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줌인] 멈춰버린 국제도시...CNN 특파원의 상하이 탈출기
[코로나 줌인] 멈춰버린 국제도시...CNN 특파원의 상하이 탈출기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05.14 06:59
  • 수정 2022.05.14 1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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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이 거의 없는 상하이 푸동공항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인적이 거의 없는 상하이 푸동공항 모습 [사진 = 연합뉴스]

CNN 방송은 13일(현지 시각) 철통 같은 봉쇄를 뚫고 어렵게 상하이를 빠져나온 자사 상하이 특파원의 탈출기를 보도했다. 이를 통해 현재 상하이의 코로나 봉쇄 상황도 어느 정도 들여다볼 수 있다. 다음은 이 보도의 전문이다.

나는 비행기 엔진 소리와 함께 항공기 승무원이 내 좌석 몇 줄 뒤에 앉아있는 다른 승객을 위로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제 떠나는 겁니다. 지금부터는 안전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부드럽게 위로했다.

내가 탄 비행기는 방금 2500만이 사는, 밤이면 고층 건물의 불빛이 이글거리는 도시 상하이의 공항을 이륙했다. 상하이 시민들은 현재 중국 정부의 가혹한 ‘제로 코로나(zero-Covid) 정책’으로 천천히 지쳐가고 있다.

그 승무원은 내게 다가와서도 똑같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이야기를 건냈다.

“어디 보자. 얘하고 같이 빠져나오셨군요?”

그녀는 내 앞 좌석 밑 강아지 이동 케이스 안에 잠들어있는 나의 애완견 체어맨을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강아지랑 함께 빠져나올 수 있었나요? 기분은 좀 어떠세요?”

나는 그녀의 질문에 선수를 빼앗긴 느낌을 받았다. 기자인 나는 언제나 그런 질문을 먼저 묻는 쪽이었다. 그러나 이 비행기 안에서 나는 상하이의 폭압적인 코로나 정책을 뚫고 간신히 탈출 절차에 성공한 몇 안 되는 승객일 뿐이었다.

현재 상하이를 탈출하려는 외국인은 일반적으로 영사 지원 외에도 민간 코로나 검사를 받기 위한 공동체 지도자의 승인, 공항까지 데려다줄 등록 운전자, 그리고 정말 구하기 힘든 항공기 티켓이 필요하다.(애완동물과 함께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떠나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요구되는 것은 한번 출국하면 다시는 입국 트랩을 밟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텅 빈 공항까지 이르는 버려진 도로

50일 동안 아파트 실내에 갇혀있다가 벗어나는 날 나는 이웃들의 지켜보는 눈초리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들은 내가 코로나 양성자로 판명돼 정부의 격리소로 이송되거나 아니면 탈출을 시도하는 다른 외국인들처럼 벗어날 수단을 찾아낸 것으로 짐작할 것이다.

사실 나의 출국은 봉쇄의 광풍이 불기 몇 달 전부터 계획된 것이었다. 나는 2020년 1월 우한의 코로나 최초 발발을 보도한 이후 중국이 스스로 외부 세계와 빗장을 걸어 잠그면서 그대로 중국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2년 반 이상이나 가족들 얼굴을 보지 못하자 나는 중국을 떠나고 싶었다.

상하이 중부 시후이에서 동부의 푸동 국제공항까지 가는 길은 내 기억 속의 그 거리가 아니었다. 황량한 가로들에는 테이프들로 금줄이 쳐있고, 대부분 상점들과 식당들은 문을 닫고 셔터가 내려져 있거나 입구에 쇠사슬이 채워져 있었다.

도로에는 방호복을 입은 방역 요원과 경찰관들 외에는 인적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공항에 이르는 요소요소에 검역소가 있었고, 우리가 탄 차가 멈추면 관리들이 다가와 비행 확인 이메일, 코로나 음성 확인서, 미국 대사관 증빙 서류까지, 몇 분씩 우리 서류를 점검했다.

우리 차가 도착한 공항 터미널 외부에는 다른 차들이나 승객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순간 내게는 내 비행기가 취소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코로나19 감염자 4만명 격리시설 만드는 중국 상하이 :  8일 중국 상하이의 대형 전람회장인 전람회장인 상하이 국가회의전람센터(NECC)에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감염자 격리시설로 전환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NECC는 우리나라 코엑스의 10배에 달하는 규모로, 4만명의 코로나19 감염자를 수용할 예정이다. [상하이 신화=연합뉴스]
중국 상하이의 대형 전람회장인 전람회장인 상하이 국가회의전람센터(NECC)에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감염자 격리시설로 전환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NECC는 우리나라 코엑스의 10배에 달하는 규모로, 4만명의 코로나19 감염자를 수용할 예정이다. [사진 = 연합뉴스]

완전히 다른 나라

내가 지금 떠나는 중국은 거의 3년 전 나를 환영해주던 그 중국과는 완전 다른 나라였다. 나는 중국에 도착해 송고한 첫 주요 기사를 떠올렸다.

중국에 도착한지 몇 달 뒤 우리팀은 이상한 병이 돌고 있다는 말이 퍼지기 시작한 우한으로 파견되었다.

그 때가 2020년 1월 21일이었으며, 며칠 지나지 않아 우한에는 전례 없는 철통 봉쇄령이 내려졌다. 전 세계로 이어지는 봉쇄조치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서둘러 우한을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바이러스에 노출되었을 수도 있다고 깨닫고, 호텔에 14일간 머물며 자가격리를 하기로 했다. 의무 격리가 실시되기 전이었다.

당시는 초기라서 중국 당국의 검열이 가동되지 않았기 때문에 진실의 창이 어느 정도 열려있던 때였다. 그 기간을 활용해 우리는 희생자 가족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당국의 초기 대응 무능과 은폐 시도에 대해 분노를 표출했다.

