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성추문에 휘말린 노시인의 집을 찾다
[현장] 성추문에 휘말린 노시인의 집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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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8.02.24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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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문에 휘말린 고은 시인(85). 취재진이 수원 문화예술의집을 찾았지만 입구를 막고 있는 철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여러차례 호출벨을 눌러봤지만 헛수고인 듯 했다. 수원시가 지난 2013년 해당 공간을 조성할 당시 1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곳이지만 사실상 고은의 사유지나 다름없어 보였다.

수원시의회 관계자들를 비롯해 인근 주민들은 "(성추행 논란이 벌어지기 전에도) 고은 시인은 주민들과 소통이 없었다"며 "시민 세금으로 지은 곳인데 (저런 식으로 운영하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고은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최영미 시인이 한 문예지에 게재한 시 '괴물'로 그의 성추행 의혹이 수면 위로 올랐지만 그는 여전히 공식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다.

최 시인은 시 '괴물'에서 작가 'En'을 '젊은 여자만 만지고',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등의 구절을 통해 고은을 사실상 정면으로 저격했다.

당사자로 지목된 고은은 논란이 거세지자 언론 인터뷰에서 "30년 전 후배 문인들을 격려한다는 취지의 행동이 오늘날 성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된 행동이라 생각하고 뉘우친다"고 답했으나, 모호한 해명에 비판 여론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고은, 수원 떠나라"…전방위로 퍼져가는 비판

뒤숭숭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고은 시인의 시를 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했다. 이찬열 바른미래당 의원(경기 수원갑)은 고은 시인에게 "하루빨리 수원을 떠나주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22일 한국작가회의도 3월 이사회에서 고은 시인을에 대한 징계안을 상정할 것을 천명하는 등 각계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져나오고 있다.

서주애 수원여성회 사무국장은 "시를 통해 가해자 실명을 거론하다시피 한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게 우선"이라며 고은의 행태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두 차례나 여성친화도시로 지정되고 여성정책으로 국무총리 상도 받은 수원시가 복지부동하는 것도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원시는 지난 2013년 인문학중심도시를 표방하며 고 시인을 멘토로 모셨는데, 수원시민들 입장에선 성범죄자를 멘토로 둔 것과 다름없다. 수원시청 인근 수원 평화비에는 고은 시인의 헌정시가 새겨져 있다. 이것은 성폭행 피해자 옆에 가해자 글이 있는 꼴인데, 사실상 수원시는 이러한 사태를 지켜보고만 있다."

이러한 지적과 관련해 수원시(시장 염태영) 관계자는 "소관 부서에서 입장 정리를 해주지 않아 아직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한국 문단의 거두로 손꼽혔던 고은의 성추행 논란이 거세지자, 그 파장은 서울시·교육부 등 전방위로 번져가고 있다.

수원시 관계자는 올 하반기로 계획된 '고은 등단 60주년 기념행사'에 대해 "취소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했다. 고은문학관 건립도 무산될 처지에 놓였다. 서울시는 지난 21일 고은을 기리기 위해 서울도서관에 만든 '만인의 방'을 철거키로 했다. 최근 교육부도 고은의 시가 실린 중고교 국어 교과서 현황 파악에 나섰고 해당 출판사와 집필진이 삭제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언제 떠난다 확답 안한 고은…지쳐가는 주민들은 눈총만


최근 고은은 재단을 통해 올해 안에 수원을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10년 동안 몸담아 왔던 단국대 석좌교수직도 내려놨다. 고은은 지난 2013년부터 수원 광교산 자락에 위치한 '문화향수의집'에 머물고 있다. 수원시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2013년 수원문화도시조례에 따라 문화예술인 창작공간으로 조성된 문화향수의집은 당해부터 고은의 거주 및 창작 공간이 됐다.

