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운] 전설 시찰에 나선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함께한 BBC 취재진의 동행기
[우크라 전운] 전설 시찰에 나선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함께한 BBC 취재진의 동행기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02.22 14:31
  • 수정 2022.02.22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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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운데)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군 수뇌부와 함께 도네츠크 지역의 동부전선을 시찰하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운데)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군 수뇌부와 함께 도네츠크 지역의 동부전선을 시찰하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지난주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위험을 무릅쓰고 러시아와 총구를 맞대고 있는 최전선의 이곳저곳을 시찰할 때 BBC 취재진이 동행했다. BBC는 21일(현지 시각) 그 동행기를 기사화했다. 다음은 이 기사의 전문이다.

“재빠르게 움직이되 항상 발밑을 조심하시오.”

취재진이 전선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담 뒤로 접근할 때 한 병사가 이렇게 충고했다.

우리 옆에 있던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방탄복과 헬멧을 착용하고 이미 차에서 내려 황무지를 지나 참호로 접근하고 있었다.

지난주 서방 지도자들이 러시아의 전면전 위협을 경고하고 있을 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침략을 정면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는 전선의 병사들을 격려차 시찰하기로 했다.

이번 시찰은 두 가지 목표를 지니고 있었다. 전선에 배치된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모스크바 당국을 달래려는 서방 지도자들을 향해 우크라이나가 백척간두에 서 있음을 알리고자 하는 의도가 강했다.

BBC 취재진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전방을 종회무진 누빈 이틀 동안 그와 동행했다.

취재진은 항공기와 헬리콥터를 타고 군사훈련이 이루어지는 장소에서부터 실제로 충돌이 발생한 현장까지, 육지에서부터 서방이 긴장의 현장으로 주목하고 있는 아조프해까지 따라다녔다.

키예프를 폭격해 굴복시키겠다는 러시아의 야욕 달성은 아직은 묘연해 보인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에게 이익보다는 피해가 더 클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세력에 통제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의 폭력이 갑자기 증가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아조프해에 인접한 시로카인(Shyrokyne) 지역 전선의 폐허로 남은 집 안에서 병사들과 차를 나누며 대화를 했다.

한때는 인기 있는 휴양지이기도 했던 시로카인의 해안 마을은 8년간의 싸움으로 산산조각이 났으며, 거리에는 참호들이 깊게 파져 있고, 포격으로 부서진 건물들이 여기저기 버려져 있었다.

한 병사는 그의 부모가 최근의 긴장 고조에 걱정이 많다고 하면서 부모와 수시로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과의 조우에 무척이나 기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테이블 위에는 치즈와 샌드위치를 담은 쟁반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바로 그날 이른바 접촉 지역이라고 알려진 곳을 따라 포격이 증가했다. 아침 9시 루한스크(Luhansk) 지역의 한 어린이집의 체육실과 음악실로 미사일이 떨어져 벽이 부서졌다. 여러 정황은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반군 지역에서 미사일이 날아온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날 이후 휴전협정을 위반하는 공세들이 이어지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보안을 책임지고 있는 팀은 위험을 무릅쓴 대통령의 행보에 반대하고 있지만, 대통령은 전선 시찰을 강행했다.

젤렌스키는 몇 주간 이어지고 있는 긴장 고조에도 불구하고 겉으로는 평온함을 드러냈다. 그러나 취재진과 조급하게 이루어진 대화를 통해 그는 서방 동맹들에 대한 실망을 감추지 않았다.

한편, 서방의 일부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의사 철회를 포함해서, 우크라이나가 수긍할 수 없는 양보를 분명하게 강요하는 중이다.

“우리는 영원히 눈을 감고 살 수는 없으며, 우리가 나토에 가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나라는 러시아 뿐입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취재진에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이런 측면에서 러시아의 편을 드는 나토 회원국들도 있습니다.”

19일(현지시간)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우크라이나 동부 루간스크의 한 주택이 친(親)러시아 반군이 쏜 박격포와 총에 벌집처럼 구멍이 뚫리고 부서져 있다. [루간스크=AP연합뉴스]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우크라이나 동부 루간스크의 한 주택이 친(親)러시아 반군이 쏜 박격포와 총에 벌집처럼 구멍이 뚫리고 부서져 있다. [루간스크=AP연합뉴스]

몇 일 전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는 “나토의 확장은 계획돼 있지 않고, 논의되지도 않고 있으며 현안에도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이웃 국가 우크라이나가 나토에서 영원히 제외되는 것을 문서로 확약받고자 한다. 그러나 이는 우크라이나로서는 수긍할 수 없는 요구에 속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자신들의 노력 때문에 지불한 대가에 대해 열정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을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이미 1만4000명이 숨졌으며, 2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거처를 잃었다는 것이다.

나토 가입은 국민의 선택이라고 그는 말했다. 모스크바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립을 쟁취하는 길로서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는 이러한 의지를 ‘뮌헨 안보회의 패널 토의(Munich Security Conference)’에서 피력했다. 그의 이러한 의지는 우크라이나 국내 반대 세력들에게도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젤렌스키의 한 안보 참모는 전선의 참호를 이동하는 차 안에서 취재진에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철회는 ‘항복’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일부 유럽 국가들의 압력이 극에 달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들은 현재 상황이 1930년대 유럽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침략자에 굴복한다면 조용해질 것이라는 말이지요.”

미하일로 포돌랴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누군가를 달래기 시작하면 그가 더 기고만장할 것이라는 점을 계속 강조할 겁니다. 지금 당장은 나토만의 문제일지 모르지만 다음에는 EU 전체나 교역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러시아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크라이나는 이번 위기를 자신들이 세계를 대신해 맞서 싸우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취재진이 만난 한 병사는 자신들이 ‘민주주의 동쪽 측면을 지키는 싸움’을 하고 있다고 묘사했다.

그래도 우크라이나는 세계가 자신들을 더 지지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구걸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것은 유럽 안보에 관한 투자의 문제입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뮌헨 안보회의 패널 토의’에 모인 청중에게 이렇게 역설했다. 우크라이나가 ‘세계 최강의 군대 중 하나와 맞서면서’ 유럽의 ‘방패’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환기시킨 것이다.

취재진은 이번 전선 시찰 동행을 마치면서 세 대의 헬리콥터를 타고 다른 전선의 폐허가 된 도로를 낮게 날았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주의 아우디이우카 지역 가로등에 그려져 있는 푸른색과 노란색의 우크라이나 국기 색깔은 이 지역의 충성심을 나타내고 있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방탄복을 머리 위로 추켜올리면서 더 많은 병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길을 나설 때 취재진은 이 지역에서 전사한 병사들의 이름을 읽어내려갔다.

비석에 새겨진 최연소 전사자의 이름은 올레시야였다.

그의 나이는 19세였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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