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같은 것은 다르게 다른 것은 같게' 김재형의 변주는 무죄
[WIKI 프리즘] '같은 것은 다르게 다른 것은 같게' 김재형의 변주는 무죄
  • 윤여진 기자
  • 승인 2020.09.01 19:12
  • 수정 2020.09.01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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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보 동산을 제3자에 처분했다면
대법원 다수 "단순한 채무불이행"
유일 반대 김재형 "등기하면 배임"
민유숙 "반대의견, 대법판례 반해"
대법, 지난 2월도 '배임 아님' 판단
지난 2017년 12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민유숙 당시 대법관 후보자. [사진=연합뉴스]
지난 2017년 12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민유숙 당시 대법관 후보자. [사진=연합뉴스]

"동일한 담보권 침해행위에 대하여 동일한 법적 평가가 내려져야 함은 당연하다"

은행대출 담보물인 공장기계를 제삼자에게 처분한 공장주를 형법상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온 지난달 27일. 12명 다수의견에 선 민유숙 대법관은 이 사건 주심 노태악 대법관과 함께 별도 보충의견을 써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본 반대(소수)의견 김재형 대법관을 비판했다. 지난 2월 20일 이미 전원합의체는 쟁점이 같은 사건에서 '배임 아님' 결론을 냈는데, 김 대법관 혼자서만 이번 사건이 그때와는 다른 사건이라고 고집을 부린다는 취지였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아리스토텔레스 법언(法言) '정의론'을 인용했다. 

김 대법관은 이 사건 반대의견에서 공장주는 동산(動産)인 기계를 담보하기로 등기한 순간 담보물 관리자가 되는 만큼, 배임죄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주장했다. 지난번 사건은 이같은 담보권 설정이 없고 단순히 담보를 약정한 상태서 제삼자에게 처분한 게 배임이 되는지 따진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김 대법관에게 담보권 설정은 채무자를 관리자로 바꾸는 변수다. 반면 다수의견은 담보물 보관은 계속해서 채무자 '자신의 사무'라고 봤다.  

다수의견 입장에선 '담보권 설정'은 너무나도 사소한 것이기에 대법관 몇몇만 나서 보충의견을 작성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보인다. 모양새를 고려해 주심인 노 대법관이 작성자로 나섰는데 의아한 건 민 대법관이 거들었다는 점이다. 그는 지난 2월 사건 때 이번 김 대법관처럼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주장한 유일한 대법관이었다. 그때와 지금이 쟁점이 같다고 말하면서도 정반대 결론을 내놓은 것이라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당시 김 대법관은 김선수 대법관과 함께 별개의견에서 '배임죄가 아닌 횡령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독특한 의견을 냈다. 동산 양도담보를 약정하면 공장기계 소유권이 은행에 넘어가는 것이나 다를 바 없어서 공장주는 횡령죄 주체인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된다는 얘기였다.  
 
소신을 바꿨다는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민 대법관이 포함된 '다수의견 보충의견'은 서두에서 "반대의견은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배치되어 보인다"고 적었다. 소신이 아닌 직전 대법원 판례를 따른 것이란 소극적인 고백이다. 여기엔 애초 이 사건이 대법관이 자유롭게 의견을 펼치는 전원합의체보단 기존 판례를 그대로 따르는 소부(小部)에서 심리하는 게 맞는다는 계산이 깔렸다. 같은 것을 다르게, 다른 것을 같게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인 까닭이다.  

실제 김 대법관과 민·노 대법관이 모두 대법원3부 소속이다. 동료 법관에게 고전 법언을 들으면서까지 김 대법관은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가져가고자 했다. 앞서 2월 사건에서 '배임 아님' 의견이 10명에 달했다는 걸 생각하면 승산이 없는 행동이다. 다만 무언가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결심이었을까. 이번 사건 판결문 24쪽 가운데 김 대법관이 기록한 반대의견 분량은 절반을 넘는 15쪽이다. 2년 가량 남은 본인 임기 내 배임죄에 관한 거의 마지막 전원합의체 사건이라 여겼는지 그는 판결문 곳곳에서 과거 독자적으로 남긴 자기 판결을 여럿 인용했다. 마치 자기논문을 집대성해 교과서를 낸 것 같은 법학교수 출신 대법관, '김재형스러운' 선택이다.

지난 2016년 8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김재형 당시 대법관 후보자. [사진=연합뉴스]
지난 2016년 8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김재형 당시 대법관 후보자. [사진=연합뉴스]

◇ 부동산 이중매매는 배임일까
김 대법관이 반대의견에서 "배임죄의 성립 여부에 관하여 최근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몇 차례 별개의견이나 보충의견의 형태로 의견을 개진하였"다며 이번 주장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님을 밝혔다. 민·노 대법관 말처럼 같은 것을 다르게 판단해오지 않았다는 반박이다. 

