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인사이드] 매일 점심으로 같은 음식 만을 먹는다면?
[WIKI 인사이드] 매일 점심으로 같은 음식 만을 먹는다면?
  • 최석진 기자
  • 승인 2019.03.25 07:56
  • 수정 2019.03.25 0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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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은 내게는 별 의미가 없어요. 나는 매일 시저샐러드와 땅콩버터 젤리 샌드위치만 먹고도 충분히 만족합니다.”

미시간 주 웨스트 블룸필드에 사는 은퇴한 건축물 구조 설계사 번 루미스는 현역 시절 사무실에서 거의 같은 메뉴로만 점심을 먹었다. 다양한 과일과 야채들을 곁들인 땅콩버터 샌드위치와 디저트 음식들이었다. 그는 현역 시절 25년 동안 거의 매일 이 같은 점심을 먹은 것으로 기억한다.

시간이 흐르면서도 그의 식사에는, 은퇴 전 마지막 5년 정도에 샌드위치에 젤리가 추가되는 것 외에는 기본 메뉴는 변하지 않았다. 이 같은 점심은 준비하기도 편하고 저렴하고 맛도 있었다.

“책상에 앉아서 먹더라도 국물이 뚝뚝 떨어지는 일도 없이 깔끔한 메뉴였지요.”

루미스는 이렇게 말했다.

루미스는 작년에 은퇴했지만 점심 메뉴만은 변화가 거의 없다. 그는 지금도 일주일에 3~4일은 현역 때와 같은 식으로 점심을 먹는다. 다만, 지금은 젤리 대신에 바나나를 잘라 함께 먹는다.

“이 같은 점심 식사를 바꾼 적이 없어요. 지금도 같은 식으로 먹지요.”

루미스는 점심 메뉴를 바꾸지 않고 한 가지만 외골수로 고집해온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행동양식을 보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사람들의 식습관을 조사한 몇 안 되는 여론조사 중의 하나에 따르면 영국인들의 17% 정도는 2년 동안 매일 점심으로 같은 메뉴를 먹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다른 조사는 영국인의 1/3이 매일 같은 점심을 먹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 같은 식습관이 얼마나 보편적 현상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여론조사들이, 판에 박힌 식사 습관을 과장해서 탈출구를 유도하려는 식품회사들에 의해 수행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개월 또는 수년 동안 같은 메뉴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인터뷰를 통해 우연히 그들의 식습관이 드러난 유명인들도 있다. 대학 풋볼 코치들이나 피트니스클럽 체인점의 CEO들, 유명 방송인들, 패션 디자이너들, 학자들, CNN의 유명 앵커 앤더슨 쿠퍼 등이 그들이다.

어떻게 보면, 매일 같은 식사 메뉴를 고집하는 것은 눈길을 끄는 기벽(奇癖)이 아닐 수 없다. 창의력이 부족하다는 눈총을 받거나, 그도 아니면 직업적인 고집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러한 식습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건 간에 그 행위 자체가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식품·영양 산업과 관련한 몇 권의 책도 낸 바가 있는 미국 뉴욕 대학의 식품영양학과 마리온 네슬 교수는, 매일 같은 점심을 먹는 습관의 결과는 그 점심의 내용과 그 날의 다른 식사들의 내용들과의 차이에 좌우된다고 말한다.

“당신이 항상 먹는 점심이 다양한 영양분을 갖춘 건강식이라면 그냥 편한 마음으로 즐기면 됩니다.”

결국 이러한 식습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이 된다. 어쩌면 이러한 식습관에는 유익한 요소가 있을지도 모른다.

한 때 매일 같은 점심을 먹었던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의 행위를 영감(靈感)이 없는 식습관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 없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무엇보다 매일 같은 음식을 먹음으로써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버지니아 주의 뉴포트뉴스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일을 하는 아만다 레스퍼스(32)는 약 1년 정도를 점심으로 집에서 만든 샐러드 류로 먹은 적이 있다. 그 샐러드는 상추와 단백질, 그리고 드레싱으로 이뤄졌다.

그녀는 그러한 메뉴의 단순함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런 습관은 6년 전 그녀가 남편을 만나 동거를 하면서부터 끝이 났다. 그녀의 남편이 다양한 메뉴를 선호했던 것이다. 그녀가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같은 샐러드를 매일 먹고 있었을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물론이지요. 그렇게 먹으면 엄청나게 시간이 절약되지요.”

뉴욕시에서 사진 편집 일을 하는 샤를린 나이드하르트는 규칙적인 식사가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를 몸소 체감한 적이 있다. 약 10년 전 그녀는 직업을 바꾸게 되었는데, 새로운 직업이 주는 스트레스가 말이 아니었다.

“전화벨은 끊임없이 울리고, 사람들은 늘 고함을 치기 일쑤였어요.”

그녀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러는 중에도 그녀를 위로해주고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대상이 있었다. 그녀는 매일 점심시간만 되면 중국 면의 일종인 매콤한 라면, ‘탄탄면(tantanmen)’을 같은 가게에서 늘 먹었다. 그녀는 최소 6개월 동안 같은 점심을 먹었다. 그런 후 식사에 싫증이 날 때쯤 해서 새로운 일에 적응을 하게 되었다.

