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 러시아 MZ세대는 어떻게 푸틴의 돌격대가 되었는가?
[우크라 전쟁] 러시아 MZ세대는 어떻게 푸틴의 돌격대가 되었는가?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04.14 06:06
  • 수정 2022.04.1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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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이 러시아 내에서 정치적으로, 심리적으로 승리하고 있는 이유
지난달18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림반도 병합 8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크림의 봄’ 콘서트에 참석해 환호에 답하고 있다. [사진 = PTA 연합]
지난달 18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림반도 병합 8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크림의 봄’ 콘서트에 참석해 환호에 답하고 있다. [사진 = PTA 연합]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불구하고, 블라미르 푸틴 대통령에 대한 자국민의 지지도가 80%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서방의 시각에서 보면 우크라이나에 대해 근거 없는 도발을 일으키고 명분 없는 전쟁을 자행한 주범인 푸틴의 자국 내 지지도가 이렇게 높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와 관련, CNN 방송은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출신의 언론인 스타니슬라프 쿠체르(Stanislav Kucher)의 칼럼을 통해 그 배경을 진단했다.

쿠체르는 1990년대 구소련 해체 시기에 태어나 그 이후 소비에트 제국의 위상 축소를 경험하고 있는 러시아 MZ세대의 자긍심 회복 욕망이 '위대했던(?)'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획책하는 푸틴의 행보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다.

필자는 러시아 TV의 사회자를 거친 언론인이다. 그는 스노브(Snob) 멀티미디어 플래폼의 편집장과 Kommersant-fm all-news의 정치분석 책임자 및 Sovershenno Sekretno TV 채널의 앵커와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레블러의 러시아판 편집장을 역임했다. 그는 현재 뉴욕에 거주 중이다. 

다음은 이 칼럼의 전문이다.

1991년 여름 당시 19세였던 나는 모스크바 신문사에 근무하면서 한 친구와 히치하이킹으로 미국 전역을 여행하던 중이었다.

당시까지는 구소련 연방은 외관상으로는 여전히 기세가 등등했다. 그러나 적어도 기자들 입장에서 보면 철의 장막은 이미 걷히고 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소비에트의 선전선동가들이 우리를 겁주었던 ‘사악한 제국(evil empire)’의 종말을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당시 소련의 대통령이던 마하일 고르바초프를 무너뜨리려는 강경 공산주의자들의 시도가 실패한 몇 주 뒤인 1991년 9월 초 나와 내 친구는 러시아 상황에 대한 러시아인의 시각을 설명하기 위해 C-SPAN에서 마련한 프로에 나가 전화 상담에 응했다.

“새로운 러시아에 공산주의자들이 다시 복귀할 수도 있나요?”

한 질문자가 이렇게 물었다.

“우리는 전체주의를 경험한 러시아의 다른 세대입니다. 우리는 이미 세계의 다른 나라들을 여행하고 차이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게다가 1990년대에 태어난 세대는 또 어떻고요. 그들은 새로운 자유 러시아에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전체주의의 부활을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잘못 짚고 있었다. 그로부터 약 10년 뒤 KGB 출신의 한 관리가 크렘린에 자리를 잡고 위대한 제국의 부활을 꿈꾸게 되었다.

20년 뒤에는 내 고등학교 친구들의 반 이상이 소비에트공화국의 향수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31년이 지난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싸우고 있는 러시아 전사들은 바로 1990년대 ‘새로운 자유 러시아(new free Russia)’를 기대하던 바로 그 세대들과 똑같다.

오늘 미국의 TV 프로 사회자들이 나에게 왜 러시아 국민의 83%나 푸틴을 지지하는지를 물었을 때 나는 나름대로 그 해답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은 푸틴 집권 22년의 정부 선전보다는 복잡한 속내를 지니고 있다.

오늘날 수백만의 러시아 국민이 자국 대통령을 지지하고 자국 군대가 우크라이나에서 자행하는 모든 행동을 기꺼이 정당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부차와 마리우폴, 그리고 크라마토르스크에서 자행된 만행을 '이유 있는 행위'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이다.

이들 중에는 러시아 최고 대학 중 하나에서 공부하고 외교관으로도 성공한 내 전직 동료도 들어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포격하고, 생존자들을 섬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서부 러시아 오률(Orel)에 있는 내 집 뒷마당에서 나와 함께 뛰놀던 어릴 적 친구 하나는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푸틴이야말로 러시아를 구할 유일한 지도자라 여긴다.

내 어릴 적 친구가 미국의 액션 영화를 보고 미국 탐정소설을 읽으며 성장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제국에 대한 향수를 내포한 이러한 정서는 생소할 정도이다. 그는 제국의 향수를 한 번도 감춘 적이 없는, 외교관인 대학 동료와는 다른 종류였기 때문이다.

구소련 연방 붕괴 이후 태어난 세대는 그 이전 보리스 옐친 세대가 아니라 푸틴 세대에 속한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던 세대가 아니라 귄위주의가 낳은 자식들인 것이다.

고르바초프와 옐친의 경제 개혁 과정은 러시아 국민 대다수에게 너무 큰 재정적·사회적 고통을 안겨주면서 1990년대 말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민주’와 ‘개혁’이라는 단어를 위협으로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개혁 과정에 나섰던 자유주의 정치인들은 좋은 말로 하면 ‘포퓰리스트 패배자’요 나쁜 말로 하면 ‘인민의 적’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10년에 걸친 가격 자유화와 민영화 등의 과정이 인기를 끌지 못하고, 과거 소비에트 소속이었던 지역들에서 유혈 충돌들이 빈번하자 ‘안정’과 ‘안보’가 러시아 국민들의 최우선 관심사로 자리 잡게 되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러시아 깃발. [모스크바=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러시아 깃발. [모스크바=AP연합뉴스]

러시아인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이러한 정서는 정치적 경쟁이나 견제와 균형, 언론 자유, 재판의 독립 등의 민주적 속성과는 관련이 없고, 그 대신 ‘국가의 어버이’나 항로를 벗어난 광활한 국가의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인들은 바로 푸틴에게서 그러한 리더십을 발견한 것이다. 특별한 임무에 종사했던 젊은 러시아인, 게다가 최상의 독재적 전통 속에서 옐친이 국민에게 후계자로 직접 소개한 지도자가 푸틴이었다.

