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사법적극주의자 김재형, 대법원에 헌재를 이식하다
[WIKI 프리즘] 사법적극주의자 김재형, 대법원에 헌재를 이식하다
  • 윤여진 기자
  • 승인 2020.09.07 17:47
  • 수정 2020.09.07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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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법외노조 무효, 같은 결론 다른 이유
통보는 행정기관 재량이라는 다수의견 반대
행정기관 재량이면 법률은 문제없다는 모순 
대신 '헌재 합헌' 결정 고려 법률해석에 위헌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은 지난 3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내려진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법외노조 통보)을 무효로 선언하자 비화를 공개했다. 김 전 재판관은 "헌재에서는 그 당시 합헌결정을 하면서, 내부적으로는 대법원에서 충분히 취소가 될 수 있는 처분이라고 봤다"고 고백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 앞서 지난 2015년 헌법재판소가 법외노조 통보 근거법률인 교원노조법에 합헌결정했을 때 그는 반대의견인 위헌결정을 낸 유일한 헌법재판관이었다. (본지 2020년 9월 3일 자 '[단독] 5년 전 '전교조 단결권 침해' 소수의견 김이수 '법외노조 무효' 대법에 "만시지탄"' 기사 참조)

김 재판관 말대로 헌재 다수의견은 이중적이다. 다수의견 재판관 8명은 '교원이 아닌 자'의 교원노조 가입을 불허하는 교원노조법 제2조가 헌법상 노동자의 단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정당하게 활동 중인 교원노조의 법상 지위를 박탈하는 것이 항상 적법한 것은 아니다"라며 "(법외노조 통보가) 재량의 범위 안에 있는 것인지 법원이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라고 해 여지를 남겼다. 한편으론 시행령에 있는 법외노조 통보 조항이 위헌인지 판단을 법원에 미룬 것이다. 헌재는 법령에 의해 곧바로 기본권을 침해하는 공권력만 심판하는데, 법외노조 통보는 행정기관 재량사항으로 그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번 대법원 사건에서 다수의견 대법관 8명은 교원노조에 법외노조를 통보할지는 고용노동부에 재량권이 있는 것이란 헌재 다수의견을 그대로 받았다. 다수의견은 "법상 노동조합에 결격사유가 발생할 경우 곧바로 법외노조가 되는 것은 아니"라며 "법외노조 통보가 있을 때 비로소 법외노조가 된다"고 했다. 여기서 결격사유란 교원노조법이 준용하는 노동조합법 제2조가 정한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를 뜻한다. 전교조는 소속 조합원 9명이 지난 2009년 시국선언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임처분을 받자 '부당하게 해고된 조합원은 조합원 자격을 유지한다'는 자체규약에 따라 이들을 조합원으로 계속 인정했다. 

다수의견은 행정기관 재량사항인 법외노조 통보 과정에 자의적 결정을 막는 장치가 없다고 지적했다. 노동조합법 시행령상 법외노조 통보 조항은 "오히려 구(舊)법과 달리 노동위원회의 의결 절차를 두지 않음으로써 행정 내부적 통제의 가능성이 축소되어 행정관청의 자의가 개입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국회는 1987년 민주화 배경에 노동자 대투쟁이 있었기에 노동조합 단결권을 침해하는 '해산명령' 조항을 삭제했다. 노동조합 해산은 노동위원회 의결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법외노조 통보 제도에선 이같은 여과장치가 아예 없다. 

다수의견 결론은 노동조합 단결권을 해치는 법외노조 통보 제도가 법률이 아닌 시행령에 규정돼 있어 무효라는 것이다.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다룬 내용은 국회가 제정한 법률로 정해져야 한다는 법률유보원칙이다. 헌재가 이미 노동조합법과 성격을 같이 하는 교원노조법을 합헌으로 봤기에 법률이 아닌 시행령에 위헌을 선고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따른 것이기도 하다. 재량권 해석 근거를 헌재에서 따온 마당에 헌재에 반대하는 결론을 내는 건 맞지 않는다는 현실론으로 보인다. 

김재형 대법관. [사진=연합뉴스]
김재형 대법관. [사진=연합뉴스]

◇ 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하라
김재형 대법관은 별개의견에서 다수의견과 '법외노조 통보 무효'라는 같은 결론을 냈지만 다른 이유를 제시했다. 법률이 아닌 시행령을 판단 대상으로 정한 다수의견은 "문제의 핵심을 비껴가는 것이고 실질적 판단을 회피하는 것"이다. 김 대법관이 보는 "핵심은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 아니라 이 사건 법률 규정('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의 의미를 어떻게 파악할 것"에 있다.  

