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투데이] 13년간 58명의 목숨을 앗아간...미국 말리부 낙원에 이르는 '죽음의 도로'
[월드 투데이] 13년간 58명의 목숨을 앗아간...미국 말리부 낙원에 이르는 '죽음의 도로'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3.12.20 05:24
  • 수정 2023.12.20 0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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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커브길’로도 불리는 말리부 해안가 도로 [사진 = CNN 캡처]
‘죽음의 커브길’로도 불리는 말리부 해안가 도로. [사진 = CNN 캡처]

브리짓 톰슨은, 자신도 친구들과 함께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울먹였다.

지난 10월 어느 화요일 늦은 밤 페퍼다인대학 치어리더 회의가 아니었다면, 이 대학 4학년생인 그녀는 가장 친한 친구 4명과 함께 학교 밖에서 열린 연합 동아리 모임에 참석하러 갔을 것이다.

“보통 때 같으면 분명히 친구들과 함께 있었을 겁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목적지로 가는 차 안에서 즐겁게 떠드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분명히 친구들은 함께 음악도 듣고, 노래도 불렀을 겁니다.”

사건을 조사 중인 미 검찰은 페퍼다인대학 졸업반 학생들인 니암 롤스턴, 페이튼 스튜어트, 아샤 위어, 데슬린 윌리엄스가 해안가에 차를 주차하고 태평양 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걷고 있을 때 시속 104마일(약 167Km)로 달리던 BMW가 주차된 차량 여러 대를 들이받은 뒤 그녀들을 덮쳤다고 밝혔다.

CNN방송은 19일(현지 시각) 2010년 이후 지금까지 58명의 목숨을 앗아간, 호화로운 휴양지이자 고급 주택가를 낀 말리부 해안도로가 얼마나 위험한 지에 대해 보도했다.

부리짓 톰슨은 친구들과 합류하러 가는 중에 그 친구들과 연락이 안 된다는 다른 친구의 메시지를 받았다.

“경찰은 한동안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날 밤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날 밤 새벽 3시까지 친구들 소식을 확인하기 위해 아무 병원에나 전화했어요.”

그러나 그녀는 다음 날 아침 학교에서 온 이메일을 보고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내 마음에는 네 개의 큰 구멍이 뚫렸습니다.”

데슬린은 톰슨이 페퍼다인에서 사귄 첫 번째 친구였으며, 니암은 그녀의 반쪽과 같은 사이였고, 아샤는 또래에 비해 어른스러웠다. 그리고 페이튼은 그녀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이타적인 친구였다고 말했다. 

“하루 종일 울었습니다. …… 세상에 나 홀로 남은 것 같습니다. 정말 외롭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친구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할 일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도 합니다.”

톰슨은 이제 말리부를 상징하는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Pacific Coast Highway)’의 안전을 지키자고 요구하는 사람들 중 하나가 되었다.

그녀는 캘리포니아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경치 좋은 이 고속도로에서 2010년 이후 교통사고로 사망한 58명을 추모하기 위해 흰색 타이어 58개로 만든 추모 시설을 세우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그녀는 “변화를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세상이 무관심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나아가 내 친구들이 헛된 죽음을 맞았다고 느낄 겁니다.”

이 고속도로의 안전을 요구하는 사람은 톰슨 혼자가 아니다. 에밀리 셰인은 도로가에 세워진 58개의 희생자 추모 타이어들 중 첫 번째를 상징한다. 에밀리 가족은 그녀의 죽음 이후로도 57명이 희생되어야 한 이유를 묻고 있다.

말리부 해안가 도로에서 과속한 차에 치여 사망한 페퍼다인대학 여학생 4명 [사진 = CNN 캡처]
말리부 해안가 도로에서 과속한 차에 치여 사망한 페퍼다인대학 여학생 4명 [사진 = CNN 캡처]

‘죽음의 커브길(Dead Man’s Curve)’

산타모니카 산맥과 태평양 사이 21마일 길이의 해안가에 자리잡은 말리부는 관광객과 유명 인사 모두를 매료시킨다. 비욘세와 레이디 가가부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줄리아 로버츠 등의 할리우드의 유명인사들도 이곳에 집을 가지고 있다. 영롱한 해변을 자랑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이 해안선은, 외부 노출을 꺼리는 약 1만 명의 주민을 보기 위한 관광 메카로도 유명세를 얻고 있다.

US 1이라고도 알려진 PCH(Pacific Coast Highway)는 말리부의 주요 동맥일 뿐만 아니라 마을을 통과하는 유일한 도로 중 하나이다.

말리부 지역을 관할하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보안관 제니퍼 시투는 “주도로에 해변 주차 공간이 더해졌다”라고 말했다. 

“산책하는 사람들 옆으로 차들이 시속 100마일로 달리는 곳입니다."

