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진실 쫓는 언론인 거듭나야" 무죄 피고인에게 훈계하는 판사
[WIKI 프리즘] "진실 쫓는 언론인 거듭나야" 무죄 피고인에게 훈계하는 판사
  • 윤여진 기자
  • 승인 2021.07.20 12:19
  • 수정 2021.07.20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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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의 '적절한 훈계'는 어디까지인가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홍창우 부장판사는 강요미수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동재(사진) 전 채널A 기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공소사실은 이 전 기자가 검찰 고위층과 연결되있다는 점을 이용해 범죄 피의자를 압박해 주변인들의 비리정보를 받아내려다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 전 기자는 주가조작이 있던 신라젠 전 대주주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먼트코리아(VIK) 대표에게 다섯 차례 교도소 편지를 보내고 대리인 지현진씨를 세 차례 만나 이 회사 행사 특강 연사 전력이 있는 여권 핵심인사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비리를 요구한 이른바 검언유착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취재원을 강요했지만 미수에 그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지난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취재원을 강요했지만 미수에 그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지난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재판부가 이 전 기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건 애초 검언유착은 '구성할 수 없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강요죄는 사람에게 폭행 또는 협박으로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할 때 성립한다. 그런데 수사기관이 아닌 기자의 업무는 취재원에게 의무 없는 일을 부탁하는 일이다. 재판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언론이 정보원인 개인에게 취재를 요청하는 것은 행위의 본질상 '의무 없는 일'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정진웅)는 이 전 기자가 '유시민 정보를 내놓지 않으면 검찰 수사를 강하게 받을 것'이라고 이 전 대표 측을 협박했다고 봤지만 재판부는 이 기자 행위가 취재기자 업무 수준에 머물렀다고 달리 판단했다.

강요미수의 또 다른 구성요건인 '해악의 고지' 부분에선 재판부는 검언유착 여부 판단을 회피했다. 제3자를 통해 '해악을 가하겠다'고 협박하는 행위가 범죄가 되려면, 해악의 고지자가 제3자의 행위를 사실상 지배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위에 있다고 피해자가 믿어야 한다. 때문에 해악의 고지자가 제3자와 유착 관계인지는 범죄 성립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실제로 검찰과 연결되어 검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는지 여부는 이 사건에서 쟁점이 아니고, 판단 대상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검찰 수사팀과 이 전 기자는 재판 내내 각각 검언유착이 존재한다, 부재한다 다퉜지만 재판부는 양쪽이 땅 짚고 헤엄쳤다고 지적한 셈이다. 

재판부 최종 결론은 "유시민 등에 관한 취재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위 피고인(이 전 기자)이 검찰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피해자(이 전 대표)를 중하게 처벌할 것이라는 명시적·묵시적 언동을 하였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 전 대표가 이 전 기자로부터 편지를 받고 "또다시 구렁텅이에 빠진다는 생각이 들었다"(법정증언)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불안감이 이 전 기자가 검찰 고위층을 조종할 수 있다고 믿은 결과는 아니라는 얘기다. 중앙지검 수사팀은 이 전 기자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3자를 윤석열 전 검찰총장 최측근 한동훈 검사장이라고 의심해 그를 피의자로 입건했지만 끝내 공모 증거를 찾지 못해 기소하지 못했다. 

법리적으로 검언유착 여부 판단을 피한 홍 부장판사는 가정법을 동원했다. 재판부는 "3차 만남에서 피고인들이 피해자의 대리인인 지현진에게 검찰총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고위 간부라는 것을 암시하면서 그와의 대화 녹취록을 보여주고 그의 음성이 녹음된 녹음파일을 들려주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2차 만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지현진이 요구에 따라 피해자에 대한 선처를 약속하는 의미에서 한 언동"이라고 판결문에 적었다. 중앙지검 수사팀은 이 전 기자가 지씨를 만나 제공한 검찰 관계자 통화녹취 상대방이 한 전 검사장인지 증명하지 못했다. 재판부가 '그렇다고 하더라도'라는 가정법으로 검언유착은 강요미수의 전제가 아니라고 분명히 한 것이다. 중앙지검 수사팀의 범죄구성도 적용법조도 모두 틀렸다는 얘기다. 

