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이스라엘TV에서 히브리어로 방송하는 팔레스타인 출신 기자 이야기
[월드 프리즘] 이스라엘TV에서 히브리어로 방송하는 팔레스타인 출신 기자 이야기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3.04.30 06:54
  • 수정 2023.04.30 06: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스라엘 공영방송 ‘칸 11(Kan 11)’에서 활약하는 팔레스타인 출신 기자 술레이만 마스와데 [사진 = 칸 11]
이스라엘 공영방송 ‘칸 11(Kan 11)’에서 활약하는 팔레스타인 출신 기자 술레이만 마스와데 [사진 = 칸 11]

이스라엘의 공영 방송국 ‘칸 11(Kan 11)’에는 팔레스타인 출신 기자들이 몇 명 있다. CNN방송은 29일(현지 시각) 이들 중 한 명인 술레이만 마스와데의 활약상에 대해 보도했다.

밝게 빛나는 거대한 스크린들로 둘러싸인, 이스라엘 공영 방송 ‘칸 11(Kan 11)’의 뉴스룸 한가운데에는 초승달 모양의 초대형 책상이 자리 잡고 있고, 그 앞에 앉은 말끔한 양복 차림의 술레이만 마스와데는 동료들과 편하게 잘 어울린다.

그러나 그의 이름과 분명하지 않은 히브리어 억양을 대하면 마스와데가 이스라엘 텔레비전에서 자주 접할 수 없는 존재임을 금방 눈치챌 수 있다. 그는 이스라엘 TV에서 히브리어로 보도하는 몇 안 되는 팔레스타인 출신 기자 중 한 명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스와데가 이스라엘 TV에 모습을 드러낸 최초 또는 유일한 팔레스타인 출신 기자라는 말은 아니다. 칸 11에는 아랍 문제를 전문적으로 보도하는 팔레스타인 출신 기자들이 몇 명 있다. 그러나 마스와데는 ‘팔레스타인’ 이야기만 다루지는 않는다.

최근 정치 부문 특파원과 앵커로 승진한 그는 고향인 예루살렘을 떠나 텔아비브의 고층빌딩 숲으로 이주했다. 불과 7년 전만 해도 히브리어는 한 마디도 몰랐던 그는 27세의 나이에 이 모든 성취를 이루어낸 것이다.

칸 11의 예루살렘 스튜디오에서 CNN과 인터뷰를 갖은 마스와데는 여러 가치관 사이에서 끊임없는 내부 갈등과 때로는 어려움을 느끼며 삶을 살고 있다고 들려주었다. 기자로서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못 마땅해하는 팔레스타인 공동체로부터의 따가운 눈초리 때문에 겪어야 하는 시련을 말한다.

“저는 동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 가족과 팔레스타인 문화 속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나는 내가 팔레스타인 사람인 것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또한 이스라엘에 살고 있고, 어떤 면에서는 이스라엘인이라고도 느낍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당신은 누구세요?’라고 물을 때면 뭐라 답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냥 예루살렘 출신의 언론인이라고 답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 정체성을 잘 나타내는 두 가지 핵심 요소입니다.”

예루살렘 구시가지(Old City of Jerusalem) 출신인 마스와데는 이스라엘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는 대부분이 동예루살렘 출신인 팔레스타인 사람들 중 한 명으로 이스라엘 신분증과 주민증을 가지고 있지만, 여권은 요르단 여권을 지니고 있다. 그는, 그 여권은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소지하고 있는 여행 증명서일 뿐이며 요르단 시민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언론에 많이 오르내리는 지역에서 자랐다. 그는 예루살렘 구시가지에 있는, 남학생들만 다니는 엄격한 이슬람 학교에 다녔고, 어린 시절에는 유대인들은 ‘성전산(Temple Mount)’이라 부르는 장소인 알 아크사(Al-Aqsa) 모스크에서 놀았다.

그곳은 이스라엘 경찰과 팔레스타인 무슬림들 사이에 충돌이 빈번히 발생하는 곳이었고, 이 충돌이 더 넓은 갈등으로 확대되는 일이 잦은 화약고 같은 곳이다.

이스라엘은 1967년 전쟁에서 요르단으로부터 동예루살렘을 빼앗은 뒤 지금은 서예루살렘과 함께 동예루살렘을 “분할할 수 없는 수도”의 일부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제사회는 동예루살렘을 점령지로 간주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은 이곳을 미래 국가의 수도로 원하고 있다.

마스와데가 저널리즘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 예루살렘에서 자살 폭탄 테러 등의 공격이 빈번히 발생했던 2차 인티파다(Second Intifada) 또는 팔레스타인 봉기 때였다고 한다.

“우리는 그곳에서 이스라엘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자욱한 포연 속에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저는 히브리어를 할 줄 몰랐습니다. 그러면서도 TV 속의 현장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현실을 생생히 보도하고 싶고, 무언가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하지만 마스와데의 저널리즘 입성은 간단치만은 않았다. 그는 팔레스타인 비르자이트(Birzeit) 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는 동안 예루살렘의 고급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대부분의 유대인 웨이터들이 히브리어를 말할 수 있기 때문에 로비에서 팁으로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목격하고 금방 결심했다고 들려주었다.

“나는 대학을 중퇴하고 일자리를 찾기로 결정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런 소득도 없이 대학에서 시간만 보내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그에게 1년 안에 히브리어를 배우는 데 도움이 될 장학금에 대해 귀띔해주었다. 그 이후 그는 이스라엘 대학에 편입하여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칸 11의 아랍어 채널에서 인턴십 과정을 밟았다.

몇 달 후 그는 메인 히브리 채널로 옮겨 현장 프로듀서로 활동하게 되었다.

