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82) 전두환 정권- 미 대사관 '대학 민주화운동 탄압' 충돌
청와대-백악관 X파일(82) 전두환 정권- 미 대사관 '대학 민주화운동 탄압' 충돌
  • 특별취재팀
  • 승인 2020.11.09 07:08
  • 수정 2020.11.09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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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백악관 x파일
청와대 백악관 x파일

학생권으로부터 ‘미 문화원 점거사건’이라는 초대형 ‘로켓 공격’을 받은 전두환 정권은 5공 초기 사회기강을 잡겠다고 시행했던 ‘삼청교육대’ 방식을 학생들에게 적용하려 했다.

1985년 8월 5일 집권여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은 고위당정회합에서 ‘학원안정법’ 제정을 결정했다.

학원안정법의 주요 내용은 학원소요와 관련된 문제 학생을 대상으로 6개월 이내의 선도교육 실시, 반국가단체의 사상이나 이념을 전파 또는 교육하거나 그 사상이나 이념이 표현된 문서·도서·기타 표현물을 제작, 인쇄, 복사, 소지, 배포, 판매 또는 학원 소요를 선동·조장하는 행위를 한 자에 대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등을 담은 전문 11조와 부칙 3항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8월 7일 민정당에서 학원안정법 시안을 공개하자 신한민주당(신민당)은 즉각 성명을 발표하고 반민주적 입법에 반대할 것을 분명히 했다.

야당과 더불어 재야세력 뿐 아니라 각계각층에서 학원안정법 철회 요구가 분출했다.

학원안정법 반대 투쟁에 나선 야권과 재야 인사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학원안정법 반대 투쟁에 나선 야권과 재야 인사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리처드 워커 미국 대사도 학원안정법에 대해서는 야당과 같은 진영에 섰다.

전두환 정권이 민주화운동을 주도해온 학생들을 최전방에 강제징집하는 소위 ‘학원녹화사업’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던 워커 대사는 학원안정법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후퇴시킬 수 있는 악법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는 학원안정법 태동조짐이 보이던 6월부터 본격적으로 청와대에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워커 대사는 조지 슐츠 국무장관을 비롯한 미국의 행정부에도 전두환 정권의 조치에 압박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슐츠 장관은 오히려 분노하면서 워커 대사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슐츠 장관은 미 대사가 청와대와의 대화 채널이 끊기게 된 것 자체를 불안한 눈초리로 바라봤던 것이다.

워커 대사는 윌리엄 리브시 당시 한미연합사령관을 통해 전 대통령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리브시 장군은 추후 내 참모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청와대에 접근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몇몇 한국군 장교들은 그 문제의 민감함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학생들에게 어느 정도 특별한 훈련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워커 대사는 이번에는 외무부를 통해 몇 차례 청와대에 접근을 시도했다. 하지만 외무부 간부는 ‘당신은 지나치게 미국의 입장을 두둔한다’며 청와대의 심한 질책을 받았다.

대학 시위 현장. 학원안정법으로 청와대와 미 대사관 갈등이 증폭됐다. [연합뉴스]
대학 시위 현장. 학원안정법으로 청와대와 미 대사관 갈등이 증폭됐다. [연합뉴스]

안기부를 통해서도 협상을 시도했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전두환 정권이 전혀 양보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8월 8일 ‘좌익’ 학생들이 격리되어 재교육을 받을 것이라고 한국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을 때 미 대사관은 진퇴양난에 빠진 상황이 됐다.
 
워커 대사에게 마지막 기회가 왔다.

미국의 대일(對日) 전승기념일은 8월 14일. 한국이 일제에서 해방된 광복절은 15일이었다.

워커대사는 동아일보를 비롯한 신문에 ‘워커 미대사의 대일 전승기념일 40주년 기념사’를 기고하면서 학원안정법과 관련한 자신의 소회를 간접적으로 피력하기로 했다.

‘자유에 대한 가치, 그리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 인권 존중을 향한 미국의 신념과 헌신적인 노력에 대해 누구도 의심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데 본궤도를 벗어나지 않도록 전세계 동맹국들과 협력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지적, 종교적 지유는 적법한 통치를 위한 토대가 돼야 한다고 미국은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2차 세계대전에서 효율적이고 단합된 마음으로 전제정권과 맞서 싸울 수 있었습니다. 가장 인간다운 목적을 추구하는 자유스런 지성의 힘을 우리는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속박받지 않는 이성으로부터만이 경제, 과학, 문화적 진보를 가장 풍성하게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인간의 의사는 민가 통치의 규칙에 대한 적법한 주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워커 대사의 이 기고가 보도되자, 과거 그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던 일부 인사를 포함한 한국민들은 그를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라고 화답했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강조한 그의 기념사는 신문은 물론 학술기관, 기업 사무실, 심지어 공장에까지 한글-영문으로 내걸렸다. 그러나 2~3주 내에 그의 기고문은 자취를 감췄다.

‘학원안정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전두환 정권은 8월 15일 신민당 이민우 총재와 여야 영수회담을 갖고 16일에 국민당 이민우 총재와 회담을 했다. 그러나 의견을 조율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8월 17일 전두환 대통령이 입법을 보류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학원안정법 입법은 수포로 돌아갔다.

[위키리크스한국=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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