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미 대선]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 바이든의 흑역사
[2020 미 대선]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 바이든의 흑역사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0.08.20 06:43
  • 수정 2020.08.20 0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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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 대통령 시절 CIA 국장이던 윌리엄 케이시를 지지하면서 CIA의 암흑기에 한 자리를 차지했던 바이든
[사진 출처 : 로이터=연합뉴스]
[사진 출처 : 로이터=연합뉴스]

정치판에서는 잘한 일보다는 상대방이 못해서 승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번 미국의 대통령 선거도 그런 식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점점 농후해지고 있다. 미국에서 지금 당장 대선을 치른다면 트럼프보다는 바이든이 당선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종 스캔들이 복병처럼 대기하고 있어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바이든은 어떤 역정을 거쳐 온 정치인일까. 그는 트럼프와는 다르게 예측 가능하고, 리버럴하고 친서민적일지 모른다.

우리는 미국의 대통령이 자국에는 조금 불리하더라도 세계의 평화나 경제,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바이든은 과연 그런 정치인일까?

불행이도 바이든은 레이건 행정부 시절 이란-콘트라 스캔들로 최악의 오명을 뒤집어쓴 CIA 국장 윌리엄 케이시를 지원한 적이 있다. 주로 진보적 시각에서 정책을 다루는 미국의 독립언론 프로스펙트(prospect.org)는 작년 말 민주당의 조 바이든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항마로 부각될 때 그의 어두운 과거를 조명한 칼럼을 게재했었다. 이 칼럼은 그가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사악한 관료들을 거론할 때 휴머니즘에 배치되는 해악으로 뭉쳐있고, 음험한 베일에 가려진 인물들을 순서대로 나열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누구 하나를 꼽으라면 로널드 레이건의 CIA 국장이었던 윌리엄 케이시가 1등에 꼽힐 최적의 인물일 것이다.

케이시는 CIA의 책임자에 오르기 전 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군 정보기관에서 일했고, 이후에는 전후의 재계 엘리트들에게 합법적이지만 부끄러운 세금 회피 방법을 조언해주는 일을 했다.

이후 케이시는 로널드 레이건 당선자의 정권 인수팀에 발탁되어, 로마로 날아가 바티칸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만나 당시 공산주의와의 싸움에 대한 현황을 브리핑했다.

케이시는 말년에는 이란-콘트라 스캔들에 직접 연루되었다가, 의회의 증언대에 서기 24시간 전에 병원에 입원함으로써 기소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했다. 그는 이후 얼마 있지 않아서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케이시의 사악한 이미지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 바이든과 거의 닮지 않았다. 바이든은 40년 가까이 의정활동을 해오면서 애국과 충실함, 그리고 초당적 이미지를 가꾸어왔다. 그러나 2017년 기밀 해제된 CIA 크레스트 문서(CIA CREST archive)에는 케이시의 부상(浮上)을 지지하고, CIA 역사상 가장 암흑기로 안내한 바이든의 역할이 상세히 기록되어있다.

케이시는 80년대 초 정보요원들에게 보낸 극비 메모에서, CIA가 어찌해보지 못했던 법무부를 겁박한 바이든을 추켜세우고 있다. 바이든이 법무부에 보기 좋게 한 방을 먹였다는 것이다.

케이시는 “바이든이, 자신이 추진 중인 그레이메일(graymail) 법안에도 불구하고 법무부가 정보 누출자를 색출하지 않는다면 추가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하면서 무능하고 수동적인 법무부에 날선 비판을 가했다”고 강조했다. 그레이메일은 블랙메일(blackmail)과 비교할 수 있는 용어로, 형사소추 중인 정부 기밀의 내부고발자가 소추를 피하기 위해 그 기밀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는 행위를 말한다.

두 야심가의 협력관계는 바이든이 그레이메일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하면서 시작되었다. 바이든은 이 법안을 통해 내부고발자 재판에서 피고인이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해당되는 기밀문서를 법정에 요청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 법안을 시초로 바이든은 케이시처럼 감시의 눈초리를 번득이는 매파와 정보기관의 권한 남용을 우려하는 자유세력 사이를 위태롭게 넘나들게 된다. 그레이메일 금지 법안은 바이든에게는 초당적이고 중도적인 법안이었던 것이다.

