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50) 전두환, "민주화 약속 이행하라"는 주한미대사 요구에 ‘발톱 숨기다’
청와대-백악관 X파일(50) 전두환, "민주화 약속 이행하라"는 주한미대사 요구에 ‘발톱 숨기다’
  • 특별취재팀
  • 승인 2019.04.01 09:00
  • 수정 2019.04.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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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백악관 x파일
한-미 정치 40년 비사 <청와대-백악관 X파일>

전두환이 국보위를 통해 정권을 장악해가는 동안 미국은 손을 놓고 바라볼 수도, 그렇다고 적극 상황에 개입하기도 곤란한 입장에 놓이게 됐다.

한국 내 상황을 방치할 경우 민주주의가 후퇴할 것이고, 적극 개입하기 시작한다면 신군부가 민족주의 감정을 부추길 것이기 때문이었다. 백악관과 국무부는 이 같은 상황을 놓고 숙의를 거듭했다.

1980년 6월 4일. 윌리엄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만났다.

이 만남에는 브루스터 CIA 한국지부장이 배석했다. 이날 자리에 앞서 머스키 국무장관은 대사에게 ‘훈계가 아닌 질의’에 치중하라는 훈령을 내렸다.
이 때문에 언쟁 수준으로 치닫던 종전과 달리 이날 대화는 한결 부드럽게 진행됐다. 글라이스틴은 훗날 “전두환 장군은 이전에 그를 만났을 때보다 한결 긴장이 풀린 듯했으며 답변을 교묘히

회피하고 정치적으로 한층 성숙해 보였다”고 술회했다.

대사는 미국의 방위 공약 준수는 계속되겠지만, 서울의 학생시위, 비상계엄 선포, 광주 비극, 국보위와 상임위 설치 등 민주발전에 역행하는 사태에 유감을 표시했다.

전두환은 장황한 답변을 통해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했다. 그러나 자신의 정치 활동에 대해서는 분명한 태도 표명을 꺼렸다.
다음은 대사와 전두환의 발언을 재구성한 것이다.

▷ 미국에 약속한 정치 일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요? (글라이스틴)

- 대사도 아시다시피 정치 문제는 최규하 대통령의 영역입니다. 사견을 말하자면, 국회와 정당은 헌법개정과 새로운 정부 구성에 일익을 담당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차기 대통령은 국민들의 여론도 있고 해서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해야겠지만 나 자신은 선거인단을 통한 간접선거를 선호합니다. (전두환)

▷ 계엄령은 언제 해제하실 생각입니까? (글라이스틴)

- 계엄령의 해제 시기에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계엄령 하에서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반대 이유가 타당하다는 점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국론분열과 안보문제 때문에 계엄령 하에서 투표가 실시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전두환)

▷ 김대중과 정치인, 기업인들에 대해 탄압하는 것에 미국은 반대합니다. (글라이스틴)

- 기업인에 대한 공격 자제와 체포된 인사들에 대한 공정하고 인도적인 처우는 약속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김대중은 다릅니다. 김대중과 그 추종자들은 정부전복 음모, 사실상의 쿠데타를 꾀했습니다. 그들은 관련법에 따라 심판 받을 것입니다. 김대중의 뿌리는 철저히 분쇄시킬 겁니다. (전두환)

▷ 김대중을 조속히 법정에 세워져 공정히 심판 받을 것이라는 정부 발표를 못믿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처우는 조심스러워야 할 것입니다. 광주사태의 경우 북한의 무장간첩남파에 대비해 특수전 훈련을 받은 특전사 병력을 남한 내 시위 진압에 동원한 것은 잘못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철저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글라이스틴)

- 광주사태 진압에 참여한 일부 군인들이 과격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불가피했다는 점을 대사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전두환)

▷ 정권을 장악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이전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글라이스틴)

-  정치에 관여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군은 본연의 임무에 결국은 복귀할 것입니다. (전두환) 

글라이스틴 대사가 전두환을 만나는 드라마의 한 장면 [MBC 캡쳐]
글라이스틴 대사가 전두환을 만나는 드라마의 한 장면 [MBC 캡쳐]

글라이스틴은 전두환 면담 후 워싱턴에 보낸 보고서에서 “전두환이 장차 두드러진 정치적 역할을 맡으려 하는 것 같다. 처음에는 쇼군으로 시작해 선출된 천황이 됐다가 결국은 천황의 자리를 맡으려 할지도 모른다”라고 전했다.

그로부터 약 2주 후 머스키 국무장관은 카터 대통령에게 한국의 사태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6월 26일 전두환을 다시 만났다. 그는 지난 번 만났을 때 전두환이 밝힌 내용들과 관련해 미국의 견해를 재차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미국의 입장을 차근차근 읽었다.

그것은 미국의 견해를 요약한 것이었다.

-한국의 진정한 안정은 강압적인 수단이 아닌 헌법에 기초한 능률적인 정부와 선출을 향한 뚜렷한 정치발전에 의해 이룩될 수 있다.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 미군 주둔을 위한 미국민과 의회의 지지 약화는 물론 국제 경제사회의 신뢰를 위태롭게 할 가능성이 있다.

-계엄령 하에서 치러지는 헌법 국민투표는 국내외적으로 인정을 받기 힘들 것이다.

-반미감정 선동은 극히 위험한 행위이고, 특히 김대중 재판을 예의 주시할 것이며 그를 고문하거나 처형하면 양국관계에 ‘심각하고도 타격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한국에 대해 미국식 청사진을 강요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의 최대 관심사는 그 틀이 한국 국민 대다수가 받아들이는 것이라야 한다는 점이었다.

전두환은 ‘반미감정’을 언급한 대사의 설명에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전체 회담시간 내내 태연한 모습을 보이던 그가 평정을 잃은 듯 비쳐졌다. 그는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지만 설득력은 없었다.

반미감정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진보적인 인사들 사이에 과장돼 있었고 군을 포함해 보수세력 사이에는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두환은 질서만 유지될 수 있다면 한국의 ‘민주화’ 목표는 변함없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그는 헌법 국민투표 이전에 계엄령 해제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한국에 대한 지원조건으로 삼지는 말 것을 주장했다.

대사는 전두환 면담 후 워싱턴에 보낸 보고서에서 ‘전두환은 야망과 편협한 신념에 사로잡힌 강경한 권위주의적 인물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국민들과 주변 세상의 복잡성을 과소평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가 대한민국을 성공적으로 통치할 만큼 충분한 식견을 갖추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특별취재팀= 이가영, 강혜원,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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