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트렌드] 대영제국이 뿌린 동성애 혐오 유산... 그리고 인권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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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석진 기자
  • 승인 2018.09.13 07:41
  • 수정 2018.09.13 1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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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의 한 동성애자 관련 행사. [CNN]
인도 대법원의 동성애 합법화 판결이 나오지 동성애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CNN]

최근 합의 하에 이뤄지는 동성애를 합법화하는 인도 대법원의 역사적 판결이 있고 나서 인도의 성소수자(LGBT) 커뮤니티는 안도와 환호의 물결이 넘쳤다.

인권운동가들은 ‘부자연스런 행위(unnatural acts)’를 금지하는 영국 식민지 시절의 법률인 ‘섹션 377’을 폐지한다는 공표를 큰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이들 인권운동가들은 수년 동안 사문화되어있던 법률을 종식시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인도의 성소수자들이 새로 찾은 자유를 만끽하는 한편으로 지구촌의 수백만 성소수자들은 여전히 기다림을 계속해야 한다.

국제성수자연맹(International LGBTI Association)에 따르면 동성애가 불법인 세계의 71개 나라 가운데 절반 이상 국가들이 과거 영국의 식민지나 보호령이었다는 사실은 우연히 일치가 아니라고 평한다.

이들 국가들 대부분에서 합의된 동성애를 금지하는 법률이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유산으로 이어져 내려오다 독립 후에도 여전히 자리를 잡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4월 17일 영연방대표자회의에서 연설을 한 영국 테레사 메이 총리는 대영제국의 오랜 유산인 동성애혐오 법률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바가 있다.

“저는 이런 법률들이 저의 국가에 의해 자주 실시되었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법률들은 그때도 옳지 않았고, 지금도 옳지 않습니다.”

메이 총리는 회의 참석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영국의 총리로서 이러한 법률들이 시행되었다는 사실과 차별의 유산,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이로 인한 폭력과 죽음들에 대해 심심한 유감을 표명합니다.”

▷동성애 혐오 사상이 법률로까지 자리 잡은 과정

남아메리카부터 아시아까지, 전 세계에 걸쳐 과거에 영국의 통치를 받던 약 49개의 나라가 여전히 동성애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2017년의 성소수자들 : 국가가 후원하는 동성애 혐오>의 공동저자인 루카스 멘도스에 따르면 위의 49개 나라 중 31개국이 식민지 시대에 성소수자들을 금지했던 조항에 근거한 법률들을 지금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이 나라들은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그리고 우간다처럼 매우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는 실정이다.

과거 대영제국을 이루던 국가들에서 전반적으로 반 성수자 법률이 널리 시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성애를 불법화하는 포괄적 칙령은 존재하지 않았었다.

대신에, 각 식민지 행정관들의 개별적 감각에 따라 처음으로 법률이 제정되었고, 이어서 1860년을 기점으로 제국 전체에 걸쳐 빠르게 퍼져나가게 되었다.

<영국의 식민주의와 동성애 불법화>의 저자 엔즈 한은, 이 법률들은 부분적으로는 생식 목적 이외의 섹스를 금기시했던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윤리 강령의 산물이었다고 밝혔다.

“대영제국은 동방의 속국들이 과도하게 에로틱하고 섹스에 빠져있다는 편견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본토 사람들은 식민지로 파견되는 젊은 관리들이 식민지에서 성적으로 타락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많았지요.”라고 엔즈 한은 말했다.

식민지 통치 하에서 시행되던 많은 법률들은 그 이후 각국 정부들에 의해 개정되거나 심지어는 강화되었다. 루카스 멘도스에 따르면 이와 같은 사실은 식민지에서의 입법이 당시 해당 국가들 내에 퍼져있던 보수적 분위기를 적어도 어느 정도 반영해서 진행되었다는 점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들은(영국 사람들은) 그러한 분위기를 당시 해당 국가들의 문화적 정서로 이해했어요.”

멘도스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또 다른 설명으로는 과거 식민지 속국들에 퍼져있던 보수적 태도는 속국들의 사상을 오랫동안 억압했던 영국 정책의 대표적 결과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엔즈 한에 따르면 일단 법률이 시행되면 법률적인 측면이나 생리적인 측면에서 이를 폐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법률 서적이 한번 불법이라고 하면 그것은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관습을 변화시킬 정도의 보편적인 사회적 정서로 이어지게 됩니다.” 엔즈 한은 이렇게 말했다.

▷무시된 문화적 전통

영국 식민주의자들에 의해 도입된 엄격한 빅토리아 시대의 법률들은 수십 년, 혹은 수세기 동안 속국들의 복잡한 성에 대한 관습과 자주 충돌했다. 특히 인도는 전통적으로 유연하면서도 권위적이지 않은 성에 대한 태도와 성역할을 유지해온 나라이다.

그러나 영국의 식민지 행정관들은 1860년 동성애를 불법화했을 때 이러한 지역 정서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이 국가에서 수세기 동안 이어져온 관습인 트렌스젠더[hjiras] 문화를 부자연스러운 것(unnatural)으로 규정지어 버렸다.

사실 인도는 영국이 과한 법률 하에서 성소수자들[LGBT]을 불법화한 최초의 국가들 중 하나였다. 홍콩 대학의 한(Han) 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인도의 법률들이 다른 식민지 국가들의 전범(典範)처럼 작용했다고 밝혔다.

