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 인사이드] 밥 로스가 '세계의 미술 선생님'으로 성공하게 해준 군대 경력
[컬쳐 인사이드] 밥 로스가 '세계의 미술 선생님'으로 성공하게 해준 군대 경력
  • 유 진 기자
  • 승인 2023.06.25 06:57
  • 수정 2023.06.2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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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의 군 생활 대부분을 알래스카 주둔 미 공군에서 보낸 밥 로스...알래스카의 아름다운 풍경과 사랑에 빠지면서 그림으로 크게 성공하게 되다
세계의 미술 교사로 불리는 밥 로스. /CNN
세계의 미술 교사로 불리는 밥 로스. /CNN

사후에도 여전히 '세계의 미술 선생님' 평가를 받고 있는 밥 로스(1942-1995). 방송에 나와 '쓱싹 쓱싹...' 단 몇 분만에 사진을 방불케 하는 그림을 그려내는 그는 그림을 좋아하는 전세계의 애호가들의 찬탄을 자아냈다. 

1983년부터 1994년까지 10년 이상 진행된 30분 분량의 교육용 TV 프로그램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The Joy of Painting)’의 진행자로 명성을 떨쳤던 밥 로스는 그의 전형적인 곱슬머리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행복한 사고(happy accidents)’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전국의 시청자를 사로잡은 유명 프로그램 진행자 이전에 미 공군의 선임 훈련 조교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밥 로스의 군 생활은 짧지도 않았다. 그는 18세에 입대해 20년을 복무하고 상사까지 진급한 뒤 전역했다.

감미로운 미성의 유명 미술 강사 밥 로스가 한때는 신입 훈련병들을 강건한 군인으로 만들기 위해 고함을 지르는 훈련 조교였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는 군대 생활을 거치지 않았다면 취미로 그림을 시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18세에 군에 입대한 밥 로스 [넷플릭스 캡처]
18세에 군에 입대한 밥 로스 [넷플릭스 캡처]
트레이드마크인 곱슬머리로 변신하기 전의 밥 로스 [넷플릭스 캡처]
트레이드마크인 곱슬머리로 변신하기 전의 밥 로스 [넷플릭스 캡처]

공군에 입대했지만 큰 키와 평발 때문에 전투기를 탈 수는 없었던 밥 로스

로버트 노먼 로스(밥 로스의 본명)는 1942년 10월 29일 플로리다주 데이토나 비치에서 목수인 잭 로스와 웨이트리스인 올리 로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9학년 때 아버지의 목수 일을 돕기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1961년, 18세의 로스는 미 공군에 입대했다. ‘바이오그래피닷컴(Biography)’에 따르면 그는 처음에는 플로리다에서 근무했지만, 189Cm의 큰 키와 평발 때문에 전투기에 오르거나 전투기와 관련된 업무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의료 기록병으로 사무직에 배치되었다.

밥 로스는 군대 생활 2년 차에 플로리다에서 알래스카의 아일슨 공군 기지로 전속 배치되었다. 그 지역은 페어뱅크스에서 약 25마일 떨어진 그림 같은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줄곧 플로리다에서 자라면서 눈이나 산을 직접 본 적이 없던 로스는 그 곳의 경치에 매료되었다.

로스는 나중에 알래스카는 “가장 빼어난 산 풍경을 지니고 있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그의 그림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가 알래스카의 산 풍광을 즐겨 그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밥 로스는 군 생활의 많은 시간을 알래스카 아일슨 공군 기지 병원에서 부사관으로 근무했고, 전역할 무렵에는 사실상 선임 훈련 조교 임무를 맡게 되었다.

“나는 병사들에게 변소를 닦게 하거나 관물대를 정리하게 하거나 늦는다고 소리를 지르는 훈련 조교였습니다”

‘밀리터리닷컴(Military)’에 따르면 그는 나중에 이렇게 회상했다고 한다. 

“나는 저속하고 거친 성격을 요구하는 그 임무에 싫증이 났습니다. 군대를 벗어나면 그 일에서도 해방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밥 로스의 군 경력은 소리만 지르는 거친 생활로만 이어지지 않았다.

공군 제복을 입은 밥 로스 [넷플릭스 캡처]
공군 제복을 입은 밥 로스 [넷플릭스 캡처]

밥 로스가 그림을 배우고 그림에 매료될 수 있도록 해준 군 생활

미군 복지단(USO)은 미군 복리를 위해 마련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영리 조직이다. 밥 로스가 공군에서 군 생활을 하는 동안 USO는 군인들에게 그림 그리기를 가르치는 프로그램도 제공했다.