그러자 그렇게도 오랫동안 바랐던 안정이 찾아왔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면서 에너지 가격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폭등했고, 러시아산 화석연료 수출에 대한 밝은 소식들이 들려왔다. 1990년대 발을 떼기 시작했던 시장경제의 메커니즘이 드디어 잠재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적극적 소비에 매료된 러시아 사람들은 푸틴이 옐친 체제 하에서 싹을 띄우던 민주적 열망을 점차 짓밟는 데도 관심을 두지 않거나 눈을 감아버리거나 심지어는 무언의 지지를 보내게 되었다.

그러면서 2004년 말쯤 되자 러시아에서는 크렘린의 영향력을 벗어난 독립적 언론을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정부에 충성을 맹세하기를 거부한 나와 같은 정치 평론가들은 방송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나는 내게 저널리즘을 가르쳐준 선생님의 충고를 정확히 기억한다. 그는 러시아 최초로 민영 텔레비전 방송을 설립했던 방송 전문가였다. 그 방송은 10년을 버티지 못했다.

“자네에게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 잘 생각하게.”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자유롭지만 가난한 언론인으로 살 것인지, ‘두번째로 오래된 직업’의 대표가 될 것인지를 잘 결정하라는 말이네. 푸틴은 여기에 오래 존재할 것이고 자네는 그의 치하에서 커가게 될 것이네.”

나는 가난하게 살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의 스승이 내포한 부패한 언론의 매춘부 같은 존재는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가능한 모든 플랫폼들을 통해 크렘린의 정책을 비판했다. 그러다가 2018년 나는 마침내 조국을 떠나 미국을 선택했다.

그러는 사이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태어나 2000년대에 학교를 다니고 대학을 졸업한 러시아의 새로운 세대에게는 자신들의 열망을 담을 대상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들이 열망을 충족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 푸틴이 꿈꾸던 그 어떤 세상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바로 서방과의 대결을 통해 이전의 위대함을 되살려 새로운 ‘러시아인의 세상(Russian world)’을 건설하겠다는 야망 말이다.

불 타는 러시아군 트럭. [AP=연합뉴스]
불 타는 러시아군 트럭. [AP=연합뉴스]

정부는 국민을 대상으로 1990년대 러시아를 무릎 꿇린 자들은 미국 주도 하의 서방이라는 사실을 선전하며 신화를 창조하는 데 성공했다. 서방의 핵심 목표는 과거 소비에트연방의 붕괴를 획책한 것처럼 새로운 러시아도 파괴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레토릭 속에서 나토(NATO)가 허울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지아나 우크라이나처럼 나토를 열망했던 모든 대상들은 반역자요 러시아의 잠재적 적으로 간주되었다.

2014년 푸틴이 크림반도를 병탄했을 때 러시아 국민 대부분은 그를 스탈린 이후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때처럼 ‘원수(元首)’와 ‘조국’이라는 단어는 동격으로 취급되게 되었다.

냉전 과정의 굴욕적 패배와 민주제도 정착의 실패를 겪은 후 러시아 국민은 ‘제국의 위대함’에 중독되는 몇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푸틴을 통해 자신들이 합당하게 누릴 힘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2022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순종적 러시아 국민 대다수에게 ‘국가의 어버이’가 자신의 약속을 지켰으며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을 주고 있다.

물론 러시아 사회의 목소리가 완전히 일치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미국의 위협에 동조하고 반우크라이나 선전에 동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여론은 극심하게 갈라져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공보관이 최근 스카이뉴스(Sky News)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러시아군이 큰 손실을 입고 있으며 전쟁을 가능한 빨리 끝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을 때 많은 러시아의 애국자들은 그를 매국노라고 비난했다.

그런가 하면 침공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시위를 벌이는 소수의 목소리들이 있다. 러시아가 형법을 통해 엄한 처벌을 규정하고 10년 이상 투옥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들은 정말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언젠가는 그 깃발이 부끄럽지 않을 러시아를 건설할 사람들이다.

더 범위를 넓혀 살펴보면, 서방의 제재는 분명 러시아를 강타하고 있다. 이러한 제재는 해외여행이 가능하고, 외국 여권이 있으며, 2001년과 2010년 사이의 ‘제로 지방(fat zeros)’의 혜택을 본 소수 상류층에게는 정말 큰 고통으로 다가서고 있다.

우리는 현재 보통의 러시아 국민은 자신들의 지도자에 대한 비판을 자신들의 인간 존엄성에 대한 침해로 받아들이는 시기에 살고 있다. 그들은 열등감을 느낄 경우 국가와 하나가 되어 대처하려 한다.

바로 푸틴이 현재 정치적으로, 심리적으로 승리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푸틴은 그 이전의 어떤 지도자가 한 행동을 그대로 답습했을 뿐이다. 바로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러시아 국민의 자긍심과 연결시킨 것이다.

러시아인의 권위주의적인 의식 속에서는 국경에서 전개되는 공포와 관련된 자기기만이 통렬한 진실보다 편하다. 결국 누군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면 그것은 서방이나 우크라이나, 심지어는 푸틴도 아니고 러시아 국민 스스로가 될 것이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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