중앙지검의 반발을 고려했는지 재판부는 이 전 기자와 그와 함께 공범으로 기소된 백승우 채널A 기자를 몰아세웠다. 홍 부장판사는 판결이유를 모두 듣고 '무죄를 선고한다' 주문을 예상하는 이들을 계속 세워두고 "명백히 기자로서의 취재 윤리를 위반한 것으로서 도덕적으로 비난 받아 마땅하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피고인들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진실과 정의를 쫓는 언론인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훈계했다. 법의 위반 여부를 말해야 하는 판사가 윤리를 위반했다고 말하는 것이어서 일종의 권한남용으로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홍 부장판사는 판결문에 이 부분을 이렇게 썼다. 

"피고인 이동재가 위 서신을 보낸 시기나 그 내용 등에 비추어 위 서신을 통해 피해자에게 겁을 주거나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압박함으로써 원하는 취재 정보를 얻고자 하는 위 피고인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바, 이러한 행위는 취재 윤리를 위반한 것으로 볼 소지가 충분하다"

홍 부장판사는 '취재윤리'를 언급하면서 각주를 달았다. 여기엔 '한국기자협회 실천요강' "회원은 정보를 취득함에 있어서 위계나 강압적인 방법을 쓰지 않는다", '신문윤리 실천요강' "기자는 취재를 위해 개인 또는 단체를 접촉할 때 필요한 예의를 지켜야 할뿐만 아니라 비윤리적인 또는 불법적인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가 근거로 쓰였다. 전부 강요미수 혐의를 판단하는데 필요하지 않은 '법적으로 근거 없는 것'이다. 판사에게 '비법적으로 근거 있는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정한다. 헌법과 법률 범위를 넘어서는 판사 개인의 소신이 양심의 이름으로 판결문에 적힐 수 없는 이유다. 홍 부장판사는 이같은 점을 염두에 뒀는지 이 전 기자에게 한 훈계는 판결문이 아닌 기자들에게 따로 배포한 A4 한 장 분량의 '당부의 말씀'에 적었다. 반면 판결문엔 딱 한 문장이 실렸다. 홍 부장판사는 스스로 권한없음을 자인한 것일까. 

◇ 법적근거 없는 규칙과 금지된 재판소원
"피고인은 법을 집행하는 재판관을 농락하였고 또한 지금까지 살아온 형기를 계산해보니 20년이 되었고, 최종형기를 보호감호소에서 나왔고 이러한 점들을 볼 때 피고인은 사회보다 교도소 생활이 적합하다"

2003년 5월 20일 서울고등법원의 한 재판부. 재판장은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피고인 김모씨의 항소를 기각하는 판결문을 낭독하기 전 마이크에 입을 대고 말했다. 형사소송규칙 제147조 '재판장은 판결을 선고함에 있어 피고인에게 적절한 훈계를 할 수 있다'에 근거를 둔 발언이었다. 김씨는 2년이 지난 2005년 6월 9일 항소심 재판장의 훈계를 헌법재판소로 가져갔다. 헌재는 재판장의 훈계행위는 헌법소원 청구 대상에 해당하지 않은 데다 청구기간이 지났다며 김씨 청구를 각하했다. 헌법재판소법은 법원 판결을 헌법소원 청구 대상에 포함하는 재판소원을 금지한다. 1992년 헌재는 "기타 소송절차의 파생적·부수적인 사항에 대한 공권적 판단도 (법원 판결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결정한 바 있는데 재판장의 훈계행위 역시 '공권적 판단'이라는 취지다. 재판장 훈계행위 근거인 형사소송규칙 조항은 형사소송법 조항 위임을 받지 못했다. 형사법 대원칙 죄형법정주의에서 파생하는 포괄위임금지 원칙을 위반했다고 볼 수 있지만 헌재가 이 부분을 심판하려면 재판소원이 먼저 허용돼야 한다. 오늘도 피고인들은 본인이 무죄인지, 유죄인지를 알기 전에 '적절한 훈계'를 들어야만 한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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