케이시의 기록에서도 명확히 드러나듯이 바이든은 자신이 발의한 그레이메일 금지 법안이 정보유출자나 내부고발자를 막는 데까지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여겼다. 그는 CIA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마련된 스탠포드 대학의 비공개 연설에서 학부생들을 상대로 ‘중앙아메리카의 전체 스파이 네트워크(정보활동)가 폭로로 인해 손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이 자리에서 소련 정부에 정보를 넘긴 죄목으로 사형에 처해진 미국인 줄리어스 로젠버그와 에델 로젠버그를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의 이익에 배치되는 간첩행위에 가담한 경우 미국 사회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생각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윌리엄 케이시 전직 CIA 국장(사진=Wikimedia Commons)
윌리엄 케이시 전직 CIA 국장(사진=Wikimedia Commons)

바이든의 이러한 외부 활동은 CIA의 이미지 개선에 최선의 역할을 했다고, 케이시는 메모를 통해 남기고 있다. 외부에서는 다른 나라들에 개입함으로써 욕을 얻어먹고 국내에서도 못지않은 해악을 저질러온 수십 년 동안의 오명을 씻으려는 CIA의 노력에 바이든이 도움을 주었다는 말이다.

또, 바이든은 의회의 ‘처치 위원회(Church Committee)’가 조사 결과를 통해 CIA의 국내 공작과 관련해서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운 지 몇 년 뒤 (여파가 가라앉자) CIA에 우호적 손길을 보냈다. 바이든은 CIA의 헛발을, 다른 정치 문제들이나 마찬가지로, 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보지 않고 바로잡을 수 있는 일탈행위 정로로만 치부했다. 이는 그가 현재의 미국의 총사령관(대통령) 선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와 흡사하다. 그는 이번 선거를 수십 년 동안 이어져온 재앙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의 논리적 귀결로 보지 않고 어쩌다 걸릴 수 있는 요행수로 보고 있다.

한편, 바이든은 1981년 케이시의 인준 청문회에서는 어느 정도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상원 특별 정보위원회가 계속해서 CIA를 감독하고 자신이 소외되지 않도록 다짐을 받기 위해 케이시를 여러 차례 압박했다. 바이든은 CIA의 기밀정보를 계속 보고받기 원했고, KGB 스타일의 통제되지 않는 감시 체계가 시민의 자유에 가하는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기도 했다.

바이든이 나중에 이 특별위원회가 무능하기만 했다고 인정하기도 했지만, 활기를 잃은 위원회였을지라도 그는 자신에게 부여된 쥐꼬리만 한 권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가 그 이전 해 ‘미국 자유인권협회(ACLU)’ 앞에 서 CIA 헌장을 놓고 공개청문회를 할 때와는 180도 다른 입장을 내놓았다.

“여러분 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는 당시 CIA의 불법행위에 분노하던 ACLU 변호사들 앞에서 이렇게 서두를 꺼냈었다.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습니다. 보통의 미국인들이라면 이런 일에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지요. …… 여러분들은 계속해서 CIA에 대한 대중의 우려를 거론하시는데 그런 건 없습니다.”

하지만 바이든이 CIA 국장 인준청문회에서 어느 누구보다 케이시를 몰아붙였다고는 해도 그의 질문들은 그의 전매특허인 저주받은 관용(寬容)을 그대로 보여줬다. 그는 케이시의 경력에 많은 찬사를 보낸 후 대통령과의 특별한 관계 때문에 이해의 충돌(conflict of interest)이 발생하지 않을지를 물었고, 곧바로 CIA 국장이 되면 어떤 성적표를 위원회에 제출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최종적으로 케이시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글쎄요. 의원님과 의견을 달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진실은 제가 위원회가 저를 조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데 있습니다.”