공교롭게도 김 대법관은 본인이 인용한 판례 중 지난 2018년 5월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부동산 이중매매는 배임'이라는 다수의견에 합류해 반대의견으로부터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루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당시 쟁점은 매수인으로부터 상가건물 중도금을 받은 매도인이 제삼자에게 처분한 행위를 배임으로 볼 수 있는지였다. 다수의견은 "중도금이 지급되는 등 계약이 본격적으로 이행되는 단계에 이른 때에는 계약이 취소되거나 해제되지 않는 한 매도인은 매수인에게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해줄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계약금에 이어 중도금을 지급받은 매도인은 타인의 사무인 '매수인의 소유권 취득 사무'를 처리해야 하는 의무가 생겨 배임죄가 성립한다는 설명이다. 

당시 주심 김신 대법관은 "동산 이중매매와 부동산 대물변제예약사안에서 매도인 또는 채무자에 대하여 배임죄의 성립을 부정하는 대법원 판례 흐름과도 맞지 않는 것"이라는 반대의견을 작성했다. 이때 의견을 같이한 다른 대법관 4명 중엔 올해 두 차례 있던 '동산 양도담보' 전원합의체 사건에서 '배임 아님' 다수의견을 구성한 권순일 대법관과 박정화 대법관도 있다. 2월 사건 기준으로 1년 9개월 만에 대법원 주류가 바뀐 것이다. 

부동산 이중매매 사건에서 반대의견이 다수의견의 모순을 짚는 데 활용한 판례 중 하나가 '동산 이중매매' 사건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미 2011년 1월, 공장기계를 팔겠다며 중도금을 현물로 받은 공장주가 자신 채무를 갚기 위해 제삼자에게 처분한 행위는 민사상 채무불이행일 뿐 형사상 배임은 아니라고 했다. 이때 다수의견은 '누구도 계약상 의무의 이행불능만을 이유로 구금되지 아니한다'는 유엔 자유권위원회가 채택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자유권규약) 제11조를 인용했다. 

반대의견은 동산이나 부동산이나 같은 잣대가 적용돼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부동산을 차용금의 대물로 변제하기로 했다가 제삼자에게 처분해 배임죄로 기소된 사건에서도 앞서 무죄가 나왔기 때문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4년 8월, 차용금을 갚지 못하면 대신 주기로 한 모친 부동산 상속분을 누나에게 넘긴 피고인 행위는 배임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사후에라도 돈을 갚으면 사라지는 대물변제의무는 금전소비대차 거래의 부수적인 내용이라는 취지다. 

때문에 반대의견이 보기에 2018년 '부동산 이중매매는 배임' 다수의견은 2011년 '동산 이중매매는 배임 아님' 2014년 '부동산 대물변제는 배임 아님' 판결을 정면으로 뒤집는 결론이다. 당시 다수의견은 왜 부동산은 예외인 건지 해명해야 했는데, '다수의견 보충의견'을 달아 총대를 멘 게 김재형 대법관과 박상옥 대법관이다. 민법 권위자가 검사장 출신 박 대법관과 국가 형벌권을 강조하는 의견을 같이한 낯선 풍경이다. 

◇ 죄형법정주의와 법관의 해석 
부동산 이중매매 사건에서 반대의견은 다수의견이 국가의 형벌권을 무책임하게 확장해 반인권적인 판단을 했다고 나무랐다. 반대의견은 '누구나 국가의 형벌을 예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를 이론적 근거로 삼았다. 헌법 제12조 제1항 두 번째 문장은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제13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행위 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라고 정한다. 부동산을 이중매매한 잘못이 있다고 해서 형사재판에 넘겨질 것이라고 일반 시민이 예상할 수 없다는 취지다. 

반대의견이 판단컨대 죄형법정주의는 "오랜 기간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어렵게 획득한 역사적 산물"이자 "인권보호를 추구해 온 그동안의 대법원의 노력"이었다. 다수의견은 대중이 요구하고 대법원이 반응한 '사법의 인권화'에 역행한다고 얕잡은 것이다. 

이중매매 사건에서 동산과 부동산 성격이 다른지 반박해야 하는 김 대법관으로선 다수의견이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해명까지 해야 했다. 김 대법관은 먼저 죄형법정주의에서 파생한 '명확성의 원칙'을 재정의했다. 범죄의 구성요건은 명확해야 하고, 법관의 보충적 해석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이 원칙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죄형법정주의를 따로 논할 필요가 없다. 

김 대법관은 '다수의견 보충의견'에서 "구성요건이 다소 광범위하고 어느 정도 법관의 보충적 해석을 필요로 하는 개념을 사용하더라도, 적용 단계에서 다의적으로 해석될 우려가 없는 한 그점만으로 헌법이 요구하는 명확성의 요구에 배치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2002년 헌법재판소 결정례를 가져와 "형벌법규를 해석하는데 법관에 의한 해석이 불필요할 정도로 명확한 일의적 개념을 만들어 사용하여야 한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김 대법관 말은 부동산 이중매매 사건에서 특정 행위 만를 콕 집어 배임으로 보면 무엇이 죄고 아닌지 분명해지는데 그러한 법관의 역할을 반대의견이 포기했다는 뜻이다. 반대의견이 권위를 빌린 자유권규약 관련해선 '고의적 배신행위로 인한 이행불능'은 해당사항이 없다고 정리했다. 단순 거짓말은 처벌되지 않지만 남을 속일 의도로 작정해 이득을 취하면 사기죄로 처벌된다는 반례를 들었다. 
 