페퍼다인대학 여학생들 4명이 차에 치인 곳 부근의 고속도로 일부는 ‘죽음의 커브길(Dead Man's Curve)’이라는 별명도 붙어있다.

말리부에 살면서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 ‘아이, 로봇(I, Robot)’ 등의 히트작을 제작한 영화 제작자 미셸 셰인은 “‘죽음의 커브길’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인데도 이에 분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기가 막힌다”고 한탄했다.

2010년 당시 13세이던 셰인의 딸 에밀리는 밤샘 파티에서 놀고 아버지가 데리러 오기를 기다리던 중 PCH에서 차에 치여 사망했다.

“자동차 한 대가 내 옆을 질주하며 중앙선을 넘더니 마주오는 차량들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셰인은 딸을 데리러 가던 길에서 마주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완전 미친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셰인이 딸과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을 때 교통사고 때문에 지역 일대에 바리케이트가 쳐진 상태였다. 그의 딸 에밀리는 그의 옆을 질주하던 바로 그 차에 받혀 공중으로 날아가 기둥을 치고 도로가 제방 울타리를 넘어갔다.

“10~15분 쯤 후에 경찰이 딸이 사망했다고 알려줬습니다.”

셰인은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4월 3일 5시 59분과 6시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셰인은 딸의 죽음으로 고속도로에 중앙분리대가 설치되고 과속이 제한되는 등 즉각적이고 중대한 변화가 찾아오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 딸은 고등학교도 졸업하지도 못했습니다. 살아있었다면 26세가 되었을 겁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에 ​​슬픔과 분노를 더해 PCH의 위험성을 알리는 다큐멘터리 ‘21 Miles in Malibu’를 제작했다.

셰인은 대중문화 때문에 젊은이들이 속도감에 취해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과속의 위험 등 자동차 운전 문화를 바꾸기 위해 학교에서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안전벨트 착용과 음주 운전 경각심 고취가 운전 문화를 바꿔놓은 것처럼 과속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리고 싶은 것이다.

에밀리가 사망한 이후 지역 주민과 지도자들로 구성된 PCH 태스크포스가 구성되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퍼다인 대학생 4명의 사고를 포함해 57명의 추가 사망을 막을 수는 없었다.

“또 다른 사고까지는 시간 문제일 뿐입니다.”

셰인은 이렇게 주장했다.

지역 보안관 시투는 과거에 일어난 비슷한 사건을 떠올렸다. 2021년에도 보행자 9명이 이 곳에서 차에 치어 사망했던 것이다.

“사망자 중 6명이 노숙자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그다지 끌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녀는 당시 당국은 노숙자들에게 밤에 착용하는 야광 띠를 나눠주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 지었다고 덧붙였다.

2010년부터 말리부 ‘죽음의 커브길’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58명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58개의 타이어들 [사진 = CNN 캡처]
2010년부터 말리부 ‘죽음의 커브길’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58명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58개의 타이어들 [사진 = CNN 캡처]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캘리포니아주 고속도로는 칼트랜스(Caltrans)라고도 불리는 주 교통국 관할이다. 칼트랜스는 CNN에 보낸 성명에서 도로 조명을 동기화하고 자전거 도로 및 보행자 접근을 포함해 도로 개선을 위한 교통 안전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셰인과 같은 사람들은 고속도로에서 과속을 억제하기 위해 더 많은 조치를 취하기를 원한다.

칼트랜스는 보행자가 많이 다니는 도로의 개선을 명하는 주법에 따라 속도를 낮출 수 있는지 먼저 6개월 이내에 구역 속도 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말리부의 규정 속도는 45마일인데 과속이 만연하다고 시투는 말했다. 카운티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발생한 3,345건의 교통사고 원인 중 과속이 865건으로 1위를 차지했다.

페퍼다인 학생들의 사망 사고를 처리하면서 시투 보안관은 인력 부족이 단속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녀는 나아가 과속 단속 카메라가 설치되었다면 그런 끔찍한 사고는 막을 수도 있었을 것으로 믿는다.

“학생들 부모님들의 표정을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그날은 보안관 생활 중 최악의 날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좀 더 강하게 밀어붙여 과속단속 카메라가 설치되었다면 하는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에밀리가 사망한 교차로는 그녀를 기리기 위해 ‘Emily Shane Way’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브리짓 톰슨은 유명을 달리한 친구들 덕택으로라도 이 도로에 변화가 찾아오기를 바란다. 

“친구들이 정말 헛되이 죽은 것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시투 보안관은 공동체가 뭉친다면 사망자들의 죽음을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는 사이에도 그녀 사무실 문밖에 세워진 추모의 흰색 타이어 더미에 숫자가 더해질지도 모른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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