하지만 중국 관리들은 자신들은 처음부터 투명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번 달 시진핑 주석은 자국의 제로코로나 정책을 다시 확인하고 관리들의 노력을 치하했다. 그는 점점 논란이 커지고 있는 제로코로나 정책에 대한 회의론과 비판론자들과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중국은 세계에서 제일 먼저 코로나로 인해 국경을 봉쇄하고, 야전병원을 꾸리고, 수백만 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검사를 실시하고, 복잡한 접촉자 추적 및 격리 시스템을 실시한 나라 중 하나로, 스스로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우면서 다른 나라에 전범(典範)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 결과 한동안은 중국의 대처가 먹혀들었다. 다른 나라들은 확진자가 폭증하는데도 중국은 비교적 코로나 청정 지역에 속했었다. 그러다가 금년 들어 철통 같은 방역 환경 하에서 북경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중국의 팬데믹 대처는 다른 수준에 접어들게 되었다.

중국에서의 언론 활동은 코로나 이전에도 악명이 높았지만 코로나 팬데믹 하에서 보도를 위해 중국에 파견된다는 것은 갑작스런 봉쇄나 강제 격리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하게 되었다.

중국의 코로나와의 전쟁은 동시에 국제 관계의 악화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미국과의 관계가 더욱 심했다.

나 같은 미국 언론인은 가혹한 비자 제한에 시달리게 되었다. 비자 기간이 더 짧아지고 복수 비자가 금지되었다. 그래서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나갔다가 못 들어오느니 차라리 중국에 갇힐 위험을 감수하는 선택을 했다.

'38선'으로 분단된 상하이 : 지난 11일 봉쇄 중인 상하이 창닝구와 민항구를 잇는 도로 한가운데에 차량과 사람이 오가지 못 하게 하는 장애물이 설치되어 있다. 중국 당국은 행정구 간 인구 이동을 금지하기 위해 도시 도로 곳곳에 이와 같은 장애물을 설치해뒀다. 일부 중국 사람들은 이를 한국전쟁 전 남북 간 경계인 '38선'이라고 부른다. [사진 = 연합뉴스]
'38선'으로 분단된 상하이 : 지난 11일 봉쇄 중인 상하이 창닝구와 민항구를 잇는 도로 한가운데에 차량과 사람이 오가지 못 하게 하는 장애물이 설치되어 있다. 중국 당국은 행정구 간 인구 이동을 금지하기 위해 도시 도로 곳곳에 이와 같은 장애물을 설치해뒀다. 일부 중국 사람들은 이를 한국전쟁 전 남북 간 경계인 '38선'이라고 부른다. [사진 = 연합뉴스]

봉쇄를 뚫고 이륙하다

기괴할 정도로 고요한 2터미널로 들어서는 발걸음은 흡사 비디오 게임에서 다음 레벨로 이동하는 것과 같았다. 알 수 없는 장애에 부닥쳐 떠나왔던 곳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공항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을 압도했다.

출발을 알리는 개시판에는 홍콩과 나의 목적지 암스테르담, 이렇게 단 두 곳의 행선지만이 표시되어 있었다.

공항에는 문을 연 상점이나 식당은 한 곳도 없었고, 자동판매기조차 작동하지 않았다. 저 멀리 육중한 터미널 건물 한편에 이미 떠난 여행객들이 남기고 간 침낭과 휴지들이 뒹굴고 있었다.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 나처럼 떠날 방법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체크인 수속장에는 방역요원들의 검역을 몇 시간씩 기다리는 사람들이 짐이 잔뜩 쌓인 카트를 줄 대신 세워놓고 있었다.

내가 공항 세관과 보안구역을 통과할 때쯤에는 해가 기울며 공항이 얕은 어둠에 묻혀들었다. 대부분이 외국인인 다른 승객들은 탑승을 기다리며 웅크리고 모여 비슷한 경험들을 이야기 나누었다.

“우리는 5년 동안 있었어요.”

한 여성이 이렇게 말하자 다른 승객은 “우리는 7년이나 있었다”고 맞장구를 치면서 다른 부부를 가리키면서 “저 사람들은 거의 10년이나 살았어요”라고 말했다.

내가 공항에서 대화를 나눠본 사람들은 거의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중국의 금융 허브인 이 도시에 투자한 시간들은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으며, 이제는 손절하고 철수할 때라고 말했다.

입국장 창문으로 게이트에 대기 중인 내가 탈 비행기와 방역복을 입은 지상 요원들이 보였다. 그들은 마지막 화물을 적제한 후 상대방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로 살균제로 살포하고 있었다.

마침내 비행기에 타 내 좌석에 앉자 몇 주 동안 쌓였던 아드레날린과 불안과 스트레스가 이완되기 시작했다. 내 좌석 같은 행은 나 빼고 모두 빈 자리였다. 지난 3월 코로나 대규모 확산 이후 이런 안도감을 처음으로 느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비행기가 이륙하자 생존자의 죄책감 같은 것도 느껴졌다.

승무원들은 겉으로는 승객들의 탈출 무용담에 감동받은 것처럼 반응하며, 이렇게 이륙을 기뻐하는 승객들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비행기가 순항 고도에 접어들자 승무원 두 명이 내쪽으로 다가오더니 그 중 한 명이 “여러분 모두 몇 주 동안 수고 너무 많았으니 좀 쉬세요. 곧 집에 모셔다 드리겠습니다”고 말했다.

다른 승무원도 같은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기 얼굴에 쓴 마스크를 가리키며 “일단 암스테르담에 내리면 더 이상 이런 걸 쓰고 있는 사람을 보지 못할 테니 그때는 너무 놀라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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