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미국 철강산업의 봄날은 왜 가버렸나? 새로운 기술 개발 뒷전.. 보호무역 의존하다 침몰 우려
[FOCUS] 미국 철강산업의 봄날은 왜 가버렸나? 새로운 기술 개발 뒷전.. 보호무역 의존하다 침몰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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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3.12 07:48
  • 수정 2018.03.12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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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등 세계 국가에 '철강 관세 폭탄'을 추진하는 트럼프 대통령 [사진- 연합뉴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의 철강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을 비롯한 철강 수입국들에게 ‘폭탄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세계가 무역 전쟁에 돌입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철강 산업이 오늘날처럼 경쟁력을 잃은 것은 미국 철강 업계가 스스로 자초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와서 눈길을 끌고 있다.

조지아 대학교의 역사학과 스티븐 밈(Stephen Mihm) 부교수는 블룸버그에 기고한 글을 통해 미국의 철강 산업이 오늘날처럼 경쟁력을 잃어버린 것은 그동안 현실에 안주한 채 새로운 기술 개발을 등한시한 당연한 결과로, 이제라도 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에 의존하지 말고 혁신할 것을 주문했다.

나아가 밈 교수는 미국의 철강 회사들이 치열한 경쟁력을 상실한 채 보호무역주의에 의존하는 순간 그들은 해답이 없는 퇴행을 거듭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철강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관세를 부과하면서, 미국의 철강 산업이 수 십 년 동안 불공정한 무역 관행과 잘못된 정책 때문에 피해를 보았다고 명분을 들었다.

이러한 트럼프의 지적은 일면 타당한 바가 있지만 보다 중요한 문제를 간과했다는 것이다.

바로 트럼프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대부터 누적되어온 미국 철강 산업계의 잘못된 판단의 문제이다. 이러한 정책 결정의 잘못이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사실 2차세계대전 말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의 철강 산업은 대적할 자가 없을 정도로 세계 최강이었다.

미국의 철강 생산량이 세계의 4분의 3을 차지할 정도로 막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나 독일 같은 경쟁 국가의 공장들은 전후의 폐허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 US스틸과 같은 미국의 거대 철강 기업이 세계 철강 업계를 휩쓸 것처럼 예측되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미국의 철강 산업은 외국의 생산업자들에게 뒤처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의 원인으로 불공정한 무역 관행을 꼽는 것은 잘못된 분석이다.

스티븐 밈 교수는 미국의 철강 산업이 뒤처지기 시작한 주요 원인은, 구식이 된지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이른바 ‘평가마(open-hearth)’ 생산방식을 고집한 미국 철강 생산업자들에게 있다고 꼬집었다.

반면에 전쟁 중에 많은 공장들이 파괴되어버린 유럽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과거의 생산방식을 버릴 수 밖에 없었다.

나아가 유럽인들은 재련된 금속에 순수한 산소를 불어넣는 방식으로 철(iron)을 철강(steel)으로 바꾸는 실험적 기법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염기성 산소제강법(basic-oxygen process)’이라고 알려진 이 기법은 1948년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처음 시범적으로 도입되었다.

이 때 이를 처음 시험한 곳은 오스트리아의 보우에스트(VOEST)라는 자그마한 공장이었다. 이 시험에 성공한 보우에스트는 1952년 본격적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생산에 돌입했다.

그 이후 오스트리아의 린츠는 철강 업계의 메카가 되었다. 세계 각지에서 새로운 생산 방식을 직접 견학하기 위해 철강 업자들이 린츠로 몰려들었다. 새로운 방식의 ‘염기성 산소제강법’ 용광로를 활용해 철강 공장을 건립하는 비용은 기존의 ‘평가마’ 용광로 공장을 짓는 비용보다 4~50%가 저렴했다. 게다가 용광로의 운용비용은 25%가 절감되었다.

하지만 진짜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점은 새로운 생산 공정과 어우러진 생산력의 증대였다. ‘평가마’ 용광로 공정에서 시간당 40톤의 철강 생산이 가능함에 비해 ‘염기성 산소제강법’을 도입한 후에는 생산성이 네 배까지 늘었다.