1986년 이란-콘트라 스캔들이 터졌을 때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캐스퍼 와인버거, 조지 슐츠, 에드 미스와 댁책을 논의 중이다.(사진=Wikimedia Commons)
1986년 이란-콘트라 스캔들이 터졌을 때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캐스퍼 와인버거, 조지 슐츠, 에드 미스와 댁책을 논의 중이다.(사진=Wikimedia Commons)

케이시가 인준되고 나서 몇 달이 지나 그가 인준청문회에 숨긴 사실들이 드러났다. 그는 25만 달러가 넘는 9건의 투자 건과 개인 부채, 거의 50만 달러에 달하는 연관 채무 사실, 자신이 이사로 재직 중인 여러 기업 및 재단들의 명단, 계류 중인 소송 4건, 그리고 지난 5년 동안 개인적으로 대행 업무를 맡았던 70명 이상의 고객 명단을 말하지 않았다. 바이든이 이에 대해 누락, 허위 증언, 증언의 상호 모순을 책망했지만, 버싱(busing)이나 마약 문제, 감금, 그리고 아니타 힐(Anita Hill)의 성폭력 폭로 문제에서 보였듯이 그의 책망의 목소리는 작고 때늦었다. 결국, 상원 특별 정보위원회는 케이시가 CIA 국장으로서 임무를 수행할 결격사유를 찾지 못했다고 결론을 내림으로써 이란-콘트라 스캔들의 핵심인물이 통제받지 않은 상태에서 역할을 계속 수행하도록 했다.

인준청문회에서 바이든이 한 말들을 종합하면 바이든이 정보 총책임자가 시민의 자유와 정부의 권력 분권에 위험요소가 될 수 있음을 인지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는 케이시의 역할이 레이건에게 미치는 영향을, 딕 체니가 조지 W. 부시에게 미친 영향만큼이나 잘 알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는 정치적으로 그를 가장 잘 표현하는 초당적 이미지에 걸맞게 케이시가 정보의 총책임자가 되는 길을 막지 않았다. 나중에는 그 위험성이 현실로 드러나서 케이시는 레이건을 보호하기 위해 위원회에 거짓말을 하고 비밀작전을 보고하지 않았다. 바이든은 바로 그 위험성에 대해 분명한 목소리를 내는 대신 케이시를 반대했을 때 맡게 될 정치적 부담을 더 무겁게 받아들였다. 그는 착실히 행동하면서 소동을 일으키기보다는 공화당 동료 의원들과 한 침대에 뒹굴기를 선택했던 것이다.

케이시와 바이든이 내부고발자를 똑같이 미워했지만 80년대가 기울면서 그들의 시각은 갈라지게 된다. 케이시는 폭로자나 이를 보도한 언론인을 은밀히 수사하기를 바란 반면 바이든은 ‘스파이 방지법(Espionage Act)’을 통해 백일하에 드러내기를 원했다. ‘스파이 방지법’은 사악한(?) 내부고발자들을 말살하는 도구로 지금도 활용 중이다.

케이시는 이란-콘트라 스캔들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의회에서 증언하기 전에 사망했지만, 그의 전과(前科) 기록은 씨앗이 되어, 온두라스 정부에 ‘심문 매뉴얼(Human Resource Exploitation Manual)’을 제공해서 좌파 재야인사들을 고문·살해하도록 하고, 그레나다를 침공하고, 1986년 아이티 선거 쿠데타를 획책하는 등 CIA의 가장 악랄한 테러와 강압 행위라는 열매를 맺었다.

CIA와 그 기관의 인적자원들이 저지른 악행과 테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금방 분노를 터뜨리게 된다. 그러나 이들의 어떤 행위도, 국내외에서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의지로 똘똘 뭉친 정부의 한 기관을 감독할 책무가 있는 바이든 같은 정치인들의 암묵적이고 명백한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바이든과 케이시의 관계가 최근의 기억에 얼마나 요약되어 남아있는지는 모르지만, 망명을 요구하는 에드워드 스노든을 가로막는 바이든의 개인적인 노력을 보면 정보 계통과 그의 관계는 케이시가 사망한지 30년이 지났어도 별로 변한 것은 없어 보인다.

바이든은 기업 내부고발자의 권리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옹호해왔다. 그러나 정보기관의 권위적이고 불법적인 사찰을 폭로한 내부고발자를 처벌하려는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과는 궤를 같이 했다.

내부고발자에 의한 (대통령) 탄핵 절차가 열을 더해가고 있기 때문에 바이든의 행보는 이제 만천하에 공개되어있다. 내부고발자가 초당적 지지를 구할 수 있다면 그는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바이든이 상원에서의 활동을 계속해서 입에 올림에 따라 그가 윌리엄 케이시 CIA 국장 시절에 기여한 역할과 내부고발자에 대한 불편한 입장도 그가 대답해야할 장문의 질문지 안에 포함되어야한다. 이 정치 담론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두고두고 떠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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