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마치 가축처럼... 20세기 초 미국 우량아 선발대회의 부끄러운 얼굴
[WIKI 프리즘] 마치 가축처럼... 20세기 초 미국 우량아 선발대회의 부끄러운 얼굴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0.05.31 06:50
  • 수정 2020.05.3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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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우량아 선발대회에 참가한 아기들(National Media Museum)
1938년 우량아 선발대회에 참가한 아기들(National Media Museum)

20세기 미국의 농산물 박람회를 찾은 관람객들은 최우수상을 수상한 가축이나 거대한 작물이나 맛있는 파이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그리고 그들의 관람 대상에는 어린 아기들도 있었다.

이른바 ‘우량아 선발대회’라는 행사를 통해 심사위원들은 아기들을 육체적·정신적 건강 상태를 기준으로 심사해서 등급을 매겼다. 그런 다음 선발된 아기들의 부모들에게 포상을 지급했다.

이러한 행사의 목적은 젊은 부모들에게 아기의 건강을 일깨우고 좋은 위생 상태를 유지하도록 권고하는 데 있었지만 경쟁 과정에서 부정적인 요소들이 드러나기도 했다. 심사위원들이 우생학이라는 인종주의 원리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우량아 선발대회가 점점 사람들의 인기를 끌게 되자 심사위원들은 아기들을 심사하는 것으로는 부족해서 전체 가족 구성원들을 심사하곤 했다.

우량아 선발대회의 운영 방식

1908년 루이지애나 농업 박람회에서 우량아 선발대회가 최초로 열렸다.

1913년의 한 신문 기사는 우량아가 되려는 아기들의 경쟁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의사들은 가축 심사위원들이 소를 심사하는 방식과 똑같이 아기를 심사한다. …… 먼저 기준을 설정한 다음 각 출전자들이나 표본을 100% 상태 또는 완벽한 제품과 비교한다.’

심사를 위해 아기들을 일렬로 줄을 세운 다음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아이들을 검사하고 측정치를 기록했다. 측정 항목에는 아기들의 키와 가슴둘레, 그리고 지적 능력이 들어있었다. 이 과정에서 낯을 많이 가리는 아기들은 감점을 받기도 했다.

심사위원들은 1000점을 만점으로 700점은 아기의 겉모습에, 200점은 정신적·심리적 적합성에, 나머지 100점은 육체적 능력에 할당했다.

최종적으로 우승한 아기들에게는 ‘과학적 우량아’라는 호칭을 부여하고 은제 트로피를 시상했다.

이러한 우량아 열풍은 아동 복지를 주창했던 메리 디가모라는 간호사에 의해 시작되었다. 디가모는 아기들의 건강과 위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루이지애나의 한 의사와 공동으로 아기들의 채점표를 개발해서 엄마들이 육아에 활용하도록 했다.

이러한 운동은 부모들의 호응을 얻어 빠르게 전파되었다. 1910년대 발간된 「여성의 가정 동반자(Woman’s Home Companion)」라는 잡지는 전국적인 채점표를 출간하고, 이 분야에서 경쟁을 전담하는 부서를 운영하였다.

그러나 이 잡지도 밝혔듯이 이 운동의 배경에는 ‘의미심장한 과학적 의도가 숨어있었다. 즉, 건강한 아기, 표준화된 아기, 그리고 해마다 더 나은 아기’라는 슬로건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쉘비 카운티에서 개최되었던 우량아 선발대회 모습(Library of Congress)
쉘비 카운티에서 개최되었던 우량아 선발대회 모습(Library of Congress)

20세기 미국 아동 복지의 실상

우량아 경쟁은, 선발 과정에 불순한 의도가 개입되기는 했지만, 당시의 국민 건강 개선을 위해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20세기 초 미국 영아 사망률은 여전히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100명 중 1명이 한 돌이 되기 전에 사망했다.

보건의료 전문가들과 해당 분야 공무원들은 아동들의 건강을 증진시킬 방법을 찾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으며, 시민들도 이 운동에 동참했다.

정기적인 건강검진이 미비하던 시절 우량아 선발대회는 전국적으로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아동들의 복지 상태와 건강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선발대회가 열리던 초창기에는 저조한 점수를 받은 부모들에게는 아기들의 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이 적힌 팸플릿이 교부되었다. 또, 이 시기에는 생후 6개월에서 4살까지의 아동들만이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더 나이가 든 아동들이 참가하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성인들도 심사 대상이 되었다.

메리 디가모는 이러한 선발대회를 통해 아기들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유전적 적합도까지 밝힐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녀는 이렇게 설명했다. “‘혈통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는 이론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실제로 디가모는 유전적 적합도를 증진시키고 우량한 부모들이나 그녀의 조언을 충실히 따르는 부모들에게 보상을 하게 되면 국가의 유전자 구성(genetic stock)이 향상될 것으로 생각했다.

우량아 선발대회에서 우승한 아기, 윌리엄 찰스 플린(Library of Congress)
우량아 선발대회에서 우승한 아기, 윌리엄 찰스 플린(Library of Congress)

우량아 선발대회 뒤에 도사리고 있던 편견

우생학자들은 인간이 인위적 세대형성(selective breeding)을 통해 자손을 우량하게 개선할 수 있다고 믿었다. 가축의 품종개량이나 순종혈통의 개를 떠올리게 하는 주장이었다. 그들의 주장은 20세기 초 미국에 산업화가 가속화되고 이민자가 늘어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외국인 혐오 분위기에 편승할 때 큰 인기를 얻었다.