먼저 김 대법관은 법외노조 통보가 행정기관 재량사항이라는 다수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시행령에 둔 법외노조 통보 제도는 "법률 규정에 따른 효과를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적법"한데도 다수의견처럼 위헌이라고 한다면 "법 체계의 근간을 훼손"하는 것이다. 

노동조합법은 '근로자가 아닌 자'(㉠)를 조합원으로 두면 법외노조(㉡)가 된다고 정한다. 전교조(㉢)는 해직교원(㉠)을 조합원으로 뒀다. 전교조(㉢)는 법외노조(㉡)이다. 다수의견은 "법령의 규정을 이 사건에 그대로 적용하는 법률적 삼단논법"을 반박하지 못한다. 

김 대법관은 다수의견이 "법률에 따른 노동조합은 아니지만 법률에 따른 노동조합이 아님을 알려줄 수는 없다"는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다고 봤다. 헌재는 이미 합헌이라 본 교원노조법에 따르면 전교조는 법외노조다. 여기에 행정관청이 법외노조 통보 재량권을 가진다는 다수의견 해석을 더하면 마치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를 수 없다'는 말이 된다. 김 대법관은 "다수의견은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 무효라는 선언 외에 결격사유가 발생한 노동조합의 법적 지위는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전교조가 법외노조인지 다수의견은 숨기고 있다는 얘기다. 

◇ 김재형의 물음 네 가지
김 대법관은 다수의견이 가진 치명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물음 네 개를 던진다. ①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보아야 하는가 ②해직자의 조합원 가입을 허용하는 문제가 노동조합 본질을 좌우하는가 ③헌재 심판이나 국회 입법이 아닌 법원의 법률 해석으로 해결해야 하는가 ④구제 방법은 법원 판단만 남았는데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김 대법관은 ①전교조는 법외노조가 아니고 ②해직자 중 원래 조합원인 자에 한정해 가입을 허용하면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해치지 않으며 ③국회는 문제 해결을 사실상 포기한 가운데 헌재가 합헌 결정을 했다면 법원은 법률 해석으로 문제를 풀어야 하고 ④법원은 법 문언 해석 결과가 정당하지 않으면 결과를 고려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른바 '법의 창조'를 뜻하는 사법적극주의 선언이다. 
 
김 대법관은 노동조합법에 따라 전교조를 법외노조라 보는 건 "심히 불합리하거나 부당한 결론"이라 했다. 헌법 제2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제2항은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선언한다. 결사란 공동목적을 위해 자유의사에 따라 조직적으로 뭉치는 걸 말한다. 이같은 결사의 자유를 근로조건으로 별도로 정한 게 헌법 제33조 제1항이 정리한 노동조합의 단결권이다. 헌법이 금지하는 허가제를 노동조합법은 규정하니 위헌이라는 결론이 이어진다. 

장애물이 있다면 헌재가 이미 노동조합법을 따르는 교원노조법이 합헌이라고 했다는 점이다. 대법원이 헌재와 각을 세우면서 다른 결론을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김 대법관은 법률이 아닌 법률해석에 위헌을 선고하기로 했다. 입법목적에 맞지 않는 법률해석을 삭제하는 이른바 한정합헌(위헌)이다. 김 대법관은 "목적론적 축소를 통하여 법률의 적용범위를 명확히 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법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 대법관은 결론에서 노동조합법이 정한 법외노조 사유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를 '원래 조합원이었다가 해직되더라도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도록 하는 경우'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제한적으로 해석했다. 

◇ 대법원엔 낯선 풍경
김 대법관이 채택한 '전체에서 부분을 삭제'하는 법률 해석론은 전혀 새롭지 않다. 단지 대법원에 낯설 뿐이다. 대법원과 사법 영역을 나누어 가진 헌재는 설립 초창기인 1989년부터 '이러이러하게 해석하는 한 위헌이다'(한정위헌) '이러이러하게 해석하는 합헌이다'(한정합헌)를 결정 방식으로 취해왔다. 

