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운송업계 큰 별 지다…파란만장했던 조양호 회장의 삶
항공운송업계 큰 별 지다…파란만장했던 조양호 회장의 삶
  • 문수호 기자
  • 승인 2019.04.08 10:06
  • 수정 2019.04.08 09: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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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타계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연합뉴스]
8일 타계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연합뉴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8일 미국 현지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그가 45년간 근무하며 일군 대한항공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이하며 166대의 항공기를 가진 국내 최고의 글로벌 항공운수업체로 거듭났다. 대한항공은 현재 44개국 124개 도시를 연결하는 아시아 최대 항공사 중 하나로 성장했다.

1969년 민영화 당시 보유항공기 8대로 출발한 대한항공은 1969년 당시 주 6회 운항하며 70만명의 여객수를 기록했지만, 현재 여객 운항횟수 주 922회와 연간 2682만명의 여객과 화물을 수송하는 글로벌 항공사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대한항공의 지속적인 성장은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발자취와 역사를 같이 한다. 1949년 인천에서 태어난 조양호 회장은 1964년 경복고등학교에 입학해 1968년 미국 Cushing Academy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5년 인하대 공과대학 공업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1974년 12월 대한항공에 입사하며 항공업계에 첫 발을 들여놓았다

이후 조 회장은 45년간 항공운송사업 외길을 걸어오며 국내·외를 통틀어 최고 권위의 항공운송 전문가로 거듭났다.

45년간의 경력을 쌓은 전문 경영인답게 정비, 자재, 기획, IT, 영업 등 항공 업무에 필요한 전 부서들을 두루 거친 경험으로, 전문성을 겸비한 리더십과 결단력은 조양호 회장을 국제 항공업계에서 글로벌 리더로 우뚝 서게 한 원동력이 됐다.

지난 1992년 입사 18년 만에 대한항공 사장직에 오른 조 회장은 1996년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집행위원회 위원에 선정되며 국내 항공업계 위상을 높였다. 1999년 대한항공 회장직에 올랐으며, 2014년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전략정책위원회 위원에 선정되며 최근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2016년 IATA 총회에 참석한 조양호 회장 [사진=대한항공]
2016년 IATA 총회에 참석한 조양호 회장 [사진=대한항공]


◇ 글로벌 항공업계서 대한민국 항공산업 위상 높여

조양호 회장은 세계 항공업계에 폭넓은 인맥을 갖추고 해박한 실무지식으로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스카이팀 등 국제 항공업계를 주도했다.

조 회장은 세계 항공업계에서 다진 식견을 바탕으로 스카이팀 창설을 주도한 바 있고, 이는 대한항공이 글로벌 항공사로 도약해 나가는데 밑거름이 됐다. 특히 아시아 지역 항공사들을 스카이팀 회원사로 영입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으며, 신규 스카이팀 회원사들을 위해 업무 표준화와 기술 자문을 통해 스카이팀 멘토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또 전 세계 120개국 287개 민간 항공사들이 회원인 국제협력기구인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특히 IATA 최고 정책 심의 및 의결기구인 집행위원회(BOG, Board of Governors) 위원이자, 31명의 집행위원회 위원 중 별도 선출된 11명의 전략정책위원회(SPC, Strategy and Policy Committee) 위원으로서 IATA의 주요 전략 및 세부 정책 방향, 연간 예산, 회원사 자격 등의 굵직한 결정을 주도해왔다.

올해 사상 최초로 서울에서 개최되는 IATA 연차총회 역시 조양호 회장의 역할이 컸다. IATA는 명실공히 ‘항공업계의 UN 회의’라 불리는 항공업계 최대 협력기구다.

스카이팀 창설 당시 조양호 회장 [사진=대한항공]
스카이팀 창설 당시 조양호 회장 [사진=대한항공]


◇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은 조양호 회장

조양호 회장이 처음 대한항공에 발을 들인 1974년은 1차 오일쇼크로 전 세계 항공사들이 어려움을 겪던 시절이었다. 특히 1978~1980년에 일어난 2차 오일쇼크의 여파는 상당했다. 연료비 부담으로 미국 최대 항공사였던 팬암과 유나이티드항공은 수천명의 직원을 감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양호 회장은 선친인 조중훈 창업주와 함께 전사적 원가절감과 함께 시설과 장비 가동률은 높이는 전술을 구사했다. 오히려 항공기 구매를 늘리며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이 당시 결단은 오일쇼크 이후 새로운 기회로 떠오른 중동 수요 확보 및 노선 진출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97년 IMF라는 최고 외환위기에서도 남다른 리더십을 발휘했다. 외환위기 당시 대한항공 운영 항공기 112대 중 임차기는 14대로 대부분이 자체 소유 항공기였다. 이를 매각 후 재임차 등을 통해 유동성 위기에 대처했다.

또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보잉737NG(Next Generation) 주력 모델인 보잉737-800 및 보잉737-900 기종 27대 구매계약을 체결한 것도 주목할 만한 결정이었다. 보잉은 감사의 뜻으로 계약금을 줄이고, 금융까지 대한항공에 유리하게 주선했다.

