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23) 전두환 신군부 대처전략, 주한미대사- 한미연합사령관 '충돌'
청와대-백악관 X파일(23) 전두환 신군부 대처전략, 주한미대사- 한미연합사령관 '충돌'
  • 특별취재팀
  • 승인 2017.12.01 05:00
  • 수정 2018.08.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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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과 지미 카터 대통령과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1978년 7월 부임했던 리처드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와 1979년 7월 부임한 존 위컴 한미연합사령관은 미국의 한국 군사정책과 관련, 거의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12 · 12 사태를 바라보는 글라이스틴과 위컴의 시각과 해법에 대해서는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둘은 전두환이 정치권에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강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나 위컴의 생각은 글라이스틴보다 더욱 강경했다. 그의 그런 생각은 전두환 일파의 지휘체계 이탈이 본인의 위상에 먹칠을 한 데 따른 것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위컴은 글라이스틴이 전두환을 비롯한 한국군 지휘관들을 직접 만나고 다닌데 대해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나 글라이스틴은 미국 정부의 우려를 신군부에 직접 전달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전두환과 그의 일파가 한국군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민간정부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최규하 대통령을 예방한 글라이스틴 주한미대사. 글라이스틴은 12.12 쿠데타를 비난하고 재발방지를 강조했다.

전두환과 접촉하고 있던 보브 브루스터 CIA지국장과 백악관 고위관료들의 견해는 글라이스틴의 입장을 지지하는 편이었다.

문제는 글라이스틴이 전두환과 긴밀히 접촉하는 것 자체가 그가 실권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점이었다. 이에 글라이스틴은 미국이 아직도 최대통령을 한국의 지도자로 여긴다는 점을 그에게 확실히 하려 했다.

12 12사태 직후인 13일 최규하 대통령, 14일 전두환을 만난 글라이스틴 대사는 그 후 몇 개월 동안 전두환 측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피했다. 반면 브루스터를 통해 전두환과 만나 정보를 얻어오도록 했다.

위컴과 글라이스틴은 새로운 군부 지도자들을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게 하려는 노력에서도 견해차를 보였다.

글라이스틴은 1961년 박정희의 쿠데타에 대한 미국의 대응과 카터의 미국 철수 노력에 영향받아, 미국이 해서도 안되고 시행할 가능성도 없는 전격조치를 들먹이며 그들을 위협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위컴은 원칙적으로는 글라이스틴의 견해에 동의했지만 표현을 절제하지 않았다.

그는 12월 17일 이회성 육참총장과의 첫 번째 대좌에서 “12 · 12 사태 결과로 철군계획이 다시 검토될지 모른다”고 내비쳤다.

글라이스틴은 본국에 보낸 전문에서 “한국의 장래에 대해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동자들의 민주적 의도 운운하는 말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유는 사태의 주역들이 박정희 유신정신에 공감하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문에서 “그들의 의도는 그들이 계엄령 해제에 동의하는지 아니면 그것을 새로운 긴급조치 9호로 남겨둘 것인지와, 병사들을 고유의 방위 임무에 복귀시킬지 계속 경찰관 노릇을 하게 할지로 판명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라이스틴은 한국 국민들 사이에 널리 확산된 두려움과 불안감은 신군부 지도자들에 대한 정면도전이 없었고, 최대통령이 취임사를 통해 정치개혁 일정을 곧 발표하겠다는 것으로 일부 해소된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위컴 사령관은 본국 국방성에 강경한 정책을 제시했다.

미국이 얼마나 분노하고 있으며 12 · 12사태와 같은 일의 재발은 용인하지 않을 것이고 반란그룹의 영향력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점을 한국 지도자들에게 주지시키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1) 반란그룹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거나 제한하고 차후의 반란행위가 가져올 위험을 명확히 한다.

(2)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반란 지도자들과의 직접 접촉을 자제하고 12 · 12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할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내심 글라이스틴 대사의 행동을 겨냥 한 것이었다.

12. 12 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과 존 위컴 사령관.

일주일 후 주한미대사관 고위층과 CIA 지부장 등과 검토한 의견을 반영해 글라이스틴은 워싱턴에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1) 최대한의 영향력을 동원해 최규하 정부가 신군부 지도자들의 꼭두각시로 전락하거나 유신체제를 영속화시키려 하지 않는 한 그들은 강력 지원한다.

(2) 통상적인 군사적 채널을 이용한 신군부 지도자들과 접촉을 통해 최근의 사태로 인한 우리의 심각한 우려 전달을 계속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원한다는 인상을 주는 일은 피한다.

(3) 정치발전의 지속을 위해 군부의 안정과 민간정부의 지속 및 정치권의 자제 노력을 지원한다.

표현에 차이는 있었지만 글라이스틴과 위컴의 제안은 서로 상통했다.

전두환의 신군부가 전체 한국군을 점차 장악해 가고 있는 주동자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려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글라이스틴-위컴의 견해 차이는 2개월여를 거치며 서서히 좁혀져가기 시작했다.

[특별취재팀= 최석진, 최정미, 박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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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6월은 '5.18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된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기간입니다. 하지만 당시 보도가 통제되던 상황이어서 객관적으로 상세하게 정리된 기록이 없습니다. 이에 위키리크스한국은 윌리엄 글라이스틴이 직접 저술한 회고록, 미국 정부가 1989년 6월 대한민국 국회 광주특위에 제출한 답변서, 위키리크스 비밀문서 등을 토대로 역사의 기록 차원에서 시리즈를 구성합니다. 이어 수사기록으로 본 5.18(보수적 시각), 미국의 유혈진압 방조 의혹(진보적 시각)에 대한 내용도 함께 다룰 예정입니다. 또한 향후 사료 발굴에 따라 오류나 착오, 잘못된 주장이 제기될 경우 해당 부분들을 반영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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