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박물기행] 대불호텔 전시관- 대한민국 최초 서양식 호텔을 찾아서
[인천박물기행] 대불호텔 전시관- 대한민국 최초 서양식 호텔을 찾아서
  • 장보배 여행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2018-12-01 00:49:57
  • 최종수정 2018.12.01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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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박물기행 4. 대불호텔 전시관

대한민국 최초 서양식 호텔을 찾아서

 

#1887 조선, 서양식 호텔건립을 요구하는 아우성이 쏟아지다

"일본영사관에서는 증가하는 외국인들의 숙박의뢰에 시달리다 못해 그 애로사항을 본국 외무성에 호소하고 외국인들을 위한 접대 예산을 별도로 세워주고 침구와 취사를 위한 시설을 갖출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서를 보냈다."

- 인천부사 기록

 

1880년대, 인천에서는 때 아닌 아우성이 벌어졌다. 바로 '서양식 호텔'을 세워달라는 요청이었다. 인천은 서울로 통할 수 있는 항구임에는 분명했지만, 무려 12시간의 이동거리 후에 서울에 도착할 수 있는 다소 난처한 교통수단을 갖고 있는 상태였고, 때문에 제물포에 도착한 여행객들은 반드시 인천에서 하루 밤을 묵은 뒤 다음날 아침 일찍 떠나야만 서울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인천에서는 때 아닌 '숙박전쟁'이 벌어졌고, 이러한 수요로 인해 자연스럽게 인천 최초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서양식 호텔, 대불호텔이 탄생되었다.

인천광역시 중구 중앙동1가에 위치한 대불호텔 전시관. 기존 터에 세심한 재현을 거쳐 복원된 전시관이다.
대불호텔전시관은 투명바닥이 설치되어 있어 남아있는 대불호텔의 유구를 직접 관람할 수 있다.
건물의 기초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설명되어 있다.

호텔을 설립한 사람은 나가사키 출신 무역 상인이었던 '호리 히사타로'였다. 제물포 개항 직후인 1883, 호리 히사타로는 아들 호리 리키타로와 함께 부산에서 인천으로 이주해 '호리상회'를 열면서 무역업과 해운업을 시작했고, 그 당시의 인천의 풍경, 인천항을 드나드는 서양인들을 위한 숙박시설이 부족하다는 점을 목격한 뒤 1887년부터 벽돌조의 서양식 3층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1888년부터 본격적으로 호텔영업을 시작하며 '대불호텔'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당시의 호텔 거리들을 볼 수 있는 오래된 사진들. 꽤나 북적이는 것이 특징이다.
대불호텔의 흥미로운 점은 관람객을 세심히 배려했다는 점이다. 당시 기록을 바탕으로 대불호텔을 재현하게 된 과정을 영상을 통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심지어 19세기 당시의 설계도도 볼 수 있다는 것. 아마 건축학도이거나, 건축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 귀한 자료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대불호텔은 설립되자마자 엄청난 호황기를 맞이했다고 전해진다. 몰려드는 투숙객을 받으며 당시의 숙박업을 주도하는 호텔로 자리 잡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불같던 호황기는 굉장히 빨리, 그리고 허무하게 끝을 맺는다.

1899년에 인천과 노량진을 연결하는 경인철도가 개통된 것도 모자라 경성까지 연장되는 철도망이 구축되면서, 우마차를 타고 12시간 소요되던 인천과 서울의 거리가 철도로 1시간 40분만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여행자들은 더 이상 인천에서 하룻밤을 묵지 않고 바로 서울을 향해 떠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난 뒤, 조선 땅에 서양인들의 왕래가 급격히 감소했던 것도 또 하나의 원인이었다. 결국 대불호텔은 줄어든 숙박 객으로 인한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막을 내리게 됐다.

그렇게 막을 내린 대불호텔은 격변의 변화를 겪은 뒤, 때로는 중화루라는 요리지점으로 둔갑하기도 하고, 월세집으로 이용되기도 하다 결국 1978년에 완전히 철거되었다.

그리고 대불호텔 전시관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연계되는 대불호텔의 흥망성쇄를 상당히 낭만적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아름답고 우아하게, 진솔하고 유려하게 풀어낸 '대불호텔 전시관'을 관람하며 느꼈던 단상들을 적어본다.

 

#영상으로 느끼고, 텍스트로 상상해보세요

대불호텔은 심각한 경영난으로 인해 1978년에 철거된 건물이다. 때문에 현재 서 있는 대불호텔 전시관은 사실에 근거한 기록을 바탕으로 그 시절의 대불호텔을 재현한 곳이다. 때문에 호텔에 대한 세심한 재현과 더불어 그 시절을 상상해볼 수 있는 아름다운 영상과 옛스러운 텍스트가 도처에 깔려 있었다.

 

대불호텔 전시관 1층에 들어서면 볼 수 있는 ‘대불호텔의 사계절’.의 영상. 마술 같은 영상미로 대불호텔의 사계절을 순식간에 그려낸다. 눈을 감아도 잔상이 남을 정도

이게 1888년에 지은 집인데도 피아노를 설치할 정도로 모던한 호텔이었지요. 2층 난간이 발코니처럼 되어있고 3층에는 그리스의 파풍삼각형이 장식되어있으며 내부의 벽 같은 것이 그대로 남아있더군요. 2층으로 올라가면 조그마한 구석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아마 호텔일 때의 독방인 것 같아요. 빈 방이 11개이고 3층에는 커다란 홀이 있었는데, 피아노가 얼마 전까지도 홀 구석에 깨어진 채로 있었지요.