결국 김 대법관이 강조한 건 법관의 보충적 해석이다. 그는 "일정한 행위가 형사법의 개입이 정당화될지의 배신적인 행위인지는 그 실질에 따라 규범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라며 "동산의 이중매매에 대해 배임죄 성립들 부정하였다고 하여, 부동산의 이중매매에 대해서도 배임죄 성립을 부정하여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고 했다. 부동산 이중매매와 동산 이중매매는 한국적 현실에서 중대한 차이가 있기에 법관이 이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 대법관이 본 현실은 '통상적인 거래 관행'이다. 중도금을 지급했는데도 그새 부동산 가액이 올랐다며 매도인이 제삼자에 처분하면 매수인이 할 수 있는 건 마땅히 없다. 부동산 이중매매를 굳이 배임죄로 처벌하지 않아도 민사상 이해청구권을 활용하면 된다는 반대의견은 김 대법관에게 백면서생(白面書生)의 진단으로 읽힌다. 

이행청구권은 채무자가 채권계약을 이행하라고 청구할 수 있는 권리다. 반면 채무자에게서 이미 소유권을 넘겨받은 제삼자는 물권을 가진다. 채권은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서만 효력이 있어서 제삼자 소유권을 침해할 수 없다. 배임죄로 매도인을 처벌하지 않으면 매수인은 구제받을 길이 사실상 없는 구조다. 매수인이 중도금을 지급하는 시점에 국가가 개입하는 명분이 생기는 이유다. 여기서 '채무불이행은 어느 단계에서는 배임이 된다'는 '김재형 배임론'을 엿볼 수 있다. 다수의견에서 밝힌 "본격적으로 계약이 이행되는 단계"라는 법리는 이렇게 "고의적 배신행위"라는 김 대법관 각론으로 명확해진다. 

◇ 같으면서 다른 김재형과 민유숙
이같은 단계적 배임론을 그대로 받은 게 민 대법관이다. 지난 2월 '동산 양도담보' 사건에서 나홀로 반대의견을 쓴 민 대법관은 "양도담보권이 설정된 후 담보설정자가 대상 동산을 처분한 행위의 배신성은 제3전원합의체 판결(부동산 이중매매)의 사안보다 더 크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이중매매는 배임이지만 동산 이중매매는 그렇지 않으니, 양도담보한 동산 제삼자 처분은 배임이 아니라고 무 자르듯 판결할 건 아니라는 문제제기다. 대신 배신 정도가 크면 배임으로 평가하는 게 대법원 판결 흐름에도 맞는다고 했다.

민 대법관은 동산을 양도담보로 제공한 시점인데도 단순히 채무불이행이라고 보는 다수의견을 두고 "향후 담보권을 설정한 동산 이외의 재산(주식, 채권, 면허권 등)의 처분에 배임죄 성립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들의 유지 여부가 거론될 때마다 다수의견의 판례부정합성이 계속 문제가 될 우려가 있고"라고 지적했다. 부동산 이중매매 판례를 따르면 배임인데도 단지 동산이라는 이유로 달리 판단하는 논리는 모순이란 얘기다. 실제 대법원은 2018년 부동산 이중매매 판례에 따라 이듬해 1월과 11월 연거푸 채무를 담보로 근저당권을 설정하기로 약정했다가 제삼자에게 등기한 소부 사건을 모두 배임이라고 결론 낸 바 있다.

지난달 27일 동산 양도담보 사건에서 김 대법관 밝힌 반대의견은 자신이 구축한 2018년 부동산 이중매매 판례를 확장한 것이다. 김 대법관은 "담보 설정 전·후에서 실행까지 단계별로 채무자 또는 담보권설정자가 부담하는 의무의 법률적 성격을 달리 보는 대법원 판례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단계적 배임론을 분명히 했다. 

이번 동산 양도담보 사건은 지난 2월 양도담보 때와는 달리 동산채권담보법상 등기제도를 따른 사례다. 채권자 입장에선 등기는 보다 계약을 이행하겠다는 확실한 보증이다. 앞서 동산 양도담보에는 이러한 내용이 없었기에 비록 별개의견이었지만 김 대법관도 배임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채무불이행이 배임죄가 될 수 있는지 사안에 김 대법관은 이렇게 단계적 배임론을 적용해왔다. 그런 김 대법관을 유일하게 이해한 민 대법관이다. 같은 것을 다르게 적용했다고 비판하는 민 대법관 문장에서 자기모순을 읽는 건 이렇게나 당혹스러운 일이다. 제삼자가 보기엔 모순이지만 그 가운데 일관성을 찾는 김 대법관을 위한 변이다. 

'같은 것은 다르게(담보로 설정한 동산을 제삼자에게 넘긴 건 일반적으로 배임은 아니지만, 등기한 이후라면 배임이다), 다른 것은 같게(부동산이든 동산이든 어느 정도 계약이 진행된 사안에서 제삼자에게 넘긴 경우라면 배임이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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