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박물기행] 개항기의 풍경을 담은 인천개항박물관 (하)
[인천박물기행] 개항기의 풍경을 담은 인천개항박물관 (하)
  • 장보배 여행 칼럼니스트, 도움말 김영희 학예사
  • 승인 2018.11.07 20:37
  • 수정 2018.11.07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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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개항박물관탐방기 ⓶ 격변의 시간을 담아내다

- 두려움과 혼란, 그리고 변화가 공존했던 시간 -

 

#당신의 옆집에 외계인이 이사 온다면

만약 옆집에 외계인이 이사 온다면? 일단 엄청난 충격에 빠질 것이다. 믿어지지 않을 것이고, 황당할 것이며, 생소하고 놀라울 것이다. 온 동네방네 일가친척들에게 떠벌리는가 하면, 두려운 나머지 현관문을 더욱 굳게 잠그고 잠금장치마저 점검할 것이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외계인이 사실은 지구정복을 위해 왔으며 우리 가족을 데려다가 그들의 차가운 우주선 안으로 끌고 들어간 뒤 잡아먹어버릴지도.

모르긴 몰라도 1883년 인천에서는 이와 비슷한 소동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싶다. 개항(開港). 즉, 항구를 열어 외국과 통상하는 일이 시작되면서 한국 사람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멱을 감고 물고기를 잡던 바다에 외국 선박들이 들이닥쳤다. 난생 처음 보는 외모, 혹은 태어나서 처음 듣는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오고 가더니 급기야 거리를 채워나갔다. 때문에 많이 신기하고, 무엇보다 두려웠을 것이다. 그들의 손에 들려오는 것들이 무엇일지 알 수 없었을 테니까.

인천 개항박물관에는 바로 그, 격변했던 시기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두려움과 혼란, 그리고 색다른 변화가 공존했던 시기의 조각들의 담겨 있었다. 한국적인 것과 이국적인 것들이 섞여지면서 보여지는 이야기들. 다 보면 재미없으니까, 아주 조금만 풀어내고자 한다. 인천개항박물관이 담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일본 제1은행에서 인천개항박물관이 되기까지

 

인천광역시 중구 신포로 23번길 89에 위치한 인천개항박물관 전경. 르네상스 풍의 외관이 묘한 느낌을 준다

 

인천개항박물관은 본래 2층짜리 목조건물로, 일본 제1은행 인천지점이었다. 그러다 기반이 굳어지면서, 1897년 석조 사옥으로 새로 지은 뒤(현재건물), 1909년 한국은행 인천지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1911년 8월 조선은행 인천지점이 되었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다시 한국은행 인천지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1880년까지 조달청 인천사무소 청사로, 1996년까지 인천지방법원 등기소로 사용되다가, 1997년 이후에는 폐쇄된 상태로 방치되었던 것이 1998년 3월 이후에는 상설의류 매장 및 인천문화발전연구소 등으로 이용되었다. 2000년 보수공사가 끝난 후 중구청의 소관부서로 사용됐으며 2010년, 본격적으로 인천개항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박물관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일본의 은행이었던 곳이 한국의 은행이 되었다가, 조달청과 인천지방법원, 중구청에서 사용하던 끝에 마침내 박물관이 된 곳. 격변하는 시대를 견딘 것도 모자라 2000년까지 참으로 많은 변화를 감당해낸 건물. 그래서인지 더욱 잘 어울린다. 이토록 많은 변화를 겪었던 곳에서 ‘개항의 역사’를 담아낸다는 것이. 설레는 기분으로 박물관의 문을 열었다.

인천 개항박물관은 총 네 개의 전시실로 나뉘어져 있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1전시실에서는 1883년, 개항 이후 인천항을 통해 들어온 근대건축과 근대문물들이 전시되어있다. 그리고 2전시실에서는 1899년 개통된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경인선과 관련된 내용들, 모형들을 확인할 수 있다. 제3전시실에서는 개항 이후 인천의 풍경을 만나볼 수 있고, 제4전시실에서는 개항 이후 인천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제1은행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전시실의 흐름대로 쓰는 것이 좋겠으나, 그렇게 되면 ‘찾는 재미가 없을 것 같아 칼럼 속에서는 일부러 순서를 조금 뒤집어놓았다. 필자의 기억의 흐름대로 나열해서 죄송하다. 하지만 꼭 가서 만나보시길 바라는 마음이니 이해해주시길. 먼저 ‘거리’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보겠다.

