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신년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말하면 김 회장이 강조한 혁신, 소통, 정도 경영의 중요성은 ‘빛 좋은 개살구’처럼 비춰진 게 사실이다. 모두가 공감할 내용이지만 한편으로는 재벌 총수라면 누구나 써먹을 법한 단어의 나열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고 여겨진 탓이다.
공교롭게도 쉽게 벗겨지지 않던 색안경은 지난 31일 한화그룹이 발표한 경영쇄신안을 접하고서야 사라졌다. 김 회장이 신년사를 통해 강조한 혁신, 소통, 정도라는 개념이 허울 좋은 말장난이 아니었음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룹 컨트롤타워인 경영기획실을 해체한다는 내용부터가 남달랐다. 인수·합병(M&A)이나 대규모 투자 등 그룹 차원의 핵심 의사결정을 주도해 온 그룹의 심장부를 없애기로 한 것은 총수 일가에 집중된 권한과 책임을 분산하겠다는 ‘혁신’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소통’을 위한 투명경영 방안을 내놓았다는 점 역시 주목할 부분이다. 쇄신안에는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를 위해 ‘개방형 사외이사’ 추천 제도를 도입한다는 내용이 뒤따랐다. 계열사 간 내부거래 심의 기관인 내부거래위원회는 사외이사로만 구성하고, 주주권익 보호담당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한다는 결정도 이를 뒷받침했다.
더욱 놀라운 건 ‘정도’ 경영의 뜻을 내비쳤다는 점이다. 쇄신안에서는 한화S&C와 한화시스템을 합병하고 H솔루션이 보유한 합병회사 지분율을 14.5%까지 낮추겠다는 계획이 담겨 있었다. 아울러 김 회장의 세 아들이 100% 소유한 H솔루션의 한화S&C 지분은 추가로 처분해 관계를 완전히 끊기로 했다.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희석시키는 동시에 정도 경영의 의지를 보여주고자 꺼내든 일종의 정공법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누군가는 대기업 지배구조 선진화의 핵심 과제로 일감 몰아주기를 거론하고 자발적 개혁을 당부한 ‘재벌 저승사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압력에 김 회장이 굴복했을 뿐이라고 평가절하 할 것이다. 그간 일감 몰아주기로 이득을 취하던 수많은 재벌 총수 일가가 이제야 개선 의지를 드러내는 걸 보면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럼에도 쇄신안을 계기로 김 회장, 더 나아가 한화그룹을 달리 보게 된 건 최소한 자신들이 내뱉은 말에 대해선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 까닭이다. 잊을 만 하면 한번씩 떠들썩한 추문으로 신문 1면을 장식하기도 했던 옛 김승연 회장 일가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때도 되었다는 생각도 해본다. 말처럼 쉽지 않은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더욱 그렇다.
[위키리크스한국=양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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