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비밀문서] 미 CIA, 유신정권 붕괴~ 5.18운동 ‘대한민국 격동의 시기’ 정세 예측 실패
[WIKI 비밀문서] 미 CIA, 유신정권 붕괴~ 5.18운동 ‘대한민국 격동의 시기’ 정세 예측 실패
  • 최석진 기자
  • 승인 2018.10.23 07:25
  • 수정 2018.10.23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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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월 박정희 대통령 시해 현장에서 범행을 재연하는 김재규와 위키리크스가 입수한 CIA 정세예측 비밀문서. [연합뉴스]
1979년 12월 박정희 대통령 시해 현장에서 범행을 재연하는 김재규와 위키리크스가 입수한 CIA 정세예측 비밀문서. [연합뉴스]

오는 26일은 박정희 대통령 타계 39주기가 되는 날이다.

1979년 10월 26일부터 대한민국은 대격랑에 휘말리게 된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1979. 10. 26) 신군부의 쿠데타(1979.12.12), 서울의 봄(1980.3) 광주 민주화운동(1980.5)으로 이어지는 이 대혼돈의 시기에 주한미국대사관과 CIA(중앙정보국) 한국지부는 수많은 정보보고 문서를 워싱턴으로 전송했고, 워싱턴은 이를 바탕으로 대한(對韓) 정책들을 수립해 실행했다.

위키리크스가 입수한 당시 문서들을 위키리크스한국(wikileaks-kr.org)이 분석한 결과 살얼음판 같았던 이 ‘격동의 시기’이 미국 CIA와 국무부, 주한미국대사관은 국민들의 민주화 역량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했으며, 이같은 인식 때문에 신군부의 쿠데타에 안일하게 대응하는 바람에 광주민주화항쟁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초래한 중요한 계기가 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CIA는 한국지부(당시 지부장 로버트 브루스터)의 정보보고를 토대로 1979년 6월 백악관에 “한국의 재야 운동권은 현재까지 한국 사회의 안정을 뒤흔드는 데 실패했다. 이 점은 박정권에 저항하는 세력들이 한국 사회에서 폭넓은 지지 기반에 입각하여 분명한 목소리를 내지 못할 정도로 허약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CIA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저항 운동 주도 세력들의 숫자가 불과 수백 명에서 수천 명선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 세력들이 연합해보았자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보고서가 작성된 지 넉달 만인 10월 들어 수만 명의 학생과 노동자들이 부산에서 박정권에 저항해 봉기를 일으켰고, 박정희 대통령은 26일 그의 부하인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시해 당했다.

박 대통령이 암살당한 후에도 미국의 ‘헛발질’은 계속됐다.

박 대통령 타계 이틀 후인 28일 미국 국무부가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로부터 보고받아 29일 한국 상황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 관료들에게 보낸 비밀전문 ‘한국에서 박정희 시해 사건 이후의 초기 반향’(Initial Reflections on Post-Park Chung Hee situation in Korea)에 따르면 미국은 그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해 상당히 혼란스러워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문건에서 박정희 암살 사건의 배경에 대해 미 대사관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지난 10월 26일 발생한 박정희 암살 사건은 준비된 쿠데타인지, 급작스럽게 일어난 사건인지 아직도 파악이 안되고 있다. 현재 박정희 후계자로는 김종필이나 정일권, 이후락, 김대중, 김영삼이 거론되고 있다…”

글라이스틴은 박정희가 타계한 지 불과 40여일 뒤 전두환 신군부가 12·12 쿠데타를 일으킬 줄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특히 12·12 쿠데타 발발 후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근거 없는 낙관론을 폈으며 이같은 편향된 상황 인식에 따라 신군부에 대해 강경하게 대처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쿠데타의 성공을 도운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또 쿠데타가 발생한 12월 12일자 ‘한국에서 군부의 플레이’(Military Power Play in South Korea) 비밀전문에서 “대한민국 서울에서 초기 단계의 쿠데타가 진행 중이지만 다각적인 측면에서 협상의 여지들이 마련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무부는 문서에서 “서울 시간으로 12월 12일 초저녁(워싱턴 시각으로는 새벽), 보안사령관 전두환 장군과 1군사령관 황영시 중장을 중심으로 세력을 규합한 일단의 한국군 장교들이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장군을 체포하고, 한국 군부 내에 자신들의 의사를 분명히 드러내는 어떤 책략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국무부는 “현재 초기 단계의 쿠데타 세력으로부터 사적인 경로를 통해 세 가지 요구 조건이 전달됐다”며 “그들은 계엄사령관의 교체와 3군사령관의 교체, 그리고 한 명의 하위 장교의 교체를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무부는 “퇴각의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있으므로, 몇 시간 이내에 일반적인 쿠데타로 발전하지 않고 상황이 잘 마무리 될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워렌 크리스토퍼 국무부 부장관이 작성한 이 전문은 “일정한 한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요구조건들은 시작에 불과하고, 계엄사령관이 교체된다면 권력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정승화 계엄사령관이 체포된 이후 정국은 급속히 쿠데타 세력 중심으로 개편됐다.

국무부는 “글라이스틴 대사와 위컴 장군은 전통적 의미의 쿠데타로 발전하지 않은 채 현 상황이 마무리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며 “모반 세력들의 숫자가 벌써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쿠데타 세력의 공식적인 요구 사항도 일정한 한계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심지어 국무부는 “불행히도 권한 없는 국무부 당국자가 오늘 이른 시각에 현 사태를 두고 ‘군부 내의 심각한 권력 투쟁’이라고 언론에 규정해버렸다”며 “현 상황에서 그 같은 발표는 오로지 추측에 불과하다. 한미 관계에서 출발하는 어떤 대응도 그와 같은 성명을 낸 적이 없음을 우리는 분명하게 밝힌다”고 덧붙였다.

당시 군은 중요한 병력을 이동시킬 때 한미연합사령부의 승인을 얻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두환을 주축으로 하는 일당의 쿠데타 세력이 임의로 병력을 이동시켰으며, 미국이 당시 상황을 엄중하게 판단했더라면 곧바로 강력하게 진압작전을 전개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광주 유혈항쟁이라는 ‘비극의 씨앗’을 초기에 자를 수 있는 천금 같은 시간을 놓친 판단이었다.

글로벌 정보분석 싱크탱크인 스트랫포(Stratfor)도 CIA 한국지부가 당시 한국에서 긴박하게 벌어졌던 일련의 사태들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편향된 정보들을 본국에 타전했다고 평가했다.

12·12 쿠데타에 이어 이듬해인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시민 저항 운동은 그 지역을 거의 무정부상태로 몰고 갔으며, 북한이 이러한 사회 불안 요소를 악용할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지미 카터 대통령은 미 국무부와 CIA의 조언에 따라 미군 지휘 하에 있던 한국의 군대들이 광주에서 벌어진 봉기를 진압하도록 승인했다고 스트랫포는 진단했다.

브루스터는 국무부에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우리는 전두환이 원한다면 그가 정권을 장악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데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전두환의 정권 장악 시도가 합법적으로 이뤄지고 한국 내부의 상황이 위험에 빠지지 않으며,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다면 전두환을 도와야 한다.”

브루스터는 퇴임한 후 CIA가 수여하는 정보 훈장을 받고, 1981년 암으로 사망했다.

[원문]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TATE281946_e.html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TATE320837_e.html
https://wikileaks.org/gifiles/docs/16/1649154_us-rok-dprk-mil-ct-history-cia-documents-detail-fals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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