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드러나기 시작한 미국- 중동 국가들의 갈등
[월드 프리즘]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드러나기 시작한 미국- 중동 국가들의 갈등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03.23 05:54
  • 수정 2022.03.23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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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왼쪽)이 18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를 방문해 UAE의 실세인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예드 알 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제(가운데)를 만나고 있다. 아사드 대통령이 주변 아랍국가를 방문한 것은 2011년 시리아 내전 발생 후 이번이 처음이다. 시리아는 11년 전 내전 발생 후 22개국으로 구성된 아랍연맹에서 퇴출당했다. [사진 = 시리아 대통령실 제공]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왼쪽)이 18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를 방문해 UAE의 실세인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예드 알 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제(가운데)를 만나고 있다. 아사드 대통령이 주변 아랍국가를 방문한 것은 2011년 시리아 내전 발생 후 이번이 처음이다. 시리아는 11년 전 내전 발생 후 22개국으로 구성된 아랍연맹에서 퇴출당했다. [사진 = 시리아 대통령실 제공]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계기로 미국과 중동 국가들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알자지라방송은 22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반러시아 동맹을 공고히 하려는 미국의 바쁜 발걸음에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면서 제동을 걸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연일 전 세계 뉴스를 장식하는 가운데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이른바 ‘선택적 전쟁(war of choice)’을 놓고 세계가 일치된 행보를 취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동에서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으로 알려진 몇몇 국가들, 특히 아랍에미리트(UAE) 및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균열은 지난주 아랍에미리트가 미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처음으로 아랍 국가를 방문한 것이고, 그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표명한 몇 주 뒤 이루어진 방문이었다.

“걸프만의 국가 아랍에미리트는 지난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하는 UN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 투표에 기권했고, 그 뒤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했다는 사실은 이 나라가 미국으로부터 자립하려는 의지가 확고함을 드러내는 징표입니다.”

워싱턴에 기반을 두고 지정학적 위기를 자문하는 ‘걸프만 국가 연구소(Gulf State Analytics)’의 CEO 조지오 카피에로는 이렇게 분석했다.

아부다비 당국이 지난달 미국이 주도하는 UN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투표에 기권한 뒤 익명의 출처를 인용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지도자들이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의 전화를 거절했다는 보도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지난주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과의 원유 거래에서 미국의 달러를 버리고 중국의 위안화를 사용하는 문제를 베이징 당국과 협의 중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 라이스대학 ‘제임스 베이커 공공정책연구소’의 중동문제 연구원 크리스티안 울릭슨은 알자지라 방송과 인터뷰에서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에 어떤 메시지를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즉, “우리는 당신이 생각하는 우리의 이익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의 이익에 따라 행동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말이다.

긴장 고조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달 아랍에미리트의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왕세자 뿐만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의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도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전화를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백악관은 이는 부정확한(inaccurate) 보도라고 일축했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및 아랍에미리트와 동맹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오고 있다.

조지오 카피에로는 “아랍에미리트는 미국이 아부다비의 ‘안보 보증인(security guarantor)’으로 남아있는 한 미국과의 관계에서 돌아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아부다비 당국이 이른바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을 통해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관계 개선에 나서도록 주도한 뒤 아랍에미리트가 ‘워싱턴에서 매우 강력한 입지’를 굳히고 있다 덧붙였다.

“아부다비 당국의 리더십은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두바이와 아부다비로 초청해서 워싱턴 당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정도로 자신감에 차 있습니다. 미국과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큰 대가를 치를 염려를 불식할 정도로 자신만만하다는 말입니다.”

카피에로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하지만 미국은 아사드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 방문을 두고 보기 드물게 비난 성명을 내놓았다. 미국 국무부의 에드워드 프라이스 대변인은 지난 주말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대단히 실망했다(profoundly disappointed)’고 말했다. 그는 시리아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 방문을 자신의 정부를 ‘합법화하려는 명백한 움직임(apparent attempt to legitimise)’이라고 비난했다.

아부다비 당국이 아사드와의 관계 정상화를 밀어붙이려는 시도는 워싱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몇 년 동안 이어져 왔다. 아랍에미리트의 미국에 대한 불만은 시리아가 아니라 예멘 문제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멘의 후티(Houthi) 반군에 의한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를 향한 미사일과 드론 공격은 1월과 2월에 격화되었으며,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국가들이 미국 대통령의 전화를 퇴짜놓았다는 기사에서 이 국가들은 예멘 문제에 대한 ‘미국의 조심스러운 대응(restrained US response)’에 불만을 지니고 있다고도했도했다.

