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41) 미국 대사의 오판... 전두환 신군부에 '한국 빼고 북한과 직접 양자 대화' 협박카드 꺼냈다가 접은 이유는?
청와대-백악관 X파일(41) 미국 대사의 오판... 전두환 신군부에 '한국 빼고 북한과 직접 양자 대화' 협박카드 꺼냈다가 접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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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1.13 05:30
  • 수정 2019.02.04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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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백악관 x파일
청와대 백악관 x파일

미국 정부는 12.12 쿠데타에 이은 1980년 5월 비상계엄 확대선포, 잇따른 광주의 비극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미국 정부로서 최선의 조치를 취했다고 강조해왔다.


인권과 민권 문제는 제5공화국 내내 미국과 전두환 정부 사이에 중요한 분쟁 거리였지만, 미국은 주권국가인 한국에서 일어나는 사태에 대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란 극히 적을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해왔다.

미국 정부는 여러 제약 가운데도 어려운 시기에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그리고 민간에 대한 군의 행동을 억제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주장과 달리 비밀문서에서 해제되고 있는 당시 정부 문서들은 미국이 인권보다는 체제 옹호에 더 기울어져 있었지 않았느냐는 의혹을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신군부 “군 발포 전 시민들 무장” 조작, 미국에 허위정보 제공

보안사는 80년 5월 21일 오후 공수부대의 광주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를 자위권 행사로 정당화하려고, 전남 나주경찰서 반남지서 총기 탈취 시간을 이날 오후에서 오전으로 조작했다.

보안 해제된 미국무부 문서에 따르면 신군부는 미국 정부·군대에 왜곡한 5·18 상황 정보를 제공해 지지를 끌어냈다. 신군부가 조작한 대표적인 사례는 폭도들이 전투경찰에게 무차별 사격하고 군중을 향해 쏠 기관총을 설치했다는 내용이다. 또 폭도들이 지하의 공산주의자에 의해 조종되고 군중이 교도소를 공격하는 등 실제 상황과는 전혀 다른 정보를 미국 측에 건넸다.

또 군중이 쇠파이프·몽둥이를 들고 각 집을 돌며 시위에 동참하지 않으면 집을 불 질러버리겠다고 위협하고 폭도가 초등학생들까지 동원하기 위해 강제로 차에 태워 길거리로 끌고 나왔다는 내용도 있다.

특히 ‘폭도들 수백명이 무등산 기슭으로 도망가 항전을 준비하고 있다’, ‘도청 앞 광장에서 폭도가 인민재판을 열어 사람들을 처형하고 있다’ 등 신군부가 퍼뜨린 소문이 마치 광주시위가 공산주의자 또는 북한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는 인식을 미국에 심어주려 했다.

신군부가 5·18 당시 시민들의 자발적 시위 참여를 공산주의자들의 방식으로 강제동원이 이루어졌다고 왜곡해 미국에 ‘광주 시위를 즉각 소탕해야 한다’는 논리를 주지시킨 것이다.

이같은 왜곡된 상황 판단에 따라 미국이 신군부 집단발포도 묵인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미국 국방정보국이 작성한 1980년 5월 21일 ‘광주상황’이라는 제목의 문서에는 ‘공수여단은 그들의 생명이 위태롭게 여겨지는 상황이면 발포할 수 있는 권한을 승인받았음’이라고 적혀 있다. 이날 전남도청에서는 계엄군이 집회 중인 시민들을 향해 집단발포해 수십명이 숨졌다.

미국은 당시 5·18이 자칫 한국의 국내 안보와 미국의 국가안보 이익에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신군부를 지지했고, 이 사태를 진압하지 않으면 전국으로 확산하고, 결국 한국정부의 권력변화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주한 미국 대사의 오판 '전두환은 더 이상 무력 사용 안할 듯'

주한미국대사관의 미국무성 보고 문건을 보면, 미국 윌리엄 글라이스틴 대사는 1980년 5월 22일 한국 상황을 보고하면서 “한국 육군 지도자들의 사태 제지 의지가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며 “탄압보다는 봉쇄하는 것이 현재의 전략이며, 새로운 내각에서 내무부장관과 국방부장관 유임으로 볼 때 이 상황이 계속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Desire for restraint at present seems sincere on part of ROK army leaders. Containment rather than suppression is the strategy for the present, and the retention of the home and Defense ministers in the new cabinet suggests it may continue)

또 “광주의 군부대에 내려진 제한 발포 명령은 이러한 느낌을 확고하게 해준다”며 “(군부가) 북쪽으로 확산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염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Limited firing order given to troops in Kwangju strengthens this impression. Concern with northward movement is apparently equally genuine)

여기서 말하는 ‘제한 발포 명령’은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 이후 군 병력이 철수하는 과정에서 “총격을 받을 경우에만 하반신을 겨냥해 발포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것”을 의미한다.

이미 5월 21일 계엄군의 무력 진압이 벌어진 상황이었음에도 글라이스틴 대사는 군 병력 철수 이후론 전두환 군부가 무력을 이용한 진압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으로 보인다.

군부 대응 방침을 ‘탄압보다 봉쇄 전략’으로 잘못 평가하며 전체적인 상황을 낙관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5월 26일 최광수 청와대 비서실장과의 만남(MAY 26 MEETING WITH BLUE HOUSE SYG CHOI)’이란 제목의 문건에는 “우리는 한국군이 광주를 탈환하기 위한 행동을 오늘밤 자정쯤 실행할지 모른다는 신뢰할만한 정보를 얻었다”고 적혀 있다.

