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한 나라 속 '두 나라'.. 친러-친서방 갈등 끝에 러시아 침공 받은 우크라이나
[인사이드] 한 나라 속 '두 나라'.. 친러-친서방 갈등 끝에 러시아 침공 받은 우크라이나
  • 유 진 기자
  • 승인 2022.03.01 07:07
  • 수정 2022.03.01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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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포 공격에 피해 본 우크라이나 키예프 아파트. [AP=연합뉴스]
로켓포 공격에 피해 본 우크라이나 키예프 아파트. [AP=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전세계 정치,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특히 세계 주가가 폭락하고 원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물가를 견인하는 등 가뜩이나 위축된 세계 경제를 막다른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가 국제법으로도 인정한 분리된 국가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세 나라가 한 민족이라 주장하고 있다. 동시에, 그는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독특한 민족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우크라이나의 높아지는 민족 의식을 폄하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본질적으로 러시아에 적대적이 아닌 우호적인 입장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푸틴은 현 우크라이나 정부가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하는 파시스트라는 주장도 덧붙이고 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동부와 서부가 ‘한 나라 속의 두 나라’로 불릴 정도로 정치적 성향, 언어, 인종, 경제적 상황이 매우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자처하며 친서방-반러시아를 외쳐온 정치인들에 대해 중ㆍ서부지역 사람들은 환호한 반면, 이전 러시아 땅이었던 동ㆍ남부지역 주민들은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자연스럽게 우크라이나의 정치는 두 갈래로 갈라지게 된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동부는 서부에 비해 부유하고 공업화가 잘 발달된 것이 특징이다. 서부에는 우크라이나인이 많고 동부는 대부분 러시아인이 거주하고 있다.

구 소련 시절부터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에 산업 시설과 인구가 집중되어 서부와 중부는 소외되어 왔는데 이러한 산업시설의 편향이 지역 간의 불공정, 불평등, 소외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언어도 동남부는 러시아어를, 서부는 우크라이나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푸틴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창조했고, 우리는 그것들을 언제든지 되찾을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가장 큰 이유는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을 바탕으로 둔 지역적 집단 안전보장기구) 가입 문제로 분석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NATO)에 가입을 하면 나토방위군 전선과 러시아 국경을 맞대게 된다. 루마니아와 폴란드처럼 러시아 국경 근처에 공격용 무기가 배치되며 러시아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상에 있는 도네츠크공화국과 루간스크공화국 [연합뉴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상에 있는 도네츠크공화국과 루간스크공화국 [연합뉴스]

2014년 대규모 시위대가 친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사임시키자, 러시아는 러시아와의 합병을 찬성하는 크림반도 주민투표를 근거로 러시아로 강제병합했다. 이것이 크림전쟁이다.

그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 반군간 교전이 돈바스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해왔다. 

이달 22일 러시아 푸틴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LPR)을 주권국가로 승인했다. 최근까지 이 지역 주민들은 친우크라이나 세력들의 포격을 피해 러시아로 피난가기도 했기 때문에 푸틴의 주권국가 선언은 그들에게는 ‘제2의 국경일’로 여겨진다.

현재 러시아는 이 두 주가 포함된 돈바스 지역(동부)이 역사적으로나 정당하게 러시아의 일부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푸틴이 독립을 주장한 ‘도네츠크’와 ‘루간스크’가 우크라이나의 필수 지역이라는 것이다.
 
구 소련 시절,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이 두 지역은 공식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일부였다. 소련이 해체되자 구소련 공화국의 국경은 국제법에 따라 구소련 국가들의 법적 경계선이 됐다.

돈바스 지역에는 역사적으로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유대인 등이 거주하고 있다.

구 소련 시대와 후기 소련 시대에는 민족적으로나 언어적으로나 러시아인들이 대부분이었다.

2014년 키예프의 마이단 혁명이 일어나면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우크라이나 일부 지역에서 러시아어 사용을 제한하겠다고 위협하자 돈바스 반군은 우크라이나 중앙정부에 격렬하게 저항했다.

돈바스에서 우크라이나군과 친러 반군 사이에 수개월간 교전 끝에 러시아 정규군이 러시아에서 진격했고, 수천명이 사망하고 부상하는 등 지난 8년간 지속된 전쟁이 시작됐다.

러시아는 민족성을 바탕으로 돈바스를 주장할 수 있지만, 역사적 소유에 기반한 주장을 하는 우크라이나인들도 마찬가지다. 양측 주장의 충돌은 유혈 사태에서, 결국 침공으로 확대된 것이다.

“러 침공시 끝까지 항전” 12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시민들이 ‘우크라이나인들은 저항할 것’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횃불을 치켜든 채 러시아 침공 시 끝까지 항전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키예프=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시민들이 ‘우크라이나인들은 저항할 것’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횃불을 치켜든 채 러시아 침공 시 끝까지 항전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키예프=AP연합뉴스]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독립국 인정’… 전쟁의 서막

1918년부터 1921년까지 일어난 우크라이나 내전에서 레닌 정부가 승리하고 외국의 간섭주의자들을 몰아낸 이후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이 수립됐다.

레닌의 정책은 소련 제국 내에서 우크라이나의 국가 지위를 증진시키고 공식적으로 소련과 다른 소비에트 공화국들에게 조건 없이 연방에서 탈퇴할 수 있는 헌법상의 권리를 부여했다. 이 권리가 결국 소련을 폭파시킨 지뢰라고 푸틴은 주장한다.

우크라이나어는 소련에서 금지된 적이 없으며 학교에서 가르쳐졌다. 1920년대에 우크라이나 문화는 레닌주의 국적 정책에 의해 적극적으로 장려됐다.

그러나 스탈린 치하에서 우크라이나 언어와 문화는 강력하게 훼손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탄압받던 1930년대 초반 끔찍한 '죽음의 기근'으로 우크라이나 농민 수백만명이 사망하면서 공화국에서 러시아어와 문화를 가르치는 ‘러시아화’가 가속화됐다.

소련 체제 내에서 우크라이나는 소련의 다른 많은 민족들처럼 현대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소련의 모순된 정책들은 우크라이나의 문화국가를 촉진하는 동시에 자유, 주권, 민족주의 표현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땅 속의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던 러시아-우크라이나 갈등은 결국 이번 침공으로 비화했다. 푸틴 대통령이 돈바스 공화국들을 독립 국가로 인정한 것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적 침략의 ‘신호탄’이 되었던 것이다.

[위키리크스한국= 유 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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