차세대 항공기 도입 결정 역시 조 회장의 결정이 큰 역할을 했다. 2003년은 이라크 전쟁, SARS 뿐만 아니라 9.11 테러의 영향이 아직까지 남아있어 세계 항공산업이 침체의 늪에 빠진 시기였다. 하지만 조양호 회장은 이 시기를 차세대 항공기 도입의 기회로 보고, A380 항공기 등의 구매계약을 맺었다.

2006년 이후 세계 항공시장은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글로벌 항공사들의 차세대 항공기를 주문이 급증했다. 대한항공은 선 주문으로 적기에 차세대 항공기를 도입하며, 글로벌 항공사로서의 위상을 높일 수 있었다.

레종도뇌르수훈상을 받는 조양호 회장 [사진=대한항공]
레종도뇌르수훈상을 받는 조양호 회장 [사진=대한항공]

 

◇ 책임과 원칙을 중시한 열정적 기업가

조 회장은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토대로 몸을 아끼지 않고 열정을 쏟았지만, 만사가 평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진해운은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경영인들의 잇따른 오판으로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했다. 이에 조양호 회장은 한진해운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2013년부터 구원투수로 나서 1조원이 넘는 자금을 지원했다.

또한 조 회장은 한진해운을 살리기 위해 2014년 한진해운 회장직에 오르고, 2016년 자율협약 신청 이후 사재도 출연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전방위 노력은 채권단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결국 한진해운은 2016년 법정관리에 이어 2017년 청산됐다. 육∙해∙공 글로벌 물류 전문 기업의 한 축이 무너진 것이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에서 부당한 외압에 의해 타의로 물러난 것도 마찬가지다. 조 회장은 정부로부터 “물러나 주셔야겠다”는 사퇴 압력을 받고 2016년 5월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올림픽을 위해 일하는 직원들을 걱정했다. 조 회장은 조직위에 파견된 한진그룹 직원들에게 e메일을 보내 “외부 환경에 한 치의 동요도 없이 당당하고 소신껏 행동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올해 조 회장은 대한항공 정기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했다. 국민연금이 절차 논란 속에서 연임을 반대했고, 일부 시민단체에서도 연임 반대를 위해 조 회장을 흔들었다. 대한항공이 14분기 연속 영업흑자를 기록하는 등,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창출하고 있는 가운데 내려진 안타까운 결과였다.


◇ 순탄치 않은 조양호 회장의 마지막

조양호 회장은 올해 향년 70세의 나이에 별세했다. 70세는 과거와 달리 한창 일할 수 있는 연령대다. 재계에는 7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기업 오너들을 찾아볼 수 있다.

조양호 회장은 대한항공을 글로벌 항공사로 키운 것과 달리 안타까운 가족사로 가슴앓이를 했다. 큰딸 조현아씨는 유명한 ‘땅콩 회항’이라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으며, 둘째 딸 조현민씨 역시 지난해 ‘물컵 갑질’이라는 이슈로 조 회장의 위상을 흔들었다.

또한 부인 이명희 일우재단 전 이사장 역시 갑질 물의를 일으키는 등 순탄치 않은 가족사로 인해 그가 평생을 일궈온 회사 내에서 입지가 흔들렸다.

급기야 올해 3월에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64.1%의 지지표를 얻는 데 그쳐 간발의 차로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하는 등 대한항공 대표이사직에서 자의가 아닌 타의로 내려오게 되는 불상사를 맞았다.

대한항공이 14분기 연속 영업흑자를 기록하는 등,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창출하고 있는 가운데 내려진 안타까운 결과였다.

조 회장은 시스템 경영론으로 유명하다. 최고경영자는 시스템을 잘 만들고 원활하게 돌아가게끔 하고 모든 사람들이 각자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율을 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조 회장은 또한 절대 안전을 지상 목표로 하는 수송업에 있어 필수적 요소이고 고객과의 접점이 이루어지는 곳이 현장임을 강조하며, 항상 고객중심 경영에 중점을 뒀다. 그의 순탄치 못한 가족사만이 살아생전 유일한 안타까움으로 남게 됐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약력

-1949년 인천 출생
-1964년 경복고등학교 입학, 1968년 美 Cushing Academy 고등학교 졸업, 1975년 인하대 공과대학 공업경영학과 학사, 1979년 美 남가주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1988년 인하대 경영학 박사, 1998년 Embry Riddle 항공대학 항공경영학 명예박사, 2006년 우크라이나 국립항공대학 항공경영학 명예박사
-1974년 대한항공 입사
-1984년 정석기업 사장
-1989년 한진정보통신 사장
-1992년 대한항공 사장
-1995년 아일랜드 명예총영사
-1995년 한국항공대학(정석학원) 이사장
-1996년 한진그룹 부회장
-1996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1996년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1996년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집행위원회 위원
-1997년 美 남가주대 재단이사
-1999년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1999년 대한항공 회장
-2000년 한/불 최고경영자 클럽 회장
-2003년 한진그룹 회장
-2004년 한국방위산업진흥회 회장
-2008년 한·사우디 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
-2008년 대한탁구협회 회장
-2009년 대한체육회 이사
-2009년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위원장
-2009년 아시아탁구연합(ATTU) 부회장
-2010년 PEACE AND SPORT 대사
-2010년 대한체육회 부회장
-2014년 한불상호교류의해 조직위원장
-2014년 한진해운 대표이사 회장
-2014년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전략정책위원회 위원
-2014년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장

[위키리크스한국=문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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