수원시의회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3월 초 회기에서 고은 작가 퇴거 관련 얘기가 나올 것이다. 고은 시인이 떠난다고는 했지만 '올해 안에 떠난다'는 것이 추상적이기 대문에 언제까지 떠날 것인지, 떠나는 이유에 대한 공식 입장을 듣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근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문화향수의집이 위치한 광교산을 찾았다.

신분당선 광교역에서 택시로 15분가량 걸려 도착한 광교산 자락에서 어렵게 문화향수의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화향수의집으로 향하는 길목의 철문은 굳게 닫혀 있어 접근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철문 너머로 건물 상층부 모습을 겨우 볼 수 있는 정도였다.

철문 우측에 호출 인터폰과 안내문이 있어 시간을 두고 여러 차례 호출을 시도해 봤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인근 상인 A씨는 "얼마 전부터 많은 외부인들이 왔다 갔는데 문이 열린 것을 본 적이 없다. 기대 안 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건물을 보기 위해) 산을 우회해서 간 사람들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광교산 주변 주민과 상인들은 앞서 다수 취재진들의 질문을 받았는지 '고은'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아유, 말 안해" 또는 "모른다"며 답변을 꺼리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졌는데도 광교산을 찾은 등산객들 외에는 인적도 드물었다. 평범한 등산객들은 대부분 주변에 고은의 거주공간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시내로 내려갈 채비를 하던 인근 주민 B씨에게 다가가 물어보니 "내가 얘기하면 그대로 내보낼 거잖아"라며 성가시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내 "만약에 내가 고은 시인이랑 같은 행동을 했다면 나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며 반문했다. 그는 기자의 얼굴을 빤히 보더니 "그래도 사회는 밝고 건강해야 한다. 그게 답이다"라고 말했다.

광교산 입구 근방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상인 C씨는 "(고은이) 떠나든 말든 전혀 상관없다"며 "동회 초청을 해도 한번을 온 적이 없다. 의무는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문화예술의집이) 주민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건데 동네에 기여한다든가 어울리는 게 전혀 없었다"고 손사래를 쳤다.

문화향수의집 인근의 70대 주민 D씨는 "(고은이) 문을 연 것을 본 적이 없다. 주민들과 소통이 없다. 더구나 시민 세금으로 지은 집인데, 시인이 주민들과도 소통하지 않는 건 납득이 안 된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쳤다.

수원시에 따르면 지난 2013년 문화향수의집 구성 및 건설에 9억5,700만원의 예산이 소요됐다. 가·나동으로 나뉘어 있는 건물 전체 규모와 면적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주택으로 쓰는 가동은 지층(지하), 1층, 옥탑층 3개 층으로, 층별 면적은 99.12㎡로 동일했다. 나동 면적은 66.08㎡이며 2개 동의 총합은 363.44㎡로 평수로는 110평 정도였다. 전기·상하수도 등 공공운영비로 연 1,000만원 정도가 투입되고 있다.

수원시청 관계자는 고은이 수원에 거주하게 된 배경에 대해 "당시 고은 시인은 안성 자택에서 이주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수원시와 출생지인 전북 군산시를 포함, 총 6개 시에서 고 시인을 모시려고 했는데, 최종적으로 고 시인이 수원으로 택했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의 지적처럼 불통(不通)도 큰 문제였다. 거주자인 고은은 문화향수의집에서 6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의회·주민들과의 소통을 등한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취재진이 접촉했던 거주민 중에는 문화향수의집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수원시의회 관계자는 "고은 시인은 주민 뿐만 아니라 의회와도 소통을 안 한다. 문화향수의집은 시민 세금이 들어갔다. 공공성이 있는 만큼 소통을 해야 한다. 리모델링이 끝난 직후 의회 차원에서 동정을 살피기 위해 방문 연락을 했는데 고은 시인이 거부해서 무산된 적도 있다"고 했다.

아울러 "추문이 사실이라면 본인이 언론 앞에 나서서 피해자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 성추문 논란이 사실이 아니라면 해명하면 될 일"이라고 덧붙였다.

kbs13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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