문제는 이제껏 대법원이 한정위헌(합헌)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헌재는 법률 위헌 여부만 결정하는데, 특정한 법률해석에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한정위헌은 법적 근거가 없다. 헌재는 한정위헌 역시 변형된 위헌결정이라 주장하지만 대법원은 인정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법 제47조 제1항은 "법률의 위헌결정은 법원과 그 밖의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를 기속(羈束)한다"고 해 기속력 주체를 위헌결정으로만 보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이미 1997년 '법률해석 최종 권한을 가지는 대법원은 법률해석인 한정위헌에 기속되지 않는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번 김 대법관 별개의견은 헌재에 불허한 한정위헌을 대법원이 대신 품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어떤 법률조항에 대하여 여러 갈래의 해석이 가능한 경우에는 우선 그중 헌법에 부합하는 의미를 채택함으로써 위헌성을 제거하는 헌법합치적 해석을 해야 하고(한정위헌), 나아가 헌법에 부합하는 해석 중에서도 헌법의 원리와 가치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의미를 채택하는 헌법정향적 해석을 해야 한다(한정합헌)"(대법관 김재형 별개의견)

◇ 사법적극주의 선언
"법원은 법률이 아닌 법을 선언해야 한다"

김 대법관이 별개의견 말미에 적은 법언이다. 그가 보기에 다수의견은 국회를 지나치게 의식했다. 법률은 국회가 제정한 좁은 의미, 법은 헌법원칙 같은 법철학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 법규범이다. 국회입법 통제를 받지 않은 행정입법을 무효로 본 다수의견은 필요 이상으로 국회에 종속적이다. 외관상 노동권을 보장한 것처럼 보이는 다수의견은 법외노조 통보 근거를 법률에 두면 문제 삼을 수 없다는 역설을 방치한다.  

김 대법관은 국회 입법권을 가로질러 법을 창조했다는 비판을 무릅쓴 것으로 보인다. 헌재 한정위헌 형식을 가져와 도출한 결론 '법률상 법외노조이지만 법률해석상 법외노조가 아니기에 법외노조를 통보할 수 없다'는 그가 모순으로 지적한 다수의견 '법률상 법외노조이지만 법외노조를 통보할 수 없다'와 외관상 크게 다르지 않다. 법외노조 사유를 정한 법률은 헌법에 합치된다는 헌재 결론을 의식한 결과다. 법외노조 통보는 행정기관 재량이라는 헌재 논리를 따르지 않은 그이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김 대법관의 이번 사법적극주의 선언(아래)을, 도피를 택한 헌재를 정면으로 가르지 못한 절반의 파격으로 보는 이유다. 

2020년 9월 3일 전국교직원협동조합 법외노조통보취소 대법원 전원합의체 대법관 김재형 별개의견 일부 

법률은 법률규정의 문언에 충실하게 해석하는 것이 원칙이나, 그 예외를 인정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법률 제정 당시에 입법자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법률로 규정되지 않았거나 불충분하게 규정된 경우도 있고, 법률에 명문의 규정이 있지만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달라짐에 따라 법률과 실제 생활 사이에 불가피하게 간격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만일 명문규정의 엄격한 적용만을 고집한다면 법적 안정성이 유지될 수는 있어도 사회의 변화와 발전에 대한 적응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이를 실제 생활에 부합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경우 법원은 형식적인 자구 해석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법률이 구현하고자 하는 입법목적이 무엇인가를 헤아려서 입법목적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법의 의미를 부여해야 하고, 그 실현을 위하여 필요한 한도에서 명문규정의 의미를 확대하거나 축소·제한하는 해석을 함으로써 실질적인 법 형성적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법규정의 의미와 본질을 바꾸는 정도가 아닌 한도에서 이를 합리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뒤처진 법률을 앞서가는 사회현상에 적응시키는 것이 필요하고, 그 뒤쳐진 법규정의 전통적 해석·적용이 부당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법률 개정이라는 입법기관의 조치가 있을 때까지는 이를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고 체념해서는 안 된다. 법규범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안을 완벽하게 규율할 수는 없다. 법은 그 일반적·추상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본질적으로 흠결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법률의 해석은 단순히 존재하는 법률을 인식·발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일정한 경우 유추나 목적론적 축소를 통하여 법률의 적용범위를 명확히 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법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실질적 법치주의의 요청이다. 법원은 '법률'이 아닌 '법'을 선언해야 한다. 법을 해석·적용할 때에는 그 결과를 고려해야 한다. 만일 해석의 결과 심히 불합리하거나 부당한 결론이 도출된다면 그러한 해석을 배제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통상 이를 위하여 문언적 해석 외에 논리적·체계적 해석, 역사적 해석, 목적론적 해석 등 여러 해석방법이 동원된다.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불합리와 부당함이 교정되지 않는다면 법원은 법의 문언을 넘어서는 해석, 때로는 법의 문언에 반하는 정당한 해석을 해야 한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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