계속해서 같은 음식을 먹는 습관은 사람들이 뭘 먹을지 쉽게 결정하도록 해준다. 로스앤젤레스의 소매점에서 일을 하는 커리 리(28)는 식품 알레르기가 있는데, 같은 점심 메뉴를 고집함으로써 대처하고 있다. 그녀는 전 직장에 있을 동안 약 6개월 정도를 야간 근무 시에 오트밀(귀리)를 싸갔다.

그녀는 요즘 후무스와 아보카드, 아루굴라, 그리고 치즈가 들어있는 터키 샌드위치와 함께 글루텐이 들어있지 않은 빵을 늘 먹는다.

커리 리의 이러한 식습관은 단순히 그녀의 알레르기 때문에 생긴 결과는 아니다. 그녀는, 같은 음식만을 먹는 습관은 야채 쇼핑을 단순하게 해주고, 가끔가다 바쁘게 돌아가는 그녀 스케줄로부터 정신을 차릴 수 있게 해주며, 비싼 샐러드 가게를 이용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준다고, 말한다. 나아가 그녀는 자신이 싸가는 음식을 정말로 좋아한다.

“저는 매일 땅콩버터에 젤리가 첨가된 샌드위치 같은 음식을 먹지는 않아요. 제가 싸가는 식품이 구미가 당기는 음식이 되도록 애를 쓰고 있어요.”

뉴욕시에서 컴퓨터 엔지니어 일을 하고 있는 클로에 코타는 이 기사에 등장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식이요법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회사에서 제공하는 점심에 샐러드가 나올 경우 언제나 그 샐러드를 집어 든다. 그녀는 이 같은 선택을 ‘인지적 간접비(cognitive overhead)’를 줄이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인지적 간접비’를 줄인다는 말은 그녀가 우선순위로 두고 있지 않은 일에는 정신적인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양성은 내게는 별 의미가 없어요. 나는 매일 시저샐러드와 땅콩버터 젤리 샌드위치만 먹고도 충분히 만족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마찬가지로 그녀는 검은 레깅스와 티셔츠 차림의 규격화된 근무복을 고집하는데, 그 복장이 그녀의 아침 일과를 간소화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녀는 ‘인지적 간접비’를 줄인다는 아이디어를,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매일 입는 옷차림을 자동화한 스티브 잡스나 마크 주커버그 같은 아이티 선진 기업가들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한다.

 

클로에 코타는 또 샐러드 바는 그녀가 ‘먹는 명상(mindful eating)’을 실천하는 기회로 여긴다고 말한다. ‘먹는 명상’은 그녀가 고등학생 때부터 앓고 있는 섭식장애를 치료하는 일환으로 선택한 방법 중 하나이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매일 같은 메뉴를 만들기도 한다. 와이오밍 주 샤이엔에 사는 작가 암브레이아 페르난데스(26)는 그녀의 3살 난 아들을 위해 매일 저녁 야채를 곁들인 쌀밥과 고기를 만들어준다.

“어떤 음식을 해줄지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어서 좋아요.”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또, 그녀는 아들에게 점심으로 언제나 땅콩버터와 젤리가 든 샌드위치를 제공하는데, 아들도 별로 싫어하지 않는다.

물론, 매일 같은 메뉴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모두 자발적으로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주식을 선택하는 데 대부분 사람들은 항상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일 대학의 역사학자이자 「미국을 바꾼 레스토랑 10곳」이라는 책을 쓰기도 한 폴 프리드만은 이렇게 주장했다.

“쌀이 주식인 문화에 사는 사람들은 모든 식사에 밥을 먹을 것이며, 감자도 마찬가지 일 겁니다.”

음식의 다양성은 언제나 일종의 소스인 ‘렐리쉬(relishes)’에 달려있다고, 폴 프리드만 교수는 말한다. 식품인류학 용어인 ‘렐리쉬’는 양념이나 채소에 베이컨 같은 가벼운 육류가 첨가된 풍미가 나는 요소들을 가리킨다.

“이런 식으로 주식에 지방이 첨가되어 풍미를 돋우는 조리법은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섭식을 지배해온 조합입니다.”

뉴욕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연구 중인 크리쉬넨두 레이는, 음식 문화에서 새로움과 다양함을 추구하는 경향은 대단히 도시적인 것으로, 근세 들어 생긴 거의 포스트모던한 경향이라고 설명한다. 태곳적부터 이어져온 인류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다양한 먹거리를 찾는 경향이 오히려 비정상에 가깝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앞에 예를 든 미시간 주의 구조기술자 번 루미스는 매일 같은 메뉴로 점심을 먹는 자신을 놀리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을 한다.

“그 사람들은 그냥 가벼운 농담을 하는 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어쩌면 기름기 넘치는 건강하지 못한 햄버거 같은 것으로 식사를 하거나, 밖에 나가서 점심에 15달러를 소비하는 자신들을 질책하는 소리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점심에 들이는 비용은 80센트면 족하거든요.”

그는 이렇게 말을 끝냈다.

“질투지요. 저는 그게 질투라고 봅니다.”

[위키리크스한국=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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