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92) 계엄령 선포 직전 레이건의 친서를 받아든 전두환… 고뇌의 선택
청와대-백악관 X파일(92) 계엄령 선포 직전 레이건의 친서를 받아든 전두환… 고뇌의 선택
  • 특별취재팀
  • 기사승인 2021-04-26 08:44:08
  • 최종수정 2021.04.26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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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백악관 x파일
청와대 백악관 x파일

1987년 6월 19일(금) 오후 2시. 드디어 제임스 릴리 대사가 청와대를 예방, 전두환 대통령과 마주했다.

면담은 당초 예정시간을 훨씬 넘긴 90분에 걸쳐 이어졌다. 전 대통령은 면담 내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면담 자리에는 최광수 외무장관과 통역자 한 사람만 배석했다.

”전 대통령은 이전에 나를 만나던 자리에서는 활기가 넘쳤고, 독백처럼 자기가 한 말에 웃으며 대화를 독점하곤 했다. 그러나 이날은 깊은 고뇌에 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릴리 대사가 훗날 전한 당시 면담자리의 분위기였다.

대사는 가방에서 친서를 꺼내 전 대통령에게 친서를 읽어주었다.

레이건 대통령의 편지는 우정 어린 표현들로 씌여져 있었다. 모두에 전 대통령에 대한 미국의 안보 공약을 재확인하면서 동시에 한국 대통령의 평화적 정권교체 공약에 대한 격찬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 나라의 계속적인 정치발전을 위해 정치범을 석방하고 권력을 남용한 정치탄압 관리를 처벌하며 자유언론을 신장하는게 좋을 것 같다고 권했다.

레이건은 “그와 같은 조치들은 당신이 정확하게 지적한 바 있는 ‘구 정치’로부터 탈피하려는 당신의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극적인 신호가 될 것’이라고 썼다.

릴리 대사는 친서를 읽은데 이어 계엄령 선포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단호하고 분명하게 언급함으로써 레이건 대통령의 우정 어린 친서 내용을 보충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각인시켰다.

대사는 특히 주한 미군도 대표해 말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주한 미군사령관과 나는 무력을 사용하지 말라고 건의하기로 했다”고 전 대통령에게 말했다.

만일 총리가 계엄령 선포가 임박했다고 발표한다면 이는 한미 동맹을 저해하는 행위가 될 수 있으며, 1980년 광주에서와 같은 불행한 사태의 재발을 자초하는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고까지 강하게 나갔다.

면담이 끝나고 청와대를 나서면서 최 장관은 대사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대사관으로 돌아온 릴리 대사는 정무과 직원들에게 면담 내용을 자세히 정리해줬고, 직원들은 면담 내용과 상황에 대한 대사의 의견을 더해 긴 전문을 국무부로 전송했다.

전두환과 레이건은 재임기간 내내 인권문제를 둘러싸고 묘한 긴장관계 속에 있었다. 1983년 11월 방한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전두환 전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후 손을 맞잡고 걸어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전두환과 레이건은 재임기간 내내 인권문제를 둘러싸고 묘한 긴장관계 속에 있었다. 1983년 11월 방한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전두환 전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후 손을 맞잡고 걸어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대사는 면담 당일인 19일 저녁 늦게 최광수 장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각하께서 대사와 면담하신 후 계엄령을 선포하지 않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상당수 대사관 직원들은 퇴근하지 않고 대사와 함께 청와대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서로 일하던 한국계 미국인 여직원은 그 소식을 듣고 복도에서 대사를 끌어안고 “감사합니다. 그 일을 막아주셔서 고맙습니다”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던롭은 “제가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만한 역할을 했다면 바로 이번 계엄령 건으로 화 낸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며칠 후, 리브시 장군은 릴리 대사가 그의 침묵을 ‘동의’로 받아들이고 전두환 대통령에게 이를 언급한 것을 알게 됐고 이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했다.

사실 대사가 리브시 장군과 잠깐 의견을 나눈 것은 예정에 없던 일이었고, 대사가 공동전선을 펴자는 것도, 즉흥적인 행동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계엄령 선포설과 관련, 리브시 장군은 미군이 한국군의 서울 진입을 막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릴리 대사에게 말해줬다. 장군도 내심으로는 계엄령 선포에 반대하면서도, 대사가 상황의 주도권을 쥐는 모습이 언짢았던 것이다. 

[위키리크스한국=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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