더 호전적이고 불미스러운 나라들을 친구로 받아들였다.

에르도안의 친구 목록 맨 위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있다.

푸틴은 2016년 7월 15일 밤에 결정적으로 에르도안의 환심을 샀다. 그날 에르도안 축출을 노린 쿠데타가 일어났는데, 러시아 대통령은 곧바로 에르도안에 전화를 걸어 러시아의 지지를 약속했던 것이다.

이에 반해 당시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쿠데타가 발발한 지 4일 뒤에서야 튀르키예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국의 이런 태도는 에르도안 정부가 오랫동안 제기해온 음모론을 입증하는 구실 노릇을 했다. 즉, 쿠데타 주모자로 의심되는 이슬람 지도자 페툴라 귈렌(Fetullah Gulen)의 튀르키예 인도를 거부한 미국이 튀르키예에서 벌어진 “추악한 음모”에 책임이 있다는 음모론을 뒷받침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말이다. 이를 계기로 모스크바와 앙카라 사이는 극적으로 가까워지게 되었다.

이듬해에 튀르키예 정부는 러시아산 대공 방어 시스템인 S-400을 구입한다고 발표하면서 NATO 회원국들의 울분을 샀다.

또, 2022년 2월 러시아의 전면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을 앞두고 에르도안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나 비행 금지 조치를 거부했다. 여기에 지난 몇 달 동안 앙카라는 스톡홀름 당국이 튀르키예에 위협이 되는 쿠르드족 분리주의 무장세력을 지원한다고 주장하면서 스웨덴의 나토(NATO) 가입에 반대했다.

튀르키예가 그간 부린 몽니가 서방을 화나게 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면, 지난 2022년 말 에르도안이 에게해 영유권 등을 놓고 그리스에 가한 위협은 어떤가? 

튀르키예 대선의 야당 단일 후보인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CHP) 대표(왼쪽) [사진 = 연합뉴스]
튀르키예 대선의 야당 단일 후보인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CHP) 대표(왼쪽) [사진 = 연합뉴스]

그러다가 지난 2월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거의 60,000명이 사망하고 백만 명이 넘는 이재민을 낳은 참혹한 지진이 발생했다. 대지진이라는 재앙을 미숙하게 대처하고, 건설업자들이 건설 규정을 피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는 폭로로 인해 에르도안의 전쟁 서사(敍事)는 수그러들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튀르키예의 친 동방 외교 노선은 바뀌지 않았다. 이번 대선에서 에르도안이 이기든 지든 앙카라가 모스크바 품에서 뛰쳐나와 서방에 안길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튀르키예는 동쪽과 멀어질 여력이 없다. 경제는 인플레이션에 허덕이고 있으며, 튀르키예 리라화는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튀르키예 경제의 성장이 멈춰버린 것이다. 이 나라는 수출 때문에 중동, 코카서스(Caucasus), 유럽과 무역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관광으로 벌어들이는 달러와 러시아로부터 수입되는 에너지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모스크바는 재정난에 처한 튀르키예에 외상으로 천연가스를 공급하고 있다. 만일 에르도안이 대선에서 패한다면 푸틴은 새 정부를 상대로 여차하면 외상을 갚으라고 독촉할 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관계하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로 계속 남아있으라는 압력을 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다.

한편, 에르도안은 패배하더라도 튀르키예 정계에서 순순히 물러나지는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는 그가 평화적인 정권 이양에 협조하느냐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는 야당 정치인으로 추락하겠지만, 극도로 양극화된 튀르키예에서 야당 지도자는 만만치 않은 위세를 지니고 있다.

14일은 튀르키예 사람들이 대통령 외에도 국회의원들을 뽑는 날이기도 하다. AKP라는 이니셜로도 알려진 에르도안의 ‘정의개발당’은 과반수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이를 새 정부를 공격하는 발판으로 삼을 것이다.

에르도안은 정치적 공세를 펼칠 것이다. 그의 인기는 튀르키예 민족주의에 열을 올리고, 그가 국가의 “적들”이라고 묘사한 PKK(쿠르드 노동자당), 서방, 이스라엘을 공격할 때마다 치솟는다.

그리고 미디어에 대한 에르도안의 광범위한 장악력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20년의 장기집권 기간 동안 그는 언론을 탄압해 자신의 확성기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았다. 튀르키예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인은 감옥에 갈 각오를 해야 한다. 언론 매체는 대부분 에르도안 측근의 통제하에 운영된다. 물론, 에르도안은 과거 튀르키예의 언론 탄압을 부인한 바가 있다.

에르도안은 또한 튀르키예의 기관들을 자신의 의지대로 조종해왔다. 여기에는 외무부도 포함된다. ‘민주주의 수호재단(FDD:Foundation for Defence of Democracies)’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의 저자 시난 시디는 에르도안 정부가 2009년부터 “AKP당과 에르도안에 대한 충성도를 기준으로 외교관들을 임명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공정성과 전문성이 크게 결여된 족벌주의, 정실주의, 아첨”이 판을 치게 되었다. (에르도안 정부는 이러한 비난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서방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우선 앙카라 당국이 서방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허용해야 한다. 워싱턴과 브뤼셀은 튀르키예가 실질적으로나 비유적으로 교차로에 위치한 나라임을 인정해야 한다. 전적으로 서양에도 동양에도 속하지 않는 이 나라는 까다롭지만 유용한 파트너가 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튀르키예가 현재는 모스크바와 교류를 하고 있지만, NATO나 EU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을 수는 없다. 튀르키예의 성공은 경제, 즉 수출과 외국인 투자를 통한 경제 성장에 달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군사용 드론을 거리낌 없이 우크라이나에 판매한 것이다.

지난 여름 튀르키예는 우크라이나가 곡물을 수출할 수 있도록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거래를 성공적으로 중개한 바가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오랫동안 튀르키예가 지역의 핵심 플레이어 역할을 할 수 있기를 희망했으며, 전쟁의 양 당사자들을 상대로 평화 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해 애를 썼다. 서방에 완전히 동조하지 않으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흑해상의 유일한 선적 항국의 문을 지키고 있는, 껄끄러운 나라 튀르키예는 양국 모두에 신뢰할 수 있는 중재자가 되고 있다.

서방은 바로 이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지도자가 누가 되든 투르크인들이 자처할 수 밖에 없는 역할인 것이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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