인도의 동성애 합법화 운동을 함께해온 성수수자 인권운동가 드흐루보 죠티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인도의 동성애 커뮤니티들은 해당 법률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이질적이기’ 때문에 질색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법은 우리의 법이 아니었습니다. 이 법은 우리 사회에서 유기적으로 발전해온 법이 아니었다는 말이지요.”

드흐루보 죠티는 이 법률은 성수수자 커뮤니티만을 벽장 속에 가둔 것이 아니라, 협박과 괴롭힘, 심지어는 성폭력 등 다른 분야의 차별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지적했다.

▷정치적 억압

영국의 식민지 법률들은 성소수자들의 억압에만 사용되었던 것은 아니다. 많은 국가에서 이 법률들은 정치적 반대자들을 옥죄는 실질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인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레이시아도 영국 식민지 입법을 근거로 한 ‘섹션 377’을 내세워 동성애를 불법화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저명한 반체제 정치인인 안와르 이브라힘은 ‘섹션 377’을 근거로 동성애 혐의를 받아 두 번씩이나 투옥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은 이를 정치적 의도가 다분히 개입된 날조된 처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브라힘은 말레이시아에서 새 정부가 들어선 금년 초 자유의 몸이 되었다. 하지만 인권운동가인 팡 크히는 이 조치를 두고 말레이시아의 성수수자 커뮤니티가 기뻐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국회가 열리게 되면 권력층이 자신들이 성소수자들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게 될까봐 노심초사하는 현상을 보게 될 것이며 그들은 정치적으로 지지를 잃을까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팡 크히는 말레이시아의 새 정부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팡이 걱정하는 것은 반 동성애 법률만이 아니다. 1948년에 제정된 영국 식민지 시대의 질서유지법들이 성소수자들을 위한 인권운동을 어렵게 하면서 반체제 인사들을 잠재우기 위해 적용되어왔다.

“질서유지법들은 지금도 인권운동가들을 표적삼아 억누르기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팡은 말했다.

“저는 우리가 동성애 반대 법률을 문제가 많은 영국 식민지 시대의 유산으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증가하는 보수적인 이슬람 정서로 인해 인권운동가들의 우려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말레이시아 성소수자들에게 삶의 질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8월에는 쿠알라룸푸르의 동성애 클럽을 급습한 경찰에 의해 20명의 남성들이 체포되었는가 하면 지난 9월 초에는 두 명의 동성애 여성들이 주차된 차 안에서 성행위를 시도했다는 죄목으로 태형에 처해졌었다.

“앞으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우리는 모릅니다. 현제 일반적인 분위기가 그렇습니다.”

성소수자 인권운동 단체인 ‘펠랑기 켐페인’의 누만 아피피의 말이다.

▷"우리는 자유롭고 싶다”

적어도 15개의 과거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 이후 동성애를 합법화했다. 금년에는 트리니다드와 토바고가 동성애 금지 법률들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으며 그 뒤를 이어 인도가 두 번째로 동성애를 합법화했다.

동성애를 합법화한 국가들 중에는 호주, 캐나다, 남아프리카 같은 주로 경제 선진국 나라들이 포함된다.

많은 과거 식민지의 변경 국가들에서는 동성애 금지법들은 여전히 존속하고 있거나 더 강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아프리카 나라들이 그렇다.

작년 12월에는 우간다에서 열린 성소수자 영화제가 경찰의 급습을 받고 영화제를 취소해야했다. 경찰은 주최측에 영화들이 포르노에 가깝다는 경고를 보냈다고 말했지만, 주최측은 자신들은 어떤 법률도 위반하지 않았다고 항변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다른 이전 식민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우간다에서도 동성애는 영국이 제정했던 현행 형법 조항에 따라 불법화되어있다. 동성애자들의 자긍심을 일깨우는 행사들은 당국에 의해 그때마다 금지되고 있으며 우간다 국회는 ‘동성애를 꾀하는 행위들’을 불법화하는 엄격한 법률을 시행하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UN의 명령으로 르포 활동을 하는 한 르포작가는 지난 4월 과거 영국 식민지였던 가나를 방문해서 가나에서 자행되고 있는 성소수자에 대한 만연한 차별과 심지어 폭력에 대해 보고한 바가 있다. 가나에서는 식민지 시대 이래 동성애가 여전히 불법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현행 형법 조항들은 과거 법률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2017년 초에 가나의 저명한 정치인 마이크 오쿠와예는 동성애를 ‘혐오스러운 행위’로 간주하며 보다 엄격한 법조항을 적용할 것을 주문함으로써 성소수자들의 근심을 키우고 있다.

“정부는 우리도 존엄함을 지닌 인간이라는 점을 인식해야하며 우리를 사회의 낙오자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40살의 가나의 한 레즈비언은 지난 1월 국제인권감시기구에 이렇게 호소했다.
“우리는 자유롭고 싶습니다. 매일 매일의 장애와 폭압을 뚫고 우리도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서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변화의 바람이 서서히 불고 있다. 인도에서는 기쁨과 축하의 열기 속에서 성소수자 인권운동가 조티는 미래에 대해 낙관한다고 말했다.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첫발이 중요하지요. 합법화 없이는 인권운동의 미래 투쟁도 생존할 수 없습니다.” 

[위키리크스한국=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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