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2001년 9·11테러 발생 후 전쟁기지로 사용하기 위해 파키스탄에 대한 제재를 풀었다. 북한 또한 국제사회의 제재 없이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묵인 받는 이른바 ‘파키스탄 모델’ 달성을 위한 본격적인 수순에 돌입한 셈이다.
하지만 파키스탄은 북한과 결정적 차이점이 있다. 북한은 85년 NPT에 가입했지만 파키스탄은 NPT에 가입한 적이 없다. 70년 발효된 NPT는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던 5개국(미·중·러·영·프)을 제외한 국가는 핵무기를 갖지 못하도록 했다.
북한이 NPT에 가입했던 이유는 전력난 해소를 위해 소련으로부터 원전을 들여오기 위해서였다.
외교부 당국자는 “파키스탄은 처음부터 링 밖에서 독자 노선을 걸었지만 북한은 NPT에 가입해 핵물질을 제공받는 혜택을 누린 뒤 몰래 핵무기를 개발했기 때문에 상황이 전혀 다르다”고 지적했다.
물론 북한은 92년과 2003년 두 차례에 걸쳐 NPT 탈퇴를 선언했지만 NPT가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은 제재받지 않고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은 뒤 미국과의 군축협상을 통해 경제적 이득 등을 취하겠다는 생각이겠지만 북한은 핵무기 사용을 공언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파키스탄 같은 묵인은 받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국제사회의 고강도 경제 제재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미사일’에 정권의 사활을 거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첫째 ‘정권 유지’를 꼽는다. 체제 붕괴 위험을 우려하는 북한 정권으로서는 생존 문제와 직결된 ‘대외 안보 이슈’가 주민 결속을 위한 확실한 수단이 될 수 있다.
2011년 김정일이 사망하기 전 김정은에게 ‘핵·미사일만이 정권 유지를 위한 유일한 해답’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는 미국과의 협상에 필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간 이란 핵문제에 집중하면서 북한 문제에 있어서는 ‘전략적 인내 정책’을 고수했다. 일각에서는 ‘인내’가 아니라 ‘방기(放棄)’였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고 선언했고, 일부 강경파들은 북한의 핵탄두 소형화 및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의 완성이 임박한 상황에서 선제타격의 필요성까지 제기한다. 미국이 북한 핵·미사일을 실질적인 위협으로 느낀다는 얘기다.
셋째는 국제사회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서다.
북한은 NPT(핵확산방지조약)를 탈퇴하면서 핵무기 개발 의지를 가시화했다. 핵실험을 5차례나 실시하면서 핵무기 보유국이라는 점을 기정사실화하려 한다. 그런데 핵을 운송할 가장 확실한 수단이 바로 미사일이다.
특히 SLBM(Submarine Launched Ballistic Missile·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은 잠수함의 특성상 탐지가 어렵고 방어체계 대응시간이 짧아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공격무기로 꼽힌다. 북한은 핵탄두 소형화와 함께 다양한 미사일 기술개발을 통해 핵무기 위협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유했다는 점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넷째는 미사일의 경제적 가치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에 미사일은 외화 획득이 가능한 자산이다. 현재 탄도미사일은 세계 약 39개국 이상이 비대칭 전략의 일환으로 운용하고 있다. 이들 미사일의 상당 부분이 중국, 러시아, 북한을 통해 공급됐다.
특히 북한은 1980년대 중반부터 탄도미사일 확산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87년부터 2009년까지 수출된 1190여기의 탄도미사일 중 40% 이상이 북한산(産)이다. 북한은 이란, 파키스탄, 시리아, 이라크 등 여러 국가에 탄도미사일을 수백 기 이상 판매했거나 이들 나라와 ‘미사일 공동개발’ 형식으로 미사일 기술을 수출해왔다.
‘스커드 미사일’ 계열에 해당하는 ‘북한 화성 6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미사일계의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이처럼 북한은 미사일 수출을 통해 축적한 경제적 이익을 토대로 2009년 이후 미국을 비롯한 유엔의 강력한 대북제재에도 흔들림 없이 버티고 있다. 김정일 사망 이전인 2011년 당시 3000억 원 규모였던 미사일 관련 매출이 2012년 김정은 집권 이후 4000억 원 규모로 늘어났다. 북한 탄도미사일은 정치·군사적 핵심 방어체계이자 경제적 주요 외화 수입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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