미국은 예멘의 공격이 있은 뒤 아랍에미리트를 보호하기 위해 제트 전투기들과 미사일 구축함을 파견했고, 아랍에미리트 내 미군 당국도 자신들이 후티 반군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아랍에미리트 정부는 바이든 행정부가 후티 반군을 테러리스트 단체로 지정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인권단체들은 그렇게 되면 아랍에미리트 내 인권 위기가 심화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이 지원하며 아랍에미리트도 가입되어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도의 연맹은 반군을 격퇴하기 위해 2015년 예멘에 개입해, 수도 사나를 포함해 광활한 영토를 점령한 바가 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퀸시 연구소(Quincy Institute for Responsible Statecraft)’의 아넬르 셀린 연구원은 바이든 행정부가 걸프만 국가들과의 불화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수사(修辭)라는 측면이나 실질적 측면 모두에서 리야드와 아부다비 당국을 지원해왔다고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가 예멘에서 하는 일을 돕지 않는다는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녀는 지난주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러나 나는 특히 아랍에미리트가 미국이 후티 반군을 테러 단체로 다시 지정해주기를 바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사진=연합뉴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사진=연합뉴스]

국제 원유 공급

이러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행정부는 걸프만의 파트너들과 관계를 유지·증진할 것이라고 말한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10일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2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과 대화를 나누었으며, “대통령의 관심은 진정한 상호 관계 증진에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과 동맹이 러시아의 에너지 부문을 포함해 러시아에 무한정 경제 제재를 부과하는 데 총력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 8일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 수입 금지를 발표했고, 몇몇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그 결과 원유 가격은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폭등하고 있다.

미국은 원유 가격을 낮추기 위해 지난해부터 원유 생산을 늘리도록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압박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이후 더욱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가 가입되어있는 ‘확대 OPEC 카르텔(OPEC+ oil cartel)’은 3월 초 원유 시장이 ‘현재의 지정학적 상황 전개’ 때문에 변동성을 겪으면서도 ‘매우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시장’이라고 평가하며 현재 생산량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9일 워싱턴 주재 아부다비 대사관이 원유 생산을 늘리겠다고 발표한 지 몇 시간 뒤 아랍에미리트 에너지 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아랍에미리트는 ‘확대 OPEC 카르텔’의 현재 합의 사항을 준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티안 울릭슨 연구원은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 내 석유 가격 인상이 미치는 정치적 파장을 주시하면서 자신들이 바이든을 지렛대로 활용해 이득을 챙기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낮은 지지율과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출구 전략에 따른 혼란, 그리고 주요 법안 통과 지연 등 지금까지 바이든 임기 중 벌어진 악재들이 이 두 나라의 입지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들은 바이든의 약점을 발견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더욱 밀어붙이면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속셈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조지오 카피에로는, 바이든 대통령이 러시아에 대항해 동맹간의 결속을 우선시하면서 걸프만의 파트너들과 직접적인 갈등을 회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서방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시장의 충격을 해결하려고 부산한 가운데 미국은 대(對) 푸틴 전선에 더 많은 아랍 국가들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으며, 아랍에미리트나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원유 생산 국가들과 협력을 꾀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평가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이든은 지금 당장은 아부다비나 리야드 당국 어느 누구와도 갈등을 일으키고 싶지 않은 겁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피해 [사진 =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 피해 [사진 = 연합뉴스]

인권 문제

원유 생산 문제와 우크라이나 위기 외에도 취임하면서 인권 문제를 외교 정책의 우선에 두겠다고 공언한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의 인권 문제와 예멘 전쟁을 끝내는 문제에 개입하라는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의 민주당은 특히 2018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유력 언론인 자람 카슈끄지가 살해당한 뒤부터 점점 더 리야드 당국에 비판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수요일 미국 국무부의 에드워드 프라이스 대변인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하루에 81명이나 처형된 사태에 대해 비난을 삼갔다. 대신에 그는 바이든 행정부가 사우디 왕국에서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실에 대해 지속적으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아랍에미리트의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왕세자는 지난주 푸틴과 전화 통화를 갖았다. 러시아 언론이 전하는 크렘린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 지도자는 ‘러시아는 자국의 안보를 확고히 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별도 성명을 통해 아랍에미리트는 자이드 왕세자가 푸틴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에서 현재 진행 중인 위기에 대응해 지속 가능한 정치적 해결책을 찾기 위해 관심 있는 당사자들과 계속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우크라이나 위기는 워싱턴의 걸프만 동맹들이 미국이 이제 더 이상 유일한 수퍼파워가 아닌 현실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음을 드러냈다고, 퀸시 연구소의 셀린 연구원은 분석했다.

“다른 나라들이 더 이상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 합당한 해석입니다.”

그녀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이 나라들이 미국이 주도하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투표에서 기권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무조건 지원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조지오 카피에로는 자기가 보기에는 미국이 이들 나라들이 중국과 러시아로 기울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분석했다.

“점점 다극화 되고 있는 세계에서 이들 걸프만 국가들은 미국에서 벗어나 확실한 자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 같은 다른 강대국으로 기울어질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워싱턴의 관리들은 이들 걸프협력회의(Gulf Cooperation Council) 국가들에 너무 심한 압박을 가하면 그들이 모스크바나 베이징과 파트너십을 추구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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