더 나은 자손을 생산하겠다는 인간의 욕망은 비난의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이론은 주로 인종주의자들과 식민주의자들의 산물이다. 백인 연구자들은 백인과 백인들의 유전자가 오염되지 않기 위해서는 종족의 숫자가 줄어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우생학자들이 저조한 지적능력과 가난은 대물림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사회는 이러한 집단의 숫자를 줄여할 책무가 있었다. 불행하게도 이 당시 가난하고, 영양이 결핍되고, 교육을 받지 못한 미국인들의 상당수는 유색인종과 새로운 이민자들이었다.

자연스럽게, 완벽한 인간은 백인이며, 백인으로 잘 교육받고, 부유한 계층이 계속 생산되어야한다는 사상이 우생학자들의 뒤를 이어 일어나게 되었다.

헬렌 켈러와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같은 미국의 저명한 사상가들 중 일부도 이러한 우생학 이론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실제로, 루스벨트 대통령은 한때 미국이 ‘불량한 종족들의 양육을 무한정 허락하고 있다’고 한탄한 적도 있었다.

우량한 종족을 생산해야한다는 사회적 욕구는 우량아 선발대회들의 불을 당겼다. 이러한 대회들을 통해 아이를 생산하는 우량한 가정(백인 가정)에 포상이 주어졌다. 우생학자들은, 우량아 선발대회들이 유전자의 건강을 측정할 수 있다며, 외모와 지적 능력, 그리고 심지어는 성격까지도 유전자와 연결시켰다.

그런 결과 우량아 선발대회들이 편견 없는 심사를 하고, 전국적으로 유아들의 건강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사회가 매겨놓은 우월성의 기준에 합당한 아기들에게만 우승의 기회가 돌아갔다. 즉, 도시 출신 중산층, 그리고 무엇보다 백인의 아기들만이 우승의 영예를 차지할 수 있었다.

메리 디가모는 타고난 형질과 영양 상태, 두 가지를 아동 건강의 필수요소로 보았다. 그녀는 ‘아동의 위생은 식생과 의복, 그리고 환경뿐만 아니라 좋은 핏줄을 타고나야한다’고 단언했다.

‘우량한 가족(Fitter Families)’ 선발대회 열풍

우량아 선발대회 열풍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모든 가정이 이에 참가하고 싶어했다. 1920년에는 캔자스 주가 ‘우량한 가족(Fitter Families)’ 선발대회에 첫발을 뗐다. 이 대회에 참가한 가정들은 핏줄의 우량함을 입증하기 위해 전체 가계의 혈통을 제출해야했다.

캔자스 주 엠포리아에서 발간되는 신문 ‘엠포리아 가제트(Emporia Gazette)’는 이러한 대회들은 ‘농업 혁명과 가축의 품종계량을 통해 잘 알려진 유전 원리와 과학적 관심사를 반영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한층 진화된 인간 가족이 생산될 것이다’라고 쓰기도 했다.

또 다른 캔자스의 언론은 이러한 시각의 폭을 더 넓혔다.

‘이렇게 진보된 주(캔자스)의 주민들은 우량한 가축을 개량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량한 시민들을 기르는 데 떨쳐 일어났다. 가축 개량에 탁월한 성과를 보인 유전학의 원리를 인류에게 적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농산물 박람회들은 선발대회를 개최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생학 부스를 만들어서 관람객들이 인위적 세대형성(selective breeding)에 대해 배워서, 실제 삶에 적용하도록 했다. 이러한 박람회들은 심지어는 미혼 관람객들을 대상으로는 우량한 아이를 생산하기 위해 유전적으로 우량한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을 교육하기도 했다.

우량아 선발대회에 참가한 가족들
우량아 선발대회에 참가한 가족들

우량아 선발대회의 파급효과

우량아 선발대회는 모두 아기들의 서열을 매기는 일 이상을 했다. 아기들에 대한 우량의 정의가, 유전자 때문에 백인들이 우월하다는 믿음과 불가분의 관련을 맺고 있어서 이러한 선발대회들은 편협한 사고방식을 정당화하고 보상해주는 역할만을 했다.

채점표는 인종주의자들이 바라는 바를 반영할 뿐이었다.

나아가 이러한 선발대회들에 깔려있는 사고방식은 연방 차원에서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동원되기도 했다. 실제로 미국은 1924년의 이민법을 통해 우생학 원칙에 입각해서 이민자들을 철저하게 제한했다. 캘빈 쿨리지 대통령은 ‘미국은 미국으로 남아야한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3년 뒤 미국 대법원은 정부가 ‘우량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여성을 대상으로 불임시술을 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우량하지 않은 여성들’에는 강간을 당한 가난한 정신지체 미혼여성들이 포함되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우량하지 않은’ 아기가 태어나서 복지제도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연방 정부가 각 주들에 생식을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던 것이다.

결국 미국의 우량아 선발대회는 20세기 초 미국에서 인종주의 정책을 탄생시켰던 같은 편견 하에 번져나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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