#PART1. 그 때 그 거리

 

인천개항박물관 입구. 독특한 느낌의 폰트, 세월이 느껴지는 외벽과 정갈한 무늬의 건축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개항기에 인천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현재는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인 ‘조계지 진입계단’을 기점으로 왼쪽은 청나라, 오른쪽은 일본의 구역이 나뉘어졌다. 청나라의 구역에는 청나라의 건축물과 장터가 들어섰고, 일본의 구역에는 일본의 건축물과 각종 은행들이 들어섰다. 제물포에 외국배가 드나들자 찾아오는 서양인들을 맞이하기 위해 서양식 호텔이 들어섰고, 철도가 들어서서 한양 가는 길이 좀 더 수월해졌다.

그야말로 ‘격변’이 일어난 것이다. 때문에 그 때 그 거리, 그 때 그 변화를 간직해둔 사진들부터가 소중한 수집품이 된다. 그래서인지 인천개항박물관에서는 변화들이 서려있는 사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당시의 풍경들과 건물들이 담겨있다. 조계지도 보인다.
사진 속에 찍혀 있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하면서 감정이입을 해본다. 순식간에 뒤집어진 세상, 얼마나 놀랍고 색다를까?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현재의 박물관 앞 풍경과 인천개항박물관 속에 있는 박물관 앞거리 풍경을 대조해보는 일이었다. 거리의 구성 자체는 변하지 않았는데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옷, 들고 다니는 가방, 타고 다니는 자전거들이 완전히 달랐다. 아까 내가 걸어왔던 그 거리를 지나다니고 있는 한 분의 남성과 눈을 마주쳐본다.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전시실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당시의 거리를 담은 풍경. 사진으로 보면 조금 작아 보이지만 사실 꽤나 큰 그림이다. 심지어 원근감이 강해서 계속 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PART2. 두려움, 그리고 변화의 흔적

다시 외계인에 대한 상상으로 돌아가 본다. 난생 처음 본 외계선이 어마어마한 광의 우주선을 타고 내려왔다. 왜 왔냐고 물으니 이사 온단다. 이삿짐을 옮기는데 난생 처음 보는 물건들이 가득하다. 당신이라면 환영회를 열어줄 것인가, 경계태세를 갖출 것인가?

개항. 항구를 열어 외국선박과 소통하는 일. 지금이야 외국과 소통하는 일이 흔해졌지만 19세기 말에는 절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갖고 있는 이들, 무엇보다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드나들 수 있도록 허가를 내린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때문에 개항기에는 ‘통상’을 쉽게 하기 위한 움직임도 찾아볼 수 있지만, 반대로 낯선 이들을 경계하는 물건들도 존재한다.

광제호의 연습탄. 사진으로 보면 작아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굉장히 크다. 마치 거인들의 총알 같다.

대한제국 정부가 군함발주계획을 세워 일본에 1,056톤급의 광제호를 주문, 1904년에 인천항에서 인도받은 광제호의 연습탄환이다. 나무로 된 몸체와 쇠로 된 양끝 부분에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다. 마치 거인들의 총알 같기도 한 이 탄환은 발포가 제대로 되는지 확인하기 위한 연습용으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상상해본다. 소리는 클까? 아니면 작을까. 파괴력은 어느 정도이며, 과연 누구를 쏘기 위해 만들어졌을까.

개항기의 시기, 이런 물건이 속속들이 포착되는 것을 보면 그 시대에 깔려있었을 위기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반면, 적극적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바로 ‘철도의 개통’이다.

경인선 철도의 앞부분 모형. 굉장히 견고해보인다.
서울로 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몰려들었을 외국인들로 꽉 찬 대합실을 상상해본다. 그 외국인들을 보는 한국인들은 어떤 감정을 가졌을까?

1899년 개통되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경인선’. 벌써 내년이면 120년의 전통을 갖고 있는 철도의 시작은 바로 ‘개항기’에서부터였다. 일본이 수탈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독점하여 사용했던 뼈아픈 역사가 있지만, 6•25 전쟁 때는 피난민의 발 노릇을 했던 애틋한 역사가 담긴 곳이다.