- 1973년 공간지에 기록된 대불호텔의 외관

 

1층에 입성하는 즉시 대불호텔의 외관을 상상할 수 있는 조형물이 설치되어있다. 처음에는 그냥 흰색 조형물이었던 것이, 뒤쪽의 상영기에서 불이 켜지면 오색빛의 빛을 입으면서 대불호텔의 사계절을 그려낸다. 꽃이 피는 봄, 무더운 여름, 단풍이 지는 가을, 눈 덮인 겨울을 차례대로 보여주는 영상을 통해 이미 사라진 대불호텔을 상상하게 만드는 것.

인천 부사지에 등장한 대불호텔의 언급
대불호텔을 찾았던 사람들의 묘사들. 외관은 아름답고 조망은 뛰어났지만, 비가 샐 정도의 비참한 내부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기록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센스가 멋지다.

또한 대불호텔에 대한 옛 기록물을 발췌해 둔 안내판을 통해 대불호텔을 상상해볼 수 있다. 대불호텔의 풍경부터, 대불호텔의 연회장, 그리고 비가 새기도 했다는 솔직한 기록이 담긴 방문객들의 기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조망은 아름다웠으나, 시설은 그닥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록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며 혀를 끌끌 차는 기록도 보여 웃음을 머금게 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대불호텔은 그 당시 최고의 호텔로 자리 잡았을까?

 

# 완벽에 가까운 서양식 문화를 담고 있었던 공간

은은한 촛대와 구식 타이핑 기구가 배치되어있는 객실 재현의 공간
아늑한 침대와 측우기까지 재현되어있다. 그 시대의 분위기를 한껏 느껴볼 수 있다.
서양인들이 대불호텔에서 즐겼을 커피 문화도 예측해볼 수 있다.<br>
서양인들이 대불호텔에서 즐겼을 커피 문화도 예측해볼 수 있다.

 

당시 인천에 지어졌던 서양식 호텔은 총 6개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대불호텔을 필두로, 해리호텔, 스튜어드호텔(이태호텔), 꼬레호텔, 오리엔탈호텔, 터미나스 호텔이다. 사실 이 중 해리호텔은 대불호텔의 초기 모습을 기록한 것으로 보여 지며, 나머지가 근방에 있었던 다른 호텔로 보여 지는데 그 존재기록이 상당히 짧은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 대불호텔만큼 호텔 중에서 가장 긴 명목을 이어왔던 호텔이 없었던 것이다.

안경과 안경집, 시계추가 고급스럽다. 대불호텔 전시관에서는 옛날 그 시절에 썼던 생활용품들을 보유하고 있어서 볼거리들이 굉장히 많다.
1880년대 당시의 사진기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대불호텔에서의 서비스가 상당히 서양식이기 때문에 벌어진 결과라는 추측이 많다. 때문에 가베(커피의 당시 이름)도 서비스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서양인들이 살기에 가장 불편함이 없는 문화를 갖고 있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실제로 대불호텔에 투숙했던 서양인들의 기록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서양 음식'에 대한 것이다. 당시 신문에 실린 상점의 판매목록 광고를 보면 제물포를 통해 커피를 비롯한 서양음식이 수입되어 유통되고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한 추정의 그림이 기록되어 있다.

수많은 여행객들이 묵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해외의 문화를 수용했을 대불호텔. 그리고 더욱 신기한 것은, 미국이나 영국의 시대물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연회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감시가 붙기도 했던 정보 교류의 현장, 대불호텔 연회장

객실을 다 구경하고 나면 그 끝에 넒은 공간의 연회장이 펼쳐져 있다
연회장의 대형스크린에서는 그 당시의 다양한 풍경들을 감상할 수 있다

 

서양식 호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큰 공간은 바로 '연회장'이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모두 나와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실제로 대불호텔은 당시 국제정세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교류되던 장소 중 하나였는데, 구한일본공사관의 기록과 통감부 문서를 보면 대불호텔의 이용객들의 동정을 관찰하고 보고했던 내용이 확인될 정도다.

그래서 '두 배 이상 높았던' 숙박이용금을 내고서라도 다양한 외교관, 선교사, 조선 정부의 고위 관리 및 외국군 장교들이 방문하는 높은 인기를 누렸던 것으로 보인다. 격변의 시기 속, 즐거운 웃음 뒤에 꽃핀 치열한 정보의 교류. 정말 그 시대의 이 공간에는, 공작관도 있고, 첩보원도 있지 않았을까? 위험한 상상을 해본다.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공간, 대불호텔

연회장 앞에 높여있는 가상피팅기. 가상으로 당시의 옷을 입어볼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이 가능하다
이 피팅기 앞에 서서 성별을 클릭하면 턱시도와 드레스 등 당시의 의복을 입어본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의복을 입고 연회장에서 연설을 하는 광경을 떠올려 본다, 레이디스 앤 젠틀맨, 이라는 말로 시작했을까?

 

현재 대불호텔은 충분히 마련되어있는 이러한 낭만성을 살려 2019년에는 보다 더 다양한 행사를 계획 중이라고 한다. 드넓은 연회장과, 호텔이라는 특성을 살린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는 것. 상상력을 자극하는 대불호텔, 아름다운 소품들과 충실한 재현으로 낭만성마저 자극하는 대불호텔, 이러한 공간에서 펼쳐질 대불호텔만의 특별한 행사를 기대해본다. 실제로 주위에 아트센터도 있고 다른 박물관들도 많으니 함께 들려 구경하고 즐기면서, 색다른 묘미를 즐기면 좋을 것이다.

참으로, 가을의 문화생활은 인천에서 즐겨봄직하다.

[위키리크스 한국=장보배 여행 칼럼니스트]

kd06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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