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정의 외교 프리즘] '반일(反日) 기자', 지소미아 연장을 외치다
[조문정의 외교 프리즘] '반일(反日) 기자', 지소미아 연장을 외치다
  • 조문정 기자
  • 승인 2019.08.07 10:02
  • 수정 2019.08.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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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제품 불매운동 참가 사연 등을 밝히는 '일본대사관 앞 시민 촛불 발언대'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5일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제품 불매운동 참가 사연 등을 밝히는 '일본대사관 앞 시민 촛불 발언대'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일 갈등이 불거지기 전까지만 해도 기자의 별명은 '반일(反日) 인사'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일본 여행을 같이 가주지 않아서', '일본 영화를 보러 같이 가주지 않아서', '일본어 학원을 같이 다녀주지 않아서'다.

하지만 지난달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이제 그렇게 불러주지 않았다. 그들의 '애국심'에 기자가 부응하지 못한 탓이다. 친구들은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불매운동은 하겠다'며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기자의 동의를 구했다. 순간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과 '갑분싸(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짐)' 사이에서 갈등하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해버렸다.

아이러니하다. 그들 중에는 학부 때 함께 국제법을 공부했던 이들도 있었고 현역 변호사도 있었다. '죽창가'를 부르며 '국채보상운동'을 부르짖는 듯한 옛 친구들의 모습이 낯설었다. 애국심과 정의감 앞에서 법적 상식은 이미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 앞에서 우리 모두 유죄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12위 경제대국(GDP 기준)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라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청구권자금(무상 3억 달러·유상 2억 달러)을 쏟아부은 결과물이다. 당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받았어야 할 청구권자금이 한국도로공사·코레일·포스코·한국전력공사, 경부고속도로, 소양강 댐 등에 들어가지 않았던가.

더욱이 청구권협상 당시 (무슨 꿍꿍이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 개인에게 직접 보상하겠다고 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로부터 직접 피해배상금을 받아 국내적으로 배상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일본은 '한일합방'이 합법이라고 주장하며 '배상'이라는 표현을 피하려 했고, 한국은 '한일합방'이 불법이므로 '보상'이라는 표현을 피하려 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희생을 발판삼아 경제성장의 혜택을 누린 우리 모두 유구무언(有口無言)이다. 물론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해 외국으로부터 받은 피해보상금을 국내적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개인과 국적국 간의 국내법적 문제인 것은 맞다. 또한, 자국민이 입은 피해는 국가의 피해이므로 국가가 그 피해에 대해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자국민이 피해를 봤더라도 국가가 아무런 청구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지난 5일 우리 대통령이 '(일본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언급할 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청구권협정 제2조에서 한일 양국은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제 와서 이럴 바에는 그때 그런 합의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당장의 경제성장은 미루더라도 만족할 만한 수준의 배상금을 집요하게 요구했어야 했다. 그 돈을 경제개발에 쓰지 말고 피해자 개인에게 드렸어야 했다. 법대 출신인 대통령이, 사법연수원 차석 졸업자인 대통령이, 인권변호사였던 대통령이 한일 청구권협상의 역사를 몰랐을 리 만무하다.

우리 정부의 대응이 더욱더 아쉬운 이유다. '적절한 대응을 하라'는 일본 정부의 요구에 우리 정부는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사법부의 판결에 대해 행정부가 개입하기 어렵다'고 일관해왔다. 그런데 한일 청구권협정은 우리 헌법에 따라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니며, 국내법과 국제법의 관계는 칼로 무 자르듯 뚝딱 나눌 수 없다. 헌법 제6조 제1항은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행정부의 조치, 입법부의 입법행위, 사법부의 최종판결 모두 '국가 행위(state action)'이며, 국가가 조약상 의무를 위반해 타방 당사국의 권리를 침해하면 국제법상 국가책임(state responsibility)이 발생한다.

우리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재검토할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놨다.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따른 반발로 일본 정부가 한국산 반도체 핵심소재 3개 품목에 대해 수출규제를 가하고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겠다고 발표한 데 대한 대응이다.

지금은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 "남북 간의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며 반일 감정을 부추기고 '우리 민족끼리'를 외칠 때가 아니다. 북한은 최근 연달아, 심지어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그다음 날에도 단거리탄도미사일(일부는 신형 방사포)을 빵빵 쏘아 올렸다. 재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미국 본토에 영향을 주지 않으므로) 전혀 언짢지 않다"며 '정신승리' 중이다. 단거리 탄도미사일 사정권 안에 있는 우리까지 '정신승리’해서는 안 된다.

지소미아(GSOMIA)를 파기하면 한일 양국 모두에 손해다. 양국은 그동안 인적정보(HUMINT·휴민트), 통신정보(COMINT·코민트), 영상정보(IMINT·이민트), 신호감청정보(SIGINT·시긴트) 등으로 확보한 대북정보를 지소미아를 통해 교환했다. 한국의 강점은 탈북자 등을 중심으로 하는 휴민트(인적 정보)와 지리 정보다. 일본의 강점은 정찰위성 6기, 탄도미사일을 탐지하는 이지스함 6척, 탐지거리 1000km 이상 지상감시레이더 4기, 공중조기경보기 17대, P-3와 P-1 등 해상초계기 110여 대 등으로 확보한 우수한 기술적 정찰능력이다. 둘 중 하나가 없다면 반쪽짜리 정보에 불과하다.

북한 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5일 "지소미아는 궁지에 몰린 남조선 친일역적들과 재침략에 들뜬 일본 반동들의 공모결탁으로 세상에 나온 매국협정"이라며 "한반도 재침략의 징검다리인 지소미아는 시급히 폐기돼야 한다"고 했다. 북한이 이토록 강력히 지소미아 폐기를 주장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정부의 기조에 발맞춰 '기승전 북(北)'과 '반일(反日)'을 외치지는 못하겠다. 죽창에 찔리더라도 바른말은 해야겠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우리의 국익을 위해 한·미·일 3각협력이 필요한 때다.

[사진=위키리크스한국 조문정 통일외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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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한국=조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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