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32) 글라이스틴과 갈등 겪던 전두환, 주한미대사관 몰래 본토 로비 시도
청와대-백악관 X파일(32) 글라이스틴과 갈등 겪던 전두환, 주한미대사관 몰래 본토 로비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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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1.28 05:30
  • 수정 2018.11.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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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백악관 x파일
한-미 외교 40년 비사 '청와대 백악관 x파일'

[특별취재팀] 김용식 주미대사, 손장래 중앙정보부 워싱턴 지부장은 백악관, 국무부 라인을 총동원해 미국의 안보협의회 연기 결정을 번복하려 혼신의 힘을 다했다.

하지만 실패하자 이번에는 유병현 합참의장이 직접 미국을 방문해 전두환 중정부장 임명을 설명하고 안보협의회 일정 조정을 논의하는 방안을 들고 나왔다.

예비역 준장인 손장래 지부장과, 미국 장성들과 교류해온 한국의 퇴역장성들은 전직 주한미군 지휘관들과 접촉을 갖고 “위컴과 글라이스틴의 제안은 한국의 현실을 모르고 하는 것”이라며 신군부 측의 입장을 두둔해주도록 펜타곤에 영향력을 행사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관리들의 입장은 한국의 집요한 로비에 대해 ‘글라이스틴 대사의 입장은 미국 정부의 입장’이라며 한결같은 태도로 대응했다.

전두환과 글라이스틴 대사와의 만남은 5월 9일로 정해졌다. 대사가 면담을 요청한지 2주 반이 지난 후였다.

마치 대규모 전투에서 1차로 공군 폭격, 2차 포 사격 이후에도 승부가 나지 않으면 마지막으로 보병간 백병전으로 결론나듯이, 전두환은 글라이스틴 대사와 만나기 전 신군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공세를 취한 후 더 이상 쓸 카드가 사라지자 대사와 만나기로 했던 셈이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당초 전두환의 중정부장 임명에 반대하는 이유에 중점을 두어 대화를 풀어나가려 했었다. 그러나 학생과 노동계의 시위가 갈수록 격렬해지면서 목전에 닥친 위기 해결의 대처방안에 중점을 둘 수 밖에 없었다.

▶시위 과격화의 가장 큰 원인은 ‘전두환의 세력 확장’

시위가 과격화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전두환의 정보기관 장악’이 기름을 부었기 때문이었다.

학교 시위는 갈수록 확대됐다. 강경한 학생들은 군사훈련을 거부하고 최규하 대통령과 신현확 총리, 전두환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특히 신현확 총리는 집중포화의 대상이 됐다. 정부를 대변하는 입장에서 시위 참가자들과 정치인들에게 ‘법과 질서’를 강조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군.관.재계의 일부 인사들과 연계세력을 결성해 대통령직을 넘보고 있다는 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당시 많은 정치 지도자들과 학생들은 전두환이 직접 대통령을 차지하기 보다는, 신현확을 꼭두각시 대통령으로 세우고 전두환은 막후에서 실세로 군림하는 시나리오가 가장 유력할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이는 보안사령부가 주도한 K-공작이 치밀하게, 그리고 철저한 보안 속에 한 단계, 한 단계씩 진행됐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은 캠퍼스를 벗어나 노동자들과 함께 거리 시위를 시도했다. 4월 21일부터 나흘동안 탄광 노동자들이 경찰서를 점거하는 사건이 발생해 군 병력이 투입되기도 했다.

학생 시위에 가담하는 정치인도 늘어나면서 계엄당국을 긴장시켰다. 계엄사령부는 5월 1일 정치인들을 겨냥해 “법치주의 원칙과 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엄단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계엄사령부는 그 때도 “계엄 목표가 달성된 후에는 군 본연의 임무로 복귀하겠다”는 약속을 되풀이했다.

1980년 봄 시위. [연합뉴스]
1980년 봄 시위. [연합뉴스]

▶김영삼 '최대통령 제대로 못한다' 공격

계엄사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시위는 더욱 과격해졌고, 경찰의 대응도 한층 강경해졌다.

야당지도자 김영삼은 9일 기자회견을 갖고 “최 대통령이 과도 지도자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그는 △계엄령을 즉시 해제할 것 △국회가 제시한 헌법 개정안을 즉각 수락할 것 △연내로 새 정부에 권력을 이양할 것 등을 촉구했다.

김영삼은 “학원 사태는 학원의 정상화와 민주사회의 구현을 위한 필연적인 진통이다. 학원 사태 수습을 위해 정부는 즉각적인 개선을 단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학생들은 계엄령이 5월 14일까지 해제되지 않으면 거리로 진출하겠다고 위협하면서 김영삼의 요구에 호응했다.

훗날 김영삼과 김대중은 글라이스틴 대사와 만나 당시 상황에 대해 “시위가 더욱 과격해지고 폭력으로 치닫는 것을 강력반대했었다. 그러나 계엄당국은 우리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려고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막았고, 결국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전두환의 강경진압 명분을 제공하게 됐던 것”이라고 회고했다.
[특별취재팀= 최정미, 최석진, 박정우 기자]

<참조 문서>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EOUL19408_e.html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EOUL19204_e.html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TATE281946_e.html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EOUL19088_e.html

▷http//wikileaks.org/plusd/cables/1979STATE320837_e.html

▷Massive Entanglement, Marginal Influence / William Gleys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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