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이상한 음모론의 제물이 된 미국 사람들 이야기(하)...'고독'현상 전염병처럼 확산
[월드 프리즘] 이상한 음모론의 제물이 된 미국 사람들 이야기(하)...'고독'현상 전염병처럼 확산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3.10.01 06:56
  • 수정 2023.10.01 0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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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선 유세장에 등장한 큐어넌 [사진 = PBS]
트럼프 대선 유세장에 등장한 큐어넌 [사진 = PBS]

“그(마이클 프로츠먼)가 오빠를 빼앗아갔습니다.”

에리카 비그라스는 눈물을 삼키며 이렇게 말했다.

그녀의 오빠 제이슨 비그라스는 JFK의 부활을 직접 목도하기 위해 2021년 11월 댈러스에 머물렀다. 그는 댈러스에서 몇 달을 보낸 뒤 프로츠먼 일행과 함께 전국에서 열리는 트럼프 집회를 따라다녔다.

에리카는 오빠가 마이클 프로츠먼을 텔레그램에서 만났다고 믿는다. 텔레그램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유명 SNS 플랫폼들이 유명 음모론자들의 계정을 폐쇄한 틈을 파고들면서 1월 6일 미국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 이후 미국에서 인기가 급상승한 SNS 메시징 앱이다.

프로츠먼은, 텔레그램 상에서 그의 가족은 바보 같은 소리라고 쏘아붙이던 자신의 음모론을 추앙하는 신도들을 발견한 것이다. 관련해서 그의 어머니는 “마이클이 친구에게 ‘텔레그램에서 갑자기 팔로워들이 생겼다’고 자랑하던 것이 기억납니다.”라고 회상했다.

프로츠먼은 텔레그램에서 추종자들을 상대로 한 번에 몇 시간 동안이나 설교를 늘어놓곤 했다. 횡설수설하는 그의 말에는 어지러운 게마트리아(gematria)들이 난무했다.

게마트리아는 알파벳의 각 문자에 숫자 값을 대입하는 암호 풀이 방식 중 하나로(A=1, B=2, C=3……등) 원래는 히브리어의 알파벳이 나타내는 숫자로써 그 단어가 지닌 뜻을 풀어 성서를 해석하는 방법에서 유래된 용어이다. 프로츠먼은 바로 이 게마트리아를 활용해 케네디와 트럼프 같은 사람들 사이의 연관성을 증명하려고 했다.

이처럼 언뜻 봐서는 말도 안 되는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프로츠먼의 수법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데 효력을 발휘했다. 그는 텔레그램에서 에리카 비그라스의 오빠 제이슨을 포함해 수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렸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프로츠먼에게 빼앗긴 가족들은 그를 괴상한 이론을 앞세워 추종자들을 현혹시켜 가족과 떼어놓는 조작 전문가로 여겼다.

에리카는 막내딸이 삼촌인 제이슨에게, 평소에 나쁜 사람들에게 납치될까 봐 무섭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고 들려주었다. 그런 뒤부터 제이슨은 미국에서 벌어진 아동 유괴, 인신매매, 아동 학대 사례에 대해 온라인을 뒤지기 시작했다고 에리카는 말했다.

아동 학대는 실제로 매우 심각한 범죄이다. 그러나 온라인에서는, 아동을 상대로 하는 범죄 이야기들이 무기로 둔갑해 사악한 의도를 가진 자들이 어린이 보호 본능을 자극하며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데 악용되고 있다.

그들은 민주당 정치인과 할리우드 유명 인사들을 소아성애자로 매도하면서 아동을 학대하고 인신매매하는 무리들이라고 거짓 주장을 퍼뜨리고 있다.

이런 식의 매도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의식(儀式)에 기독교도 어린이들의 피를 바친다고 모함을 받았던 중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음모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음모론은 수세기 동안 이어지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런 음모론은 추종자들의 본능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마이클은 아이들에게 해를 끼치려는 집단이 있다는 생각에 빠져든 것입니다.”

마이클 프로츠먼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를 통제하는 그룹이 따로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이 온갖 끔찍한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피해를 끼친다고 믿고 화를 참을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내 아들과 같은 사람들은 길을 잃어버린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제이슨과 마찬가지로 프로츠먼도 이 모든 일에서 피해자였다고 그녀는 믿는다. 마이클도 그의 추종자들과 똑같이 괴상한 토끼굴 아래로 떨어진 것이라는 말이다. 다만, 그녀의 아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아래로 내려갔을 뿐이다.