마스와데에게 주어진 첫 방송은 아랍 문제 기자였다.

“그게 정말 싫었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모든 아랍 출신 기자 또는 이스라엘에 있는 대부분의 아랍 기자들은 아랍 사회에 대해서만 보도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겁니다.”

그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나는 아랍인과 유대인을 동시에 다루는 기자가 될 수 있고, 이스라엘 경찰도 취재할 수 있으며,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를 취재하거나 다른 유대인 언론인처럼 이스라엘 총리실을 취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마스와데가 기자로서 실제적인 명성을 얻은 것은 예루살렘 특파원 때였다. 그는 팔레스타인 난민 수용소에 대한 이스라엘 경찰의 급습, 동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충돌, 이스라엘 정치에 대해 보도했다.

그는 최근에는 이스라엘 정부의 사법 제도 개편 시도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취재하는 중심 기자로 떠올랐고, 한때 반(反) 아랍 인종차별주의적 선동으로 유죄 판결을 받기도 한 이타마르 벤 그비르 국가안보부 장관과 같은 이스라엘 새 정부의 극우 인사들과도 인터뷰를 진행했다.

마스와데는 자신의 배경 때문에 복잡하고 긴장된 예루살렘 문제를 취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면 오히려 그 배경이 그에게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주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동예루살렘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실제로 내가 그곳 출신이고, 사람들도 나에 대해 잘 알고, 그들이 내 말을 알아듣고 나도 그들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은 오히려 취재를 편안하게 만들고 취재원과의 접근을 더 용이하게 해줍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 경찰에 가서 내 이야기를 하면 그들은 내가 아랍 사회와 유대인 사회를 모두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어서 그들과의 대화도 수월하게 진행됩니다. 따라서 내가 아랍 출신이라는 사실 자체가 나의 활동을 제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실제로는 그 반대입니다.”

이스라엘 경찰과 충돌하는 팔레스타인 젊은이들 [사진 = 연합뉴스]
이스라엘 경찰과 충돌하는 팔레스타인 젊은이들 [사진 = 연합뉴스]

가족으로부터의 압력

그러나 예루살렘 특파원으로서 그의 첫 번째 주요 특종 중 하나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속적인 딜레마”를 그대로 드러냈다. 즉, “내 사회에서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를 보도하는 것이다.

2020년에 마스와데는 알-아크사 모스크에서 코로나19 제한 조치가 위반되는 현장에 대해 보도했다. 그의 보도에 따르면 이슬람 예배자들이 대부분은 아니더라도 상당수가 마스크 없이 모스크 내부에서 붐비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저에게 전화를 걸어와 말씀하시기를, 모스크 내의 모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당신 손자가 한 일은 지역 사회에 부끄러움을 가져다주었다고 비난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제가 지금 당장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고 말했습다.”

마스와데는 이렇게 들려주었다.

“그러나 나는 할아버지에게 ‘내가 한 일이 착한 일은 아닐지 모르지만, 할아버지의 아들이 그곳에서 기도하고 돌아와 저녁 식사에 함께 앉아 코로나19를 옮겨서 할아버지가 죽게 된다면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겁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도 친지들의 압박은 계속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금요일 저녁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는 날이면 그들은 언제나 ‘그냥 직장을 그만 둬라. 네가 TV에 나오는 것이 자랑스럽기는 하지만, 이제 그만 두는 게 좋겠다.’라고 충고합니다.”

그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마스와데는 자신이 하는 일 때문에 살해 위협에 시달리며 보안 요원을 대동하고 현장 취재에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밤을 틈타서만 부모님을 방문한다.

“나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쪽 모두로부터 위협을 받지만, 내가 이스라엘 TV에서 일하는 사실을 싫어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로부터의 위협이 더 많습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마스와데는,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는 뉴스룸과 이스라엘 TV에 나타나는 자신의 존재가 팔레스타인의 목소리가 사라진 곳을 조망하는 데 도움이 됨을 역설한다고 말했다.

“때때로 내가 현장 취재에 나가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내가 점령 체제에서 일하기 때문에 나를 쫓아내려고 위협하곤 합니다.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나의 활동은 상황을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보도 덕택으로 이스라엘 경찰의 조사 결과가 바뀐 사실과 팔레스타인 소녀에 대한 강압적 행위 때문에 이스라엘 경찰들이 직무 정지를 당한 사실을 예로 들며 이같이 덧붙였다.

그리고 마스와데의 존재는 나아가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에게도 자원과 기회가 주어지면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이스라엘인들에게 보여주는 징표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동예루살렘 출신 젊은이들의 앞길은 25세에 기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무기를 들고 다니는 테러리스트이거나 건물 청소부에 불과합니다. 내가 실제로 기자가 된 사실은 동예루살렘의 사람들에게도 나처럼 기회를 주면 모두가 나와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유대인들에게 전하고 있는 겁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dtpchoi@wikileaks-kr.org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127, 1001호 (공덕동, 풍림빌딩)
  • 대표전화 : 02-702-2677
  • 팩스 : 02-702-16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소정원
  • 법인명 : 위키리크스한국 주식회사
  • 제호 : 위키리크스한국
  • 등록번호 : 서울 아 04701
  • 등록일 : 2013-07-18
  • 발행일 : 2013-07-18
  • 발행인 : 박정규
  • 편집인 : 박찬흥
  • 위키리크스한국은 자체 기사윤리 심의 전문위원제를 운영합니다.
  • 기사윤리 심의 : 박지훈 변호사
  • 위키리크스한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위키리크스한국. All rights reserved.
  • [위키리크스한국 보도원칙] 본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립니다.
    고충처리 : 02-702-2677 | 메일 : laputa813@wikileaks-kr.org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