그러나 유럽의 성과를 인정하기에 미국의 철강 공룡들은 자존심이 너무 강했다고 밈교수는 주장한다.

솔직히 말해, 1950년대 유럽의 철강업자들이 ‘염기성 산소제강법’을 활용해 새로운 공장을 세우면서 한편으로는 기존의 ‘평가마’ 용광로를 없애버리는 동안 미국의 철강 공룡들은 끊임없이 핑계만 댔다. 그 당시 미국의 3대 철강 기업인 베들레헴 철강, US스틸, 리퍼블릭 제강의 대표들은 새로운 방식과 관련해서 최종 결론을 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소리만 계속했다.

1957년에 이르러서는 심지어는 미 의회에서조차 뭔가 잘못돼간다는 조짐을 느끼기 시작하고 철강 업계의 대표들을 국회로 불러 증언을 청취하기도 했다. 국회의 위원회 앞에서 US스틸의 대표는, ‘미국 철강 산업의 두드러진 특징은 다른 나라는 감히 따라올 엄두를 낼 수 없는 막대한 생산 능력에 있다’고 큰소리를 치고 이어서 자기 회사가 유럽의 새로운 방식을 검토해보았지만 부족한 점이 많았다고까지 했다.

밈 교수는 이러한 상황을 미친 짓이었다고 평가했다. 철강 공룡들이 머뭇거리는 동안 ‘염기성 산소제강법’을 채택한 용광로들은 세계를 더욱 활활 불태우고 있었다.

한편 ‘전기아크(electric-arc)’를 채택한 더욱 혁명적인 철강 생산 방식이 등장했다. 이 방식은 고철(iron scrap)을 철강으로 재생산하는 데 전기를 이용하는 기술이다. ‘전기아크’ 방식을 도입하면 기존의 철강 공장들과 달리 소규모의 값싼 비용으로도 공장 설립이 가능했다.

유럽 사람들은 ‘전기아크’ 방식을 집단적으로 도입해서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이상의 두 방식이 유럽과 그 이후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에서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하는데도 미국의 철강 회사들은 완전히 비능률적인 ‘평가마’ 용광로를 고집하고 있었다.

밈 교수는, 1960년대가 되어서야 미국의 철강 공룡들이 마지못해 ‘염기성 산소제강법’ 용광로를 짓기 시작했지만, 이미 때는 너무 늦었다고 평가했다.

1960년대에 들어 미국에서 켄 아이버슨이 등장해 뉴코(Nucor)라고 불리는 철강 회사가 들어있는 기업집단을 인수했다. 아이버슨은 ‘전기아크’ 방식을 활용해 철강을 생산하는 데 회사의 미래를 걸고 1969년에 미국 최초의 ‘전기아크’ 용광로를 건설했다. 그 결과 회사는 외국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기하급수적인 성과를 나타냈다.

밈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다른 철강 생산업자들이 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에 매달리는 반면에 아이버슨은 그들을 비웃었다고 한다. 1986년에 이뤄진 인터뷰에서 아이버슨은 보호무역 정책은 만족할만한 결과를 낳지 못한다며, “가격이 상승하고 철강 회사들이 이익을 내자마자 그들은 혁신을 멈추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철강 대기업들이 혁신했던 때는 내부적으로는 소규모 철강 공장들로부터, 외부적으로는 일본이나 한국과 같은 나라의 철강 회사들로부터 경쟁 압력이 극한에 달했을 때뿐이었다.”고도 했다.

뉴코는 그 이후 미국 내에서 가장 큰 철강 생산 회사가 되었다. 그러나 뉴코도 이전의 US스틸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보호관세의 부과를 결정하자, 뉴코의 CEO는 이를 열렬이 환영하며, 벌써 했어야했는데 너무 늦었다고까지 말했다.

밈 교수는, 뉴코가 보호무역의 잔치를 향유하기 전에, 2002년에 사망한 아이버슨이 회사가 최고의 실적을 올리고 있을 때 언급한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치열한 경쟁 압박을 피해 도망한다면 그대들은 과거로 퇴행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외의 다른 대안은 없다.”
[위키리크스한국=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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