‘밀리터리닷컴’ 따르면 로스는 이러한 회화(繪畫) 수업 중 하나에 등록했지만, 강사들에게 실망감만 느꼈다고 한다. 

“그들은 나무를 구성하는 재질이 무엇인지만 가르치고, 정작 나무를 그리는 방법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다가 1975년 무렵 발 로스는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알라 프리마(alla prima)’ 또는 ‘덧칠기법(wet-on-wet)’ 그림으로 유명한 독일 태생의 예술가 윌리엄 알렉산더가 주관하는 ‘유화의 마법(The Magic of Oil Painting)’이라는 쇼와 만나게 된다.

로스는 1990년 ‘올랜도 센티넬(Orlando Sentinel)’과 행한 인터뷰에서 “나는 그림을 아주 빠르게 그리는 방법을 개발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점심에 집에 가서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그림 몇 점을 그려 그날 오후에 내다팔곤 했습니다.”

그림을 빠르게 그리는 로스의 기법은 그가 TV에 출연해 그림을 시연할 때 효과를 발휘해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30분 동안에 그림 하나를 완성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기술은 또한 그가 다작 화가로 성공하는 발판이 되어 그는 생애 동안 대략 25,000~30,000점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마침내 자신이 군 봉급보다 그림으로 더 많은 수입을 올린다는 사실을 깨달은 로스는 다시는 누구에게도 고함치지 않겠다고 맹세하며 1981년에 군문(軍門)을 떠났다.

“하루 종일 군인으로 있다가 집에 돌아와 그림을 그릴 때면 내가 원하는 세상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말했다. 

“그림 속에는 아름답고, 영롱하며, 아무도 화내지 않는 깨끗하고 오염되지 않은 세상이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는 모두가 행복했습니다.”

그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밥 로스 [트위터 캡처]
그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밥 로스 [트위터 캡처]

군을 나와 본격적인 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한 밥 로스

공군에서 퇴역한 직후 밥 로스는 자신의 퀵 페인팅 기술(quick-painting technique)에 처음으로 영감을 준 사람인 윌리엄 알렉산더를 찾았다. 그는 알렉산더의 견습생으로 일하며 스승의 기술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면서 인정을 받은 결과, 스승은 은퇴하면서 그를 후계자로 지명할 정도였다.

밥 로스와 그의 두 번째 아내 제인은 로스의 제자 부부와 사업을 벌였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사업 첫해에 두 부부는 합쳐서 2만 달러의 손해를 보았다.

그런 와중에도 로스는 빠르게 그리기 기법 전수를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는데, 그가 가르친 수업 중 일부가 녹화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가 전역하고 나서 불과 1년 후인 1982년 버지니아주 폴스처치에 있는 한 공영 TV 방송국에서 그의 녹화 테이프를 보고 시범적으로 한 프로그램(pilot program)을 진행해보자고 제안했다.

이 시범 프로그램은 PBS 방송국의 60개 지국들이 앞다투어 같은 프로그램을 편성할 정도로 대박을 터뜨렸다.

로스의 쇼는 인디애나주 먼시에 있는 공영방송 WIPB-TV 방송국에 최종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다작 솜씨를 최대로 발휘해 단 2일 반 만에 전체 시즌(13개 에피소드)의 녹화를 마치곤 했다.

그런데 로스의 쇼는 공영방송 PBS에서 방영되었기 때문에 그는 실제로 TV 출연으로 돈을 벌지는 못했다. 

“사람들은 TV에 나온 나를 보고 클린트 이스트우드만큼이나 큰돈을 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올랜도 센티넬’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PBS는 공영방송입니다. 모든 쇼는 무료로 진행됩니다.”

그래도 TV 출연은 로스의 이름을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미술 교육용 책과 비디오 테이프를 판매하고, 전국 판매망을 가진 업체와 밥 로스라는 이름을 딴 미술 재료를 출시했다.

전체적으로 약 9,300만 명의 시청자가 밥 로스의 프로그램을 시청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팬들 중 상당수는 그림을 직접 그리는 것과는 상관없이 그를 좋아했다. 그냥 그의 차분하고 감미로운 목소리를 위주로 하는 그림 그리는 분위기를 즐겼던 것이다.

“시청자 대다수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 그리려는 욕구도 없는 분들입니다. 그들은 단순한 재미나 편안한 휴식을 위해 꼼꼼히 챙겨 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 프로그램을 보면 잠이 잘 온다고 말하는 시청자들의 편지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로스는 1995년 림프종으로 사망했지만, 화가이자 미술 선생님으로서의 그의 업적은 거의 30년 동안이나 이어지며 새로운 세대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위키리크스한국 = 유 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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