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56) 한-미 ‘동상이몽’... 미국 “정치자유화” VS 전두환정권 “안보공약”
청와대-백악관 X파일(56) 한-미 ‘동상이몽’... 미국 “정치자유화” VS 전두환정권 “안보공약”
  • 특별취재팀
  • 승인 2019.06.24 18:32
  • 수정 2019.07.08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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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백악관 x파일
한-미 정치 40년 비사 '청와대 백악관 X파일'

전두환 대통령을 예방한 글라이스틴 대사는 “미국이 새 정부를 정치적 현실로 받아들이고 함께 일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보적인 입장도 빼놓지 않았다. 미국이 전두환 정부를 판단할 기준은 새로운 헌법의 성격과 한국 국민들이 그 헌법을 평가할 수 있는 자유의 정도, 새로운 선거의 실시, 그리고 김대중 사건의 처리에 달려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글라이스틴 디사는 새로운 내각 진용, 특히 국민들의 신망이 높은 남덕우를 총리로 발탁한 것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전두환은 카터 대통령이 자신의 사적인 관심사를 빨리 전해온 것과 대사가 솔직히 견해를 밝혀준 것에 감사한 마음을 표했다. 그는 미국과의 유대지속과 증진을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하면서 자신의 정부를 판단하기 전 ‘참고 기다려 줄 것’을 요청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두환의 대답이 간결 명료한 것에 놀랐지만 과거 대사가 발언할 때마다 사사건건 이의를 제기하던 것보다 한결 능숙해졌음에 놀랐다.

대사는 면담 결과를 워싱턴에 보고하면서 ‘전두환은 습득 속도가 빠른 인물’이라고 평가하고 ‘그가 자신의 청와대 후견자였던 박정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편안하고 만족해 하는 것 같다’고 기록했다.

전두환은 9월 8일 카터 서한에 대한 답신에서 ‘신헌법에 의해 선거를 치르기 전에 계엄령을 해제하겠다’고 약속했다.

언론에 보도된 두 정부의 태도는 판이했다. 미국은 ‘정치 자유화’에 역점을 둔 반면 한국은 ‘카터의 안보공약 재확인’에 초점을 두었다.

미국 측은 청와대 보좌관들에게 “양 국가원수의 서한 일부를 공개하자”고 제안했으나, 청와대측은 이를 거절했다.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제로 미국정책에 관한 뉴스는 지속적으로 왜곡됐지만 한국의 많은지식인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미국의 정책을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주한미군 방송과 미 대사관은 한국 내에서 미국의 정책을 담은 자료들을 활발히 배포했다.

주한미대사관은 본국의 훈령에 따라 전 대통령과 그의 보좌관들을 자주 만나 신헌법이 폭넓은 의견을 수렴할 것과 여러 후보의 경선에 의한 보통선거 실시, 통상적인 정치활동의 재개가 가능하도록 국회를 소집할 것, 국민투표와 대통령 선거 이전에 계엄령을 해제할 것, 언론검열의 완화, 김대중을 처형하지 말 것, 정치범과 정치적 구금자의 복권 등을 촉구했다.

대사관은 워싱턴과 서울에서 한국의 군부 및 민간 지도자들과의 고위 접촉을 통해 이러한 외교적 요구사항들을 조직적으로 강조했다.

그러나 실질적 내용면으로 판단해 볼 때 이런 미국의 지속적인 압력은 그 이전 12·12사태 당시의 파장을 줄이기 위해 미국이 폈던 노력보다 한계가 많았다.

대통령 취임식장의 전두환 부부 [연합뉴스 자료사진]
대통령 취임식장의 전두환 부부 [연합뉴스 자료사진]

첫째, 전두환은 한국의 안보와 경제적 생존에 관한 미국의 공약을 사실상 걱정하지 않았다.

12·12 사태 때도 그 믿음이 확고했던 그는 광주의 위기를 무사히 넘겼을 뿐 아니라 미국이 기본적인 안보 및 경제 관계는 손상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둘째, 그는 카터 행정부가 김대중의 구명을 최우선시한다는 것을 곧 알게 됐다.

그가 김대중의 운명을 놓고 미국 정부로 하여금 조바심 나게 하면서도 희망적인 생각을 갖게 하는 한 그는 미국과의 관계를 심하게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통치문제를 자신의 생각대로 밀고 나갈 수 있었다.

셋째, 1980년 11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카터는 로널드 레이건에게 패배했고 전두환은 레이건의 보좌관 중 최소한 몇몇은 한국 정부의 국내 정치에 대해 카터보다 관심이 덜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 요인들 때문에 카터 정부의 교섭력은 약화됐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카터 정부가 미국의 정책 추진을 위해 강력한 군사적 혹은 경제적 제재수단을 동원할 수 없거나 그렇게 할 의사가 없었던 것으로 인해 제약을 받긴 했지만, 미 대사관과 국무부는 완전 합법정부로 인정받고자 하는 신정권의 열망을 이용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전두환은 한국의 동맹(미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으면 국내의 지지 획득과 국제사회의 인정 및 북한과의 경쟁이 훨씬 쉬워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 없이도 존속할 수는 있겠지만 큰 좌절과 냉대는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전두환의 입장에서 이상적인 성공의 상징은 미국 대통령과의 성공적인 정상회담이었다.

그러나 그와 그의 일파는 우선 각료급 인사들의 통상적인 교류의 재개를 열렬히 원했다.

군부로서는 오랜 시간 연기돼 온 안보협의회의를 미국이 추진할 용의가 있는가 여부가 시금석이었다.

[특별취재팀= 이가영, 최석진, 최정미 기자]

<참조 문서>
https://wikileaks.org/gifiles/docs/15/1556806_korea-assassination-history-.html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EOUL19088_e.html
http://timshorrock.com/documents/korea-the-cherokee-files-part-one/
https://www.38north.org/2017/10/tshorrock100317/
http://www.eroseffect.com/powerpoints/NeoliberalismGwangju.pdf
https://kr.usembassy.gov/wp-content/uploads/sites/75/2017/05/The-Kwangju-Incident.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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