“그들은 누가 강제로 시켜서 댈러스로 달려간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강요당하지는 않았지만, 마이클이 빨려 들어간 것처럼 끌려 들어간 겁니다.”

프로츠먼의 어머니는 이렇게 주장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이 문제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애초부터 사이비 종교를 이끌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올 여름 마이클 프로츠먼이 사망한 후에도 그의 추종자 중 일부는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들 중 일부는 프로츠먼도 JFK 주니어처럼 자신이 죽은 것처럼 가장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나아가 일부는 마이클이 사실은 JFK 주니어일 거라고 믿기까지 한다.

콜린 프로츠먼은 아들의 죽음이 이전 그를 추종하던 사람들에게 반성의 시간과 가족에게 돌아갈 기회로 작용하기를 바랐다.

“이제 모든 걸 내려놓고, 자신들이 숭배하던 대상이 모두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강조했다.

2021년 11월, JFK 가문이 부활한다고 믿고 댈러스 딜리 플라자(Dealey Plaza)에 모여든 음모론 신봉자들 [사진 = WFAA]
2021년 11월, JFK 가문이 부활한다고 믿고 댈러스 딜리 플라자(Dealey Plaza)에 모여든 음모론 신봉자들 [사진 = WFAA]

JFK 음모론보다 더 심각한 문제

마이클 프로츠먼과 제이슨 비그라스의 경우는 극단적 사례에 속한다고 치부할 수도 있고, 실제로 여러 면에서 지나친 감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는 수백만 미국 가정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더 넓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에리카 비그라스는 그녀의 오빠가 식탁에서 열변을 토하던 음모론이 오빠를 사이비 집단에 합류하게 할 정도로 대단한 것인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누가 그런 이상한 소리를 하거든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이 미치는 폐해가 생각보다 교활하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그녀는 이렇게 경고했다. 

“만약 당신의 친지가 그런 소리를 한다면 사악한 세력들이 그 친지를 잠식해 들어간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잘못된 정보에 빠져들 때 그 음모론이 초래하는 파괴적인 피해를 목격하는 유일한 사람은 가족일 경우가 보통이다.

“큐어넌이 가하는 고통과 트라우마, 파괴력의 상당 부분은 어두운 무대 뒤에서 자행되고 있습니다.”

수년 동안 가짜뉴스로 고통받는 가족들을 상담해온, 언론인이자 작가인 제설린 쿡은 이렇게 분석했다.

“뉴스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의 눈에도 띄지 않습니다. 그냥 가족간의 저녁 식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때로는 할머니와 전화 통화하면서 그런 대화가 이뤄지기도 하지요.”

이러한 위험한 가공의 세계는 가족과 사회를 분열시키고 미국 국회의사당에 대한 치명적인 공격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음모론의 토끼굴로 더 깊이 빠져들수록 인종차별적이고 반유대주의적인 혐오와 만나면서 그것을 수용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고 말한다.

허위 정보와 사이비 종교의 희생양이 된 사람들을 돕는 비영리 단체인 ‘안티도트(Antidote)’를 운영하는, 전 통일교 신자(이들은 흔히 ‘Moonie’라고도 불린다) 다이앤 벤스코터는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이러한 거짓 현실에 빠져드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지만, CNN이 인터뷰한 모든 가정과 전문가들은 소외감과 공동체 의식의 결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매우 독창적인 주제를 가지고 2000년에 실시된 세미나의 주제인 ‘혼자 볼링 치기(Bowling Alone)’는 20세기 후반 미국의 사회안정망의 쇠퇴를 그대로 반영했다. 볼링 및 기타 사교 클럽 회원의 회원수가 감소하면서 공동체가 흔들리는 모습을 대상으로 연구를 벌인 것이다.

그 이후 등장한 소셜 미디어는 사람들을 갈라 놓으면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이와 관련 올해 초 미국 공중보건국장은 외로움과 고립이 전염병 수준에 이르렀다고 밝히기도 했다.

자칭 사이비 종교인이었던 벤스코터가 21세기 미국에서 확산되는 음모론을 단순한 정치적 문제나 정신 건강 문제가 아니라 공중 보건 문제로 다루어야 한다고 믿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녀는 관련된 위협이 미국 가정의 분열을 훨씬 넘어서서 국회의사당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진 것은 이러한 거짓말의 위험한 잠재력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실제로 위기에 처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민주주의가 붕괴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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