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대학 사교클럽의 가혹한 신고식 후 사망한 흑인 학생 사건의 판결로 시끄러운 벨기에
[월드 프리즘] 대학 사교클럽의 가혹한 신고식 후 사망한 흑인 학생 사건의 판결로 시끄러운 벨기에
  • 유 진 기자
  • 승인 2023.06.04 06:44
  • 수정 2023.06.04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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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뱅가톨릭대학(KU Leuven) 벽에 그려진 산다 디아의 벽화 [사진 = BBC 캡처]
루뱅가톨릭대학(KU Leuven) 벽에 그려진 산다 디아의 벽화 [사진 = BBC 캡처]

한국에서 몇 년 전 인기를 끌던 ‘비정상회담’이라는 프로그램에서도 거론될 정도로 벨기에나 캐나다의 신고식 문화는 혹독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지난 2018년 벨기에 플랑드르주의 네덜란드어권 도시 루뱅은 한 흑인 학생이 바로 이러한 신고식을 치르다 사망하자 충격에 휩싸였었다. BBC는 3일(현지 시각) 이 사건 가해자들에 대한 판결이 내려진 뒤 벨기에가 신고식 문화와 인종차별 문제를 놓고 다시 논란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법원 서류에 따르면, 흑인 대학생 산다 디아(20)는 벨기에 최고 명문 대학 중 한 곳의 엘리트 사교클럽 신고식에서 많은 양의 어유(fish oil)와 술을 마시고, 살아있는 금붕어를 삼키고, 야외 얼음 구덩이에 서 있어야 했다.

벨기에의 유명 대학 엘리트 학생 사교클럽인 ‘라이즈곰(Reuzegom)’에 입회하려는 신입회원은 육체적, 정서적 고통이 수반되는 신입생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벨기에 사회의 엘리트층에는 ‘라이즈곰’ 출신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다.

디아는 이 신고식 과정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가 이틀 후 병원에서 숨졌다.

검시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다량의 어유 섭취로 인한 독성 염분 수치 증가가 사망의 주요 원인이었다.

이 사건 이후 4년이 흐르는 동안 18명의 가해 학생들이 디아의 사망과 굴욕적인 처사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고, 최대 30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과 각각 400유로(미화 43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가해자들은 또 디아의 가족과 신고식의 또 다른 피해자 두 명에게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주목할 점은 법원이 지금은 해산된 ‘라이즈곰’ 신고식의 가해자들이 디아를 죽게 할 의도로 유해 물질을 일부러 섭취하도록 하지는 않았다고 보았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NS를 중심으로 디아의 죽음에는 인종과 계급 문제가 배경으로 깔려있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즉, 디아의 신고식 때 그의 피부색과 출신 계층이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젊은층을 중심으로 계속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는 가운데 벨기에 언론은 이 사건에서 불거진 ‘라이즈곰’ 사교클럽 인종차별 문제를 거론하고 있는데, 디아는 인종차별적 비방을 들어야 했고, 때로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지목돼 다른 ‘라이즈곰’ 회원들을 대신해서 청소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나아가 다른 언론들은 일부 ‘라이즈곰’ 회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들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면서 벨기에 사회의 특권 의식과 불평등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배경 속에 일부 벨기에인들은 이번 판결에 분개하며 양형이 지나치게 관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틱톡(TikTok)에서는 해시태그 ‘#justiceforsanda’의 조회수가 650만 뷰를 넘어섰다.

그리고 디아가 입학한 대학 도시인 앤트워프, 브뤼셀, 겐트, 루벤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여기에 또 다른 시위 하나가 일요일 브뤼셀에서 열리기로 되어있다.

브뤼셀 시위를 공동 주최하는 대학생 엘리자 플레시(22)는 BBC에 “벨기에 사법 제도에 모두가 분노하고 실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디아 사건 판결의 양형을 거론하며 “벨기에에서는 티켓 없이 버스만 타도 이번 가해자들보다 벌과금이 더 무겁게 부과됩니다.”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법원 판결이 내려진 뒤 가해 학생 측 변호인 중 한 명인 존 마에즈는 선고가 “균형 잡히고 합리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시위를 주최하고 있는 대학생 진 키텐지(25)는 디아의 죽음에는 인종 문제가 “분명하게”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키텐지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벨기에 대학에서는 신입생들이 사교클럽 신고식에서 “굴욕”을 당하는 것이 일반적 관행이지만, 일부는 다른 학생들보다 더 극단적인 대우를 받는다고 들려주었다.

지난달 27일 디아의 판결이 진행되는 앤트워프 법정 앞에서 침국 시위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 [사진 = BBC 캡처]
지난달 27일 디아의 판결이 진행되는 앤트워프 법정 앞에서 침국 시위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 [사진 = BBC 캡처]

“모든 신입생들이 피부색과 상관없이 굴욕을 당하지만, 일부는 다른 사람들은 듣지 않는 모욕적인 말을 듣기도 합니다.”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데피당(DéFI party)의 청년 지부 회장인 키텐지는 이렇게 주장했다.

“정의는 벨기에의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키텐지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18명의 가해 학생들이 재판을 받는 동안 피고 측의 한 변호인은 디아의 아버지가 왜 그의 아들이 집단 괴롭힘으로 죽어야 했는지 질문을 하자 네덜란드 신문인 ‘NRC 한델스블라드(NRC Handelsblad)’ 기사를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사건은 인종차별과는 상관없으며, 오로지 원고의 체격과 키, 몸무게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여기에 존 마에즈 변호사도 이번 판결은 최근 몇 년 간 이어진 “전쟁 같은 수사(修辭)들”을 뛰어넘은 판결이라며 법원을 칭송했다.

한편, 디아 가족 중 일부는 이번 판결에 대한 “복잡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디아의 형 세이두 데 벨은 이번주 초 플랑드르 TV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처음부터 원한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은 아니며, 가해자들이 감옥에 가는 것도 원치 않는다고 밝혔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동생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의문 중 하나는 누가 디아에게 어유를 마시라고 강요했느냐는 것이다. 가해 학생들은 지금까지 이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데 벨은 “18명의 피고인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데도 사망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으니 분통 터질 노릇입니다.”라고 말했다.

디아의 아버지인 아우스만 디아 측 변호사인 스벤 메어리는 법원 판결 후 가족이 사건의 전모에 대해 알 수 없다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디아 가족에게 항소를 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학생 사교클럽인 ‘라이즈곰’은 디아의 사망 이후 해체되었다.

이 사건의 무대가 되었던 루뱅가톨릭대학(KU Leuven) 측은 2021년에도 여전히 학생 신분을 유지하고 있던 7명의 가해 학생들에게 제재가 내려졌다고 밝혔다. 대학 측은 가해 학생들에게 퇴교 처분이나 평생 이 대학에 다시 입학할 수 없도록 하는 조치가 내려졌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BBC에 보낸 성명에서 “어떤 제재나 처벌도 디아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씻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라이즈곰’ 신고식에서 크나큰 비극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겁니다.”라고 밝혔다.

“대학 공동체로서 우리는 디아에게 일어난 일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위키리크스한국 = 유 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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