(Note: Subsequent to the conversation recorded below, we received reliable indications that a military operation to re-occupy Kwangju may begin around midnight tonight)

글라이스틴 대사가 5월 25일 전화 통화 후 26일 아침에 촤광수 비서실장을 만난 것에 대한 내용으로, 미국 정부가 최광수 비서실장으로부터 사전에 5월 27일 ‘전남도청 진압’ 작전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문건은 “최 비서실장은 광주의 상황 악화와 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을 설명한 뒤에”를 제외하곤 모든 내용이 삭제돼 있다.

도청 진압 작전에 대한 미국의 입장 등 민감한 대화가 오갔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계엄군의 재진입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여러 증언이 있었던 바, 삭제된 내용도 이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미국은 인권과 광주 진압 사이에 자국 이익을 택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미국을 이상과 현실 사이의 양자택일로 내몬 사건이었고, 결국 미국의 선택은 자국의 이익이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계엄군이 광주에서 일시 퇴각한 1980년 5월 25~26일 주한미군사령관 존 위컴은 주영복 국방장관·이희성 계엄사령관 등 한국군 간부들을 만나 ‘한국의 광주시민들에 대한 군대 사용을 지지하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라는 KBS의 보도에 항의했다.

정확하지 않은 미국 입장을 누가 언론에 흘렸느냐는 취지였다. 이에 유병현 합참의장은 “이 지역에서만 당국의 허가 없이 딱 한 차례 방송됐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가 본국에 보고한 5월 26일 전문에 등장하는 이 내용은 미국이 광주 문제에서 한국군·광주시민 어느쪽 편도 들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애썼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로부터 나흘 전 워싱턴에서 내려진 정책결정을 보면 이 보도가 꼭 오보는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에드먼드 머스키 국무장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안보보좌관, 도널드 그레그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관, 데이비드 존스 합참의장 등이 참석한 5월 22일 회의에서 미국은 한국군대가 광주 진압에 집중할 수 있도록 후방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의 최우선 순위가 “광주의 질서회복”으로 정리됨에 따라 “질서회복을 위해 필요할 경우 (미국의) 무력사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기로” 했다. “일단 질서가 회복되면 한국 군부를 압박해 정치적 자유의 신장을 허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지만, 당면 과제는 시위대 진압이었다.

브레진스키는 “단기적으로는 (한국 군부를) 지원하고, 장기적으로 정치상황 개선을 압박하려는” 전략이라고 표현했다.

이에 따라 미 국방부는 폭력사태가 광주 밖으로 확산되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대책을 마련했다.

국내 치안을 위한 한국군 재배치가 한·미 연합전력의 대북태세에 지장을 줄 경우에 대비한 계획도 세웠다. 오키나와기지의 조기공중경보기(AWACS)를 한반도에 파견한 데 이어 필리핀 해상의 항공모함 코랄시(Coral Sea)를 동해로 이동하기로 했다.

항모 파견 소식에 일부 광주시민들이 “미국이 전두환을 혼내주러 온다”고 반겼던 것은 순진한 기대였다. 오히려 미국의 이 같은 결정은 광주시민의 희생을 더 키우는 요인이 됐다. 한국군은 작전통제권을 쥔 동맹국의 이런 결정을 무자비한 진압에 동의한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5월 광주를 겪은 뒤 분명해진 것은 미국이 전두환을 통제하기 더 어려워졌다는 사실이다. 주한미군사령관 본국 소환, 안보협의회의(SCM) 같은 양자 관련 행사 연기 등 한국 압박 카드들이 동원됐지만 녹록지 않았다.

머스키 국무장관은 7월 2일 글라이스틴 대사에게 ‘전두환을 만나 전두환 일당이 우리의 확고한 안보 공약을 한국의 장기적인 안정을 해치는 방식으로 오용하고 있다는 점을 전달하라’고 지시하는가 하면, ‘김대중을 만나라’는 훈령을 보내는 등 부산을 떨었지만 만시지탄이었다.

심지어 미국은 전두환을 압박하기 위해 한국을 빼고 북한과 직접 양자대화를 할 수도 있다는 카드도 검토했다가 접었다(1980년 6월 12일 전문). “대북 접근법을 바꾼다고 해서 한국 군부가 겁을 먹고 민주주의로 나아가지는 않을 것이고, 군부 내의 편집증을 유발해 정치 자유화 방향으로 이끌려는 미국의 능력을 제약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인권보다 자국 이익을 우선시 했던 미국의 묘한 입장 덕택에 광주항쟁을 진압한 전두환은 정권 장악에 급피치를 올렸고, 넉달 만에 최규하를 밀어내고 드디어 대통령 권좌에 오르게 됐다.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윌리엄 글라이스틴 대사는 숱한 의문을 뒤로 한 채 2002년 타계했다. 또 미국 정부는 국무부와 백악관, CIA의 주요 문서들의 비밀해제 시한이 지나자 공개했지만, 민감한 부분들을 삭제해버려 정확한 역사적 진실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참조 문서>
https://wikileaks.org/gifiles/docs/15/1556806_korea-assassination-history-.html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EOUL19088_e.html
http://timshorrock.com/documents/korea-the-cherokee-files-part-one/
https://www.38north.org/2017/10/tshorrock100317/
http://www.eroseffect.com/powerpoints/NeoliberalismGwangju.pdf
https://kr.usembassy.gov/wp-content/uploads/sites/75/2017/05/The-Kwangju-Incident.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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