전시실에 들어가 보면, 개통 당시의 경인선 모형이 견고하게 설치되어있고, 군데군데 글 자료를 통해 한반도의 역사와 함께 한 철도의 흐름을 알 수 있었다.

#PART3. ‘비밀의 공간-금고’

인천개항박물관이 일본의 은행이었다는 사실이 명명백백해지는 공간이 있다. 바로 ‘금고’.

캐릭터들이 그려져 있어서 아이들이 관람하기 쉽게 되어있다.

‘이곳은 일본 제1은행 금고입니다’라는 캐릭터의 설명에 따라 들어서면 그 당시에 쓰였던 동전들, 화폐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 펼쳐진다.

돋보기가 설치되어 있어서 무늬까지 자세히 볼 수 있다

그리고 고개를 들면 만날 수 있다. 지금은 굳게 닫혀있는 새까만 금고. 아마도 과거에는 가장 비싸고 값어치 있는 것들로 들어차있었을 것이다. 강력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의 자금이 오고갔을 것이다. 당시의 암울한 시대상에 미루어 짐작하건대, 아무래도 우리나라를 수탈하는 이들의 돈도 오고 갔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더불어 금고의 맞은편 천장부근에 ‘비상구’가 있었다.

지금은 그저 굳게 닫힌 작은 문 같다. 하지만 과거에는 가장 은밀한 공간이었을 것!
어휴, 근데 너무 작아 보인다
비상구 맞은편에 달린 문. 눈과 입이 달린 캐릭터를 연상시킨다

작은 아이가 하나 들어왔다가 나갈 수 있을만한 작은 구멍. 비상시 도망을 치기 위해서였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이 구멍은 개항기의 풍경을 담았던 개항박물관에 뭔가 ‘미스터리함’을 서리게 만든다. 왜 있는 거냐, 비상구. 그것도 이렇게 작게!

#아듀, 인천개항문화박물관

 

건물 자체에 역사가 서려 있다 보니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나 있다.
전시실 사이를 잇는 문들도 대부분 그 시절, 그 순간부터 계속 존재해 왔던 구조다.
다시 와서 볼 소장품들이여, 안녕!

열심히 탐험하며 느끼고 나오니 날씨는 맑아져 있었다. 아직 다 못 본 것 같지만, 다음일정을 위해서 아쉽게 발걸음을 돌렸다. 그 시절이 가득 담긴 물건들이 새로운 생각을 떠올리게 만든다. 무엇보다 아프고, 변화무쌍했던 그 시절이 마음 한구석에 와 닿는다.

약 100년 남짓한 세월 전에 이곳에서 벌어졌을 일들에 대해서 생각해보며 문득 현재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개항박물관은 급변하는 시기를 담고 있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그렇다면 급속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이 시대를 담아내고 있는 나는 어떤 것들을 수집해두는 것이 좋을까? 흐음, 역사까지 걸어가 봤지만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다.

흐음, 뭔가 실마리가 잡히면 또 오겠수, 인천개항박물관이여.

 

#김영희 학예사가 전하는, 인천시 중구의 또 다른 박물관들

인천개항박물관 근처에는 다양한 박물관들이 모여 있습니다. 짜장면 박물관, 한중문화관(인천화교역사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 전시관, 중구생활사 전시관(대불호텔 전시관)까지, 총 다섯 개의 박물관을 통합으로 관람하시면 보다 저렴합니다. 

대불호텔의 유구를 노출 전시 하여 조금이나마 대불호텔의 흔적과 현장감을 느끼도록 했습니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의 풍경이 그대로 담겨있는 생활사전시관입니다

다섯 개의 박물관에서는 각각 독특한 역사와 프로그램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더불어, 2019년도에는 투어, 콘서트, 기획전시, 체험프로그램까지 다양한 행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인천개항박물관 뿐만 아니라 한중문화관 홈페이지에도 자주 들어오셔서 재미있는 행사와 전시를 놓치지 말고 관람하시길 바랍니다.

[위키리크스 한국=장보배 여행 칼럼니스트, 도움말 김영희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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